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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 지방
2. 충청남도 부여(夫餘)지역 (1) 巫의 身上 이 어린년(於仁蓮)은 부여 태생으로서 대대로 세습(世襲)되어 온 무계(巫系)가정에서 태어나 世襲巫로 83세에 이르도록 巫業에 종사하고 있는 부여지역의 전형적인 巫이다. 따라서 이 어린년 무당의 사례를 바탕으로 이 지역의 巫를 살펴보자. (2) 成巫過程 가. 降神體驗 : 없다. 나. 巫의 學習 이 어린년은 17세 때에 巫인 모 김씨로부터 무가사설(巫歌辭說)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학습 방법은 巫歌辭說이 적힌 책을 보고 암기하였다. 그 후 이씨는 33세 때 남편 최씨가 37세로 사망하고 나서 친정어머니가 굿하는데를 따라다니며 무사(巫事)를 학습하였다. 학습하게 된 목적은 취미와 생계방편의 두가지였다. 굿을 배우는 방법은 친정어머니가 굿하는 것을 보아서 시키는대로 굿상을 차리고 가무를 하였으며, 34세에 巫가 되어 독립하게 되었다. 결국 부여지역의 巫는 강신 체험이 아닌 대대로 자기 집안에서 세습되어 온 巫를 계속하는 경우이다. 따라서 巫의 학습도 집안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다. 신단(神壇) 및 巫具 ① 神壇의 形態 이씨는 웃방의 우측 벽에 방바닥으로부터 140cm 높이로 폭 30cm, 길이 160cm의 송판 선반을 매고 그 위에 높이 31cm의 놋쇠 좌불상 하나를 모셔놓은 선반이 하나 있지만, 특별히 神壇이나 신방(神房)은 없고 또 제수(祭需)를 올리는 일도 없으며, 이 불상을 향해 기도드리는 일도 없다. 단지 부처를 모시고 싶어서 이렇게 선반을 매고 불상을 모신 것뿐이다. 이밖에 巫神圖는 갖고 있지 않다. ② 巫樂器 巫樂器로는 장고, 징, 피리, 해금, 젓대가 사용된다. ③ 巫服 巫服은 원삼과 백지의 고깔이 하나씩 있는데, 원삼의 형태와 색채는 앞에서 본 서울지역 巫服의 부인옷과 같다. ④ 기타 巫具로는 망인의 넋을 올릴 때 사용되는 신칼이 있다. 라. 祭儀 祭儀에는 굿과 비손이 있다. 비손은 神 앞에 간단한 祭需를 올리고 巫 혼자서 징을 가볍게 두드리며 축원하는 것이고, 굿은 격식을 갖추어서 굿상을 차리고 무악사인 고인을 동원해 무악에 맞추어서 巫가 가무로 祭를 행하는 것이다. 비손에는 애낳기를 기원하는 <삼신축원>, 치병을 위한 병마 퇴치의 수단인 <객귀(客鬼) 물림>, 정초에 1년간의 행운을 기원하는 <안택(安宅)>, 가을 추수기에 성주신께 추수감사와 함께 財福을 기원하는 <고사(告祀)>가 있다. 이에 비해 굿에는 성주굿과 오기굿 그리고 당산굿이 있다. 성주굿은 행운 초복(幸運 招福)을 위한 축원굿이고, 오기굿은 망인을 락지(樂地)로 보내기 위한 천도(薦度)굿이다. 마. 神觀 및 其他 宗敎的 思想 ① 神觀 이씨는 굿을 하는 것은 옛날 관습대로 하는 것이지, 神이 있어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巫神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신(家神)으로 성주, 조상, 삼신을 모시고 있다. ② 人生觀 이씨는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칠성신(七星神)께 공(功)을 드려서 삼신(産神)이 내려주는 것이고 또 사람이 죽는 것도 타고난 명이 다하기 때문에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남에게 덕을 많이 쌓아야(積德) 한다고 하였다. ③ 來世觀 이씨는 인간의 운명이 저승에 매여 있는데, 사람이 죽는 것은 저승에서 최판관(崔判官)이 데려가는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죽어서 가는 내세인 저승은 하늘 위에 있다고 하며, 특히 불교적 윤회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④ 宇宙觀 이씨에 의하면 宇宙는 天上, 地上, 地下의 三界로 되어 있으며, 天上에는 선관도사(仙官道士)가 살고, 地上에는 인간과 새, 짐승들이 살며, 地下에는 지왕대신(地王大神)이 산다고 하였다. ⑤ 宗敎觀 이씨는 특별한 宗敎가 없다. 절에도 안가고 기독교는 관심이 없다고 하였다. (3) 社會的 環境 가. 巫의 社會的 位置 과거에는 巫를 퍽 천시하여 민간인들이 반말을 썼으며, 일반 평민과는 결혼을 할 수 없어서 巫끼리 통혼(通婚)하였다. 현재는 과거처럼 巫를 천시하지는 않으나 자랑스러울 것은 못된다는 것이 이씨의 견해이다.
