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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과 영성생활
2. 영성과 영성생활 2.1. 영성의 정의 성삼위의 친교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에의 참여이다. 곧 성령의 은총 안에서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성부께 나아가는 삶이다. 2.2. 영성생활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성삼위의 신비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생활은 우리에게 사람이 되어오신 그분의 모범을 따라 그분을 닮아가면서, 성령의 이끄심에 의해, 완전하신 하느님 아버지(마태 5,48 참조)께 올라가는 여정이다.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 신비가 인간 안에 실현되고 완성되어 가는 과정인 생활인 것이다. “이방인 여러분과 우리 유다인은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같은 성령을 받아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에페 2,18). 2.3. 영성의 유일성과 다양성 그리스도교 영성은 근워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이 진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성서에 입각하여 성성(Sanctitas)의 본질과 근원을 밝힘으로써 매우 명료해졌다(교회헌장 5장 참조). 즉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느 누구하나 빠짐없이 세례성사를 통해 성성(聖性)에 불리었으며, 걸어야 할 목표는 거룩함 자체이신 유일한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거룩함은 근보적으로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거룩함에로 걸어가는 길은 다양하다. 때와 장소 그리고 생활의 상태나 위치에 따라서 사람들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이 다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능력에 있어 다른 입장에 처해 있는 각자의 한계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영성은 같은 한 하느님이 근원이시므로 본질적으로 하나일 뿐이며, 한편 여기에 참여하는 방법과 양상은 다양하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신비, 구원, 사랑 등 은총이란 객관적 측면에서 영성은 하나이다. 그것이 인간 안에 받아들여지고 실현될 때 주관적 측면에서의 영성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그릇에 담기고 다른 정도의 성숙도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각 시대와 각 지역은 같은 한 영성을 받아들이는 데에 다르고도 고유한 그릇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각 시공안에 살고있는 각 사람들은 생활의 상태와 사명에 따라, 즉 성소에 따라 다른 영성을 살게 된다.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척도에 따라 영성을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1)민족 및 지리적 척도: 동양의 영성, 서양의 영성, 한국의 영성, 중국의 영성 등. 2)교의 및 신심적 척도: 삼위일체의 영성, 그리스도론적 영성, 성체성사의 영성, 예수성심의 영성 등. 3)수덕, 신비적 척도: 애덕의 영성, 가난의 영성, 순결의 영성, 속죄의 영성 등. 4)인간학적 및 심리학적 척도: 이지주의적 척도 또는 사변적 영성, 정적 혹은 실천적 영성 등. 5)생활상태와 직업의 척도: 평신도, 수도자, 사제, 교사, 의사, 농부의 영성 등. 6)역사, 연대적 척도: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영성, 교부시대의 영성, 중세 영성, 근세 영성, 현대 영성 등, 7)수도회의 창립자들의 카리스마에 의한 척도: 아우구스띠노의 영성, 베네딕도의 영성, 프란치스코의 영성, 가르멜 영성, 이냐시오 영성 등. 이같이 그리스도교적 유일한 영성이 그리스도인이 사는 시대와 장소, 상황과 사명 그리고 카리스마에 따라 다양하게 구체화 된다. 유일한 영성의 여러 측면이 각기 다른 요소들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영성 실현의 방법과 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측면의 영성이든지 그것을 절대화 하거나 보편화 하고자 해서는 안된다.
