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한] 惡 [라] malum [영] evil, wrong [독] Ubel, Bose

일반적으로는 ① 도덕적 기준에 맞지 않는 의지나 나쁜 행위 ② 인간에게 해로운 자연(병 · 천재), 또는 나쁜 제도나 풍속 따위 사회현상을 ‘악’이라고 한다. 첫 번째 계열은 윤리악(倫理惡), 도덕악(道德惡)을 지칭하며, 의지가 자진해서 도덕선(道德善, moral good) 및 도덕률(道德律)에 배반하기를 결단하는 일을 ‘악’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선 따라서 둘째 번 계열 중의 병 · 고통 · 죽음 · 추함 따위 윤리 밖의 자연악(自然惡)과는 구별되고 있다. 그리스도교적인 해석에서는, 하느님의 소명을 사랑으로써 긍정하는 일, 하느님에 의하여 부여된 자연적 · 초자연적인 질서에 충실히 따르는 일을 ‘선’이라고 보며, 대립개념이 ‘악’이지만, 신의 계율에 반한다는 뜻으로서의 악은 ‘죄’라고 부르며, 이 ‘죄’에 대립하는 개념은 ‘의’(義)이다. 악은 ‘죄’까지도 그 안에 포함하는 보다 큰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어의 ‘kakos’ 또는 ‘poneros’는 ‘악’을 뜻하는 말로서, 인간의 책임에 귀속하는 해로운 행위를 가리키지만, 그것을 뛰어넘은 파괴적인 세력, 인간의 지배나 책임의 범위를 뛰어넘은 것도 의미하였다. 라틴어의 ‘malum’도 비슷하다. 히브리어에서는 ‘ra’가 ‘악’을 뜻하는데, 인간에게 해되는 행위나, 특히 순종치 않는 일, 또는 우상숭배 등으로 신과의 계약을 문란시키는 행위를 의미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고통 · 불행 · 슬픔 따위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것들도 지칭하였다. 일반적으로 고대에서는 ‘악의 기원’을 형상(形相)의 완전한 실현을 허용하지 않는 질료(質料)의 조악성에서 찾고자 하였고,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내재하는 ‘악’의 사실을 설명하기 어려웠었다. “왜 신은 만든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과 천사가 그 자유를 악 때문에 남용함을 막지 않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 아우구스티노는, 악이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선’한 것으로서 만들어진 의지가 자신의 놓여 있는 질서에 배반할 때에만 악이 존재한다는 것, 이 의지의 반역 즉 ‘죄’를 회개하지 않는 죄인은 그 악에 대하여 당연한 벌을 받게 되며, 이리하여 악도 신의 섭리 안에 들어 있음을 밝혔다. 성서 가운데에는 신의 전능과 악의 존재에 관한 논리적인 해석이 제공되어 있지 않으므로, 근대에 와서 여러 각도에서의 신학적인 주장이 펼쳐졌다. 그 중에는 브라이트만(E.S. Brightmann, 1884~1953)의 경우처럼, 악의 기원을, 신 자신 속에 있는 신이 자유로이 할 수 없는 부여받은 성품 가운데서 찾거나, 루이스(Edwin Lewis, 1880~1959)의 경우처럼, 신의 바깥쪽에 있는 신에 적대하는 세력에게서 찾거나 하였다. 그리스도 교회는 기회 있을 때마다 선과 악을 이원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물리쳐 왔다. 악은 인간 도덕의 내면에 있는 선의 대립개념으로만 이해될 것이 아니고 근원적인 악, 악마적인 힘으로도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악이 아담의 ‘원죄’(原罪)에서 시작되어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느님의 질서에 반항하고, 복종을 거부할 때 생긴다. 만약 경계와 끊임없는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보다 힘찬 구원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물론 이 악마의 영향을 받기 쉽다.

악에 대한 고전적인 입장이 주의해야 할 점은, 신의 도덕성을 파괴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근대적인 입장이 주의해야 할 점을 든다면, 신의 섭리의 보편성을 파괴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는 일이다. 여기서 특히 가톨릭에서 해석하고 있는 ‘악’이라는 용어를, evil과 wrong의 경우 두 가지로 나누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evil : 당연히 있어야 할 선, 자연히 본질적으로 속해 있어야 될 선의 결여를 ‘악’(evil)이라 한다. 즉 자연히 갖추어져 있고, 어떤 존재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을 이 경우의 ‘악’으로 본다.

