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한] 出埃及記 [라] Liber Exodus

구약성서 중 모세 오경(五經)의 제2서. exodus는 탈출(脫出)을 의미한다.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첫머리의 구절이 “이것이 이름이다”로 되어 있어 ‘이름’이라 부른다. 민수기(民數記)의 ‘수’와 대조적이다. 출애굽기란 책명은 그리스어역 성서와 한역(漢譯)성서(19:1)에 따라 보충한 것이다. 이 책의 전반(前半)이 이집트 탈출기록이니까 그런대로 적당한 명칭이라 하겠다.

1, 목적 : 전반의 탈출이야기에서는 하느님의 구원의 은혜를 서술하고 후반에서는 그 하느님이 주신 율법(律法)을 이야기한다. 다시 말하면 조상들에 대한 하느님의 계약의 실현으로서의 구원의 성업(聖業)과 그 계약에 의해 요구되는 율법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그 율법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十誡命)은 하느님이 하신 일에 대한 회고에서 시작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20:2).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거듭 상기해 오던 사건이었다(시편 78, 80, 81, 105, 114, 136). 그리고 하느님의 그 성업은 하느님 이름의 계시를 출발점으로 해서(3:13-18), 하느님의 모세에 대한 명령과 도우심에 의해 수행되었던 것이다.

2. 내용 : 창세기의 뒤를 이어 받아서 이 책은 이집트에 이주한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고난에 관한 서술에서 시작하여 그들의 구원자로 선택된 모세의 어린 시절과 소명(召命), 이집트에서의 재난, 그것으로부터의 탈출, 홍해(紅海)를 건너 황야를 가로질러서 마침내 시나이산에 도착하기까지의 편력(1-19)을 기록하고 있다. 후반(後半)에서 그 시나이산에서 모세에게 주어진 율법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십계명(20:1-17)과 ≪계약의 서≫(20:22-23:33)로 불리는 것 외에 장막(帳幕)건설의 상세한 지시가 내려지고 있다(25:1-31:18, 35:1-40:33). 한편 34장 14절에서 28절에 걸쳐 계약경신의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도 별도자료에 의한 십계명일 것이라고 일컬어져, 전자(前者)를 윤리적 십계명, 후자를 제의적(祭儀的) 십계명으로 구별짓고 있다. 전체 내용을 대별(大別)하면 다음과 같다. ① 이집트로부터 시나이산까지(1-18장), ㉮ 이집트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 (1:1-4:31), ㉯ 파라오와의 교섭(5:1-11:10), ㉰ 이집트로부터 황야로(12:1-18:27), ② 시나이산에서(19-40장), ㉮ 시나이산과 율법의 수여(19:1-24:18, 32:1-34:35), ㉯ 장막에 관한 지시와 건설(25:1-31:18, 35:1-40:38).

3. 문제점 : ① 이 책이 중요한 점에서 통일적이다. 저서가 모세냐, 아니면 여러 원전을 바탕으로 편집된 것이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모세 5경≫, 모세의 십계명 및 ≪계약의 서≫의 연대(年代), 고대 동방 율법과의 관계, 그리고 전례율법의 연대가 문제가 되고 있다. ② 역사적인 검토에 있어서는 이집트에서의 이스라엘인의 제재, 그 박해, 모세 자신의 사실성(事實性) 및 그 유년시절, 이주자수, 시나이산에서의 계약 등이 대상이 된다. 나일강 지방에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체류했다는 것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전승적 통설에 반대하며 그것을 여러 부족의 일부에 불과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튼 비평가들도 민족의 압박, 모세의 유년시절 및 그 활동 기록이 최소한 그 중핵에 있어서는 사실(史實)과 같다는 것을 점차 인정하게 되었다. 시나이산상의 계약은 바빌론 유수(幽囚)로서 전제되었고, 이스라엘인 역시 판관시대 및 열왕시대 초기에 야훼에 대해 특수관계를 가졌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③ 지리적 문제점은 홍해를 건넌 장소, 시나이산 및 사막의 여러 지점이다. ④ 이집트로부터의 탈출은 출애굽기 2장 23절 이하에 의하면 다년간 통치한 이집트왕의 사망 직후에 결행된 것이다. 그보다 더 정확한 일시(日時)는 성서의 연대기록, 하비리(Chabiri) 문제, 이스라엘의 기둥, 시나이산의 비문(碑文)이 열쇠가 되고 있다. 열왕기 상 6장 1절에 따르면, 이 탈출은 솔로몬의 성전(聖殿)의 건립(기원전 968년)보다 48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니까, 많은 사람들은 이집트왕 투트모시스(Thutmosis) 3세(기원전 1504∼1450)를 유일하고도 주된 박해자로 보고, 아메노피스(Amenophis) 2세(기원전 1451∼1426)를 탈출시의 왕으로 보고, 이스라엘인에 의한 팔레스티나 정복을 하비리와 결부시키고 있다. 이와는 달리 람세스(Ramses) 2세(기원전 1312∼1246)를 박해자로, 메렌프타(Merenptah, 기원전 1246∼1239)를 탈출시의 왕으로 보고, 탈출은 그의 통치 제2년에 있었다고 하는 설이 더 진실에 가까운 것 같다. 출애굽기에서 암시되고 있는 정정(政情)은 이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4. 가치 : 이스라엘 종교가 그 기초를 두었다고 할 수 있는 모세의 인물과 가르침을 알기 위해,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 역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집트 탈출사건을 검토하기 위해서 이 책은 없어서는 안 되는 문헌이다. 그 특이한 신관(神觀)과 율법을 연구하는 데도 근본자료가 될 뿐 아니라 역대의 제사(祭司) 제도를 알기 위한 귀중한 문헌이다. (沈勇燮)