무속의 실태 – 서울지방 ( 성무과정,학습..)
(2) 성무과정(成巫過程) 가. 강신체험(降神體驗) 문씨는 16세에 결혼하였으나 남편과의 애정이 없어 보기조차 싫었으며, 性交가 징그러워 견질 수 없었다. 그런대로 참고 가정을 이루고 살던 중 22세 되는 해부터 우연히 밥이 먹히지 않고 몸이 빼빼 마르게 되었다. 그러면서 걸어도 발이 땅에 닿는지 안닿는지 감각이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여 자기도 모르게 손벽을 치면 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 마음이 들떠 제 정신이 아니었다. 이런 증세가 25세까지 계속되더니 26세가 되는 해부터는 미치는 증세가 일어났다. 27세 때에는 꿈이 아닌 생시에도 자기의 집 벽에 둥근 해와 달의 모양을 하고 광채를 발하는 일광(日光), 월광(月光)이 눈에 보였고, 이 광경을 보면 문씨는 미쳐서 길길이 뛰었다. 27세 때인 그 해 남편이 병을 고쳐준다고 무당을 불러 병굿을 했는데, 문씨는 굿이 진행되는 도중에 신령님을 찾으며 춤을 추었다. 그리고 즉시 말문이 열려 즉석에서 점을 치게 되었다. 현재에도 그 때 降神한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 두 神을 몸주로 봉안하고 있다. 이 몸주는 문씨가 27세 때 미쳐서, 둥근 해와 달 모양의 광채나는 일광, 월광이 벽에 박혀보였던 그 체험의 내용대로 무신도(巫神圖)에 일, 월이 각각 그려져 봉안되고 있다. 나. 무의 학습 문씨는 27세 때 神을 받아 <말문>이 열린 후 영험(靈驗)으로 점을 치게 되었으나 굿의 기능은 없었다. 그래서 선배 무당(금정에 사는 방울방만신)밑에 神의 딸로 들어가 巫의 기능을 배운 후 자신이 생겨 巫로 독립하였다. (3) 신단(神壇) 및 무구(巫具) 가. 神壇의 形態 문씨는 神壇이 있는 방을 <전안방(殿內房)>이라 하여 평상시에는 출입을 삼가한다. 안방에서 장지문을 열고 이 <전안방>으로 들어서면 좌우 측면의 세 벽에 巫神圖가 15매가 걸려 있고, 그 밑에 송판(松板)으로 된 선반이 삼면 벽에 둘려 있고, 이 선반과 방바닥 사이는 붉은 색의 인조견(人造絹)으로 둘려 있는 주렴(珠簾)이 있고, 이 선반 위에는 좌측으로부터 진둥항아리, 점책, 점통, 촛대가 있고, 정면의 선반 위에는 또 좌측으로부터 족두리, 거울이 있으며, 그 옆에 촛대, 초갑 그리고 우측 구석에 명다리가 16개 쌓여 있다. 나. 巫神像 문씨의 경우는 神의 소상(塑像), 불상(佛像)은 없고, 巫神圖만 15위가 그의 <전안방> 神壇에 모셔져 있다. 巫神圖는 족자로 되어 이 神壇 벽의 3면에 걸려 있는데, 가로 50cm, 세로 100cm 크기의 당목에다 원색을 써서 神의 모습을 그려 神體로 모셔진 것이다. 다. 巫樂器 문씨가 소유하고 있는 巫樂器는 징, 장고, 제금이고, 그 외로 굿에 사용되는 피리, 젓대, 해금 등의 樂器는 무악의 전문 악사인 <재비>들이 직접 소지한다. 라. 巫服 巫服은 굿할 때 巫가 神을 상징하는 복장으로 입는 巫服이다. 문씨가 굿할 때 사용하는 巫服의 종류로는 將軍치마․ 저고리, 호구치마, 구군복(具軍服), 전복(戰服), 남철육(藍天翼), 홍철육(紅天翼), 백장삼(白長衫), 흑장삼(黑長衫), 불사(佛師)옷, 부인(夫人)옷, 창부(倡夫)옷, 몽두리, 신장(神將)옷 등이 있다. 마. 其他 : 방울, 부채 삼지창(三枝槍), 은월도(偃月刀)가 있다. (4) 제의(祭儀) 문씨가 하는 祭儀는 굿과 비손이 있는데, 굿은 규모가 큰 祭儀로 歌舞가 있어서 <재비>가 딸리는 것으로서, 재수굿, 병굿, 진오기, 성주맞이, 내림굿, 당(堂)굿이 있다. 비손은 巫 혼자서 간단히 祝願하는 것으로서, 겜심바침, 여탐, 푸닥거리 그리고 장례 직후에 하는 의식으로는 집가심이 있다. 재수굿은 제액초복(除厄招福 : 재앙을 버리고 복을 빔)을 목적으로 하는 굿인데 그 祭儀 순서를 보면, 부정(不淨)거리 → 가망거리 → 말명(祖上)거리 → 상산(上山)거리 → 별상(別上)거리 → 대감(大監)거리 → 제택(帝釋)거리 → 호구거리 → 성주거리 → 군웅(軍雄)거리 → 창부(倡夫)거리 → 뒷전거리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이 12과정의 순서가 기본이 되어 다른 종류의 굿도 진행된다. 서울 굿 12거리의 과정은 조직성을 갖고 있다. 즉 맨처음 부정거리에서 굿하는 제장(祭場) 주위와 神이 降臨하는 길의 不淨한 것을 물려내어 청결하게하여 놓고 두 번째의 가망거리에서 神을 청한다. 