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교구 [한] 安東敎區

1948년 이래 충남지방을 맡아 관리해 오던 파리 외방전교회에서는, 1958년 6월 2일에 대구교구(大邱敎區)에서 다스리던 경상북도 안동(安東)지방에 감목대리구를 두어, 파리 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이던 알레르(Haller, 河) 신부가 감목대리의 일을 맡아 보게 되었다. 알레르 감목대리의 뒤를 이어, 1962년 2월 15일에는 일찍이 공산군에게 잡혀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코요스(Coyos) 신부가 맡아 보게 되었다.

1965년 대전교구를 맡아 보던 라리보(Larribeau, 元亨根) 주교가 교구장을 사임함으로써, 대전교구가 한국인 주교가 다스리는 교구로 되자, 1969년 5월 29일에 안동감목대리구를 대구 대교구로부터 분립시켜 정식교구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조선교구 설정 이래 한국 교회를 위해 많은 희생과 공헌을 남긴 파리 외방전교회로 하여금 교구 관리를 담당케 하여, 그해 7월 25일에 로마에서 성성식(成聖式)을 가진 뒤퐁(Rene Dupont, 杜峰) 주교가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동교구의 관할지역은 경상북도 안동(安東), 영주(榮州)시와 안동, 울진(蔚珍), 영양(英陽), 봉화(奉化), 영덕(盈德), 청송(靑松), 의성(義城), 예천(醴泉), 문경(聞慶), 상주(尙州), 영풍(榮豊)의 11개군에 걸친 1만 667㎢에 달한다. 1982년 현재 교세를 보면, 신자수 3만 3,283명, 본당 23개소, 공소 116개소, 한국인 신부 22명, 외국인 신부 13명, 수사 8명, 수녀 59명, 남자수도 단체 3, 여자수도단체 9, 나병수용소 6개소, 유치원 9개소,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 대학교 1개교, 주일학교 25개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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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돈이 [한] 安敦伊 [관련] 다블뤼

다블뤼(Daveluy) 주교의 한국명. ⇒ 다블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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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동본당 [한] 安大洞本堂

1878년경 리델(Ridel, 李福明) 주교가 체포되어 청나라로 추방될 때, 블랑(Blanc, 白圭三) 신부는 이 곳 전북 용안군(龍安郡) 용안면 안대동에 피신 와서 산간벽지의 공소를 순회 전교하다가 1880년에 서울로 돌아가서 리델 주교 후임으로 주교대리직을 맡았다. 그런데 블랑 신부와 함께 피신해 와 있던 두세(Doucet, 丁加彌) 신부는 그대로 남아서 전교를 계속, 1885년 이후에는 조스(Josse, 趙) 신부가 ‘안대동본당’(주보는 성모 성탄)의 초석을 이룩하여 초대(1885~1886년) 본당신부로 활약하였다. 그러다가 2대(1888~1892년) 베르모렐(Vermorel, 張若瑟) 신부가 비 산협지대 전교에 헌신하였다. 이리하여 안대동은 전라도의 가톨릭 포교사상 유서깊고 역사 또한 오래된 고장이 되었다.

