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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와 현세
제4절 말세와 현세 예수님께서 장차 있을 베드로의 죽음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에, 이 말씀을 듣고 있던 베드로가 요한은 어떻게 될 것인 가고 질문하였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가 무슨 상관이냐”(요한복음 21장 18 – 22절)고 대답하셨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들은 사도들은 모두 ‘요한’의 생전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마태복음 10장 23절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 인자가 오리라”고하셨고, 마태복음 16장 28절에는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말씀들에 의하여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했거니와,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성도들은 저마다 자기 당대에 예수님이 오실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말세라는 절박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말세에 대한 근본 뜻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복귀섭리의 목적으로 세우고 이루어 나오시던 3대 축복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으로 보아, 현세가 바로 말세임을 입증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태복음 24장 32절)라고 하셨다.
말세의 징조에 관한 성구
2. 말세의 징조에 관한 성구 이미 위에서 논한 바대로, 많은 기독교 신도들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말세에는 천지에 이변이 일어나며, 인간사회에도 현대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변이 생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인류역사가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세계를 복귀해 가는 섭리역사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말세의 징조는 실제에 있어서 그 문자대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말세에 관한 성서의 모든 기록은 각각 무엇을 상징한 것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1) 하늘과 땅을 멸하고(베드로후서 3장 12절, 창세기 6장 13절)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심(요한계시록 21장 1절, 베드로후서 3장 13절, 이사야 66절 22절) 창세기 6장 13절을 보면 노아 때도 말세가 되어 땅을 멸한다고 하셨지만, 사실상 멸하지는 않으셨다. 전도서 1장 4절에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고 하신 말씀이나, 시편 78편 69절에 “그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으며”라고 하신 말씀을 보더라도, 땅은 영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이 영원하시니, 그의 대상도 영원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대상으로 창조된 땅도 영원한 것이 아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사탄으로 말미암아 파멸되어 없어질 세계를 창조하시고 기뻐하셨을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말씀은 무엇을 비유하신 것인가 ? 한 국가를 멸한다는 것은 그의 주권을 멸한다는 것을 의미함이요, 또 새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은(요한계시록 21장 1절) 새 주권의 나라를 세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과 땅을 멸한다는 것은 그를 주관하고 있는 사탄주권을 멸한다는 뜻이요, 또 하늘과 새 땅을 세운다는 것은 예수님을 중심한 하나님 주권하의 새로운 천지를 복귀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2, 하늘과 땅을 불로써 심판하심(베드로후서 3장 12절) 베드로후서 3장 12절을 보면 말세에는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진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말라기 4장 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 때도 그가 심판 주로 오셔서(요한복음 5장 22절, 요한복음 9장 39절) 불로써 심판하신다고 예언되어 있고, 또 누가복음 12장 49절에는 예수님이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는 말씀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예수님이 불로써 심판하신 아무 흔적도 우리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엇을 비유하신 것임에 틀림없다. 야고보서 3장 6절에 “혀는 곧 불이요”라고 한 말씀에 의하여, 불 심판은 곧 혀의 심판이요, 혀의 심판은 곧 말씀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니, 불 심판은 곧 ‘말씀’심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말씀’심판에 관한 성구의 예를 찾아보자. 요한복음 12장 48절에는, 예수님을 저버리고 그의 말씀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예수님이 하신 그 ‘말씀’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고 하였으며, 데살로니가후서 2장 8절에는,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 즉 말씀으로 그를 죽이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사야 11장 4절에서는, 그 입의 막대기(혀)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말씀)으로 악인을 죽이 리라고도 말씀하였으며, 요한복음 5장 24절을 보면 예수님이 자기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이와 같이 불 심판은 곧 ‘말씀’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 요한복음 1장 3절에 인간은 ‘말씀’으로 창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이상은, 인간 시조가 ‘말씀’의 실체로서 ‘말씀’의 목적을 완수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타락되어 ‘말씀’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또다시 ‘말씀’에 의하여, 타락인간을 재창조하심으로써 ‘말씀’의 목적을 이루려 하셨으니, 이것이 곧 진리(성서)에 의한 복귀섭리인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또 ‘말씀’ 완성 자로 재림하셔서, 스스로 ‘말씀’심판의 기준이 됨으로써, 모든 인류가 어느 정도 ‘말씀’의 목적을 이루었는가를 심판하시는 것이다. 