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교구 [한] 咸興敎區

1940년 원산대목구(元山代牧區)가 함흥대목구와 덕원 면속구로 나뉘질 때 생겨난 교구. 이때 종래의 원산교구는 함흥교구가 되었다. 관할구역은 이전 원산교구 중 덕원면속구의 관할구역인 안변, 덕원, 문천, 고원의 4개 지구를 제외한 전지역으로 신자 6,739명, 세례지원자 548명, 사제 14명, 본당 59개, 소학교 5개교, 의료시설 2개소의 교세를 갖고 있었다. 교구 설정 뒤 방인사제(邦人司祭)[한국인 사제]가 적당한 숫자에 이를 때까지 당분간 덕원면속구 베네딕토회 대수도원장인 사우어(Sauer)의 관할하에 두기로 되어 있었다. 2차 대전 뒤 침묵의 교회로 되면서 교회재산은 몰수되고 성직자, 수도자들이 체포된 이후 자세한 소식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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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본당 [한] 咸平本堂

1945년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全羅南道 咸平郡 咸平邑)에 창설된 광주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모 승천. 김창현(金昌鉉, 바오로) 신부가 본당을 창설하고 초대 주임으로 부임, 전교에 힘쓰는 한편 성당 건축을 시작하여 1950년 완공을 보았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성당이 소실되고 교우들이 산산이 흩어지게 되어 본당은 정체상태가 되었다가 1952년 본당 재건이 착수되어 교우들이 다시 모이고 1954년 성당이 신축되었다. 1954년 김창현 신부가 나주(羅州)본당으로 전임되자 성 골룸바노회의 모란(T. Moran, 安) 신부가 부임했고, 이후 함평본당은 성 골룸바노회 관할의 본당이 되어 1974년까지 성 골룸바노회 신부들이 주임으로 사목하였다. 1974년 광주교구로 이관되어 백용수(白龍洙, 마태오) 신부가 부임했고, 1776년 백용수 신부의 뒤를 이어 장홍빈(張烘彬, 알로이시오) 신부가 부임했으며, 1981년 서상채(徐相彩, 유스티노) 신부가 부임하여 현재까지 사목하고 있다. 1983년 말 현재의 교세는 교우수 4,056명, 공소는 10개소이며, 본당사목을 돕기 위해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어 있다. 주임신부 명단은 다음과 같다. 1대(1945∼1954년) 김창현, 2대(1954∼1959년) 모란(T. Moran, 安), 3대(1959∼1963년) 로한(P. Lohan, 韓), 4대(1963∼1969년) 코터(J. Cotter, 周), 5대(1969∼1974년) 로한 재부임, 6대(1974∼1976년) 백용수, 7대(1976∼1981년) 장홍빈, 8대 (1981∼현재) 서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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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창본당 [한] 咸昌本堂

안동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그리스도왕. 함창본당은 원래 공평본당 산하의 공소였는데 1942년 5월 대구 대교구 청에 의해 공평본당이 공소로 격하되면서 본당으로 창설되었다. 초대 이기수(李己守, 야고보) 본당신부가 부임했으나 함창에 거처할 곳이 없어 공평에 계속 거처하다가, 1947년에야 함창에 집을 얻어 이사할 때 공평의 신자들의 반대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1969년 5월 대구 대교구 관할에서 신설된 안동교구 관할로 바뀌었다. 현재 경북 상주군 함창읍 오동리에 위치한 이 본당 경내에는 성 베네딕토수녀회 수녀원과 사제관 건물이 함께 자리 잡고 있으며, 9대 김욱태(金旭泰, 레오) 주임신부가 사목하고 있다. 신자수는 3,348(1983년 현재), 산하 공소는 12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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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본당 [한] 咸陽本堂

마산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모무염시태. 소재지는 경남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학당(慶南 咸陽郡 咸陽邑 校山里 學堂) 977의 6이다. 1893년 백전면 백운리(栢田面 白雲里)에 공소가 개설되었고, 1907년 대구(大邱)에 살던 교우 노수전(베드로)이 함양읍 대덕리 죽장(大德里 竹場)에 이주, 최학조(안드레아)를 영세시킴으로써 본격적인 전교가 시작되었다. 1909년 전북 진안(鎭安)본당의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가 죽장에 첫 공소를 설립했으며, 당시 신자는 50여명이었다. 첫 공소는 최학조 회장의 자택에 개설됐다가 당시 함양 보통학교 자리와 교사를 매입해서 공소로 사용했고, 후에 본당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1913년 5월 대구교구 관할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초대 담임으로 이상화(李尙華, 바르톨로메오) 신부가 부임하였다.

5대 본당사제 박재수(朴在秀, 요한) 신부가 1940년 교산리 원교(元校) 마을에 새 성당과 부속건물을 신축하였다. 14대 김석좌(베드로) 신부가 1971년 초대 회장이던 최 안드레아가 헌납한 교산리 학당의 800평 대지 위에 현 성당을 신축하고, 본당을 이전하였다. 1981년 현 수녀원 등 부속건물을 신축하였다. 현재 본당주임은 19대 서원열(徐元烈, 라파엘) 신부이며, 신자수는 2,126명(1984년 현재), 공소 수는 8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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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본당 [한] 咸安本堂

마산교구 소속본당. 주보는 승리의 동정성모. 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慶南 咸安郡 伽倻邑 道項里) 74번지에 소재한 함안본당은 일찍부터 마산(馬山, 현 신마산 완월동)본당 소속으로 있던 대산면 평림리(代山面 平林里) 가등(佳嶝) 공소로 출발하여 1933년 본당으로 승격, 프랑스인 뤼카(L. Lucas, 陸加恩)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 하였다. 뤼카 신부는 교통관계 및 교회 발전상 성당을 현 위치에 신축하고 본당을 이전하였다. 당시 관할구역은 함안군, 창녕군(昌寧郡), 의령군(宜寧郡) 전역이었다. 1949년 3대 김동언(金東彦, 베드로) 신부 재직시에 창녕본당이 독립, 1966년 5대 이종창(李鍾昌, 바르톨로메오) 신부 때 의령본당이 독립되었다.

한편 1945년 2대 김영제(金永濟, 요한) 신부 때 삼일유치원 설립, 1956년 4대 제찬규(諸燦圭, 시메온) 신부가 사제관(3층)을 신축, 1957년 성모상을 건립, 같은 해 강당을 증축, 수녀원을 신축하고 복자회 수녀들을 초빙 상주케 하였다. 제 신부는 재임 5년간 함안본당의 기틀을 잡는 공적을 남기고 1961년에 전임되었다. 1966년의 본당 관할공소는 11개소였다. 현재 주임은 허철수(許哲洙, 미카엘) 신부, 신자수는 1.143명(1984년 현재), 공소는 3개소이며, 거룩한 말씀의 회 수녀들이 상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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