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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Ⅶ. 본문강독 1. 天命之爲性이고, 率性之爲道이며, 修道之爲敎이다(1장). *단어풀이 率(솔) : 따르다 *직역 하늘의 명한 것, 그것을 일러 性이라 하고, 性대로 따르는 그것을 일러 道라 하고, 道를 닦는 그것을 일러 敎라 한다. 2. 喜怒哀樂之未發은 謂之中이오 發而皆中節은 謂之和니 中也者는 天下之大本也오 和也者는 天下之達道也니라 (1장). *단어풀이 皆(개) : 모두. 達(달) : 통할, 이를 *직역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中이라고 일컽고, 나타나서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은 和라고 일컬으니 中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和라는 것은 천하의 통달한 道라는 것이니라. *해설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은 情이요. 그것을 발하지 않은 것이 性이다. 한쪽에 치우치거자 의지하는 것이 없는 것을 中이라 이르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으며 어긋나는 것이 없는 것을 和라고 일컽는다. 3. 子曰, 中庸은 其至矣乎인저 民鮮能이 久矣니라(3장). *단어 풀이 至(지) : 지극할, 이를. 鮮(선) : 고울, 적을(少-거의 없다). 久(구) : 오랠. 矣(의) : 단정, 한정의 어조사. *직역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中庸은 지극하구나, 그러나 능력있는 백성이 적은지 오래니라. *해설 지나치면 中을 잃고, 미치지 못하면 이르지 못하는 것이니 고로 오직 中庸의 德이 지극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사람이 같이 얻은 바로서 처음에는 어려운 일이 없지만 세상의 가르침이 약해지고 백성이 이를 행하지 않기 때문에 능력있는 자가 드물다. 4. 君子之道는 費而隱이니라, 夫婦之愚로도 可以與知焉이로대, 及其至也하여는 雖聖人이라도 亦有所不知焉하니라(12장). *단어풀이 費(비) : 원래 用과 같은 뜻이나 여기서는 廣(넓다)의 뜻. 焉(언) : 단정 어조사. *직역 君子의 道는 광대하고도 은밀하다. 부부의 어리석음으로도 가히 알 수 있대 그 지극한 데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이라 할지라도 또한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 *해설 ‘道’라는 것은 그 시작은 사소한 것에서 출발하지만 그 끝에 가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위대하다. 그러므로 그 사소한 데에 대하여서는 부부의 어리석음으로도 알 수 있지만 그 위대한 데에 가서는 군자라 할 지라도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 그래서 이 대목은 ‘中庸의 道’가 알아 듣기 힘들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5. 道不遠人이니, 人之爲道而遠人하면, 不可以爲道이니라(13장). *단어풀이 遠(달) : 형용사일 때는 ‘멀다’의 뜻, 동사일 때는 ‘멀리하다’의 뜻 爲(위) : 여기서는 ‘여기다’, ‘일컫다’의 뜻 *직역 道는 사람에게서 멀지 아니하니, 사람이 道를 하여도 (道가) 사람을 멀리하면 이로써 道라고 할 수 없다. *해설 유교의 道는 人道이다. 따라서 道는 결코 인간에게서 떨어질 수 없으며 인간에서 떨어진 道는 天道이지 人道가 아니다.