그리고 이 후의 각립(各位) 神을 다 청해 놀고 나서 맨나중의 뒷전거리에서는 굿에 모여든 불립(不位) 신령과 온갖 잡귀를 돌려보내어 퇴송(退送)시킨다. 또 가망거리, 상산거리, 대감거리, 제택거리, 성주거리, 창부거리가 각각 청배(請拜), 타령(打令), 공수의 삼단조직 – 請拜로 해당 神을 청해다 놓고 打令의 歌舞로 즐겁게 접대하고 나서 공수로 神의 意思를 듣는 것 -을 보면 말명거리, 별상거리, 호구거리, 군웅거리들도 위의 다른 과정들과 같이 삼단조직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 차츰 퇴화하여 이중의 청배나 혹은 타령의 노래가락만 남게 된 것이라 추측된다. 이렇게 볼 때 전체 굿 12거리 과정에서 첫째 부정거리에서의 祭場 청결, 둘째 가망거리 이하의 청신(請神), 셋째 뒷전거리에서의 송신(送神), 이렇게 삼단과정으로 굿이 진행되고, 또 가망거리 이하의 각 제차(祭次)가 청배의 請神, 타령의 가무오신(歌舞娛神)의 접대, 공수의 신의 청취(神意 聽取), 이렇게 또한 삼단조직으로 굿이 구성되어 있으므로 祭儀 전체와 그 속의 개별적인 각 제차가 모두 각기 삼단조직의 조직적 구성임을 알 수 있다. 비손은 祭儀의 규모가 극히 작은 것으로 神前에 간단한 제물을 바치고 巫 혼자서 축원하는 것으로서, <겜심바침>은 기자(祈子)를 위한 축원이다. <여탐>은 집에 혼사가 날 때 조상 앞에 간단한 제물을 바치고 성혼(成婚)한다는 것을 告하는 의식이다. <푸닥거리>는 환자가 있을 때 닭을 사용하여 환자 대신에 닭이 죽는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닭 대신 계란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집가심>은 시체(屍體)를 매장(埋葬)한 날 밤에 집안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不淨을 가셔낸다는 뜻으로 하는 의식이다. (5) 神觀 및 기타 宗敎的 思想 가. 神觀 먼저 여기서 말하는 神은 巫가 신앙하는 巫神이다. 문씨가 진술한 그의 신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神의 形態는 사람의 모습과 같으나 보통 인간은 볼 수 없고 무당만이 볼 수 있으며, 神은 말할 수 없이 거룩하고 성스러운 존재로서 항상 두렵고 무서운 존재이다. 따라서 神은 초월적이고 전지전능한 존재로 보고 있다. 神의 직능(職能)은 人間을 먹여 살리고 자식들을 無病하게 거두어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神들 상호간의 관계와 계층은 하늘 위에서는 天神이 제일 높고 그 밑으로 일월성진(日月星辰), 칠성(七星)이 있다. 땅에서는 山神, 삼불제택(三佛帝釋), 將軍神, 신장신(神將神)이 높은 神이고, 이 밑으로 祖上神, 三神의 순위가 된다. 아울러 神들은 각기 맡은 직무가 있어, 삼신은 출산(出産), 칠성신은 육아(育兒) 및 수명장수(壽命長壽), 대감신은 재물, 신장신은 방액(防厄) 등으로 책무가 분담되어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神들 사이에 서로 알력(軋轢)이 생겨 不和하게 되면 그 여파로 인간에게 화가 미치게 된다. 나. 人生觀 문씨에 의하면 사람이 세상에 나오는 것은 삼신의 덕이며, 7살까지는 이 삼신을 잘 공경하여야 한다고 한다. 또 7살이 넘으면 칠성신께 공을 잘 드려야 장수할 수 있다. 집안에서는 성주神이 재물을 보살펴준다. 사람이 살다가 죽는 것은 타고난 명이 다 되었기 때문에 저승에서 염라대왕이 저승 사자를 보내어 잡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 來世觀 문씨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몸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저승으로 간다고 한다. 저승도 이승과 꼭 같은 세상에 있어서 사람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본다. 또한 사람은 죽으면 염라대왕 앞에서 善惡에 대한 심판을 받고 극락과 지옥이라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고 한다. 즉 살았을 때 남에게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극락(極樂)으로 가고, 남에게 억울한 일을 많이하여 惡行을 한 사람은 지옥(地獄)으로 보내진다고 한다. 