인간성숙의 요소 및 척도
1.1.2. 인간성숙의 요소 및 척도 가) 자아개념의 확장(사랑의 성숙) 나) 타인과 관계의 친밀도 다) 정서적 안정 라) 현실이해와 임무수행 능력 마) 자신에 대한 이해와 유모어 바) 일관적 생활관(인생관) 사) 성(性)의 실현 1.2. 그리스도인 성숙 “인간성숙은 우리의 의무들의 종합이다. 그러나 아직 더 필요한 것이 있다. 책임있는 개인적 업무로 풍요로워진 본성의 조화는 더 높은 곳으로 불린 것이다.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감으로써 새로운 차원, 초월적 인간성에 이른다. 이것이 인간 발전의 최고 목표이다”. 실로 그리스도인은 은총에 응답하면서 인간성숙 이상의 과제 즉 그리스도인 성숙을 이루어야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성숙은 성숙된 인간이 신앙으로 조명되고 애덕의 초자연적 질서에 높여짐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또한 성숙한 인간이다. 그는 초자연적 은총뿐만 아니라 그에 앞서 자연적 능력까지 충만히 꽃피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성숙은 인간적으로 성숙된 이에게 더욱 풍요로워지며 인간성숙은 그리스도인 완성 안에 통합되고 온전해지며 거양되는 것이다. 가) 그리스도인 성숙의 본성 나) 인간성숙과 그리스도인 성숙의 관계 ㄱ) 인간성숙과 그리스도인 성숙의 특징들의 비교 ㄴ) 심리적 성숙과 그리스도인성숙 ㄷ) 인간성숙과 그리스도인성숙의 관계 규명을 위한 세 가지 문제점 제기 (ㄱ)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없이, 즉 신앙 없이 진정한 인간성숙이 가능한가? (ㄴ) 인간성숙 없이 그리스도인 성숙이 가능한가? (ㄷ) 실생활과 별리되어 있는 신앙의 열성자세가 그리스도인 성숙과 같은 것인가?
인간성숙
1.1. 인간 성숙 공의회의 문헌들과 최근의 교도권의 가르침은 인간성숙을 인간의 완성적 발전을 위해 매진해야 할 목표인 초자연적 발전, 즉 그리스도인의 성숙의 기반 및 전제로 여긴다(사제양성교령 9; 그리스도교적 교육에 관한 선언 2; 평신도교령 29; 현대의 사제양성 43.44.45.51항 등 참조). 은총이 본성을 파괴하지 아니하고 완성시킨다면, 은총의 생활은 인간의 전반적 활동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인간 개체의 심리적 윤리적 신체적 및 사회적 발전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곧 초자연적 생활은 자연적 생활의 발전에 비례하여 성장하는 것이다. 초자연적 생명의 빛은 그것이 내재하는 자연적 바탕이 얼마나 활기차고 강하냐에 따라 생동감이나 밝기를 다르게 나타낼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일상생활 안에서 은총의 활동이 심리적 혹은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 안에서 쉽게 이루어질 수 있고, 약한 사람에게서 활기를 잃게된다는 점을 보아도 인간의 기본 조건이 은총을 규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은총이 우리 안에 가능한 한 완전에 가깝게 작용하도록 더욱 알맞은 인간 성숙이 그리스도인 성숙의 전제 조건이라는 이유가 성립되는 것이다. 1.1.1. 전인성숙 오늘의 심리학자들과 교육학자들은 인간성숙의 개념을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다. 여러 정의를 종합하면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인간성숙이란 “인간적 충만성으로서 성인(成人)적 성격을 갖추고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영성적으로 조화있게 발전된 단계”이다. 즉 전인적 성숙이다. 인간 성숙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측면의 조화와 균형적 발전을 요구한다. 가) 신체적. 물리적 측면 나) 심리적. 지성적 측면 다) 사회적. 정적 측면 라) 영적. 윤리적 측면 *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간’ 정의 인간에 관한 학문들과 대화하면서 그리스도교 신학은 오늘 인간을 이렇게 포용성있게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 및 화학적 작용을 하는 복합 유기체로서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심리적. 지성적 법칙을 따라 구체적 상황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존재”이다. 인간 실존은 신학과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생물학 등이 만나는 자리라 할 수 있으며 자신과 이웃 그리고 하느님이 상봉하는 육화한 영성의 장(場)이라 할 수 있다. 실로 하느님이 인간 아에 심어주신 심리적. 지성적 법칙과 생물학적 질서를 더 많이 찾아낼수록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물인 인간에 관해 더 많이 알게되는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신비를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 상호간의 통교의 법칙은 하느님께 대한 이해와 그분과의 인격적 만남의 신비에 좀 더 접근하도록 돕는다. 