제사에 관하여
제사의 관하여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고조 할아버지까지 일년에 열네댓번 제사를 지내는 집안에서 커 온 나로서는 제사에 대해 이렇다 할 반감도 호감도 가지지 않았었고 그저 지내야 할 것으로 따르기만 했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제사에 대해서 알고 난 후부터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했던 제사에 큰 의의를 두게 되었다. 특히 이번 추석 명절에 4군데의 제사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나의 제사에 대한 의견을 서술하고자 한다, 먼저 제사가 시작하는 시간에 문제가 있다. 아버지 말로써는 하루가 시작하는 제일 이른 시각인 12시를 기해서 제사지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정말 효심과 정성에서 드리는 제사라면 그 시간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즉 평소의 직장 생활을 하는 삼촌의 경우 제사에 한 번 참여하고 나면 그 다음날 회사일을 하는 데 지장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제관들이 보다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사 시간을 6시에서 9시 사이에 지냄이 가장 알맞다고 생각한다.. 둘째로,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물이다. 제물은 제사를 지내는 대상인 조상이 좋아했던 음식을 가지고 지낸다. 그러나 요즘 와서 제물의 값이 엄청 비싸고 이를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과 힘이 든다. 또한 제사가 끝나고 친족끼리의 음복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제물을 요즘 입맛에 맞는,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마련함이 적당하다. 셋째, 제사의 과정 중에 우리 집의 경우는 합문을 하고 약 5분간 엎드려 있는데 이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말로는 이러는 동안에 조상께서 오셔서 밥을 7 숟가락 먹을 동안 그러는 것이라 하시는 데 추효보본의 관점에서는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는 이를 다음에 이어지는 묵념으로 대처함이 옳다고 생각한다. 넷째, 우리집의 경우 증조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경우에 축을 읊는 데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아버지로부터 무슨 내용인지 알게 되었다. 따라서 축을 읊을 때는 한문으로 하기보다는 한글로 제사의 대상에 대해 알기 쉽게 읽는다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조상을 상기 시키는 데에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서 제사에 대하여 나의 의견을 서술해 보았다. 제사는 평상시 만나 볼 수 없는 친족들과 만남을 중개 해주고 조상에 대한 얘기를 함으로써 그분의 가르침을 상기시키며 제사를 준비함에 있어 그 정성과 효성을 볼 때 결코 금지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나 현대적 의미를 살펴 볼 때 그의 불합리한 점이나 모순점을 고쳐 나간다면 이 시대에 아름답고 훌륭한 우리의 전통 문화로써 자리잡게 될 것이다.
백록동규도, 심통성정도
제 5장 백록동규도 *백록동규는 백록동 서원의 규칙이란 뜻이다. [그림설명]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오륜. @切問近思(절문근사, 절실한 것을 묻고 가까운 것을 생각함) 이는 실천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주된 것은 삼강오륜이다. 이러한 것을 공부하는 방법으로 博學(박학, 많은 것을 아는 것 5수레는 읽어야 함), 審問(심문, 찾아서 물어야 함), 愼思(신사, 신중하게 사색해야 함), 明辨(명변, 이치에 대한 분명한 변별력이 있어야 함) 篤行(독행, 독실하게 행해야 한다)… 나는 보건데 聖賢(성현)이 사람을 가르쳐 학문을 하게 하는 뜻은 다 義理(의리, 존재의 문제, 천리와 같음)를 講明(강명, 말해서 밝힘, 즉 도덕으로 만들어 인간을 천지의 수준으로 올림, 이것은 성인이 되는 데 그 목적이 있음)하여 그 몸을 닦은 이수에 미루어 사람에게 까지 미치려 함이고 한갓 博覽(박람), 强記(강기)에 힘써 詞章(사장)으로 이름이나 날리고 祿利(녹리, 녹봉이나 이익)나 취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학문하는 사람은 이미 이와는 반대로 되었다. 