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환 [한] 李家煥

이가환(1742∼1801). 남인학자. 성호 이익(星湖 李瀷)의 종손(從孫)이며 이승훈(李承薰)의 외숙(外叔)이 된다. 그는 당대의 대표적인 유학자(儒學者)로, 이벽(李檗)이 수표교(水標橋)에서 처음으로 서교(西敎)를 선교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슬프도다. 나도 일찍이 ≪천주실의≫(天主實義)와 ≪칠극≫(七克)을 보았는데 비록 그것이 명설(名說)이라 할지라도 정학(正學)은 아니다. 이벽이 그것을 우리의 도(道)와 바꾸려 하다니 어찌될 것인가”라고 말하면서, 토론으로 그를 설득코자 찾아갔다. 그러나 이벽의 이론에 굴복당하여 그는 오히려 그에게서 천주교 서적을 구해다 읽고 연구한 끝에 믿을 것을 결심하였을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전교하고, 이벽, 권철신(權哲身), 정약용(丁若鏞)과 늘 왕래하면서 교회일에 많은 협력을 하였으므로 반대파로부터 사교(邪敎)의 교주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입교 여부는 분명치 않고 1791년 신해(辛亥)박해 때 반대파의 모함으로 천주교인으로 몰려 체포되었다가 석방되고, 광주부윤(廣州府尹)이 된 후로는 천주교를 탄압하는데 앞장을 섰다. 그 뒤 관직이 승진되어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가 되었으나 1795년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밀입국 사건으로 충주목사(忠州牧使)로 좌천되어 여전히 천주교를 탄압하였다. 그러면서도 1801년 신유박해 때 이승훈, 홍낙민(洪樂敏), 정약용(丁若鏞) 등과 함께 사학의 괴수라는 혐의로 투옥되어 그 해 4월 8일(음 2월 26일)에 60세로 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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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타리나 [한] 李∼

이 가타리나(1783∼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성녀 조 막달레나의 모친. 시골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와 함께 입교하였다. 14세 때 교리에 밝지 못한 부모의 뜻에 따라 조(趙)씨 성을 가진 외교인과 결혼, 3남매를 두었고 남편을 권면하여 대세(代洗)를 받고 사망하게 되었다. 1838년 말 고향에서 사사로운 박해가 일어나자 가산을 버리고 자녀들과 함께 상경하여 조 바르바라라는 교우의 집에 곁방살이 하던 중, 1839년 6월 큰 딸 조 막달레나, 그리고 주인집 세 모녀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딸과 함께 한차례의 주뢰형을 받고 별다른 형벌과 고문 없이 옥에 갇혔으나 옥이 워낙 비좁고 불결하여 체포된 지 3개월 되던 9월의 어느 날 염병에 걸려 옥사(獄死)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그 후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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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빛을 [관련] 빛

<빛> 잡지의 전신. ⇒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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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理

‘이’(理)란 낱말은 동양철학에서 매우 중시되었다. 특히 송명이학(宋明理學)에서는 ‘이’를 가장 궁극적인 것으로 높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청대 학자들은 ‘이’자의 옛 뜻[古義]를 찾아내어 이학자(理學者)들의 견해를 비판하였다. ‘이’의 뜻은 중국의 선진시대(先秦時代)부터 청말(淸末) 사양사상이 들어올 때까지 각 시대마다 각기 다른 뜻도 넓어져 갔다. ‘이’는 앞으로 이치라고도 한다.

중국철학사에서 말하는 이치[理]는 여섯 가지 주요한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 선진사상가들이 찾아낸 문리(文理), 둘째 위진현학자들이 알아낸 현리(玄理), 셋째 수당 불교학자들이 중시하는 공리(空理), 넷째 송명 이학자들이 말하는 성리(性理), 다섯째 청대 일반학자들이 언급한 사리(事理), 여섯째 서양 과학사상의 영향을 받은 뒤 생겨난 물리(物理)이다. 이 여섯 가지 이치는 모두 선진시대에서 사용하던 ‘이’자에 연원을 두고 있다.

선진시대에서 ‘이’자는 우리말의 ‘결’과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었다. 살결[-理] 나뭇결[-理] 등이 그 예이다. 모든 만물에는 그 속에 결이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이’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하면 ‘이’는 옥을 다스리는 것[治玉]이라 하였다. 아직 다듬지 않은 옥[璞]을 갈고 닦아서 ‘결’을 낸다는 데서 가지런히 한다. 다스린다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수리(修理), 정리(整理)란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이’란 글자는 또 ‘옥’(玉)과 ‘리’(里)의 합성어이며, ‘리’(里)는 또 전(田)과 토(土)가 합성된 글자이다. 밭(田)은 원래 개간되지 않은 흙을 가지런하게, 네모반듯하게 손질해 놓는다는 뜻이 함유되어 있다.