즉 우리는 개방하여 이웃과 대화할 수 있고 상호 진실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을 때 하느님과의 그러한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 안에서 이웃과의 진실된 인격적 관계없이 진실된 기도는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비로소 이웃과 참다운 인간 관계를 맺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지만 한 편 이웃관계의 성숙을 통해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 즉 기도의 요령과 방법을 터득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인간에 관한 여러 학문들의 기여와 도움을 받아들이기 위한 대화의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비행기는 삼차원의 세계인 하늘을 날을 때에 제 구실하는 것이며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가 비행장에 기착해 있을 때 비록 하나의 건물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역시 그것은 건물이 아니라 비행기이다. 또한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바퀴로 달릴 때 자동차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을지라도 자동차가 아니며 비행기이다. 길상 비행기가 하늘을 날을 때 비로소 제 구실을 하는 명실 공히 비행기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 인간의 모습을 유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가 공항에 기착해 있을 때 비행기이듯이 인간도 다른 동물처럼 생물학적 차원을 지니지만, 다른 동물과는 구별되는 존재로서 인간이다. 떠한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릴 때 여전히 비행기이듯이 인간은 설령 하느님과의 관계를 모르는 가운데 심리적. 사회적 차원을 지녔을지라도 그것을 초월하는 영적 측면을 지닌 특수한 존재이다. 비행기가 3차원의 세계로 떠올라 날을 때 제 구실하는 것처럼, 인간은 영적 차원에까지 들어가면서 참된 인간의 모습을 들어내는 것이다. 즉 영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때에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있으며 지금은 어디까지 와 있는 알 수 있게 되며, 인간은 왜 살아야하고 왜 인간다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영성’이란 육신과 물질세사 그리고 인간적 사회생활을 떠나 순수히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모든 상황 안에서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영적생활이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자신의 육체, 마음, 정신을 가꾸고 일치시키며 물질 세께와 인간 사회를 그리스도 안에서 질서있게 발전시키고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 인간이란 신체적, 심리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을 배제하거나 벗어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차원들과 불가분의 연관과 상호작용 중에 생활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이끄심인 영성이 그의 삶 전체를 주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건전한 영성과 빗나간 영성
그리스도인의 건전한 영성과 빗나간 영성 박재만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오늘 한국 교회는 빗나간 사회적 및 종교적 흐름으로부터 크게 도전받고 있다. 신흥종교들과 여러 빗나간 영성운동들 그리고 이설들이 여러 방법과 경로를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을 현혹하고 있으며 또한 실제로 적지 않은 신자들이 그에 기울어져 교회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러한 현상들의 위험 요소들과 현혹방법들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고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면서 그에 대처해야 할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 영성생활의 본질과 그리스도인의 신원 및 사명을 올바르게 인식하도록 해야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신앙생활의 주체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인간’ 개념을 정립하고 참다운 그리스도교 영성과 영성생활의 의미를 찾아본다. 이어서 영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위해 유익한 몇 가지 사항들을 고찰한 후, 영의 식별기준 및 척도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본론으로 한국 사회의 빗나간 영성운동과 흐름의 문제점들을 분석, 고찰하면서 그에 대한 교회의 대책들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1.