그러나 성현들이 사람을 가리치던 법은 경전에 다 갖추어져 있다. 뜻있는 선비는 마땅히 熟讀(숙독), 深思(심사, 깊이 생각함)하여 問辨(문변)해야 할 것이다. 진실로 理의 당연함을 알아서 그 몸을 責(책, 꾸짖다)하여 반드시 이에 따르게 하면 規투(규투?), 禁防(금방, 금하여 방지함)을 갖추는 것이야 어찌 남이 말해 주기를 기다릴 것이 있겠는가? 근세에 학교에 구약이 있는데 그 학자0를 待(대)함이 이미 천박하고 또 그 법이 반드시 다 예사람의 뜻이 아니므로 이제 이 학당에는 거것을 실시하지 않고 특히 성현이 사람을 가르쳐 학문을 하게 한 大端(대단)을 취하여 오른쪽과 같이 조목조목 열거하여 문위 현판에 게시한다. 제군은 서로 함께 강명하고 준수(遵守)하여 몸에 실천하면 생각하는 것과 (思慮) 言行에 있어서 戒謹(계근), 恐懼(공구)1)할 바가 반드시 저 보다도 더 엄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혹 禁防(금방)의 범위를 벗어남이 있으면 저 이른바 規約(규약)이란 것은 반드시 취해야 할 것이요 생략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제군은 잘 생각할 지어다. 제 6장 心統性情圖(심통성정도) *이장은 제 1장과 연관이 있다. 세계는 보편의 이치인 이일과 개별의 이치인 事理로 이루어져 있다. 사물은 性品과 形氣로 나뉘는 데 사물과 다르게(탁하며 더럽고 낮은 면이 있음) 인간의 形氣는 그자체로 순수하고 깨끗하며 높은(粹 淸, 高) 면이 있다. 이를 분류(분간)해서 보면 形氣와 性으로 나누어 진다. 이때 性과 情은 하나로 통섭되어 있다. 임은정씨가 이르기를 이른바 심이 性情을 통한다는 것2)은 사람이 오행의 빼어남을 타서 나고 그 빼어난 것에서 오성이 갖추어지고 오성이 동하는 데서 七情이 나온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무릇 그 性情을 하나로 통일해서 모여들게 하는 것은 心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면 性이되므로 이것은 心의 근본(體)이고 感情이 동해서 통하게 되면 情이 되므로 이것은 心의 운용(用)이다. 장자는 말한 ‘마음은 性情을 통회한다’는 것은 적당하다. 心은 性을 통함으로써 仁義禮智를 性이라 하고(性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인의예지다) 또 仁義之心이란 말도 있게 되는 것이며 心은 情을 통함으로 惻隱, 羞惡, 辭讓, 是非를 情이라하는 것이다(情은 이처럼 4端과 7情이 있는데 여기서는 4端만 말하고 있다). 心이 性을 통하지 못하면(心은 이와 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가 깨끗하며 맑고 높지 아니할 때 통하지 못한다) 그 미발의 중3)을 이룰 수 없어서 性이 천착4)되기 쉽고 心이 情을 통하지 못하면(心이 情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그 중절(중간의 절도)의 화합을 이룰 수 없어서 情이 방탕해지기 쉽다. 학자는 이것을 알고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여 그 性을 기르고(性이 있는 그대로 광을 낼수 있게 하는 것) 그 情을 단속하기만 하면 학문하는 길을 터득했다고 할 수 있다.
대학도
제 4장 대학도 *대학은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중 하나. 유가 척학의 이념을 드러낸다. 이 책의 특징은 修己治人이다. (참조, 소학: 先行後知) 즉 자신을 수향하고 다른이를 다스리는 先知後行에 있다. 그의 가르침을 살펴보자. 먼저 자신만 수양해서는 안되고(修己)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해야한다.(治人, 新民-백성을 새롭게 함)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데 이 책의 목적이있다.-유가의 三綱領삼강령. 두 번째로 지극한 선에 머무를 것을 알게 되면→정함이 있고(뜻이 있어 그 향하는 바가 있음), →다음으로 精함이 있다.(마음이 망동하지 않고 고요함이 있다).→ 편안함이 있다(처한 바에 편안하다)→생각할 수 있다(慮: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정미롭고 상세함이 있다)→목적한 바를 얻을 수 있다. 세 번째로 物有本末, 즉 일상의 잡다한 일에는 근본과 끝이 있다. 