시경의 “내 강토는 내가 다스린다”[我疆我理]는 뜻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와 같이 ‘이’의 원래 뜻은 옥을 다스리건, 흙을 다스리건 간에 우리가 활동하는 과정 속에서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하게, 반듯하게, ‘결’대로 해나가는 것이다.

1. 문리(文理) : 선진시대 제자백가 중에서 언급한 ‘이’를 살펴보면 ≪논어≫나 ≪노자≫ 중에는 ‘이’자가 없고, ≪묵자≫, ≪맹자≫, ≪장자≫에서는 다른 글자와 연용되어 쓰였다. ≪맹자≫엔 4번, ≪장자≫엔 38번, ≪묵자≫엔 12번 나오며 ≪순자≫엔 거의 매 편마다 ‘이’자를 사용하였고, ≪한비자≫에도 많이 나온다. 뒤에 갈수록 ‘이’자는 중시되었다. 조리(條理)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어떤 일의 과정 중에서 순서가 흐트러짐 없이 가닥[條]이 서 있는 것을 뜻한다.

≪묵자≫중 <묵변>(墨辯)에서 말하는 ‘이’는 인간의 지적인 활동, 즉 추리(推理)가 합당한가를 따지는 것을 말하였다. ≪장자≫에서는 천리(天理), 대리(大理), 또는 천지지리(天地之理) 등을 언급하였는데 그 뜻은 모두 천도(天道) 또는 도(道)와 커다란 차별이 없다. 현상의 분별을 초월한 총괄적인 의미의 ‘도’와 이치를 말하였다.

≪순자≫는 이치를 정적(靜的)인 객관대상으로 보아 비교적 분별적인 의미를 중시하였으므로 찰리(察理)란 말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가 말하는 이치는 사실 성왕(聖王)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객관적 예악제도(禮樂制度)를 가리킨다. 순자의 이치는 자연의 이치가 아니라 인문사회의 문리(文理) 즉 사회속의 여러 개인을 연합하여 조직케 하는 이치를 말한다.

≪예기≫의 <악기>에 “예(禮)란 이치의 변할 수 없는 것”(禮也者, 理之不可變者也)이란 말은 바로 순자적인 의미의 예를 강조한 것이다.

≪한비자≫는 <해로>(解老), <유로>(喩老) 편에서 노자의 ‘도’를 ‘이’자로 풀이하였다. 그래서 “도는 만리(萬理)가 그렇게 된 바이며, 만물이 이르는 곳”(道爲萬理之所然, 萬物之所稽)이라 하였다. 또 “이는 사물의 무늬”(理爲物之文)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도’는 만물의 공통적인 점에서 말하고 ‘이’는 객관 만물의 나누어 진 곳[分異處]에서 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2. 현리(玄里) : 한대(漢代)의 유가는 이치를 중시하지 않았다. 위진(魏晋)시대에 도가(道家)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어나고, 죽림칠현(竹林七賢) 같은 인물들이 청담(淸談)을 하였는데, 그들이 논하는 주제가 명리(明里)와 현담(玄談)이었다. 명리는 선진시대 명가(名家)들이 말하는 명실(名實)의 관계를 따질 때 한 차원 더 높은데서 말한 것이다. 그것은 한말(漢末)의 인물(人物)을 품평(品評)하는데서 유래되었다. 인물을 품평함으로써 사람을 등용하는 방법을 논하였는데, 유소(劉邵) 등이 재성(才性)을 처음으로 논급하였다. 이로부터 일반적인 인간의 재성, 덕성, 행위에서 그 사람의 표현방법 등을 논하게 되고 끝에 가서는 언어[言]와 의미[意]의 관계문제를 논하게 되었다. 언어의 소재는 본래 명칭[名]에 있고, 의미에 소재는 언제나 이치[理]에 있었다. 이치는 사물을 초월하여 그윽하게 멀리[玄遠] 있으나, 언제나 명칭으로 나타내게 되므로 이것을 명리 또는 현리하고 한 것이다.