또 生前에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다시 사람으로 환생(幻生)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고, 악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죽어서도 구렁이나 개로 태어나 이 세상에서 그 죄의 대가를 받게 된다고 한다. 라. 宇宙觀 문씨는 세상을 셋이라 한다. 즉 인간들이 사는 땅위의 세상이 있고, 하늘 위에도 지상과 같은 세상이 있으며, 지하에도 같은 세상이 있다고 한다. 마. 宗敎觀 문씨는 자기가 奉安한 巫神을 신앙하지만, 불교도 좋아하며 부처님께 불공을 드러러 다닌다. 즉 神을 믿고 섬기면 착한 일을 하게 되고 그래서 神이 보살펴서 잘 살게 만둘어 주며, 神을 잘 섬기면 죽어서도 좋은 데로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敎가 달라서 싫다고 한다. 즉 예수쟁이는 巫神이 싫어하기 때문에 예수쟁이와 마주 보고 말만 해도 巫神이 노여워서 곧 신벌(神罰)을 내린다고 한다. (6) 社會的 環境 가. 巫의 社會的 位置 과거에는 巫를 퍽 천시하였고, 巫에게 반말을 썼기 때문에 巫는 사회계층상의 하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巫를 과거와 같이 천시하거난 巫에게 반말을 쓰는 일은 없다. 그러면서도 사회에는 과거의 관습이 남아 巫라면 어딘지 모르게 천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문씨의 솔직한 견해이다. 결국 巫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입장은 巫가 되어 神을 모시고 있다는 종교적 사명감이 있어서 사회적 계층상의 열등감을 해소시켜나가고 있는 입장이다. 나. 巫의 活動範圍 문씨와 신연(神緣)의 수양자(收養子)로 단골을 맺은 집은 약 30호가 된다. 이 외에 문씨는 동민들의 출생, 결혼, 사망, 내세 그리고 치병, 招福 문제 등 생활 전반에 걸쳐 굿을 통해서 그들의 장래를 상담, 조절해주고 있다. 또 굿을 하지 않는 경우라도 동민들은 神에 관계된다고 생각되는 일을 문씨에게 수시로 묻고 상담하여 조치해 나가고 있다. 다. 巫의 社會的 結合 … 계속 읽기
무속의 실태 – 서울지방
第2章 무속의 실태 한국의 무속이 현재 어떤 형태로 어떻게 전승되고 있는가 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한국을 지리상으로 중부 및 영남지역, 남부지역, 북부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는 중부 및 영남지역 현지의 무속만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1절 중부 및 영남지역의 무속 Ⅰ. 중부지역의 무속 중부지역은 서울을 포함한 경기도와 충정남북도지역이다. 지역별 특징으로는 서울, 경기지역의 무는 강신무(降神巫)인데 비해 충청권의 부여지역의 巫는 세습무(世襲巫)이다. 1. 서울地域의 巫 (1) 무의 신상 서울지역의 巫는 巫女 문 덕순(文 德順)무당을 표본조사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문 덕순은 서울 <된지미>마을(현 서울 용산구 삼각지 부근) 태생으로 22세에 神이 내려 당시 서울장안에서 巫로 명성이 높던 <큰무당(大巫)>인 <방울방만신>의 神딸로 들어가 3년간 무술(巫術)를 학습한 후 巫로 독립하여 86세에 이르도록 <방울방만신>의 뒤를 이은 큰무당으로 무업(巫業)에 종사하였으며, 문씨로부터 무사(巫事)를 학습받은 巫는 약 20명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무속의 종교사적 성격