예를 들어 덕을 밝히는 것이 먼저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 나중이다. 다시말해서 일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하는 것과 뒤에 할 것을 깨닫는다면 그것이 바로 道이다. 네 번째로 밝은 덕을 밝게하려면(明明德, 平天下) 제후국을 다스려야 하고(治國) 그러기 위해서 집안을 가지런히 해야하고(齊家) 집을 가지런히 하기 위해서는 몸을 닦아야 하며(修身),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바로 해야한다(正心). 그러기 위해서 뜻을 정성스럽게 해야하고(誠意) 그러기 위해서는 일의 선후를 알아 그대로 실천해야 하고(致知) 그러기 위해서는 일의 이치에 이르러야 한다(格物). 다시말해서 삼강오륜과 모든 일의 하나하나의 이치를 안 후에(격물) 일의 먼저함과 나중함을 알아서(치지) 인간의 언동이 드러나는 제일 처음인 뜻을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성의,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 혼자 있을 때 조심하는 것) 그다음 마음을 바르게 해야하고(정심, 분노와 두려함과 좋아함과 근심-四病을 제거하여 이치에 합당하는 것) 그다음 몸을 닦아야 한다.(수신,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즉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親愛)과 천하고 미워함과(賤惡) 두려워함과 공경함(畏敬)과 불쌍히 여김(哀矜)과 오만함과 게으름(??)의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그다음 집안을 화목하게 하며(제가), 즉 가장이 먼저 효도함으로써 본을 모범을 보이고 자시이 먼저 공경함으로써 집안 사람이 경하고 자신이 먼저 아랫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윗사람이 사랑하게 해야한다. 그럼으로써 이 효에서 충이 나오고 경에서 敬長(어른을 공경함)이 나오며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것에서 便民(백성을 편안하게 함)이 나오는 치국을 할 수 있다(치국). 이렇게 백성모두가 明明德하면 천하가 다스려 진다(평천하). 여기서 제가에서 평천하까지를 治人이라한다. 치인에 있어서 남에게 권하려면 자기 한테 먼저 있어야 하고 자기 한테 없을 때 남을 비난할 수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생각이다. 즉 推己及人(-자신에게 미루어보아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한다)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더과 재물과 형벌을 논하면 국가가 잘 다스려 질수 있다. 수신에서 격물에 이르는 것이 修己이다. 대학의 도는 명덕(인간이 태어날 때 가장 최상의 경지를 유지하고 있음, 그러한 상태)을 밝힘에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고 지극한 선에 머무름에 있다. 이것은 그칠데를 안 다음에 定함이 있고 定함 다음에야 精할수 있고 그다음에 편안(安)할 수 있고 편안한 다음에야 생각 할 수 있고 생각한 다음에야 얻을 수 있다. 물은 근본과 끝이 있고 일은 마침과 시작함이 있다. 먼저하고 뒤에 할 바를 알면 도에 가까우니라. 옛적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을 정돈하고 그 집을 정돈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몸을 닦고 그 몸을 닦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이후의 내용은 위와 동일) (퇴계가 인용한 주자 혹문의 말) 공부(일)을 하려면 딴 생각을 하지 말고 주변 정돈을 잘해야 한다. 즉 밖으로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整齊)마음을 엄숙하게 가져야 한다.(嚴肅-일이 닥쳤을 때 적극적으로 하려는 자세) 또한 몸이 깨어 있어야만한다. 이렇게 마음이 수렴되고 一物(한가지 일)에도 용납하지 않는 자세에서 격물을 하고 치지를 하며 성의를 하고 정심을 하고…평천하를 해야 한다. *수신하는 요령은 먼저 말은 忠(정성스레 말함)과 信(그 성실한 것으로 다함)이 있어야 하고 행동은 돈독하고(篤,독) 독실하며 공경해야(敬) 한다. 즉 화나는 것을 징계해야 하는데 첫째로 참아야 하고(忍) 두 번째로 이치로 변별해야 하며(辨理) 셋째로 反省(반성)해야 한다. 