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가톨릭 교회의 사회원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이다. 가톨릭 교회는 다른 어떠한 종교보다도 인간의 기본적 권리와 인격의 존엄성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고 인권을 수호하고 신장시키기 위한 활동에 정력적으로 헌신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가톨릭 교회가 반드시 언제나 인권수호자의 입장에 서지는 않았다. 때로는 지배자와 결탁함으로써 가난한 자와 버림받은 자의 편에 서기보다는 보잘 것 없는 자에 무관심하거나 인권문제를 외면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가톨릭 교회는 세계 어디에서나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수호하고 신장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최근의 교황의 공문서나 메시지를 보면 인권유린을 날카롭게 공격하고 있다. 이러한 인권옹호는 인간의 권리가 하느님에 의하여 부여되었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인권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다(창세 1:20-27)는 사실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은 하느님 안에서 우연성 없이 완전무결하게 지력과 의지와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이러한 선물은 개인의 특수한 재능이나 배경이나 사회적 신분과는 관계없이 인간 자체로써 누리는 기본적 권리와 존엄성을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양신에 새겨진 도덕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로마 2:15). 양심의 명령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와 자유는 양도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은 이미 유태인이나 그리스인이나 노예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없이 동등한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갈라 3:28).
따라서 인간 존엄성을 경시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성을 갖춘 영혼을 가지고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되어 같은 본성과 같은 원천을 가졌으며 그리스도께 구원되고 같은 목적에로 함께 불리었으므로 모든 사람의 평등은 더욱 명백한 것이다. 물론 육체적 능력이 다르고 지성적 내지 윤리적 역량이 다르므로 모든 사람이 똑같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 기본권에 관한 모든 차별대우는 그것이 사회적이건 문화적이건 혹은 성별 · 인종 · 피부색 · 지위 · 언어 · 종교 등에 기인한 차별이건 간에 극복되어야 하고 제거되어야 한다. 인간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간으로서 평등한 존엄성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
사적이거나 공적이거나를 막론하고 인간의 제도는 인간의 존엄성과 목적에 봉사해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사회적 내지 정치적 노예화를 거슬러 투쟁하고 어떠한 정치체제 하에서도 인간의 기본권을 수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특히 인간의 지성은 존엄하다. 인간의 지성은 하느님의 지혜로부터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적 본성은 또한 예지로써 완성 될 수 있으며 또 반드시 완성되어야 한다. 인간은 오직 자유로서만 선을 지향할 수 있다. 그리고 참된 자유는 인간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상을 말해 주는 표지(標識)인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의식적 자유선택에 의하여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즉 맹목적 본능이나 외적 강박에 의하지 않고 인격적 · 내적 동기에 의하여 움직이기를 요구한다. 인간이 사욕(邪慾)의 압박에서 자신을 해방시키고 자유로이 선(善)을 선택하여 자기의 목적을 추구할 때 인간의 존엄성은 성립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의 인격체이며 주체이므로 과학적 영역이건 사회적 정치적 영역이건 인간이 제도와 기구의 객체(客體)가 되는 것은 잘못이다.
비오 11세는 인격으로서의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받은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부정하고 폐지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사회는 인간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이유에서든 인간의 기본권을 빼앗을 수 없다. 인간은 그 자체가 인격이요 자기 자신과 그 행위의 완전한 지배자이며 목적으로서 여러 가지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권리의 개념은 도덕적 의무보다 더 근본적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피조물 위에 주권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런 도덕적 의무를 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각 개인으로 하여금 자기 책임과 지위를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필요로 한다. 그 이유로서 인간은 자기 권리를 행사하고 자기 의무를 이행하고 또한 수많은 협조의 형식하에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자기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교회는 세계와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육화요 현존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억압받는 사람의 해방을 위해서 선포한 복음은 교회가 인권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잘 가르쳐 준다. 교회는 그 예언자적 사명을 계속 수행함에 있어서 가난한 사람과 억압당하는 사람과 버림받은 사람들의 해방과 권리를 힘차게 선포하고 더욱 효과적으로 현실화시켜야 하며 또 다른 이들과 협력하여 인종이나 종교나 목적의 차별 없이 누구든지 다른 사람에 의해서 강요되거나 예속된 상태로부터 해방되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최초의 설교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을 선포한 것이다. 따라서 인권문제에서 가장 강조해야 할 것은 약자의 권리를 수호하는 일이다.
자유는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선물이다. 따라서 인권과 자유를 신장하는 일은 모두 고무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인간의 기본권 또는 인간 영혼의 구원이 요구될 때 교회는 정치질서에 관한 일에 대해서도 윤리적 판단을 내릴 권리가 있다(사목헌장, 76).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어떠한 통치형태도 인권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더구나 인간의 권리에 대해서 가장 나쁜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가장 중대한 억압형태는 인간을 한낱 생산수단으로 간주하거나 경제적 이득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일이다.