위진현학자 중 왕필(王弼)은 ≪노자주≫, ≪주역주≫를 냈으며 그는 ‘도’를 ‘무’(無)로 풀이하여 귀무론(貴無論)을 펴나갔다. 하안(何案) 역시 ‘무’를 말했으며 배위(裵-)는 숭유론(崇有論)을 주장하여 유(有)에 편중하였고, 곽상(郭象)은 장자를 주석하면서 자연 · 독화(獨化)를 언급하였다. 이와 같이 무 · 유 · 자연 · 독화 등의 이름은 모두 우리들의 의중에 있는 이치이지, 객관사물에 존재하는 이치가 아니다. 이러한 것을 일러 현리라 한다.

3. 공리(空里) : 불교학자들도 이치를 말하기 좋아하였다. 승조(僧肇), 축도생(竺道生)은 ‘이’를 중시하였다. 뒤에 법상종, 화엄종, 천태종은 모두 ‘이치’로써 실재를 표현하였다. 이것은 모두 공(空)의 뜻을 밝히는 이치이다.

현장(玄裝)은 성유식론(成唯識論)의 종지(宗旨)를 논하면서 아집(我執) · 법집(法執)을 벗어난 “이공(二空)에 통달하여 유식의 이치에 대하여 사실대로 아는데 있음”을 역설하였다. 또 천태종의 혜사(慧思)가 지은 ≪대승지관법문론≫(大乘止觀法門論)의 권말에서 “근본을 어기면 더러움을 일으키니 곧 진여평등의 이치[眞如平等之理]를 어기게 된다”는 말이 있다. 화엄종의 시조인 두순(杜順)은 <화엄오교지관>(華嚴五敎止觀)의 셋째 번 사리원융관(事理圓融觀)에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계승하여 “심진여문은 ‘이치’이고, 심생멸문은 ‘사실’이다”(心眞如門是理, 心生滅門是事)라고 하였고 법장(法藏)에서 종밀(宗密)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치와 사실은 걸림이 없다[理事無애]는 뜻을 펼쳐 나갔다.

4. 성리(性理) : 송명 이학자들이 말하는 ‘이’는 인륜의 이치[人倫之理]를 중시하기 때문에 모두 다소간 예문(禮文)의 이치를 언급하였지만, 그러나 주로 성리를 말하고 이로부터 천리를 언급하였다.

송명 이학자들은 직접 ‘성 즉 이’(性卽理)라고 했는데, 이 말은 정자(程子)에서 비롯하여 주자(朱子)에서 크게 발휘되었다. 특히 주자는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설명하면서 태극을 이치라고 함으로써 이치는 형이상학적인 우주의 최고의 원리가 되었다. 정호(程顥)는 “나의 학문이 비록 전수 받은 바 있으나 천리 두 글자는 오히려 내 스스로 체인해 낸 것이다”라고 하였다. 천리는 바로 그의 발명이요 체득인 것이다.

이정(二程)의 이치는 첫째, 이 세상 모든 만물이 따라야 할 보편적인 법칙이다. 이 이치는 존망(存亡)과 가감(加減)이 없이 항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둘째, 이치는 자연계의 최고 원칙일 뿐 아니라, 사회의 윤리 도덕에 최고 규범이기도 하다. 셋째, 이치는 사물의 존재에 앞서 있다. 인간과 만물은 모두 여기에서 나온 것 인데 사물은 추리 할 수 없고, 인간만이 추리할 수 있다. 넷째, 하나의 사물에는 반드시 하나의 이치가 있다. 하나의 사물마다 모두 이치로 말미암아 생겨났으므로 하나의 사물마다 완전한 이치를 체현한 것이다.

