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숙

1.1. 인간 성숙


   공의회의 문헌들과 최근의 교도권의 가르침은 인간성숙을 인간의 완성적 발전을 위해 매진해야 할 목표인 초자연적 발전, 즉 그리스도인의 성숙의 기반 및 전제로 여긴다(사제양성교령 9; 그리스도교적 교육에 관한 선언 2; 평신도교령 29; 현대의 사제양성 43.44.45.51항 등 참조). 은총이 본성을 파괴하지 아니하고 완성시킨다면, 은총의 생활은 인간의 전반적 활동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인간 개체의 심리적 윤리적 신체적 및 사회적 발전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곧 초자연적 생활은 자연적 생활의 발전에 비례하여 성장하는 것이다. 초자연적 생명의 빛은 그것이 내재하는 자연적 바탕이 얼마나 활기차고 강하냐에 따라 생동감이나 밝기를 다르게 나타낼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일상생활 안에서 은총의 활동이 심리적 혹은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 안에서 쉽게 이루어질 수 있고, 약한 사람에게서 활기를 잃게된다는 점을 보아도 인간의 기본 조건이 은총을 규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은총이 우리 안에 가능한 한 완전에 가깝게 작용하도록 더욱 알맞은 인간 성숙이 그리스도인 성숙의 전제 조건이라는 이유가 성립되는 것이다.




   1.1.1. 전인성숙


  오늘의 심리학자들과 교육학자들은 인간성숙의 개념을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다. 여러 정의를 종합하면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인간성숙이란 “인간적 충만성으로서 성인(成人)적 성격을 갖추고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영성적으로 조화있게 발전된 단계”이다. 즉 전인적 성숙이다.


  인간 성숙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측면의  조화와 균형적 발전을 요구한다.


    가) 신체적. 물리적 측면


    나) 심리적. 지성적 측면


    다) 사회적. 정적 측면


    라) 영적. 윤리적 측면


    *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간’ 정의


      인간에 관한 학문들과 대화하면서 그리스도교 신학은  오늘 인간을 이렇게 포용성있게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 및 화학적 작용을 하는 복합 유기체로서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심리적. 지성적 법칙을 따라 구체적 상황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존재”이다. 


  인간 실존은 신학과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생물학 등이 만나는 자리라 할 수 있으며 자신과 이웃 그리고 하느님이 상봉하는 육화한 영성의 장(場)이라 할 수 있다. 실로 하느님이 인간 아에 심어주신 심리적. 지성적 법칙과 생물학적 질서를 더 많이 찾아낼수록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물인 인간에 관해 더 많이 알게되는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신비를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 상호간의 통교의 법칙은 하느님께 대한 이해와 그분과의 인격적 만남의 신비에 좀 더 접근하도록 돕는다. 즉 우리는 개방하여 이웃과 대화할 수 있고 상호 진실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을 때 하느님과의 그러한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 안에서 이웃과의 진실된 인격적 관계없이 진실된 기도는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비로소 이웃과 참다운 인간 관계를 맺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지만 한 편 이웃관계의 성숙을 통해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 즉 기도의 요령과 방법을 터득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인간에 관한 여러 학문들의 기여와 도움을 받아들이기 위한 대화의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비행기는 삼차원의 세계인 하늘을 날을 때에 제 구실하는 것이며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가 비행장에 기착해 있을 때 비록 하나의 건물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역시 그것은 건물이 아니라 비행기이다. 또한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바퀴로 달릴 때 자동차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을지라도 자동차가 아니며 비행기이다. 길상 비행기가 하늘을 날을 때 비로소 제 구실을 하는 명실 공히 비행기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 인간의 모습을 유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가 공항에 기착해 있을 때 비행기이듯이 인간도 다른 동물처럼 생물학적 차원을 지니지만, 다른 동물과는 구별되는 존재로서 인간이다. 떠한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릴 때 여전히 비행기이듯이 인간은 설령 하느님과의 관계를 모르는 가운데 심리적. 사회적 차원을 지녔을지라도 그것을 초월하는 영적 측면을 지닌 특수한 존재이다.


  비행기가 3차원의 세계로 떠올라 날을 때 제 구실하는 것처럼, 인간은 영적 차원에까지 들어가면서 참된 인간의 모습을 들어내는 것이다. 즉 영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때에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있으며 지금은 어디까지 와 있는 알 수 있게 되며, 인간은 왜 살아야하고 왜 인간다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영성’이란 육신과 물질세사 그리고 인간적 사회생활을 떠나 순수히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모든 상황 안에서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영적생활이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자신의 육체, 마음, 정신을 가꾸고 일치시키며 물질 세께와 인간 사회를 그리스도 안에서 질서있게 발전시키고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 인간이란 신체적, 심리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을 배제하거나 벗어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차원들과 불가분의 연관과 상호작용 중에 생활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이끄심인 영성이 그의 삶 전체를 주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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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1.1. 인간 성숙