2. 巫俗의 종교사적 성격 현재 한민족의 다수 보편적 基層인 민간층의 종교는 민간신앙이다. 불교 도교 유교 그리스도교 등의 외래종교가 들어와 장구한 역사와 더불어 조직적 체계 밑에서 끈질기게 포교활동을 계속하였지만 외래종교는 언제나 한국의 외적 표층의 종교로 머무는 수준이다. 민간신앙은 민간층의 생활 공동체 속에서 자생하여 생활을 통해 전승되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종교현상이다. 어떤 인위적 목적의식이나 당위성 이전에 이미 민간인의 생활현상이자 종교인 ‘생활 그 자체’인 것이라 생각된다. 동네 입구에 서낭당이 있어 마을을 수호해 주고 집안의 요소마다 家神이 있어서 厄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조상 대대로 전승되어 오는 생활적인 종교적 현상, 그것은 어느 누구의 권유에 의하거나 일부 지방에만 존재하는 특수 현상이 아닌 민간인 누구에게나 있어 왔던 보편적인 민간층의 자연적 사고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민간사고가 집약되어 전문화한 巫를 중심으로 巫俗이 체계화한 것이다. 조직적 종교현상으로서의 巫俗에 대한 우리나라 최고의 기록은 삼국 유사에 나오는 신라 제2대 남해 왕건의 것으로 기원후 1세기 초가 되고 불교에 대한 기록은 기원후 4세기가 지나서의 일이다. 한국 巫의 기원은 역사적 배경을 청동기시대로 소급시켜보는 경향이 강하다. 巫俗은 이렇게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아득한 상고대부터 한민족의 종교적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또 외래종교가 들어온 후로도 민간신앙으로서 한민족의 基層的 종교현상으로 존재하여 왔다. 한편 巫俗은 한국 전통예술의 근원을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巫俗 속의 巫歌 巫樂 巫舞 祭儀 등 미분화된 종교적 원시예술의 종합체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각각 국문학 국악 민속무용 민속극 등의 분야로 분화발전되어 갈 기틀이 된 것이라 생각되므로, 巫俗은 한국 전통 예술 형성의 시원적 기틀의 성격도 겸하게 된다. 제 이절 연구사적 검토 1. 儒學者의 관심(고려 말기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비판적인 태도들) 유학자들의 巫俗에 대한 관심은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고려 말기인 13세기 초엽부터 발견되고, 그 관심은 주로 巫俗을 淫祀라 하여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도 유학자들의 비판이 연구사적 의의를 갖는 것은 그 비판 과정에서 당시의 巫俗을 비교적 선명하게 기록으로 남긴 귀중한 자료로써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려말 공민왕 때 김자수의 상소문을 통해 別祭라고 말하는 巫祭儀의 성격과 규모, 방식을 전하고 있으며, 특히 고려말 이규보는 老巫篇 詩안에 당시의 巫俗을 상세히 관찰한 보고서를 나기고 있다. 다음으로 조선시대에는, 1790년경 이규경의 ‘巫覡辨證說’을 꼽을 수 있다. 그의 무격변증설은 巫俗을 비판하는 입장이기는 하나 당시 남무를 화랑과 박사라고 창하는 그 명칭상의 어원적 고증을 수록하고 있으며 특히 최영 장군 신당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였다. 2. 서양 기독교 선교사의 연구 한국 巫俗이 근대과학의 방법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Dallet의 ‘조선 천주교회사’는 서론에서 천연두와 함께 巫俗的 당시 상황을 소개하였으며, 본격적인 연구는 선교사인 Humbert가 ‘The korean Mudang and P’ansu(1903)`라는 제목의 연재를 통해 한국 巫의 성격과 기능, 굿하는 신당, 굿의 종류와 방법, 신관에 걸쳐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1910년에 선교사롤 한국에 온 Underwood는 巫俗을 비교종교학 내지는 민족학적 안목으로 관찰한 결과 巫俗을 신학적 안목에서 비교하여 고대의 그리스도교적 하느님 숭배로 樹木崇拜와 洞神祭를 바라보았다. 끝으로 1929년에 선교사 Clark는 한국의 巫俗을 시베리아의 shamanism과 비교하여 같은 계통으로 연구하였다. 3. 한국학자의 초기 연구 선교사들의 뒤를 이어 개화기를 통해 신학문을 익힌 한국학자들이 巫俗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후반기부터 이능화, 최남선, 손진태 등이 巫俗을 연구하였는데, 이 시기는 사학자들이 한국고대사 연구방법의 일환으로 역사민속학적 입장에서 巫俗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이능화는 1927년에 ‘조선무속고’를 발표하여 최초의 한국인에 의한 巫俗의 집대성을 이루었다. 4. 