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한] Zimbabwe

남부 아프리카 내륙에 있는 영국연방 가맹 공화국. 정식명칭은 ‘짐바르웨 공화국’이다. 동쪽은 모잠비크, 남쪽은 남아프리카, 북쪽은 잠비아, 서쪽은 보츠와나와 국경을 접한다. 면적 39만 580㎢, 인구 약 754만명(1982년 추계)에 달한다. 전체인구 중 아프리카인이 약 96%, 백인 약 25만명, 아시아인 · 혼혈인이 약 3만명으로 추산된다. 원주민은 부시맨(Bushman)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약 600년 전에는 쇼나족의 모노모타파왕조가 풍부한 금광을 바탕으로 강력한 세력을 떨치면서 짐바브웨를 수도로 삼고 번영을 누렸다. 탐험가 리빙스턴이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한 1885년경부터 영국과 접촉이 시작되었고 영국보호령 등을 거쳐 1980년 짐바브웨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가톨릭 신자수는 1982년 현재 약 69만명, 본당은 128여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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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한] 嫉妬 [라] invidia [영] envy

죄원(罪源, capital sins)의 하나인데, 한국 천주교회 용어로는 죄원을 ‘칠죄종’(七罪宗)이라 지칭하여 본죄(本罪) 즉 우리 자신이 지은 죄의 일곱 가지 근원을 가리키며, ‘질투’도 그 중의 하나이다. 다른 사람의 우수함, 행운, 성공에 대해 슬퍼하거나 불만을 느끼는 ‘이웃사랑’에 대한 배반죄이다.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서 빼앗아간 것이라고 보든지, 어떤 부정이 저질러진 것이라고 느끼든지 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질투에 있어 기본적인 것은, 무언가 자신에게서 빼앗아갔다는 느낌이다. 따라서, 질투는 단순히 타인이 재능이나 재산을 소유하고 있음을 슬퍼하는 것만이 아니고, 확실히 자기가 타인과 동일하게 되고자 하거나, 타인을 앞지르려고 하는 야심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성공이 자기에게 재난을 초래하는 경우는 실지로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타인의 행복을 슬퍼하는 일이 모두 죄스러운 질투가 된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이기심과 냉혹에서 빚어지는 슬픔이 죄악이다(1고린 10:24, 13:4-6, 갈라 15:26, 1베드 2:1). 다른 사람을 앞지르려고 하는 야심은 칭찬하여 마땅한 경쟁심(emulation)이다.

질투의 어원은 라틴어 ‘invidia’ 또는 ‘invidere’이며, 그 뜻은 ‘곁눈질로 보다’ 또는 ‘의심쩍은 눈으로 보다’이다. 악마의 질투에 의해서 이 세상에 죄와 죽음이 왔고, 질투로부터 최초의 살해가 시작되었다. 즉 그리스도 유태인에 의하여 살해된 것이다(마태 27:18). 질투는 파괴하는 한에 있어서, 인간의 이기심의 가장 비열한 형식이다. 질투가 애덕(愛德, charity)에 반하는 죄이며, 그 자체가 중죄이지만, 질투의 기본에 완전히 동의했느냐의 여부, 또는 질투의 대상의 대소에 따라서 경중의 차가 있다. 가장 무거운 대죄(大罪)는 타인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초자연의 선물, 곧 완덕(完德)을 슬퍼하는 일이다. 사실상 그다지 중대하지 않은 선(善)에 대한 질투는 단순한 소죄(小罪)에 불과하다. 부도덕한 또는 부정한 계획과 희망이 실패함을 기뻐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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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송 [원] Gilson, Etienne Henri

Gilson, Etienne Henri(1884∼1976). 프랑스의 스콜라적 가톨릭 철학자. 파리 태생. 릴(Lille) 스트라스부르, 소르본의 각 대학교수를 거쳐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중세학 연구소장으로 있었다. 그는 항상 철학사가이자 가톨릭 철학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매우 광범한 영역에 걸쳐 사실의 정확한 인정과 개개의 사상의 내적인 이해에 주력하였다. 특히 중세철학이 진정하고 높은 철학적 가치를 지녔음을 밝히는 동시에 근세철학이 중세철학에 의해 얼마나 규제당하고 있는가를 보여 준 것은 주목할 만하다. 주요저서로 ≪Le thomisme≫(1920), ≪tudes de philosophie medievale≫(1921), ≪La philosophie au moyen age≫(2권, 1922), ≪La philosophie de saint Bonaventure≫(1924), ≪Saint Thomas d’Aquin≫(1925), ≪L’esprit de la philosophie medievale≫(1932), ≪Christianisme et philosophie≫(1939), ≪realisme thomiste et critique de la connaisance≫(1939), ≪God and Philosophy≫(1941), ≪L’Etre et l’essence≫(19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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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한] 進化論 [라] evolutionismus [영] evolutionism