[참고문헌] S.R. Driver, The Book of Exodus, The Cambridge Bible, 1911 / A.H. McNeile, The Book of Exodus, Westminster Commentaries, 1908 / G. Beer Exodus mit einem Beitrag von kurt Galling, 1939 / W.A. Albright, From the Stone Age to Christianity, 1960.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춘천본당 [한] 春川本堂

춘천교구 소속 본당으로서 현재는 춘천교구 주교좌인 축림동본당(竹林洞本堂)이며, 본당주보는 예수 성심이다. 춘천에 본당이 설립된 것은 1891년에 영세, 1895년 곰실(현 春城郡 新東面 古隱里)에 정착한 신자 엄주언(嚴柱彦, 마르티노)의 노력에 힘입은 바 컸다. 그는 곰실을 중심으로 전교하면서 1899년 원주에 있던 드브레(Devred, 兪) 신부와 첫 접촉을 갖고 곰실을 방문토록 하였다. 그러나 그 뒤 1920년까지도 이곳에는 본당신부가 상주(常住)하지 못한 채 풍수원본당 관할 아래 있었다. 그러다가 1920년 1920년 9월 18일 갓 서품된 김유룡(金裕龍, 필립보) 신부가 풍수원본당 주임인 정규하(鄭圭夏, 아우구스티노) 신부의 보좌로 임명되어 본당 관내이던 춘천지방을 맡아보게 됨으로써 춘천본당이 설립되었다. 김유룡 신부가 처음 부임한 곳은 150여명의 교우들이 살고 있던 곰실(당시는 春川郡 東內面 古隱里)로서 당시 관할공소는 춘천군에 1개, 인제군에 2개 양구군에 3개, 홍천군에 4개, 화천군에 4개 등을 비롯하여 14개가 있었다. 그 뒤 1928년 춘천읍 내 약사리(藥司里, 일명 약사리 고개로 현재의 竹林洞임) 418번지로 본당을 이전하였다. 1929년 이기준(李起俊, 토마스) 신부가 용산신학교에서 2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한옥(韓屋)을 구입, 성당으로 개축하였는데, 당시 신자수는 600여명이었다. 이기준 신부는 또한 강원도 도지사의 도움을 얻어 성당 부설 유치원도 설립하였다. 1931년에는 개성본당(開城本堂)에서 3대(1932∼1934) 서병익(徐丙翼, 바오로) 신부가 부임하였고, 1933년 1월에는 새 신부인 조인원(趙仁元, 빈첸시오) 신부가 보좌신부로 부임하였고 그 뒤에는 4대(1934∼1935) 주임신부로서 사목하였다. 춘천본당은 서울교구에 속해 있다가 1939년 춘천지목구가 설립되자, 1940년 12월 8일 춘천교구에 편입되었는데, 1937년경 신자수는 1,165명이었다. 4대 조인원 신부 이후 역대 본당신부는 다음과 같다. 5대(1935∼1938) 유영근(兪榮根, 요한) 신부, 6대(1938∼1940) 퀸란(Quinlan, 具) 신부, 7대(1940∼1941년) 매리난(Marinan, 梅) 신부, 8대(1941∼1942) 도일(Doyle, 都) 신부, 9대(1942∼1943) 김학용(金學用, 시몬) 신부, 10대(1943∼1945) 신성우(申聖雨, 마르코) 신부, 11대(1945∼1947) 조응환(曺應煥, 다테오) 신부, 12대(1947∼1948) 갤라거(Gallagher, 葛) 신부, 13대(1948∼1951) 헤이워드(Hayward, 吳) 신부, 14대(1951∼1953) 커머포드(Comerford, 孔) 신부, 15대(1953∼1954) 조응환 신부, 16대(1958∼1965) 맥마흔(MaMahon, 安) 신부, 17대(1969∼1974) 방영구(方永求, 실베스텔) 신부, 18대(1974∼1982) 이응현(李應鉉, 테오도로) 신부, 현재는 19대(1982∼현재) 전세권(全世權, 바오로) 신부로서 신자수는 3,289명이며, 관할공소는 강촌 · 후동 · 추곡의 3개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춘천교구 [한] 春川敎區