       공의회의 문헌들과 최근의 교도권의 가르침은 인간성숙을 인간의 완성적 발전을 위해 매진해야 할 목표인 초자연적 발전, 즉 그리스도인의 성숙의 기반 및 전제로 여긴다(사제양성교령 9; 그리스도교적 교육에 관한 선언 2; 평신도교령 29; 현대의 사제양성 43.44.45.51항 등 참조). 은총이 본성을 파괴하지 아니하고 완성시킨다면, 은총의 생활은 인간의 전반적 활동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인간 개체의 심리적 윤리적 신체적 및 사회적 발전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곧 초자연적 생활은 자연적 생활의 발전에 비례하여 성장하는 것이다. 초자연적 생명의 빛은 그것이 내재하는 자연적 바탕이 얼마나 활기차고 강하냐에 따라 생동감이나 밝기를 다르게 나타낼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일상생활 안에서 은총의 활동이 심리적 혹은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 안에서 쉽게 이루어질 수 있고, 약한 사람에게서 활기를 잃게된다는 점을 보아도 인간의 기본 조건이 은총을 규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은총이 우리 안에 가능한 한 완전에 가깝게 작용하도록 더욱 알맞은 인간 성숙이 그리스도인 성숙의 전제 조건이라는 이유가 성립되는 것이다.


       1.1.1. 전인성숙

      오늘의 심리학자들과 교육학자들은 인간성숙의 개념을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다. 여러 정의를 종합하면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인간성숙이란 “인간적 충만성으로서 성인(成人)적 성격을 갖추고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영성적으로 조화있게 발전된 단계”이다. 즉 전인적 성숙이다.

      인간 성숙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측면의  조화와 균형적 발전을 요구한다.

        가) 신체적. 물리적 측면

        나) 심리적. 지성적 측면

        다) 사회적. 정적 측면

        라) 영적. 윤리적 측면

        *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간’ 정의

          인간에 관한 학문들과 대화하면서 그리스도교 신학은  오늘 인간을 이렇게 포용성있게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 및 화학적 작용을 하는 복합 유기체로서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심리적. 지성적 법칙을 따라 구체적 상황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존재”이다. 

      인간 실존은 신학과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생물학 등이 만나는 자리라 할 수 있으며 자신과 이웃 그리고 하느님이 상봉하는 육화한 영성의 장(場)이라 할 수 있다. 실로 하느님이 인간 아에 심어주신 심리적. 지성적 법칙과 생물학적 질서를 더 많이 찾아낼수록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물인 인간에 관해 더 많이 알게되는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신비를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 상호간의 통교의 법칙은 하느님께 대한 이해와 그분과의 인격적 만남의 신비에 좀 더 접근하도록 돕는다. 즉 우리는 개방하여 이웃과 대화할 수 있고 상호 진실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을 때 하느님과의 그러한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 안에서 이웃과의 진실된 인격적 관계없이 진실된 기도는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비로소 이웃과 참다운 인간 관계를 맺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지만 한 편 이웃관계의 성숙을 통해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 즉 기도의 요령과 방법을 터득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인간에 관한 여러 학문들의 기여와 도움을 받아들이기 위한 대화의 필요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비행기는 삼차원의 세계인 하늘을 날을 때에 제 구실하는 것이며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가 비행장에 기착해 있을 때 비록 하나의 건물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역시 그것은 건물이 아니라 비행기이다. 또한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바퀴로 달릴 때 자동차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을지라도 자동차가 아니며 비행기이다. 길상 비행기가 하늘을 날을 때 비로소 제 구실을 하는 명실 공히 비행기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 인간의 모습을 유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가 공항에 기착해 있을 때 비행기이듯이 인간도 다른 동물처럼 생물학적 차원을 지니지만, 다른 동물과는 구별되는 존재로서 인간이다. 떠한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릴 때 여전히 비행기이듯이 인간은 설령 하느님과의 관계를 모르는 가운데 심리적. 사회적 차원을 지녔을지라도 그것을 초월하는 영적 측면을 지닌 특수한 존재이다.

      비행기가 3차원의 세계로 떠올라 날을 때 제 구실하는 것처럼, 인간은 영적 차원에까지 들어가면서 참된 인간의 모습을 들어내는 것이다. 즉 영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때에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있으며 지금은 어디까지 와 있는 알 수 있게 되며, 인간은 왜 살아야하고 왜 인간다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영성’이란 육신과 물질세사 그리고 인간적 사회생활을 떠나 순수히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모든 상황 안에서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영적생활이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자신의 육체, 마음, 정신을 가꾸고 일치시키며 물질 세께와 인간 사회를 그리스도 안에서 질서있게 발전시키고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 인간이란 신체적, 심리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을 배제하거나 벗어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차원들과 불가분의 연관과 상호작용 중에 생활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이끄심인 영성이 그의 삶 전체를 주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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