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초기 교회 순교자. 축일 1월 20일. 성 암브로시오(St. Ambrosius)에 의하면, 밀라노 출신으로 디오클레시아누스(Diocletianus) 박해(297∼305년) 때 순교했다고 한다. ≪354연대기≫와 ≪예로니모(Hieronymus) 순교록≫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유해는 아피아(Appia)로(路)가에 있는 성 세바스티아노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그에 대하여 별로 알려진 것은 없으나 중세와 르네상스시대에 그려진 영웅화된 많은 그림들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450년경 편찬된 전설에 의하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군사로서 그리스도교도라는 것이 발각되어 화살에 맞아 처형될 뻔하였으나 이레네(Irene) 라는 과부의 간호로 살아났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황제에게 발각되어 이번에는 곤봉에 맞아 죽었다. 그래서 르네상스시대에 그려진 회화에 주로 화살을 맞고 있거나 화살을 쥐고 있는 영웅적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세르티앙즈 [원] Sertillanges, Antoine Gilbert
Sertillanges, Antoine Gilbert(1863∼1948). 도미니코회의 설교가, 호교론자, 철학자. 프랑스의 클레르몽페랑에서 태어나 오트사브와현(縣) 살랑시에서 죽었다. 1883년 스페인의 벨몬트에서 도미니코회에 입회, 달마시오(Dalmatius)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1888년 및 1890년 코스시카섬의 코르바라에서 신학을 가르쳤으며 1900년부터 1920년까지 파리의 가톨릭 신학원에서 윤리신학을 강의하였다. 그로부터 죽을 때까지 그는 700종 이상의 저서와 논문을 집필하였다. 주요한 신학저술로는 ≪La preuvede l’existence de Dieu et l’eternite du monde≫(Fribourg 1898), ≪Les Sources de la croyance en Dieu≫(Paris 1903), ≪S. Thomas d’Aquin≫(2권, Paris 1910), ≪La philosophie morale de S. Thomas d’Aquin≫(Paris 1916), ≪L’Idee de creation et ses retentissements en philosophie≫(Paris 1945) 등이 있다. 종교사회학 분야의 저술로는 ≪Le Patriotisme et la Vie sociale≫(Paris 1903), ≪La politique chretienne≫(Paris 1904), ≪La Famille et 1’Etatdans l’education≫(Paris 1907) 등이 있다. 그리스도교 미술 분야의 저술로는 ≪Un Plerinage artistique a Florence≫(Paris 1895), ≪Art et Apologetique≫(Paris 1909) 등이 있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저술의 하나는 ≪La Vie intellectuelle≫(Paris 1921)이다.
1917년에 행한 설교가 문제화되어 1922년 이후 성직을 떠났으며 1923년에 예루살렘, 1924년에 네덜란드, 1928년부터 1939년까지 벨기에에서 망명 생활을 한 다음에 프랑스로의 귀국이 허락되었다. 그는 베르그송(Henri Bergson)과 깊이 사귀었으며, ≪Avec Henri Bergson≫(l941), ≪Hanri Bergon et le Catholicisme≫(Paris 1941), ≪Lumiere et Perils du Bergsonisme≫(Paris 1943) 등 그에 관한 연구서를 저술하였다. 또한 생리학자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에 관한 연구서 ≪La Philosophie de Claude Bernard≫(Paris 1944)가 있고, 그밖에 ≪Le Christianisme et la Philosophie≫(2권, Paris 1939∼1941), ≪La Philosophie des lois≫(Paris 1946)이 있다. 그의 최후의 저서는 죽음 때문에 중단된 ≪Le Probleme du ma1≫(2권, Paris 1948)이다.
[참고문헌] M.F. Moos, Le Pere Sertillanges: Maitre de vie spirituelle. Brussls 1958 / Cahiers S. Dominique 44, 1964.
세르반테스 [원] Cervantes, Miguel de
Cervantes, Miguel de(1547∼1616). 스페인이 낳은 최대의 소설가. 극작가. 소설 ≪돈키호테≫의 작자이다. 1568년 마드리드 근처의 사숙(私塾)에서 잠시 공부한 것 외에는 학교 교육이라고는 거의 받은 적이 없다. 이듬해 이탈리아에서 아크와비바 추기경을 섬기고, 이어서 이탈리아 주재 스페인 군대에 입대 1571년에는 역사상 유명한 레판토 앞바다의 해전에 참가하여 가슴에 두 군데, 왼손은 평생 사용 불능한 상처를 입었다. 귀국하던 도중, 당시 지중해에 횡행하던 해적들에게 습격을 당하여 1580년까지 5년간 알제이에서 노예생활을 하였다.
