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께 [원] Taquet [관련] 타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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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도로 [라] Diodorus

Diodorus(378~?). 그리스 교부. 신학자. 타르소의 주교. 394년 이전에 죽었다. 안티오키아(현재 터키령)에서 태어나 고향 및 아테네에서 교육을 받은 후 타르소의 실바노(Silvanus) 및 에메사(Emesa)의 에우세비오(Eusebius)에게서 고전과 신학을 공부하였다. 안티오크 근교의 수도원학교에 입학, 후에 교장이 되었으며, 당시의 제자로 크리소스토모(Johannes Chrysostomus) 및 몹수에스티아(Mopsuestia)의 테오도로(Theodorus)가 있었다. 안티오크학파의 성서주석 등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이교 · 이단을 배격하고 니체아신앙을 옹호, 오티오크에 체류 중이던(362~363년)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와 논쟁을 벌여 그를 통박하였다. 아리우스주의자인 발렌스 황제에 의해 372년 아르메니아로 유배당했다가 378년 황제가 죽은 후 안티오크로 귀환, 키리키아의 타르소의 주교로 취임하였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 출석, 정통파의 주석(柱石)으로 찬양받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Cyrillus 376~444)는 네스토리우스 뿐 아니라 그도 공격, 후일 콘스탄티노플 교회회의(499년)에서 이단자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여러 분야에 걸친 저술가로서 성서강해 · 변증론 · 논쟁서 · 교의서 · 우주론 · 천문학 · 연대기 등에 관한 교서가 있었으나, 아리우스파 및 이단문제 등으로 인해 대부분이 파기되었다. 성서해석에 있어서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비유적 해석에 반대하여 역사적 · 문법적 해석법을 취했고, 그리스도론에 있어서도 율리아누스 황제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神性)을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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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시오 [라] Dyonysius [영] Dyonysius [그] Dyonysios

Dyonysius(190/200~264/265). 교부(敎父),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성인. 부유하고 명망 있는 가문 태생으로 알렉산드리아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다 개종하여 오리제네스(Origenes)의 제자가 되었다. 232년, 헤라클라스(Heraclas)를 계승하여,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우두머리를 지냈고, 247년 주교가 되었다. 250년 데치우스(Decius) 박해 때 은신생활을 했고, 257년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박해 때는 공적인 신앙고백 뒤에 리비아로 추방당하였다.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온 뒤 시민전쟁과 기근, 페스트 등을 겪었고 264년 사망하였다. 축일은 11월 17일. 디오니시오는 죽은 뒤에 ‘대’(大, Magnus)란 칭호를 받게 된다. 즉 생전에 지녔던 그의 굳센 믿음과 항구심, 용기 있는 그의 생애를 기리기 위해서이다. 그는 신학이론 및 윤리실천 부문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전해지지 않고 그 일부가 전해질 뿐이다. 에우세비오(Eusebius of Caesarea)의 《교회사》 7권은 거의 모두 디오니시오에 관한 내용이다.

디오니시오의 주요 저서로는 《자연론》(自然論, De Natura), 《약속론》(約束論, De Promissionibus), 《반대와 옹호》(Refutatio et Apologia) 및 몇 편의 서간 등이 손꼽힌다. 특히 성삼론(聖三論)과 그리스도론에 있어서는 사벨리우스주의(Sabellianism) 및 유주론(唯主論), 성부학잡설(聖父學雜說), 양상론(樣相論), 천년왕국설 등을 거부, 올바른 교리 정립을 위하여 공헌한 바 크다. 다만 설명과정에서 삼위의 구별을 너무 강조한 결과 오히려 삼신론(三神論, Tritheismus) 및 또 다른 형태의 종속론에 떨어지는 인상을 남기기도 하였다. 천년왕국설을 부인함에 있어 그 저자가 사도 요한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은 특기할 만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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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코니아 [그] Diakonia

‘봉사’를 뜻하는 그리스어. 이는 어느 행위 주체가 교회전체나 특정개인의 선익(善益)을 위하여 수행하는 모든 공적인 직무나 사적인 협력을 지칭한다. 최근에 와서 이 용어는 제한적으로 쓰여져 왔는데, 교회를 위하여 사제와 부제처럼 특별히 서품받은 자, 수도자처럼 축성된 자, 환자나 빈자에게 봉사하고 가르치는 평신도처럼 선임된 자 등이 등이 교회 안에서 이행하는 봉사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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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라] diaspora [영] diaspora

‘이산’(離散, diaspora)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파생한 말. 헬레니즘과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그리스와 로마 세계로 흩어져 살았던 유태인을 가리킨다. 기원전 8세기경 아시리아(기원전 734~721년)와 바빌론(기원전 598~587년)의 침공으로 이스라엘이 함락되면서 시작되었다. 알렉산더 사후(기원전 323년)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치하에서 이집트로의 이민이 활발하였다. 처음에는 아시아지역, 특히 아르메니아와 이란에 한정되었었으나 나중에 이집트, 소아시아, 그리스, 이탈리아 등 로마제국 전역으로 펴져나갔다. 신약시대의 필로(Philo)에 의하면, 알렉산드리아에만 100만명 가량 되는 유태인들이 있었다. 특히 이곳은 학문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많은 유태인 학자들이 참여하여 ‘70인역’이라고 불리는 구약성서의 그리스어 번역을 완성하였다. 필로와 요셉(Josephus)에서 보이듯이 헬레니즘문화가 디아스포라의 유태인들의 사고에 침투하고 있었음을 물론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국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성전세를 내고 그들의 종교와 율법을 따랐다. 디아스포라의 유대 회당은 최초의 그리스도 교도들이 설교하던 첫 무대였다(사도행전). 그들은 대체로 배타적이었으며 그리스도교의 성장과 더불어 주위의 비(非)유대문명으로부터 점차로 단절되어 모세 신앙을 탈무드적인 유대이즘으로 발전시킨 팔레스티나의 랍비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되었다. 한편 디아스포라에 사는 유태인들의 상승하는 지위와 그들의 특권은 주위 민족들의 반목을 사게 되어 여기서 최초의 반(反)유대주의가 싹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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