이부춘 [한] 李富春

이부춘(1773~1801).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 충주(忠州) 출신으로 이기연(李箕延)의 전교로 입교, 자신의 마을과 인근 마을에까지 전교하며 주일(主日)마다 교우들을 모아 첨례를 지냈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아들 석중(石中)과 함께 체포되어 이해 10월 5일(음 8월 27일) 이기연, 권아기련(權阿只連) 등과 함께 충주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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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영 [한] 李福永

이복영(1905~1958). 서울교구 소속 신부. 세례명 요셉. 충북 단양군 단양면 하방리(忠北 丹陽郡 丹陽面 下坊里)의 독실한 교우가정에서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지봉(芝峰) 이수광(李晬光)은 그의 17대 조(祖)이고, 1801년 순교한 이윤하(李潤夏)는 그의 12대 조가 된다.

1917년 당시 용소막본당 주임 시잘레(Chizallet, 池士元) 신부의 권유로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 1930년 10월 26일 사제로 서품되었고, 서품 후 안성본당 보좌로 첫 성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교구장 비서(1932-1933년), 소신학교 교사(1933-1936년), 안성본당 주임(1936-1942년), 교구당가(1942-1946년) 등을 거쳐 광복 후에는 <경향신문> 속간에 관여하며 경향신문사 총무로 활약하였다. 1948년 수원본당(현재의 북수동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어 사목하던 중 1958년 8월 25일 서울 성모병원에서 위암으로 선종,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와 동창신부로는 노기남(盧基南) 대주교, 윤형중(尹亨重) 신부, 방유룡(方有龍) 신부, 양기섭(梁基涉) 신부 등이 있으며, 교회음악가로 명성을 날렸던 이문근(李文根) 신부는 그의 조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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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명 [한] 李福明 [관련] 리델

리델(Ridel) 주교의 한국명. ⇒ 리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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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환 [한] 李普煥

이보환(1893-1944). 서울교구 소속 신부. 세례명 요셉. 황해도 수안군 사창리(社倉里)에서 태어났다.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6월 21일 사제로 서품되어 주교관에 설치된 시복조사회(諡福調査會) 비서관으로 재직하였다. 그 뒤 강원도 원주(1922~1923. 5), 황해도 은율(1923. 5~1928. 5), 신계(1928. 5~1933. 5), 강원도 횡성(1933. 5~1937. 7), 강원도 사창리(1937. 7~1941. 6), 송화(1941. 6~1942. 5) 등지에서 본당신부로 사목했고, 1942년 5월부터 강원도 평강본당 주임신부로 재직하던 중 1944년 3월 9일 황해도 재령본당의 해성병원에서 지병인 심장성 천식으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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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현 [한] 李步玄

이보현(1768-1795). 순교자. 세례명 프란치스코. 충청도 덕산 황모실(현 唐津郡 古德面) 출신. 어려서부터 부친을 잃었기 때문에 무궤도한 생활을 하다가 24세 때 황심(黃沁, 토마스)에게 교리를 배우고 입교한 후부터는 전과는 전혀 사람이 달라져 단정한 처신과 온화한 생활을 하여 모든 사람에게 많은 감화를 주었다. 그의 신심은 날로 굳어져 보속과 고행을 통해 이를 더욱 다졌다.

1788년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에도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족과 동리 교우들을 격려하였다. 1795년 3월 15일 드디어 잡힌 몸이 되어 혹독한 고문에도 끝내 배교치 아니하고 신앙을 지켰을 뿐 아니라 오히려 천주교의 교리를 그들에게 설교하였다. 마침내 고향인 해미(海美)로 이송되어 그곳에서 모진 형벌을 받았으나 끝내 배교치 않으므로 1795년 12월 15일(음) 장살(杖殺)되었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며칠 뒤 그의 시체를 거두어 보니, 고문으로 받은 상처는 간 데 없고, 웃음을 띤 온화한 모습에 이를 본 외교인들은 크게 감동되어 입교하는 자가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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