이렇듯 복귀섭리의 목적이 ‘말씀’의 목적을 이루려는데 있으므로, 그 목적을 위한 심판도 ‘말씀’으로 그의 기준을 세워 행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누가복음 12장 49절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고 씌어 있는 바,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의 실체로 오셔서(요한복음 1장 14절) 생명의 ‘말씀’을 이미 선포하셨으나, 유대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시고 한탄하여 하신 말씀이다. 3. 무덤에서 시체가 일어남(마태복음 27장 52절,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마태복음 27장 5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것은 썩어 버린 그들의 육신이 다시 일어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전편 제5장 제2절 3). 만일 영계에 머물러 있던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성서의 문자 그대로 무덤에서 살아 나와 성에 있는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면,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반드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증거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때 이미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을지라도, 그들의 증언을 듣고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었을 것인가 ? 그리고 그렇듯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육신을 쓰고 무덤에서 다시 일어났다면, 그 후의 그들의 행적에 관한 기사가 반드시 성서에 남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는 그들에 관한 아무런 기사도 달리 씌어 있지 않다. 그러면 무덤에서 살아 나온 것은 무엇이었던가 ? 그것은 마치 ‘모세’와 ‘엘리야’의 영인 체가 변화산상에서 예수님 앞에 나타났었던 것처럼(마태복음 17장 3절), 구약시대의 영인들이 재림 부활을 위하여, 지상에 재림한 것을 영안으로 보고(전편 제5장 제2절 3) 기록한 말씀이다. 그러면 무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열려진 낙원에서 보면, 구약시대의 성도들이 머물러 있던 영형 체급 영인의 세계는 보다 어둠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 곳을 가리켜 무덤이라고 하였다. 구약시대의 영인들은 모두 이 영계에 머물러 있다가 지상성도들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4. 지상인간들이 끌어 올리워 공중에서 주를 영접함(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공중은 공간적인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 성서에 있어서 땅은 타락된 악주권의 세계를 의미하고, 하늘은 죄가 없는 선 주권의 세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어디든지 계신 하나님은 땅에도 아니 계시는 곳이 없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태복음 6장 9절)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땅에서 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요한복음 3장 13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사탄주권을 물리치시고, 지상천국을 복귀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선 주권의 세계에서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5.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짐(마태복음 24장 29절) 창세기 37장 9절 이하를 보면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번째인 ‘요셉’이 꿈을 꾸었는데, 그 내용에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요셉’이 커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 과연 이 꿈대로 그 부모와 형제들이 가서 엎드려 절을 하였다. 이 성경 말씀을 보면 해와 달은 부모를 상징했고, 별들은 자녀들을 상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기독론에서 논술한 바와 같이, 예수와 성신은 ‘아담’과 ‘해와’대신 인류를 중생해 주실 참부모로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해와 달은 예수와 성신을 상징하고, 별들은 자녀된 성도들을 상징한 것이다. 성서에서 예수님을 참 빛으로 비유한 것은(요한복음 1장 9절), 그가 ‘말씀’으로 육신을 이루신 분으로 오셔서(요한복음 1장 14절) 진리의 빛을 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말하는 햇빛은 예수님이 주신 말씀의 빛을 이름이며, 달빛은 진리의 신으로 오신 성신(요한복음 16장 13절)의 빛을 이름이다. 그러므로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성신에 의한 신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신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될 것인가 ? 마치 예수님과 성신이 어셔서 구약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신약의 말씀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되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신약의 말씀을 이루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기 위한(요한계시록 21장 1절) 새 말씀을 주시게 되면(본장 제 5절 1 참조), 초림 때에 주셨던 신약의 말씀은 그 빛을 잃게 될 것이다. 여기에 ‘말씀’이 그 빛을 잃는다는 것은 새 시대가 옴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의 사명기간이 지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별들이 떨어진다는 것은 말세에 있어서의 성도들이 모두 실족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시아’의 강림은 열망해 오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반대하다가 전부 떨어진 것 같이, 예수님의 재림을 열망하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그 날에 실족하게 됨으로써, 그와 같이 떨어지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후편 제6장 제2절 2 참조). 누가복음 18장 8절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으나”하신 말씀이나, 마태복음 7장 23절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가 잘 믿는 성도들을 보시고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책망하시면서, “떠나가라”고 배척하게 될 것으로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와 같이 끝날의 성도들이 불신으로 실족하게 될 것을 아시고 경고하신 것이었다.
