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르실료운동 [한] ~運動 [영] cursillo movement

꾸르실료(cursillo)란 ‘복음화를 위한 단기교육’이란 뜻으로 일종의 교육과정인데 강습이나 과정과는 구별된다. 꾸르실료에는 인종, 국적, 피부색, 교육수준,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각기 다른 40여 명의 참가자들이 보통 목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3박 4일 동안 15개 과목의 강의를 들으면서 서로 토론하고 기도하며 형제애적인 사랑을 체험해 나간다. 꾸르실료에서 강조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신심보다는 은총의 신심이다. 이러한 꾸르실료를 통하여 그리스도 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쇄신하고, 세상을 복음화시키려는 운동이 꾸르실료운동이다.

이 운동은 1940년대 스페인의 주교인 후안 에르바스(Juan Hervas) 주교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사목생활을 하는 도중 많은 지성인들이 고민하는 모습과 불우청소년들이 저지르는 비행과 범죄행위를 목격하면서 어떻게 이들의 영적인 생활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를 깊이 연구하던 중 그들을 다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다라 에르바스 주교는 이들을 인도할 지도자를 모집하고 ‘순례 지도자의 꾸르실료’라는 이름을 붙였다. 꾸르실료운동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제1단계(the precursillo stage)로 환경이 다른 사람들과 교제의 기회를 마련하여, 제2단계(the 3-day exercise stage)로 그들과 함께 꾸르실료를 가지면서 그들을 하느님과 더욱 굳건히 맺게 해 줌과 동시에 그들이 유능한 평신도 사도로서 역할을 다하게끔 한다. 제3단계(the postcursillo stage)로 꾸루실료에 참가한 사람들을 묶어 주어 유능한 사도로서 자신의 사명에 충실히 활동하게 한다. 이 모임에 울트레야(ultreyas)라고 부른다. 꾸르실료운동은 꾸르실료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꾸르실료를 통하여 그리스도 교인 지도자를 양성하고 그리스도 교인의 생활을 쇄신함과 동시에 사회를 복음화 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으므로 꾸르실료운동에 있어서 울트레야는 특별히 그 중요성을 가진다. 우리나라의 꾸르실료운동은 1967년 꾸르실리스타(cursillista)인 주한 미 평화 봉사단장 케빈 오노넬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이에 따라 혜화동본당 교우들을 중심으로 꾸르실료운동이 한국에 그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 후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각 교구마다 꾸르실료 사무국이 설치되어 있고, 중앙에는 주교회의의 인준을 얻어 중앙협의회 사무처를 두고 있다. 꾸르실료는 사목주교위원회에서 지도 감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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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랑 [원] Courant, Morris [관련] 쿠랑

⇒ 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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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칠리움 [라] Concilium [관련] 레지오 마리에

레지오 마리에의 세계본부로 에이레의 더블린 시(市)에 있다. (⇒) 레지오 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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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벤투알 성 프란치스코회 [한] ~會 [라] Ordo Fratrum Minorum Conventualium(O.F.M.Conv.) [영] Ord

1223년 이탈리아 중부의 한 작은 도시 아시시에서 성 프란치스코에 의하여 창설된 수도회. 성 프란치스코는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가 되어 겸손되게 주 그리스도의 표양을 본받아 생활하였기 때문에 ‘작은 형제회’라고 하였다. 꼰벤투알(Conventual)이라는 말은 ‘공동’, ‘집합’이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같이 모여 사는 것을 의미한다. 교황 인노첸시오 4세로부터 이 명칭을 받은 후 점차 보편화되었는데 1517년에는 레오 10세의 대칙서 에 의하여 프란치스코회 엄격주의파(spirituales)와 구별, 이 수도회 고유의 명칭으로 되었다.