3대(1910~1911년) 서병익(徐丙翼, 바오로) 신부, 4대(1911~1913년) 이상화(李尙華, 바르톨로메오) 신부를 거쳐 5대(1913~1914년) 페셸(R. Peschel, 白) 신부 때는 부 · 군 폐합에 따라 용안군이 전북 익산군(益山郡)으로 병합되어 안대동본당의 소재지명은 전북 익산군 함열면(咸悅面)으로 개칭되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1921년까지는 주임신부의 공석으로 인하여 나바위본당에 속하게 되었다. 그런 뒤 6대(1921~1922년) 파르트네(T. Parthenay, 朴) 신부 시대를 거쳐 1937년 전주교구가 설립될 때까지 주임신부가 또 공석이어서 나바위본당에 소속되었다. 1938년 당시 나바위본당의 주임인 이약슬(李若瑟, 요셉) 신부가 현 성당인 ‘함열’(咸悅)성당을 신축하고 7대(1938~1941년) 허일록(許日錄, 다테오) 신부, 8대(1941~1942년) 서병익(徐丙翼, 바오로) 신부 때 사제관을 신축하였고, 9대(1943~1947년) 이철연(李喆淵, 프란치스코) 신부 때 8.15광복을 맞았다. 10대(1947~1949년) 오기순(吳基順, 알베르토), 11대(1949~1950년) 이상화 신부가 사목한 뒤 12대(1950. 5. 12~1950. 12) 김이환(金二煥, 스테파노) 신부 때 6.25전쟁을 만났다. 이 때문에 13대(1950. 12~1951. 5) 김영태(金永泰, 도미니코) 신부는 종군 입대하였고, 14대(1951~1958년) 송남호(宋南浩, 요셉) 신부를 끝으로 ‘안대동본당’ 시대는 막을 내리고, 1958년 함열면 와리(瓦里)에 본당을 신설하여, 1959년 1월 10일 성당이 이전되었다. 이때부터 명칭도 ‘함열본당’(咸悅本堂)으로 바뀌었다.

함열본당 시대로 접어들어 주보가 그리스도왕으로 되었으며, 1963년 신자수가 2,760명(남 1,369명, 여 1,391명)에 이르렀고, 1984년 현재 신자수는 2,200여명이다. 역대 주임 신부를 보면, 15대(1958~1961) 김영구(金榮九, 베드로), 16대(1961~1963년) 김반석(金盤石, 베네딕토), 17대(1964~1967년) 박성운(朴聖雲, 베네딕토), 18대(1967~1969년) 김종택(金鐘擇, 요셉), 19대(1969~1971년) 박진량(朴鎭亮, 라우렌시오), 20대(1972~1978년) 김이환 신부, 21대(1978~1982년) 서석구(徐錫九, 요한), 22대(1982~현재) 안복진(安福-, 요셉) 신부에 이어지고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1976년 12월 20대 김이환 신부 때 함열본당과 화산본당(華山本堂)과의 구역 조정으로 ‘용안본당’(龍安本堂)이 신설되어, 함열본당에서 분리되어 나간 것을 들 수 있다. 함열본당의 현 소재지는 전북 익산군 함열읍 와리 226번지이고, 전주교구 관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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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당 [관련] 안토니오

⇒ 안토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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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라] Anna [영] Anne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성녀. 성모 마리아의 부모에 관해 성서에는 나타난 바가 없으나 신약 외경인 야고보 원복음서에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로 전해진다. 안나와 요아킴이 오랫동안 아기를 얻지 못하다가 열심한 기도로 천사의 약속을 얻어 아기를 낳은 이야기는 구약의 ‘한나’가 사무엘을 얻게 된 이야기(1사무 1:9-20)와 유사점이 많다. 안나(Ann, Anna)라는 이름도 히브리어 한나(Hannah)와 같은 이름이다. 안나와 요아킴은 구약의 메시아 기대의 상징이며, 마리아와 함께 신약에 소개된 것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는 역사의 한 분기점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성 안나에 대한 공경은 성모마리아 공경과 연관, 발전된 것으로 6세기에 예루살렘에서 시작, 콘스탄티노플로 전파되어 중세 초기에 로마와 유럽으로 전해졌고, 중세 후기에 무염시태(無染始胎)의 신앙으로 인해 절정에 달하였다. 성녀 안나 축일은 6세기에 동방교회에 소개되어 8세기에 로마로 전해졌고 14세기에 대중화되었다. 1584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7월 26일에 지켜지는 축일을 전 라틴 교회로 확장시켰다(1969년부터는 성 요아킴도 함께 기념됨). 동방교회에서는 7월 25일에 지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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