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광복 이듬해인 1946년 4월 인천본당(답동)으로부터 분리되어 설정된 본당. 주보는 성가정. 초대 신부로 부임한 임세빈(林世彬, 요셉) 신부는 일제 때 일본인의 소유이던, 당시 부천군 소사읍 소사리 산 1번지의 귀속재산 ‘소림별장'(대지 4,340평, 건물 80평)을 불하 받아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1949년 2월에는 신성우(申聖雨, 마르꼬) 신부가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성당 신축자금을 마련 중에 6.25동란이 발발하자, 1.4후퇴 때는 부산으로 피난갔다 돌아와서 폭격으로 불탄 임시성당을 복구하였다.
수복 후 신자가 많이 늘어남에 따라 주일미사도 근처의 솔밭에서 지내야 되는 형편이므로, 신성우 신부는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어서 번 돈 40만원을 기금으로 인근 미군 부대의 원조와 은인들의 도움을 받아, 1954년 11월 28일 114평의 성당을 준공하여 교구장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주례로 축성식을 가졌다. 신 신부의 열성으로 1955년에는 성가보육원을 유치하고, 1959년 성가양로원도 세웠으며, 1960년에는 성가수녀원 소사분원이 설치되었다. 신 신부는 또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가지 못하는 소년들을 위하여 야간학교도 개설하였다.
그러나 교세의 확장에 따라 성당이 이미 협소하여졌을 뿐 아니라, 교회의 발전을 위하여 소사 중심지로 진출할 필요성을 느낀 신 신부는 1960년 10월 20일에는 소사읍 소사리 2의 5, 현 부천시 심곡동 (富川市 深谷洞) 489번지에 지금의 현대식 성당을 지어 본당을 이전한 뒤 은퇴하였다. 그를 이어 정덕진(鄭德鎭, 루가)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한 후, 1962년에 신성우 신부가 1957년부터 추진시켜 왔던 소명가정실습학교(소명여자중고등학교의 전신)를 성가회에서 인수하였다. 소사본당은 1963년에 수원교구로 편입되었다가, 그 뒤 다시 인천교구의 관할로 되었다. 지금은 9대 주임인 이근창(李根昌, 프란치스코) 신부가 맡고 있으며 1983년말 현재의 신자수는 4,488명에 달한다. 소사본당은 봉사하는 교회, 믿음을 다지는 교회를 지향하는 신자들의 의지를 모아, 450평에 달하는 현대식 ‘성가정회관’을 지어 1984년 7월에 개관하였다. ‘나눔의 장’으로도 불리는 이 회관은 교회는 물론, 지역사회를 위하여 완전히 개방하고 있는데 특히 젊은이들의 교육장과 상담실을 비롯, 직장인들의 회합, 피정교육 및 각종 문화교육센터로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그 동안 소사본당을 맡았던 주임신부는 1968년 4대 김춘호(金春浩, 베드로) 신부, 1971년 5대 신재성(申在成, 바오로) 신부, 1971년 6대 주 예레미아 신부, 1975년 7대 나데레(골룸바노회) 신부, 1975년 8대 조성교(趙誠敎, 요한) 신부 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