말세
제3절 말세 1. 말세의 의의 하나님이 인간조상에게 허락하셨던 3대 축복은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중심하고 이루어지지 않고, 사탄을 중심하고 비원리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논술하였다. 그런데 악으로 시작된 인류역사는 실상 하나님의 복귀섭리 역사이기 때문에, 사탄주권의 죄악세계는 메시아의 강림을 전환점으로 하여, 하나님을 중심하고 3대 축복을 이룬 선주권의 세계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탄주권의 죄악세계가 하나님 주권의 창조이상세계에로 교체되는 시대를 말세라고 한다. 따라서 말세는 지상지옥이 지상천국으로 바뀌어지는 때를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는 지금까지 기독교 신도들이 믿어온대로의 천변지이가 일어나는 공포의 때가 아니고, 창세이후 유구한 역사노정을 통하여 인류가 유일한 소망으로 바라고 나왔던 기쁨의 한 날이 실현되는 때인 것이다. 상세한 것은 후편 제1장으로 미루거니와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이래, 죄악세계를 청산하고 창조본연의 선의 세계를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여러 차례 하셨다. 그러나 그때마다 인간이 그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여,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곤 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말세가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은 사실을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1) 노아 때도 말세였다. 창세기 6장 13절의 기록을 보면 노아 때도 말세였기 때문에, 끝날 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어찌하여 노아 때가 말세였던가 ? 하나님은 인간시조가 타락함으로써 시작된 사탄을 중심한 타락세계를, 1600년의 죄악 사를 일기로 하여 홍수심판으로 멸하시고, 하나님만을 신봉하는 노아가정을 세우심으로써, 그 믿음의 터 위에 하나님주권의 이상세계를 복귀하려 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노아 때가 말세였던 것이다(후편 제1장 제2절 참조). 그러나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타락행위로 인하여, 그들이 인간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창세기 9장 22절). 2) 예수 때도 말세였다.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려는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적이어서 변할 수 없기 때문에(전편 제6장), 노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다시 다른 선지자들을 부르시어 믿음의 터를 닦으시고, 그 터 위에 예수님을 보내심으로써, 사탄을 중심한 죄악의 세계를 멸하시고 하나님을 중심한 이상세계를 복귀하려 하셨다. 따라서 예수님 때도 말세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스스로 심판 주로 오셨다고 말씀하셨고(요한복음 5장 22절), 그 때도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말라기 4장 1절)이라고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창조이상세계를 복귀하려고 오셨던 것이었으나, 유대인들이 그를 불신함으로써 인간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뜻도 이루어지지 않고 재림 때에로 다시 연장되었다. 3) 예수의 재림 때도 말세다. 유대 민족의 불신을 당하게 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영적인 구원만을 이루셨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재림하신 후에야 영 육 아울러 구원섭리의 목적을 완수하여(전편 제4장 제1절 4) 지상천국을 복귀하시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 때도 또한 말세인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재림 때)에도 그러하리라”(누가복음 17장 26절)고 말씀하셨고, 그가 재림하실 때도 말세가 되어 천지에 이변이 일어날 것으로 말씀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24장 29절).