② wrong : 바르지 않은 것, 틀린 것을 이 경우의 ‘악’(wrong)이라고 말한다. 인간행위에 적용하였을 때, 당연히 나아가야 할 길, 인간의 최종목적인 천국에 다다르는 길에서 벗어남을 지칭한다. ①②가 마찬가지로 ‘악’의 의미로 쓰이지만, 엄격히 말해서, ‘wrong’은 ‘진리’에 반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evil’은 ‘선’에 반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참고문헌] A. Kobut, Judische Angelologie in ihrer Abhangigkeit vom Parsismus, 1866 / J. Bremond, Le diable existe-tit? Que fait-il?, Paris 1924 / E.S. Brightmann, the Problem of God, 1930 / M.C. D’Arcy, The Pain of this World and the Providence of God, 1935 / R. Jolivet, Le Probleme du mal d’apres S. Augustine, Paris 1936 / C.S. Lewis, The Problem of Pain, New York 1944 / A.G. Sertillanges, Le Probleme dumal, t. 2, Paris 1948~1951 / L. Lavelle, Le Mal el la Souffrance, 1951 / D. von Hildebrand, The Nature of Good and Evil, Englewood Cliffs, N.J. 1952 / E. Zoffoli, Problema e mistero del male, Turin 1960 / C. Journet, The Meaning of Evil, tr. M. Barry, New York 1963 / John A. Hardon, S.J., Modern Catholic Dictionary, New York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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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한] 惡魔 [라] diabolus [영] devil

구약성서에는 사탄으로 종종 기록되어 있으며 그 원뜻은 ‘적대자’이다(민수 22:22, 1사무 29:4, 1열왕 11:25). 창세기 3장에서는 뱀과 악마를 동일시하고 있지는 않으나 하느님을 증오하는 어떤 악한 세력에 의해 인간생활이 물들고 타락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신약성서에서는 예수가 인간의 악한 의지를 바로 잡아서 하느님께로 이끌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선한 의지에 도전하는 어떤 막강한 힘에 대항하여 고난을 당하셨음을 알 수 있다(1요한 3:8). 그의 궁극적 승리는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예수의 일생은 세력 있는 자들과의 투쟁이었으며(마르 3:27), 그의 고난의 시간은 이러한 투쟁의 절정이었다.

악마는 우주의 이방인적 존재로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들을 파괴하여 질서가 있는 곳에 혼란을,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을 가져오는 존재이며, 강한 증오와 자만심으로 하느님께 대항하고 인간의 죄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이며, 특히 예수가 만났고 십자가 위에서 이겨 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이러한 세력의 침입을 받았다는 사실이 인간의 죄를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악마의 유혹을 받아들임은 인간의 죄를 더욱 크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유혹하는 악한 세력도 하느님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다.

구약성서의 사탄은 신약성서에서처럼 강력하고 사악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나 점점 그런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1역대 21:1, 이사 14:12-21, 즈가 3:1 · 2). 신약성서에서는 타락한 천사의 교리를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으며(유다 6-8) 요한복음 8장 44절의 예수의 말씀도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되고 있다. 구약성서에서는 여러 종류의 악마가 나타나고 있는데(이사 34:14, 레위 17:7) 이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인간으로 하여금 죄와 타락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역할을 한다(판관 9:23, 1사무 16:14, 1열왕 22:22). 그리고 또한 죽은 영들을 불러내는 자들은 악의 세계와 관계를 맺고 그 속에 빠져들 위험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레위 19:31, 신명 18:10, 출애 22:18). 다니엘서와 같은 묵시문학에서는 악의 왕국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신약성서에서는 이러한 왕국이 한 천사에 의해 허물어질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마르 3:22-27, 묵시 12:7 · 8). 그 이유는 악마는 소멸하도록 운명지어져 있고 그의 시간은 짧으며 그 자신이 누구보다 분노에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교인들은 사탄이 인간을 괴롭히고 점령하는 힘의 엄청남을 확실히 인식하여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1베드 5:6-9, 2베드 2:4, 유다 6, 루가 22:31, 에페 6:11 · 12).

우상과 마술과 악마간의 관계는 신약성서에 확실히 밝혀져 있다(1고린 10:20, 갈라 5:20, 묵시 9:21). 신학자들은 모든 피조물이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들은 또한 타락한 천사 즉 악마의 불합리하고 충동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있으며 악마가 하느님과 이원적인 존재라는 사상을 조심스럽게 부인하고 있다. 루터는 악마를 ‘하느님의 악마’라고 표현하여 이러한 사상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모든 악이 그 자신의 죄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해서 악의 깊이를 더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악은 극복되어 왔으며 결국에는 악의 무가치하고 하찮은 본질이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진리로 인정하고 있다.

[참고문헌] E. Laughton, Essentials of Demonology, A study in Jewish and Christian Doctrine, 1949 / G.B. Caird, Principalities and Powers: A study in Pauline Theology, 1956 / J. Guillet, Themes of the Bible, tr A.J. LaMothe, Notre Dame 1960 / M.F. Vnger, Biblical Demonology, 1963 / J.G. Kallas, The Satan word View, 1966 / R.S. Kluger, Satan in the Old Testament, 1967 / EncDictBibl 213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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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변호인 [한] 惡魔∼辯護人 [라] advocatus diaboli [영] devil’s advocate

