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8년경 리델(Ridel, 李福明) 주교가 체포되어 청나라로 추방될 때, 블랑(Blanc, 白圭三) 신부는 이 곳 전북 용안군(龍安郡) 용안면 안대동에 피신 와서 산간벽지의 공소를 순회 전교하다가 1880년에 서울로 돌아가서 리델 주교 후임으로 주교대리직을 맡았다. 그런데 블랑 신부와 함께 피신해 와 있던 두세(Doucet, 丁加彌) 신부는 그대로 남아서 전교를 계속, 1885년 이후에는 조스(Josse, 趙) 신부가 ‘안대동본당’(주보는 성모 성탄)의 초석을 이룩하여 초대(1885~1886년) 본당신부로 활약하였다. 그러다가 2대(1888~1892년) 베르모렐(Vermorel, 張若瑟) 신부가 비 산협지대 전교에 헌신하였다. 이리하여 안대동은 전라도의 가톨릭 포교사상 유서깊고 역사 또한 오래된 고장이 되었다.
3대(1910~1911년) 서병익(徐丙翼, 바오로) 신부, 4대(1911~1913년) 이상화(李尙華, 바르톨로메오) 신부를 거쳐 5대(1913~1914년) 페셸(R. Peschel, 白) 신부 때는 부 · 군 폐합에 따라 용안군이 전북 익산군(益山郡)으로 병합되어 안대동본당의 소재지명은 전북 익산군 함열면(咸悅面)으로 개칭되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1921년까지는 주임신부의 공석으로 인하여 나바위본당에 속하게 되었다. 그런 뒤 6대(1921~1922년) 파르트네(T. Parthenay, 朴) 신부 시대를 거쳐 1937년 전주교구가 설립될 때까지 주임신부가 또 공석이어서 나바위본당에 소속되었다. 1938년 당시 나바위본당의 주임인 이약슬(李若瑟, 요셉) 신부가 현 성당인 ‘함열’(咸悅)성당을 신축하고 7대(1938~1941년) 허일록(許日錄, 다테오) 신부, 8대(1941~1942년) 서병익(徐丙翼, 바오로) 신부 때 사제관을 신축하였고, 9대(1943~1947년) 이철연(李喆淵, 프란치스코) 신부 때 8.15광복을 맞았다. 10대(1947~1949년) 오기순(吳基順, 알베르토), 11대(1949~1950년) 이상화 신부가 사목한 뒤 12대(1950. 5. 12~1950. 12) 김이환(金二煥, 스테파노) 신부 때 6.25전쟁을 만났다. 이 때문에 13대(1950. 12~1951. 5) 김영태(金永泰, 도미니코) 신부는 종군 입대하였고, 14대(1951~1958년) 송남호(宋南浩, 요셉) 신부를 끝으로 ‘안대동본당’ 시대는 막을 내리고, 1958년 함열면 와리(瓦里)에 본당을 신설하여, 1959년 1월 10일 성당이 이전되었다. 이때부터 명칭도 ‘함열본당’(咸悅本堂)으로 바뀌었다.
함열본당 시대로 접어들어 주보가 그리스도왕으로 되었으며, 1963년 신자수가 2,760명(남 1,369명, 여 1,391명)에 이르렀고, 1984년 현재 신자수는 2,200여명이다. 역대 주임 신부를 보면, 15대(1958~1961) 김영구(金榮九, 베드로), 16대(1961~1963년) 김반석(金盤石, 베네딕토), 17대(1964~1967년) 박성운(朴聖雲, 베네딕토), 18대(1967~1969년) 김종택(金鐘擇, 요셉), 19대(1969~1971년) 박진량(朴鎭亮, 라우렌시오), 20대(1972~1978년) 김이환 신부, 21대(1978~1982년) 서석구(徐錫九, 요한), 22대(1982~현재) 안복진(安福-, 요셉) 신부에 이어지고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1976년 12월 20대 김이환 신부 때 함열본당과 화산본당(華山本堂)과의 구역 조정으로 ‘용안본당’(龍安本堂)이 신설되어, 함열본당에서 분리되어 나간 것을 들 수 있다. 함열본당의 현 소재지는 전북 익산군 함열읍 와리 226번지이고, 전주교구 관하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