꼰벤투알회는 초기부터 은둔생활과는 달리 모여 사는 수도자들의 단체였다. 이 수도회의 정신은 곧 창설자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이며, 수도자들은 교회 안에서 가난하고, 단순하며 겸손한 방법을 통하여 화기애애한 형제 공동체를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교회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파견되어 예수를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하여 그의 왕국을 확장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들은 은수(隱修)생활을 하며 교황청에서 부여한 어떤 특권을 거부하고, 모범적 생활로 항상 교회에 충실하였다. 꼰벤투알회는 성인, 복자, 추기경, 총대주교 등을 많이 배출하였다. 프란치스코는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수도회와 여자들을 위하여 일반적으로 ‘글라라회’라고 부르는 제2수도회, 그리고 사회에 살면서 그의 정신을 따르는 프란치스코 제3회, 즉 재속(在俗) 형제회를 창설하여 강생하신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도록 생활케 하였다. 꼰벤투알 성 프란치스코회는 현재 전 세계에 4,038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다(1983년 ≪교황청 연감≫ 참조).

한국진출 : 프란치스코 제1회의 한 가족인 꼰벨투알 성 프란치스코회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58년 가을이었다. 부산에 본원을 두고 점차 대구, 서울, 일광, 기장(부산) 그리고 부평(인천)으로 활동영역을 넓히면서 주로 전교사업, 영성사업(성모의 마을 및 피정의 집, 구라(救癩)사업, 육아사업 및 성소 육성에 주력해 왔다. 부산시 부산진구 대연동 390번지에 주소를 두고 있는 꼰벤투알 수도원의 현재 거주자는 파브리치(Fabrizi, 黃만용) 신부, 팔다니(Faldani, 장자호) 신부, 이무길(李無吉, 바오로) 신부이다. 이 수도회가 담당하는 대연동본당이 1961년 처음 설립되었을 때는 14명의 신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872가구에 3,874명으로 증가하였고, 레지오 마리에 프레시디움 22개, 사목회, 제대회, 성소후원회, 성심회, 연도회, 장년회, 청년회, 주일학교 등이 조직되어 있다. 또한 성체회 수녀 3명과 많은 꾸르실리스타들이 일을 하고 있다. 본당 소속 공소로는 부산 오륙도 국립 나환자 마을에 상애원 공소(71가구, 200명 신자)와 경남 동래군 일광면의 삼덕 마을 공소를 책임지도하며 1980년에는 새 성당을 신축 완공하였다.

서울 한남동 707번지에 자리잡은 꼰벤투알 수도원 분원의 현재 원장은 나 빅토리오 신부이다. 외국에서 이 수도회 회원들이 2년간 한국어를 배우는 동안 거주하는 숙소 및 수도원 연락소가 1966년에 신축되었다. 1971년에는 또 서울 대신학교에서 공부하는 이 수도회 학생들의 기숙사 4층 건물이 완공되어 수도회 학생들은 물론, 일반 대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하는 한편 1976년부터 한국 외방선교회 신학생들도 3년간 사용하였다. 이 기숙사는 피정, 세미나, 강습 또는 모임을 위해 이용되고 있으며, 거주 사제는 이웃 본당을 돕고, 수도원에서는 외국인들을 위한 주일 미사도 영어로 집전한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73의 1에 있는 꼰벤투알 성 프란치스코 신학원은 현재 배 바오로 신부가 지도신부로 있으며, 1980년에 이 신학원을 사들여 수도회 신학생 교육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꼰벤투알 성 프란치스코회는 현재 25명의 회원(종신 허원자 14명, 수련자 4명, 청원 · 지원자 7명)이 부산의 본원과 서울 한남동과 혜화동, 대구, 기장, 부평 등 분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원에는 수도원 외에 본당, 유치원, 보육원 등의 시설이 있으며 서울 한남동에는 피정센터, 혜화동에는 학생기숙사, 대구에는 본당, 피정센터, 성모의 마을, 기장과 부평에는 각각 본당 시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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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미시움 [라] Comitium [관련] 레지오 마리에

레지오 마리에 조직단위의 하나로, 몇 개의 꾸리아로 이루어지며, 다시 꼬미시움 몇 개가 모여 세나투스를 구성하고 있다. (⇒) 레지오 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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