복귀섭리
2. 복귀섭리의 목적 그러면 복귀섭리의 목적은 무엇이겠는가 ? 그것은 본래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던 선의 대상인 천국을 이루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지상에 창조하시고, 그들을 중심하고 먼저 지상천국을 이루시려 하셨다. 그러나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제1차적인 목적도 역시 지상천국을 복귀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이나(마태복음 6장 10절1)),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하신 말씀(마태복음 4장 17절2))등은 모두 복귀섭리의 목적이 지상천국을 복귀하시려는 데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3. 인류역사는 곧 복귀섭리역사다 우리는 위에서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바로 복귀섭리라는 것을 밝혔다. 그러므로 인류역사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여, 그들로 하여금 창조본연의 선의 세계를 복귀케 하시려는 섭리역사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류역사는 곧 복귀섭리 역사라는 것을 여러 면으로 고찰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문화권 발전사의 입장에서 고찰해 보기로 하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리 악한 인간일지라도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려는 본심만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선이며, 어떻게 해야 선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은 지능에 속하는 것이어서, 시대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르기 때문에, 선을 찾아 세우려는 그들의 근본목적만은 모두 동일하다. 그러면 어찌하여 인간은 본심은 누구도 막을 수없는 힘을 가지고 시공을 초월하여 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선의 실체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므로, 비록 타락인간은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선의 생활은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선을 추구하는 그 본심만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들로써 이어져 내려오는 역사의 갈 곳은 결국 선의 세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본심이 아무리 선을 지향하여 노력한다고 하여도, 이미 악주권 아래 놓여진 이 세계에서는 그 선의 실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시공을 초월한 세계에서 그 선의 주체를 찾으려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니, 이러한 필연적인 요구에 의하여 탄생된 것이 바로 종교인 것이다. 이와 같이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모르게 된 인간은, 종교를 세워 끊임없이 선을 찾아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을 만나려고 한 것이었기 때문에, 설혹 종교를 받들고 있었던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망하였다 할지라도, 종교 그 자체만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남아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국가흥망사를 중심하고 더듬어 보기로 하자. 먼저 중국의 여사를 보면, 춘추전국의 각 시대를 거치어 진 통일 시대가 왔고, 전한, 신, 후한, 삼국, 서진, 동진, 남북조의 각 시대를 거치어 수 당 통일시대가 왔으며, 오대, 북송, 남송, 원, 명, 청의 시대를 거치어 오늘의 중화민국에 이르기까지 복잡다양한 국가의 흥망과 정권의 교체를 거듭하여 내려왔으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 불, 선의 극동종교만은 엄연히 그대로 남아져 있다. 다음으로 인도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마우리아, 안드라, 굽다, 바루다나, 사만, 가즈니, 무갈 제국을 거쳐서 오늘의 인도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변천은 거듭되어 내려왔으나 힌두교만은 쇠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나아가 유럽사의 주류에서 그 실증을 찾아보기로 하자. 유럽의 주도권은 그리스, 로마, 프랑크, 스페인과 폴투갈을 거쳐 일시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지나 영국으로 옮겨갔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미국과 소련으로 나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만은 그대로 융흥해 왔으며, 유물사관 위에 세워진 전제정체하의 소련에서마저 기독교는 아직도 멸할 수 없는 것으로서 남아져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모든 국가 흥망의 발자취를 깊이 더듬어 보면, 종교를 박해하는 나라는 망하였고, 종교를 보호하고 육성시킨 나라는 흥하였으며, 그 나라의 주권은 보다 더 종교를 숭앙하는 나라에로 넘겨져간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종교를 박해하고 있는 공산주의 세계가 괴멸될 날이 기필코 오리라는 것은 종교사가 실증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에는 많은 종교가 생멸되었다. 그 가운데서 영향력이 큰 종교는 반드시 문화권을 형성하여 왔는데, 문헌에 나타나 있는 문화권만 해도 21 내지 26개나 된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열등한 것은 보다 우수한 것에 흡수되었거나 또는 융화되어 왔다. 