또한 육체의 욕심을 막아야하고 항상 선으로 향해야 한며 허물을 고쳐야 한다(改過, 개과). 일을 하는 요령은 한편으로 그 마땅한 것을 바르게 해야하고(正其義) 그 이익에대해 모의하지 않는다(不謀其利). 즉 이득을 위해 의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땅한 이득이 돌아오는 것이다. 또한편으로 그 도를 밝히고 그 공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門其道). 즉 공은 부차적으로 그냥 따라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득과 공을 위해서 일을 해서는 안된다. 사람을 접대하는 요령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며(己所不欲 勿施於人) 행해서 그 목적을 얻지 못하거든 돌이켜서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구하는 것이다(行有不得 反求諸己)
소학도
제 3장 소학도 *보편의 세계는 理즉 무극이태극이고, 천리이며, 理一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 현상의 세계는 理와 形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形氣와 理를 같이 보면(涽淪看) 이와 기가 그 먼저와 나중이 없고(理氣無先後), 이와 형을 따로 떼어 놓고 보면(分開看), 이가 먼저고 기가 나중이다. 3장 소학도에서는 악의 근원을 문제시한다. 즉 이 자체는 순전히 선하고 악함이 없다(純善無惡). 하지만 形氣는 耳目口鼻身이 욕심으로 가득차 있어서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有善有惡). 악의 근원은 이러한 욕심에서 근원한 것이다. 따라서 태어나서 14세까지는 소학을 배워야 하고 15세 부터는 사서 삼경을 공부해서 그러한 욕심에서 벗아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元亨利貞(원형이정)은 天道(천도)의 떳떳함(常)이고 仁義禮智는 인성의 강인함(綱)이다.(天理로부터 인간은 理를 받는 데 이것이 성품이다) 이것들은 그 처음에 선했다. 성대하게 나타나는 四端(수오지심-내가 성인이 되지 못함을 미워함, 사양지심-겸손하는 마음, 측은지심-불쌍한 사람을 측은이 여김, 시비지심-옳고 바르지 못함을 구별함.)이 감정에 따라 나타나서 어버이를 사랑하고(孝) 형에게 공경하고(悌,제), 임금에 충성하고(忠), 어른에 공손하니(敬) 이를 일러 병이(떳떳이 잡아야할것-본성)이라 한다. 본성은 따름이(順)이 있되 강제로 시키는 것이 없다. 오직 성인은 성품대로 하는 이라서 하늘과 같이 넓어서 털끝만한 힘도 드리지 않아도 萬善이 갖추어 진다.(왜냐면 천리를 받았기 때문에 그는 완전무결하고 형기에 결점이 전혀 없는, 성품을 있는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일반사람은 미련하여서 물질의 욕심에 기리워서 그 綱(형기가 선을 따르지 않고 악만을 행함)을 무너뜨리고 자포자기를 쉽게 한다. 성인은 이를 측은하게 생각하여 학문을 세우고 스승을 세워 그 뿌리를 북돋우고 그 가지를 펴게 하였다. 소학의 방법이란 마당에 물뿌리고 비질을 하고, 어른이 부르면 대답을 하고,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경하여 행동을 理法에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이다. 행동을 하고 남은 힘이 있으면 시를 읊고 책을 읽으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추어서 생각이 분에 넘침이 없게 해야 한다. 理를 연구하고(窮究) 몸을 닦음은 이 학문의 중요한 것이다. 밝은 명(天理)이 환하여 안과 밖이 없으니(公平無私) 德을 쌓고 어진일(業)을 해야만 그 처음의 상태, 욕심이 없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옛적에 완전 무결한 것이 이제 어찌 남음이 있겠는가?(지금도 깨끗하다) 세대가 멀어지고 성인이 없어져서 經典이 잃어지고 가르침이 끊어지니 어린이 기르는 것이 단정치 못해서 자라서 더욱 인정이 薄(박)해진다. 그래서 마을에 선한 풍속이 없어지고 세대마다 좋은 인재가 부족하다. 利慾에 옥신각신 싸움하며 異端의 말로 시끄러히 떠들기 잘한다. 다행이 이 본성이 끝까지 떨어지지 아니하였으니 이에 舊聞(옛날의 가르침)을 주어 모아 뛰에 오는 세대를 깨우칠까 하노라. 탄식스럽도다 젊은 사람들이여! 이 책을 잘 받들어 읽으라 이것은 나의 노망한 말이 아니라 성인의 말씀이다. 소학에서 중요한 것은 敬이다. 대학은 한 격 높은 이치를 아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