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聖人)의 유해(遺骸). 성해는 교회의 허가가 있은 후 공경(恭敬)의 대상이 된다. 유해를 소중히 모시는 일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서 비롯된 것으로 다른 많은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불교가 그 한 예이다. 특히 그리스도교에서 성해를 공경하는 이유는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있는 성인의 육체가 그리스도의 지체였었고(게나디우스), 성신(聖神)의 궁전이었으며(성 아우구스티노), 고통을 받아 순교한 거룩한 몸으로(성 예로니모), 영원한 생명과 영광에로 불림을 받을 육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은 성인들의 유해 혹은 유물을 통하여 신자들에게 많은 은혜를 내리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성서적인 근거는 사도 바울로의 몸에 닿았던 수건이 치유의 기적을 불러일으켰던 일(사도 19:12)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구약에서도 엘리야의 옷과 엘리사의 뼈를 통해서 기적이 일어났었다(2열왕 2:14, 13:21).
성해 공경의 가장 오래된 실례는 156년 경 스미르나(Smyrna)의 주민이 성 폴리카르포(Polycarpo)의 죽음에 관하여 쓴 편지(Martyrium Polycarpi)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편지에서 그는 성인의 유해가 대단히 귀중하게 다루어져 안치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성해 공경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급격히 전파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1084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성해 공경이 정식으로 인가되었으며, 성인의 유해를 옮겨가거나 분할하여 안치하기도 하였다. 이에 비해 서방교회에서는 성해 공경이 초기 교회의 카타콤바와 깊은 연관을 맺는데 4세기부터는 순교자의 무덤 위에서 미사가 거행되었다. 그러나 성해를 옮겨가거나 분할하여 안치하는 것은 금지되다가 7-8세기에 이르러 허용되었다. 787년, 니체아 공의회에서는 모든 교회가 반드시 성해를 모신 뒤 축성되어야 함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성해 공경은 박해시대 이후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교도들의 영향으로 지나치게 과장되어 미신적인 것으로 흘러 교회 안에서 한때 이 공경을 반대하는 움직임(비질란시우스)도 있었다. 그러나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와 같은 중세 스콜라 학자들이 그 신학적 토대를 확립하여 이 공경은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증을 받았다. 교회법에 의하면, 추기경 혹은 주교의 인가를 받지 않은 성해 공경과 성해를 사고 파는 일은 금지된다. 성해는 성당 안의 성해 안치함이나 제대의 성석 안에 안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