그리하여 근세에 이르러서는 위에서 열거한대로 수다한 국가 흥망의 굽이침 속에서, 결국 극동문화권, 인도교문화권, 회회교문화권, 기독교문화권 등의 4대 문화 군이 남아지게 되었고, 이것들은 다시 기독교를 중심한 하나의 세계적인 문화군을 형성해 가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선을 지향해 온 모든 종교의 목적을 함께 달성해야 할 초종교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역사적인 귀추로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문화권의 발전사가, 수많은 종교의 성쇠 또는 융합에 딸, 결국 하나의 종교를 중심한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인류역사가 바로 하나의 통일된 세계에로 복귀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둘째로, 종교와 과학의 동향으로 보아도, 우리는 인류역사가 복귀섭리의 여사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타락인간의 양면의 무지를 극복하기 위한 종교와 과학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함은 이미 총서에서 논술하였다. 이와 같이 역사이래 서로 관련이 없이 독자적으로 발달해 온 종교와 과학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각각 제 갈 곳을 다 가서, 한 자리에서 서로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인류역사가 이제까지 창조본연의 세계를 복귀하는 섭리노정을 걸어나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타락되지 않았다면, 인간의 지능이 영적인 면에서 최고도에까지 향상하였었을 것이기 때문에, 육적인 면에서도 최고도로 발달되어, 과학은 그 때 극히 단시일 내에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과학사회는 벌써 인간시조 당시에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무지에 빠지게 되면서, 그러한 사회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과학으로써 그 무지를 타개하면서 창조본연의 이상적 과학사회를 복귀하여 나왔다. 그런데 오늘의 과학사회는 극도로 발달되어, 외적으로는 이상사회에로 전환될 수 있는 그 전 단계에까지 복귀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투쟁역사의 귀추로 보아도, 인류역사는 복귀섭리역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재물을 빼앗고 땅을 빼앗으며 사람을 빼앗으려는 싸움은, 인류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벌어져,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되어왔다. 그리고 이 싸움은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중심한 싸움으로 그 범위를 넓혀 나와, 오늘에 이르러는 민주와 공산 두 세계가 마지막 싸움을 겨루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제 인류역사의 종말을 고하는 이 마지막 때에 있어서, 천륜은 드디어 재물이나 땅이나 사람을 빼앗아 가지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 온 역사의 단계를 지나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띠고 이 땅에 찾아왔다. 1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패전국가가 식민지를 내놓더니,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전승국가들이 차례로 식민지를 내놓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 오늘의 강대국들은, 그들의 일개 도시만도 못한 약소국가들을 유엔에 가입시키고, 그들을 먹여 살릴 뿐 아니라, 자기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주어, 모두 형제국가들을 만들고 있다. 그러면 이 마지막 싸움이란 어떠한 싸움일 것인가 ? 그것은 이념의 싸움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유물사관을 완전히 전복시킬 수 있는 진리가 나오지 않는 한,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의 싸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과학을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 해결할 수 있는 진리가 나올 때, 비로소 종교를 부인하고 과학편중의 발달을 꾀해 나온 공산주의 사상은 전복되고, 두 세계는 하나의 이념 아래 완전히 통일될 것이다. 이와 같이 투쟁역사의 귀추로 보아도 인류역사는 창조본연의 세계를 복귀하는 섭리역사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넷째로, 우리는 성서를 중심하고 좀더 이 문제를 알아보기로 하자. 인류역사의 목적은 ‘생명나무’(창세기 2장 9절)를 중심한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전편 제2장 제1절 1). 그런데 에덴동산은 아담과 해와가 창조된 어떤 국한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를 의미한다. 만일 에덴동산이, 인간시조가 창조되었던 그 어느 한정된 지역만을 말한다면, 이 땅에 충만하도록 번성하라 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창세기 1장 28절)에 의하여 번식될 그 숱한 인류가 어떻게 그 좁은 곳에서 다 살 수 있을 것인가 ? 인간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생명나무’를 중심하고 세우려던 에덴동산은 사탄에게 내주게 되었었다(창세기 3장 24절). 그래서 알파로 시작된 인류 죄악역사가 오메가로 끝날 때의 타락인간의 소망은, 죄악으로 물든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복귀된 에덴동산으로 다시 들어가, 잃어버렸던 그 ‘생명나무’를 다시 찾아 나아가는 데 있다고 요한계시록 22장 13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이 성서의 내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이미 타락론에서 밝혀진 바이지만, ‘생명나무’는 완성한 아담 곧 인류의 참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다. 