일반적인 개념으로는, 생물이 극히 원시적인 생물로부터 진화하여 고등한 것이 되었다는 이론인데 라마르크(J. Lamarck, 1744∼1829)와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대표적인 창시자이다. 우주 속의 만물은, 영계(靈界)를 포함하여, 저급한 상태에서 고급한 상태로 자연스러운 체제 바꿈을 하는 필연적인 진화발전을 통하여 설명할 수가 있다는 학설로서, 기본적으로는 생물의 ‘종’(種)이 오랜 세월동안에 변화한다는 입장을 전제로 하고, 그 변화의 기구(機構)에 설명을 부여하려는 시도의 총칭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적인 자료에서 살필 때, 17세기에 근대 과학적인 세계상(世界像)이 구축되어 감에 따라, 우주나 지구의 역사도 그 세계상 속에 포함되느냐의 여부가 자연 철학자의 관심이 되었다. 이 경우 자연관(自然觀)에 있어 두 개의 태도를 나누어졌는데 ① 자연은 신의 계획과 창조에 의한 것이므로, 본래 ‘완전’인 것이며, 창조 이래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고정적인 자연관’과 ② 노아의 홍수를 비롯하여 당시 산중에서 발견된 수생동물의 화석(化石) 등을 근거로, 신은 창조 이래 몇 차례나 자연에 큰 변동을 안겨 주었다고 보는 ‘변동적인 자연관’이다. 18세기에 오자, 전자의 사고방식은 현재의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정적(靜的)인 질서를 ‘속’(屬)과 ‘종’으로 철저하게 분류 정리하여 ≪자연 분류사≫(自然分類史, Systema naturae, 1735)를 저술한 린네(K. von Linne, 1707∼1778)를, 후자의 경우는 정적인 질서를 역사상의 동적인 발전으로서 바꿔 읽으려는 비풍(G.L. de Buffon, 1707∼1788)의 대저 ≪박물지≫(博物誌, Histoire naturelle, genearale et particuliere, 1749∼1804)를 남겼다. 전자에선 ‘종’의 보존 즉 ‘유전’(遺傳)현상의 탐구를 열었음과 동시에, 후자가 ‘종’의 변화 즉 ‘진화’(evolution)의 탐구를 열기 위한 전제가 되었다. 이러한 사정 속에 19세기 초, 라마르크는 ≪동물철학≫(動物哲學, Philosophie zoologique, 1809)을 통하여 종의 변화를 환경에의 적응과 결부시켜, 적응의 기구를 생물체와 욕구나 내적인 감정에 바탕하는 체제의 변화로서 파악하였다. 그로부터 반세기 뒤에 나온 다윈은 ≪자연도태법(自然淘汰法) 혹은 생존경쟁에 있어서 적자생존(適者生存)에 의한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1859)을 통해 ‘자연선택설’을 주장, 환경에의 적응을 종의 변화의 원동력으로 보는 점에선 동일하나, 그 기구를 ‘환경의 체’로 골라내는 데서 찾고, 생물체는 수동적으로 ‘피선’(被選)일 따름이라고 생각하였다.

다윈의 주장은 자본주의의 ‘자연경쟁’의 이념에도 친근성을 갖는 경우도 있고, 인간의 진화가 그리스도교 교리와도 병립되는 점도 있고, 또한 스펜서(H. Spencer, 1820∼1903)에게서처럼, 사회와 생물체와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즉 사회가 동질인 것으로부터 이질인 것으로, 분화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분화한 것으로 나아간다고 하는 관념으로서의 진화론과 ‘사회유기체설’이 결부되는 요소를 지니고 있어서 20세기의 사회 · 종교 진화론을 낳게도 되었다. 진화의 기구로서는, 오늘날 원리적으로 돌연변이(突然變異)와 자연선택설의 합친 형태가 수용(受容)되어지고 있으나, 유신적(有神的)인 진화론이, 인간의 신체와는 별개로 각 개인의 영혼은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는 모순되지 않는다. 다만 유물적(唯物的)인 진화론의 경우 만물의 창조를 즉 그 기원을 하느님께 귀속시키는 그리스도교적인 계시에 반하는 까닭은, 모든 생물 · 식물 · 동물 · 인간의 신체와 영혼의 출현을 자연의 진화발전이라는 경과에 의해 설명하려고 하는 데 있다. 더구나 영혼의 기원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A. Wigand, Darwinismus, Aufl.3, 1874∼1877 / E. Nordenskiold, The History of Biology, tr. L.B. Eyre, 新版, New York 1935 / F. Thilly, A History of Philosophy, ed. L. Wood, Now York 1951 / R.J. Nogar, The Wisdom of Evolution, New York 1963 / R.N. Bellah, Religious Evolution Beyond Belief, New York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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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본당 [한] 鎭海本堂

진해시 중앙동(鎭海市 中央洞) 소재 마산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예수성심. 현 명칭은 중앙동(中央洞)본당이다. 1930년 충무동(忠武洞)에 마산(馬山)본당 관할의 공소가 설립되었으나 1933년 태풍으로 공소 건물이 파괴, 경화동에 새 공소건물이 건립되었다. 8.15 광복 후 본공소에서 미 군종 드레크 신부가 미사성제를 드리게 된 인연으로 현 위치인 중앙동의 일본 사원(寺院) 안국사(安國寺) 건물을 불하받아, 1946년 3월 대구 교구장으로부터 본당 설립인가를 받았고, 초대 담임으로 김경우(金慶佑, 알릭스) 신부가 부임하였다. 김 신부는 4년간 재임하면서 유치원, 사제관, 수녀원을 신축하고 가톨릭 청년회를 조직하였다. 1950년 4월에 부임한 2대 장병보(蔣炳輔, 베드로) 신부는 6.25전쟁을 겪은 후 성모동굴과 자선업체인 성모병원을 설립하고 1953년 전임되었다. 5대 장병화(蔣炳華, 요셉) 신부는 1956년부터 1957년까지 재임하면서 현재의 성당을 신축하였다. 9대 정삼규(鄭三圭, 요한) 신부가 1962년 부임, 현 강당과 유치원을 신축하고 1965년 말 진해시내에 경화동(京化洞)본당을 분할 창설시킴과 동시에 본당명을 중앙동본당으로 개칭하였다. 그 후 1981년 성심회관, 1983년 200주년 회관이 각각 준공되었다. 현재 주임사제는 4대 이종창(李鍾昌, 바르톨로메오) 신부, 신자수는 3,469명(1983년말 현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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