일인학자의 연구 이 시기의 巫俗연구는 일인학자에 의해 식민지 지배의 목적으로 조선총독부의 지원에 의해서 연구되었다는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종래의 부분적으로 연구되어 오던 巫俗이 중앙관청의 지원 아래 전국적인 현지조사를 통해 집대성되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5. 1945년 이후의 연구 1945년 해방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내 학자들은 巫俗을 전통적 기층 문화 현상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시기는 종래까지 외국인에 의해 巫俗이 정책적으로 연구된 것과는 달리 국내 학자에 의해 자국의 巫俗이 순수한 학문적 관심 속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되어, 문학, 민속학, 문화인류학, 심리학, 종교학 등의 입장에서 다양한 방법론이 동원되고 있다. 이능화 선생의 문헌학적 연구, 손진태 선생의 역사민속학적 연구 이후 다음과 같은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하나는 현장조사에 주력하여 그 나름대로 현장자료는 정리해 나가고 있으나 이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못하는 土俗誌的 계열(민속학, 국문학)과 다음 하나는 처음부터 서양의 명제를 끌고 들어와 그 이론체계에다 巫俗을 대입시키려는 事大的 계열(신학, 종교학, 인류학)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巫俗연구는 巫俗의 현장성이 입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은 채 어느 한 부분만이 평면적으로 조명되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巫俗은 종교적인 현상임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巫俗은 기성종교와는 다른 복합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巫俗이 기층문화와 종교의 양면적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巫俗연구가 巫 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 巫俗을 신봉하는 민간인 巫信徒에 대한 조사연구가 전연 없다는 점이다. 巫俗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巫에 대한 巫信徒의 반응과 민간층의 巫俗 수용도 등이 사회적 측면에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제 삼장 연구방법과 자료 두가지 기본입장 – 먼저 앞의 정의에서 본 바와 같이 巫俗을 민간층의 전승적 종교현상으로 보고, 나아가 연구자가 민간인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종교적 현실을 그들의 생활현장으로부터 살펴 그 巫俗현장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려는 것이다. 제 사장 연구과제 첫 번째 과제는 ‘무엇이 巫俗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巫俗의 그 무엇이 한민족의 심성을 이토록 지배해 오고 있으며. 그 ‘무엇’은 또 어떻게 표현되어 오늘에 巫俗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둘째, 巫俗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原型思考는 어떤 것이며. 무엇이 巫俗의 원형사고로 존재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巫俗안에 투영되어 求心을 이루는가. 셋째, 이와 같은 巫俗의 원형사고를 통해 관찰할 수 있는 민간인의 정신형상-민간상은 어떤 것인가. 이상의 제시된 과제는 巫俗의 근원적 의미로부터 민간상의 탐구로 초점이 이어져 인간의 행동 속에서 관찰할 수 있는 존재의 根源에 대한 물음으로 일관된다.