시성(諡聖)과 시복(諡福) 절차에서 시성 · 시복을 제안하는 측의 주장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즉 검사역할을 하는 증성관(證聖官, promotor fidei)을 전통적으로 달리 일컫는 말. 시성 · 시복을 절차는 사안(事案)의 진실성에 도달하기 위하여 소(訴)의 진행방식을 따른다. 즉 시성 · 시복의 자격요건을 갖추었다고 제안하는 자 및 이를 지원하는 ‘성인의 변호인’의 주장에 대하여 교회가 그 주장을 이유 있다고 받아들이기 전에 증성관으로 하여금 그 주장을 소극적으로 검토하여 반대의 논거를 찾도록 한다. 이처럼 중성관의 임무에는 성인이나 복자 후보자 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그를 악마의 변호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사실상 교회가 자격 없는 후보자를 복자나 성인의 품에 올리는 일이 없도록 돕는 자이므로 오히려 교회의 변호인 또는 하느님의 변호인이라 불려지기도 한다. 이 직책은 11세기 초엽에 설정되었고 오늘날의 시성 성성에 소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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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시옹 프랑세즈 [프] Action Francaise

샤를르 모라(Charles Maurras)와 레옹 도데(Leon Daudet)가 전제 군주정(君主政)을 1899년에 시작한 프랑스의 정치운동. 이들이 1897년에 발간한 월간 <락시옹 프랑세즈>(L’Action Francise)는 1908년에 일간 신문이 되었다. 이 정치운동에서 국가주의적 정당이 생겼는데 이는 교회를 정치적 사회적 목적에 이용하고자 하며 가톨릭 신자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획책하였다. 그 정당의 강령은 정치를 종교보다 우위에 두고 교회활동을 반 정부적인 정치운동 쪽으로 몰아붙이며 증오와 폭력의 철학을 고취하는 것이었다. 교황 비오 11세는 1926년 이 운동을 배격하고 그 신문을 금서목록에 넣었었으며, 종교활동을 하는 모든 가톨릭 운동과 평신도 단체운동은 교계의 지도를 받도록 하였다. 이 정치운동의 지도자들은 과거의 잘못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고, 성청의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하였으므로 교황 비오 12세는 1939년 이 운동에 대한 과거의 단죄를 해제하였다. 악시옹 프랑세즈는 프랑스 국민의 새로운 정치생활과 현대적 사고방식에 맞지 않게 되었으므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쇠퇴일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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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행 [한] 惡行 [영] evil deed, wrong doing [독] Untat

일반적으로 흉악한 행실 또는 나쁜 행위를 가리킨다. 불교 용어로는 전세(前世)의 나쁜 행위를 ‘악업’(惡業, wrong doing)이라고 하며, 이것은 일반용어로 쓰이게 되어 ‘좋지 못한 짓’을 의미한다. ≪한불자전≫(韓佛字典, 1880)에 따르면, ‘악행하다’의 뜻은 나쁜 행동을 한다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악행’에는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생각할 수가 있다. 즉 당연히 있어야 할 선의 부재(不在), 행위의 선악을 뚜렷이 검토하지 않는 상태의 악의(惡意, bad faith)적인 인간행위를 자행하는 경우가 그것이고, 또 하나는 인간행위에 적용할 때, 당연히 나아가야 할 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악을 바라는 의미에서의 악의(malevolence)적인 못된 짓을 행하는 경우이다.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악’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며, 성서에서는 어떤 인간이나 행위 또는 사물을 그 외관이나 결과로 보아 무가치하거나 부패한 것, 즉 흉악하고 근심되는 것, 고통스럽고 해하는 것 등을 악으로 보고 있다. ‘부패’하는 의미를 확대시켜 생각할 때, ‘악’이란 인류 특히 이스라엘이 견디어야 하는 재앙, 화(禍), 위험 등을 뜻하며, 따라서 ‘악’은 종종 하느님께서 주시는 벌이나 응징을 의미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섭리로서, 엄하지만 분별있는 목적을 위해 ‘악’을 사용하므로, 악의 주관자로 묘사되고 있다(욥기 2:10, 판관 45:7, 아모 3:6). 특히 신약성서에 ‘악’은 도덕적 영적인 의미를 함축하여, 인간이 서로에게 행하는 잘못을 의미하게 되었다. 또한 도덕적인 잘못, 악의, 죄있는 마음의 사악함 등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행악자’(行惡者)란 사악한 자를 지칭하였다. 인간의 의지에서 생겨나는 모든 의식적 행위 즉 인간적 행위 또는 인간행위(human act)가 도덕의 규범이 되는 표준에 상반되는 행위였을 때 바로 ‘악행’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G. Mensching, Gut und Bose im Glauben der Volker, 1950 / L. Lavelle, Le Mal et la souffrance, Paris 1951 / P. Siw다, The Philosophy of Evil, New York 1951 / J. Nabert, Essai sur le mal, Paris 1955 / F. Petit, The Problem of Evil, tr. C. Williams, New York 1959 / C. Journet, The Meaning of Evil, tr. M. Barry, New York 1963 / John A. Hardon, S.J., Modern Catholic Dictionary, New York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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