강원도 춘천을 중심으로 한 일원을 관할하는 교구. 1939년 4월 25일 서울교구로부터 분할, 독립되어 지목구로 설정되었고 아일랜드의 성 골룸바노 전교회에서 이 지방의 포교사업을 전담하였다. 이듬해 12월 8일에 이 전교회의 퀸란(Thomas Quinlan, 具仁蘭) 신부가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춘천교구의 기반을 다지는 데 전력을 다하게 되었다.

그러나 곧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제(日帝)는 점차 교회까지 탄압하게 되어 퀸란 교구장을 비롯하여 성 골룸바노회 출신 선교사들을 모두 감금하였으므로 1942∼1945년까지 서울교구의 노기남(盧基南) 주교가 춘천교구장을 겸임하였다.

8.15광복 후 퀸란 교구장은 다시 교구장직에 복귀하였으나, 1950년 6. 25동란으로 이번에는 공산군에게 납치되어 죽음의 감금생활을 강요당하는 고난을 겪어야만 하였다. 다행히 3년만에 석방되어, 본국인 아일랜드를 거쳐 다시 한국에 돌아와 주한 교황사절 서리직을 겸하게 되었다.

1955년 9월 20일에 춘천교구가 대목구로 승격되자 퀸란 교구장은 그해 12월에 명동(明洞) 대성당에서 주교성성식을 가졌고, 1962년 3월 10일에는 한국 가톨릭 교계제도 설정에 따라 정식교구가 되어 7월 26일 퀸란 주교의 촥좌식이 주교좌 성당인 춘천시 죽림동본당에서 거행되었다.

1966년 퀸란 주교가 70세의 고령으로 은퇴하자, 그 해 2월 12일 스튜어트(Thomas Stewart, 朴) 신부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5월 1일 주교 성성식을 가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춘천교구의 관할지역은 강원도(江原道)의 춘천(春川), 강릉(江陵), 속초(束草), 동해(東海)의 4개 시(市)와 철원(鐵原), 화천(華川), 홍성(洪城), 홍천(洪川), 평창(平昌), 명주(溟州), 양양(襄陽), 인제(麟蹄), 고성(高城), 양구(楊口)의 10개 군(郡)이며, 1983년 말 교세는 다음과 같다.

신자수 4만 1,840명, 본당수 32개소, 공소 95개소, 한국인 신부 31명, 외국인 신부 7명, 한국인 수사 2명, 외국인 수사 2명, 수녀 33명, 외국인 수녀 15명, 남자수도단체 3개, 여자수도단체 8개, 병원 1, 양로원 2, 나병수용소 1, 유치원 15, 주일학교 32개소 등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춘계소재 [한] 春季小齋 [관련] 단식재 사계 사계의 재

사계소재(四季小齋) 중 봄에 지키던 소재로 사순절(四旬節) 제1주 후의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에 시켰다. 지금은 폐지되었다. (⇒) 단식재, 사계, 사계의 재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춘계 [한] 春季 [관련] 춘계소재

사계(四季) 중 봄에 지켜야 하는 재의 시기. (⇒) 춘계소재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