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간 이해 오늘 그리스도교 신학과 영성은 인간에 관한 학문들과 개방적 대화를 통해 하느님의 신비가 무진장 담겨있는 신비로운 창조물인 인간 존재에 대해 훨씬 풍요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인간에 관한 학문들이란 심리학, 사회학, 인간학, 생물학, 의학 등인데, 이 학문들은 끊임없이 각기 인간의 측면들을 분업적으로 깊이 탐구함으로써 창조주 하느님의 오묘한 신비를 더 많이 알아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물이므로 이 인간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하느님의 신비를 더 깊이 아는 것이다. 계시진리인 성서에 입각하여 인간을 이해하고 정의해온 신학은 한 때 그러한 학문들이 신학을 배제하며 인간에 관해 연구하고 주장하고자 하는 학설들을 조심스럽게 대하며 소외시키려 했다. 무신론, 영혼존재 부정, 유물론 등의 오류를 지닌 그 학문들이 실상 계시진리를 손상시킬 위험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편 유감스럽게도 그 학문들의 긍정적인 측면과 유익하고 중요한 지식 및 정보까지 받아들이길 꺼려했다. 오늘도 모든 논쟁이 끝나거나 상호 불신이 다 극복된 것은 아니지만 시대와 상황은 이미 바뀌었다. 학문적 분야에서 신학과 인간에 관한 학문들 사이에 많이 성숙한 새로운 형태의 관계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신학과 인간에 관한 학문들의 충돌은 신앙의 대상인 절대자 또는 하느님을 보는 방법이 다르고 또한 인간의 신앙적 행위에 대한 착안점이 다르다는 것을 상호 인정하지 않을 때 빚어지는 것이다. 심리학 등 인간에 관한 학문들은 오늘 일반적으로 신학적 본성의 문제에 대해 논란하겠다고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긍정적 측면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들로부터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생활화 될 수 있으며 또한 인간이 ‘거룩함’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분석하는 데 유익한 자료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웃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 정상적이고 역동적인 관계, 기도생활에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정상적 신앙생활과 비정상적이고 빗나간 신앙생활을 구별해 내고 식별하는 데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인간은 불가분적인 네 측면으로 구성된다. 일차적 측면은 생물학적 및 화학적 작용을 하는 신체, 물리적 측면이다. 이 측면에 대해 생물학, 생리학, 의학 등이 많이 연구하여 알려주고 있다. 다른 한 측면은 심리적 및 지성적 측면이다. 이에 대해서는 심리학, 교육학 등이 연구하고 실험 .체험하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세 번째로 고찰 될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정(情)적 측면이다. 이 분야에 대해선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등이 기여하며 발전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넷째 요소는 윤리적, 영적 차원이다. 이 분야는 신학에 고유하고도 특수하게 관련되는 것으로서 계시진리에 입각하여 이해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사회 경제적 종교적 상황
2. 사회·경제적 상황 조선말 사회구조상의 현저한 특징의 하나는 양반계급의 비대화(肥大化)였다. 이로 인해 과거제도의 문란이 일어났으며, 일반 민중은 과중한 과세를 부담하며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위에 정치구조상의 혼란에 기인한 관리들의 민중수탈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일반 민중의 생활은 그야말로 도탄(塗炭) 그 자체였다. 그 결과 각 지방에서 민란이 일어났으며, 고종이 즉위한 이듬해인 1864년부터 동학혁명이 발생하던 1894년 1월까지 30년동안에 전국에 걸쳐 41건의 민란이 발생하였다. 특히 관리들의 수탈이 심한 전라도에서 많이 발생하였는데, 동학혁명 직전인 1893년 11월에는 고부, 전주, 익산 등 3군(郡)에서 한꺼번에 발생하였다. 정부의 탄압도 이와 함께 거세어졌는데, 民亂의 주모자들이 대부분 동학교도였던 관계로 동학교도들은 관리들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게 되었다. 탄압이 심한 만큼 민중들의 저항도 거세어졌고, 결국 동학혁명의 기치(旗幟)를 높이 날리게 되었다. 이는 종교운동의 차원을 넘어 차라리 피지배계급의 저항운동인 대중운동으로도 볼 수 있다. 동학혁명은 민중의 열망과 욕구가 뭉친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학혁명은 결국 외국군대의 개입과 동학조직 내의 분열, 무기의 원시성, 중간계급(소재산 소유자, 적당한 교육을 받은 자)의 반대 등으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다. 