무속의 정의
1. 무속의 정의 巫俗은 민간 층의 巫를 중심으로 하는 전승적인 종교적 현상으로서 민간신앙의 한 형태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巫라는 용어는 지역별로 그 성격과 명칭에서 차이가 있으므로(예: 중국은 女巫를 巫, 男巫를 覡이라는 뜻으로 사용) 여기에는 巫의 개념 한계를 분명히 해야할 필요가 있다. 1) 巫의 정의 여기서 巫라고 하는 것은 다음의 네 가지 기능을 전제로 한다. 1) 巫가 되는 成巫過程의 시초에 신의 초월적인 靈力을 체득하는 神病체험을 거쳐 神權化한 자라야 한다.(신병을 체험한 降神巫는 신병 자체가 신의 소명에 의한 종교현상으로 인식한다.) 2) 신병을 통해 획득한 신통력을 가지고 신과 만나는 종교적 祭儀로 ‘굿’을 주관할 수 있는 자라야 한다. 신병을 체득하여 신통력을 획득한 자라도 그 종교적 표현이 되는 제의를 독경식이나 불교식에 의존한다면 巫 본래의 제의인 굿과는 이질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3) 위의 조건을 기반으로 민간인의 종교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서 민간층의 종교적인 支恃를 받아 민간층의 종교적 지도자 위치에 있는 자라야 한다. 4) 成巫 초기에 어떤 신을 어떻게 체험하여 그 신을 어떻게 신앙하느냐 하는 對象神의 문제로서, 대체로 山神 七星神 天神 龍神 등 자연신 또는 將軍神 王神 등을 체험하고, 굿도 그 대상을 자연신으로 한다. 2) 巫의 한계 이상과 같은 입장에서 보면 앞에서 제기한 巫와 覡의 문제는 위의 네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면 남녀의 구분 없이 모두 巫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女巫의 활동이 주가 되며 박수 같은 男巫가 굿을 해도 女裝으로 여자의 치마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巫服을 입는 경우가 있다.) 降神巫와 世襲巫 – 전자는 成巫 초기에 신병체험으로 신의 영력을 얻어 인간의 吉凶禍福 운명을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후자는 영력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운명을 조상으로부터 이어오는 사제권으로 신에게 所願하는 자들이다. 降神巫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나 世襲巫는 남부지역에 주로 분포되어 巫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강신무와 비슷하게 신병을 체험하고 영력을 얻어 민간층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면서도 굿을 주관할 능력이 없어 자기들 나름의 임기응변으로 제의를 하거나 또는 독경식에 의존하는 ‘선무당’류나 ‘명두’‘동자’류 등은 성격상 정통한 강신무(무당, 박수)계로 보지는 않는다. 남부에 분포된 세습무들 중에도 전라도의 ‘단골’과 강원도 남부와 경상도 지역에 분포된 ‘무당’, 그리고 제주도의 ‘심방’ 등은 지역적인 특수성에 기초한 전통을 가지고 있기에 일차적인 巫에 포함시킨다. 3) 巫俗의 정의 巫俗은 앞에서 논의된 정의와 성격에 입각한 개념의 巫를 중심으로 한 민간층의 전승적인 종교적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민간층에서 생활을 통해 전승되는 자연 종교적 현상 즉 민간신앙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이것을 종교사적인 입장에서 巫敎라고 할 수는 없다. 巫는 자연 그대로 방치된 원시적 종교현상이어서 현대적 의미의 종교체계를 가진 巫敎라고 부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巫俗이라고 해서 그 종교적 성격이 배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통적 문화현상이지만 길흉화복을 비는 종교적인 요소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