1585년에 처녀작 소설 ≪라 갈라테아≫(La Galatea)를 출판하였다. 1587년까지 20∼30전의 희곡을 쓴 것으로 전해지나 <알제리의 생활>과 ≪라 느만시아≫의 2편이 현재 전해오고 있을 뿐이다. 그 뒤 1605년에야 명작 ≪돈키호테≫의 제1부를 출판하였다, 출판과 함께 세상의 갈채를 받았으나 빈궁한 생활은 여전하였다. 1615년에 ≪돈키호테≫ 제2부를 출판하였다. 만년에는 종교적인 결사에 가담하고 프란치스코 데 실바가 창립한 문학가단체에도 가입하였다, 그는 1616년 4월 23일 마드리드에서 사망하였는데 이 날은 셰익스피어가 사망한 날과 똑같은 날이었다.
세례지원기 [한] 洗禮志願期 [라] catechumenatus [영] catechumenate
세례에 앞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신앙과 생활로 들어가는 입문 기간. 고대의 세례 지원자들은 이 기간 동안 세례 준비를 위한 교리 교육과 생활 교육, 영신적인 수련을 받았다. <사도 규정>에는 그리스도 복음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 즉, 단순히 그리스도교로 전향하는 것으로 충분히 세례가 허용된다고 밟히고 있다(사도 8:36). 그러나 세례 지원자들의 급증과 이교적인 환경에서 교리 교육의 필요성이 인정되어 세례 지원기는 교회의 직무적인 조직으로 교리 교사와 함께 2세기에 발전되어 4세기에 완성되었다. 세례 지원자는 3년 동안 교회 내 지정된 장소에서 ‘말씀의 전례’(예비미사)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이미 ‘구원의 신비’에 참여하는 자들로 인정되었다. 필요한 교육을 받은 뒤 세례 지원기의 마지막 부분인 세례의 실제적 준비로 들어가는데 이는 보통 사순절에 이루어졌다, 이때 교리 문답과 구마식도 행해졌다. 그러나 주위 환경의 그리스도 교화와 유아세례의 점차적 증가로 고대의 세례 지원기는 실질적으로 쇠퇴해 갔다. 로마 예식서에 남아 있던 세례 지원기의 요소인 입교식과 구마식, 세례 전 도유 등이 독립된 경우에 실행되던 1962년, 세례 지원기는 부활되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어른 세례예식의 개정 결의를 통해 확정되었다.
즉 “성인의 단계적 성세 예비 기간을 복구시켜 교구장의 판단에 따라 이를 다시 실시하도록 해야 한다”(전례헌장 64)는 관점에 따라. 경신성성은 1972년 1월 6일자로 새로운 ≪어른 입교 예식서≫를 반포, 그 시행 일자는 각 지역 상황에 따라 결정하도록 지역 주교회의에 위임하였다(1975년 한국어로 번역 출판). 그때까지 한국 교회의 세례 지원기간은 1932년 ≪한국 교회지도서≫의 규정에 따라 6개월 이었고 1932년 이전은 초기교회의 관습을 따라 40일이었다. 경신성성의 예식서를 통해 세례 지원기는 시대에 뒤진 부분들이 제거된 새로운 형태로 부활된 것이다. 예식서에 의하면, 어른 입교 절차는 단계적 구분과 시기적 구분으로 되어 있다. 즉 제1단계 예비자들을 받아들이는 예식인데 예비선교 기간은 이 예식으로 끝난다(긴 기간이 요구된다). 제2단계 선발예식 인데 예비기간은 이 예식으로 끝나고. 정화와 조명의 기간이 되는데 사순절이 가장 이상적인 시기이다. 수련식과 주의 기도 및 신경수여식을 통한 부활축제와 성세성사를 직접 준비하는 기간, 즉 제3단계는 입교 성사의 집전이고, 그 후는 신비 교육 기간인데 부활시기를 통하여 신자들과 친교를 맺고 세례의 효과를 체험하는 기간이다.
세례반 [한] 洗禮盤 [라] fons baptismalis [영] baptismal font
세례식 때 사용하는 성수(成水)를 담는 그릇. 보통 돌이나 금속. 혹은 나무로 만든다. 초대 교회에서는 보통 영세자를 세례반 속에 침수(侵水, immerison)시켜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그에 따라 세례반도 상당히 컸다. 이때의 세례반은 성인용과 유아용 두 가지가 있었고, 성인용은 지표면보다 낮게, 유아용은 지표면보다 약간 높은 곳에 설치되어 세례성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영세자의 머리에 물을 붓기 쉽도록 하였다. 세례반은 세례당(洗禮堂, baptistery)이 따로 있는 성당에는 세례당에 설치되었지만 보통은 성당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세례의 형식이 작은 양의 물을 영세자의 머리에 붓는 것으로 바뀌면서 세례반도 점차 축소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