동학교도들은 재산을 압류당하고 극심한 탄압에 받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볼때 동학혁명은 초기에는 잠재되어 있던 일반 민중의 욕구를 극대화시켜 이에 참여할 경우 신정부의 수립과 복지사회의 건설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지만, 이것이 실패함으로써 혁명에 가담한 일부 민중은 극대화된 욕구의 충족수단을 상실함하고 심한 좌절을 겪게 되었다. 더욱이 혁명의 부산물로 나타난 사회적 혼란 및 관군과 日兵, 민포군(民包軍) 등으로부터 받게 된 보복은 그들의 생존권마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상은 동학혁명이 처음으로 발생하였던 전라도 지방이 더욱 심했고, 특히 전봉준이 봉기했던 고부(古阜-증산의 출생지)지방과 그가 군관과 최후의 결전을 했던 태인, 금구(金溝) 등지에서 더욱 심했다. 또한 1895년에는 유교적 전통사상의 단절을 뜻하는 단발령이 선포되었다. 이에 항거하여 각 지방에서 의병운동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이 의병들은 한때 위력을 떨쳤으나 1896년 국왕의 포고문과 선무작업(宣撫作業)에 의해 해산되었다. 그 후 잔존(殘存)해 있던 의병들이 화적으로 전환되기도 하여 민중들에게 더욱 피해를 끼쳤다. 3. 종교적 상황 동학혁명의 실패에 따른 사회 경제적 혼란은 신흥종교로서의 기대를 모았던 동학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와 허탈감을 갖게 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문호개방과 함께 본격적으로 유입되는 서구문화는 국내의 전통문화와의 갈등을 초래했다. 이러한 현상은 1866년 대박해(大迫害) 이후 1878년부터 다소 탄압이 풀린 西學(天主敎)뿐만 아니라, 그 후에 들어온 신교(改新敎)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는데, 일반 민중들에게는 기독교 사상이 아직 제대로 수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재래(在來)의 종교인 儒敎와 佛敎 및 道敎는 사회적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인 지주(支柱)가 되지 못했다. 유교는 조선시대를 통하여 반상차별(班常差別)의 계급사상으로 변질되어 일반 민중과는 거리감을 갖고 있었고, 불교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숭유억불정책에 의해 승려의 사회적 지위가 하락되고 산으로 은거처를 찾는 등 일반민중에게 정신적인 지주역할을 하기는 어려웠다. 도교는 風水圖識化하여 민간에 유행하는 토속신앙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렇게 볼 때 조선말기에는 일반 민중의 정신적 기반이 될 수 있는 조직화된 종교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일반 민중 사이에 크게 성행한 것은 오히려 조선 초기부터 전해오던 정감록(鄭鑑錄) 사상이었다. 정감록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1868년과 1870년에는 반란을 도모하는 사건들이 발생할 정도였다. 정감록에는 진인사상(眞人思想), 신도사상(新都思想), 승지신앙(勝地信仰), 남조선 신앙(南朝鮮 信仰)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진인사상이란 메시아적 왕의 출현에 대한 대망(待望)이고, 신도사상은 時運에 의해 낡은 왕조는 물러가고 새 왕조가 들어서서 새 서울을 세운다는 믿음이며, 승지신앙은 亂時에 피하기만 하면 절대 안전하다는 피난지에 대한 신앙이고, 남조선 신앙이란 낙원이 남쪽에서부터 이루어진다는 신앙이다. 이처럼 정감록은 조선말기의 쇠약한 국가정체와 사회적 혼란을 계기로 성행될 수 있는 요인이 충분히 갖추어진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상이 민간에 대두하게 됨으로서 민중의 조선왕조에 대한 불신은 더욱 강하게 나타났고, 그것은 동학혁명의 발생과 그 추진력에 크게 이용되었다. 그러나 동학혁명의 실패와 계속되는 외세열강의 침략 및 기성종교의 허약 내지는 미조직화에 의해 1894년 이후부터는 정감록이 더욱 크게 성행하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조선말기의 종교적 문화적 상황은 사회구조의 타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혼란이 극심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 민중은 生의 혼란에서 인간에로의 방향을 제시하여 불안을 면(免)하고 살 수 있도록 하는 표상체계(表象體系)와 확신체계(確信體系)를 갖지 못하고 있었으며, 급격한 사회변동과 외국의 영향에 의한 문화갈등현상은 기존 규범체계의 와해(互解)를 가져와 사회적 및 문화적으로 도덕적인 규제력을 상실한 이른바 아노미 상태(Anomi)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동학혁명이 전개되었고, 증산이 출생하고 성장하였던 호남지방에서 더욱 현저하게 나타났다. 증산의 本家나 外家가 위치한 古阜 지방은 민란과 동학혁명이 발생한 지역으로서 지방관리의 착취와 수탈이 가장 심했던 지역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