주자의 철학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범주가 바로 이치이다. 이것은 정이(程-)의 사상을 계승한 것이다. 그는 또 장재(張載)의 기운[氣]에 관한 학설을 이용하여 그의 독특한 철학체계를 건립하였다. 그는 “천지사이엔 이치도 있고 기운도 있다. 이치란 형이상의 ‘도’이요, 만물을 생기게 하는 근본이다. 기운이란 형이하의 그릇[器]이요, 만물을 생기게 하는 도구이다.”(文集…答黃道夫書)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이치는 본체로서 천지만물을 생산하는 근거 또는 근원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이치와 기운, 그리고 만물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이 사물이 있는 까닭은 바로 이 기운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운이 있는 까닭은 이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語類 68). “본체로 말하면 이 이치가 있고난 뒤에 이 기운이 있다”(孟子 或問券三). 이것은 바로 이치가 본체로서 이치는 앞서있고 기운은 뒤에 있으며 이치로 말미암아 기운이 생기고, 기운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천지 만물이 아직 생겨나기 이전에 이치의 세계가 존재 했다는 것이다. “천지가 아직 생기기 이전엔 필경은 이치일 뿐이다. 이 이치가 있으니 바로 이 천지가 있다. 만일 이 이치가 없었다면 역시 천지도 없고 사람도 만물도 없었을 것이다”(語類 1). 이것은 이치와 기운이 서로 섞일 수 없다[不相雜]는 측면에서 논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퇴계(李退溪)는 바로 이 측면을 더욱 발전시켜 이치를 스스로 움직이는 실체로써 파악하였는데 이것을 주리파(主理派)라고 한다. 이와 같이 이치와 기운의 관계를 말하면 이치가 근본이지만, 구체적 사물에 대하여 말하면 이치와 기운은 동시에 존재하고, 또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나눌 수가 없다[不相雜]. 주자는 “천하에 이치가 없는 기운이 없으며, 기운이 없는 이치가 없다”(語類 1)고 하였는데 이것은 정호의 ‘도’(道)와 ‘기’(器)가 분리할 수 없음을 강조한 사상을 계승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고봉(奇高峰)과 이율곡(李栗谷)은 바로 이 면을 이어 발전시킨 것인데, 이것을 주기파(主氣派)라고 부른다.

중국의 양명학도 이치와 기운의 관계를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것은 왕양명의 “마음밖에 이치가 없다”는 심 즉 이(心卽理)의 철학에서 볼 때, 마음과 성품은 합일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자연히 이치와 기운도 합일되어 있는 것이다. 왕양명에게 있어서 이치는 만물과 기운이 생겨나는 까닭, 또는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기운이 움직여서 결과적으로 생긴 조리로 파악되었다. 이것은 청대의 기학(氣學)을 열어 놓은 길잡이가 된 것이다.

5. 사리(事理) : 명말(明末)에서 청초(淸初)에 이르는 철학자들 예컨대 왕선산(王船山), 안습제(顔習齊), 대동원(戴東原) 등은 바로 이치와 기운이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입장에서 사실[事]의 중요성을 표명하였다. 왕선산은 역사적 사실을 중시하여 “사실에 즉(卽)하여 궁리(窮理)함은 있어도, 이치를 세워놓고 사실을 제한하는 일은 없다”고 하였다. 안습제는 육부(六府) 삼사(三事)를 말하면서 “공자는 우리에게 사실을 익히라고 하였으며 사실에서 이치를 찾으라고 하였음”을 상기시켰다. 대동원은 이치란 정욕(情慾)과 일상적인 음식 먹는 일과 분리시킬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청대 철학자들은 모두 이치가 기운에서 분리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이치와 사실이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제 이치는 만물이 생겨나는 최고의 원칙이 아니라 사실이 일어난 뒤에 생겨난 조리에 지나지 않는다.

6. 물리(物理) : 서양의 과학이 들어온 후에 이치란 낱말은 또다시 중시되었다. 자연과학을 처음엔 격치(格致)라고 뒤에 물리 · 화학 등으로 번역하였다. 서양의 logos에서 연원을 둔 ∼logy란 어미는 대부분 ‘이’(理)로 번역되었다. 예컨대 psychology(心理) 등, logic은 논리(論理) 또는 이칙(理則)으로, reason은 이성(理性)으로, 플라톤의 idea는 이념(理念), understanding은 이해(理解)로, axiom은 공리(公理)로, principle은 원리(原理)로, theorem은 정리(定理)로, universal은 공상(共相) 또는 공리(共理)로 번역되어, ‘이’자의 뜻이 넓어져 갔다. (鄭仁在)

[참고문헌] 唐君毅, 中國哲學原論, 導論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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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화의 은총 [한] 義化∼恩寵 [라] gratia justificans [영] justifying grace [관련] 의화

인간에게 범죄로 말미암아 잃었던 하느님의 생명을 다시 얻게 하며, 하느님의 원수되고, 단죄받은 처지에서 자비와 사랑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은총(1요한 3:1-3). 개신교에서는 이 의화(義化)의 내용을 달리 알아들으며 용어도 칭의(稱義)라고 한다. 즉 하느님은 죄인인 인간을 의롭다고 간주한다는 내용으로 해석한다. (⇒) 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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