인간의 인격적 자유와 존엄성을 무시하고 인간을 순전히 물질적으로 평가하며 인간을 사회조직의 톱니바퀴로 격하시키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리스도를 본받고 이 세상에서 그분의 공생활을 물려받아 그것을 계속하는 교회는 개인적 차원에서나 집단적 차원에서나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위해 전력하도록 소명을 받고 있다. 인권을 향상시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요구이며 인권을 향상시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요구이며 인권의 향상은 사목의 핵심이다. 따라서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이 짓밟히고 있을 때 교회는 침묵을 지킬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 교인은 성서의 완전한 계시와 교회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서 선봉적인 증인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비록 한 사람이라도 그가 누구이건 어디에 있건 인권이 무시되고 침해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 오늘날 사회의 많은 계층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 정신적 · 물질적 재화를 언급하는 것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애들이 있다. 이러한 장애들은 소외 현상을 조장한다. 이러한 사태를 지속케 하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태도는 인권의 요구에 상반된다.
한편, 인권이나 인간의 인격과 양심의 존엄성이 불가침의 기본권리라 하더라도 거기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사회의 여러 가지 관계가 권리와 의무의 관계로 표현될 때 사함들은 정신적 가치들을 의식하고 진리 · 정의 · 사람 · 자유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하며 또한 자기들이 이와 같이 가치 있는 세계의 일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권리와 의무의 기본적 상호관계는 어떤 권리를 가진 사람이 그 권리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권리와 분리할 수 없는 의무를 자각할 때 명백히 드러난다. 인간은 자신의 권리에 수반되는 의무를 양심적으로 존중할 때 자기의 권리를 전적으로 존중해 주기를 요구할 수 있다. 절대적으로 불가양도한 권리라 하더라도 그 행사에 있어서는 제한을 받는다. 이 제한이 바로 책임이요 의무인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권리를 과장하고 절대화하는 나머지 타인의 권리를 과소평가하거나 망각하기 쉽다. 따라서 자기의 권리가 소중한 만큼 남의 권리도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여기에 인권의 보편성이 있다. 인권 신장에 있어서 교회의 첫째 임무는 인권에 관한 복음과 평화 및 정의의 메시지를 말과 행동으로 선포하는 일이다. 교회 사목자들의 말은 언제나 그리스도 교인을 격려하며 인권 신장에 헌신케 함으로써 이 어려운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한다.
그리스도교적 기본원리는 인간의 인격을 일종의 사회적 도구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으로서 존중하는 것이며 또한 인권이 바로 복음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명시할 때 가장 큰 성과를 거두는 것이다. 교회는 항상 개개인에 대해서나 집단에 대해서나 이웃사람에 관한 복음을 따라 인권을 옹호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권운동이 그릇된 가치관에 입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교회는 교회 밖에서 전개되고 있는 인권 운동을 높이 평가하면서 선의의 사람들과 서로 협력하여야 한다. 인권을 수호하고 신장하기 위한 사목활동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개될 수 있다. 때에 따라 인권을 신장하는 적극적 방법도 있고 인권의 침해를 규탄하는 소극적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한편으로는 선포하고 한편으로는 규탄하는 두 가지 기능을 각각 별개의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고 서로 보충하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의 인권운동은 몇몇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맡겨지고 있는 현상이다. 그래서 정부의 시책에 효과적인 영향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함으로써 실효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인권 침해의 죄를 범한 사람들로 하여금 인권 침해의 사실을 인식시키고 그 잘못을 깨닫게 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진리를 옹호하고 오류를 규탄하는 사명이 있을 뿐 아니라 현세적이거나 영원한 것이거나 진정한 인간적 가치들을 최선의 완전한 방법으로 보호해야 한다. 특히 명백한 인권 침해의 사례들에 대해 공식적으로 판단을 내리거나 행동을 취하기에 앞서 모든 사실에 관하여 분석하고 객관적인 지식을 얻고 심사숙고한 뒤에 비로소 행동을 취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의 인권존중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누가 어떤 모양으로 교회에 속해 있다고 해서 정당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빼앗길 수는 없다. 교회에 봉사하는 사람들은 그 지위를 막론하고 합당한 생활을 보장받아야 한다. 남에게 정의와 인권을 말하는 자는 먼저 자기의 눈이 정의로워야 한다. 인권을 위한 투쟁에서 영감을 주고 지원하고 선도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교회 스스로 자기반성을 하고 교회조직 안에서 인권이 제대로 존중되고 있는가를 상세히 살펴야 한다.
교회 내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때때로 봉사와 희생을 강요당하며 적절한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인권을 수호하고 신장하는 교회의 사명으로 볼 때 참으로 불합리한 일이므로 시정되어야 한다. 교회는 일반 자연과학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인간학에 대해서 충분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어떠한 인간학도 인간의 인격을 평가함에 있어서 교회의 인간학에 따라올 수 없다. 인간의 개성, 독창성, 인격적 존엄성, 인간의 기본권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인격적 완숙에 대해 교회는 참으로 그 어떠한 학문보다도 앞서고 있다는 것을 자부하면서 인권신장에 앞장서야 한다. (⇒) 인권선언 (韓庸熙)
[참고문헌]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 교회와 인권, 분도출판사, 1976 / 현대세계의 사목헌장, 제1부 제1장, 제2장 / 한용희, 가톨릭 정치윤리, 분도출판사, 1980 / J. 마리탱 著, 김창수 譯, 자연법과 인권, 1943 / J. 마리탱 著, 한용희 譯, 인간과 국가, 가톨릭출판사, 19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