부모가 타락되어 그의 후손도 원죄를 가진 자녀들이 되었으니, 이 죄악의 자녀들이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되기 위하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두 거듭나지(중생) 않으면 아니된다(중생론 참조). 그러므로 역사는 인류를 다시 낳아 주실 참 아버지 되시는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이니, 역사의 종말 기에 들어 성도들이 소망하고 찾아 나아가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요한계시록의 ‘생명나무’는 바로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보아도, 역사의 목적은 ‘생명나무’로 오실 예수님을 중심한 창조본연의 에덴동산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 내지 7절에도, 역사의 종말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사탄의 주관 하에 있던 옛 하늘과 옛 땅으로 복귀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9절 내지 22절에는 사탄의 주관 하에서 탄식하고 있는 말세에 불에 타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본연의 입장으로 복귀함으로써 새롭게 되기 위하여(요한 계시록 21장 5절), 자기를 주관해 줄 수 있는 창조본연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복귀되어 나타나기를 고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여러 면으로 고찰하여 볼 때, 인류역사는 창조본연의 세계에로 복귀하는 섭리역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구원섭리
제2절 구원섭리 1. 구원섭리는 곧 복귀섭리다. 이 죄악의 세계는 인간이 서러워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도 서러워하시는 세계인 것이다(창세기 6장6절).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설움의 세계를 그대로 방치하실 것인가 ? 기쁨을 누리시려고 창조하셨던 선의 세계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설움이 가득한 죄악의 세계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설움이 가득한 죄악의 세계로 영속할 수밖에 없이되었다.면, 하나님은 창조에 실패한 무능한 하나님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필코 이 죄악의 세계를 구원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세계를 어느 정도로 구원하셔야 할 것인가 ? 두말할 것도 없이 그 구원은 완전한 구원이어야 하므로,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이 죄악의 세계에서 사탄의 악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냄으로써(사도행전 26장 18절), 먼저 인간시조가 타락하기 전의 입장을 복귀하는 데까지 구원하시고, 그 위에 선의 창조목적을 완성하시어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시는 데까지(사도행전 3장 21절) 나아가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병든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병들기 전의 상태로 복귀시킨다는 뜻이요, 물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곧 빠지기 전의 입장으로 복귀시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죄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곧 죄가 없는 창조본연의 입장으로 복귀시킨다는 뜻이 아닐 것인가 ?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곧 복귀섭리인 것이다(사도행전 1장 6절, 마태복음 17장 11절). 타락은 물론 인간 자신의 과오로 말미암아 되어진 결과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타락이란 결과도 있을 수 있었으므로, 하나님은 이 결과에 대하여 창조주로서의 책임을 지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잘못된 결과를 창조본연의 것으로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현존하시는 주체이시므로, 그의 영원한 기쁨의 대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생명도 역시 영원성을 갖지 않으면 아니된다. 인간에게는 이와 같이 영원성을 두고 창조하셨던 창조 원리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에, 타락된 인간이라고 해서 이를 아주 없애버리어 창조원리를 무위로 돌려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타락인간을 구원하시어 그를 창조본연의 입장으로 복귀하시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런데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3대 축복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던 것이므로(창세기 1장 28절), 이사야 46장 11절에 “내가 말하였은 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 즉 정녕 행하리라”고하신 말씀대로, 사탄 때문에 잃어버렸던 이 축복들을 복귀하는 섭리를 하심으로써, 약속의 뜻을 이루어 나오셨던 것이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 전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도, 곧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하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본연의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신성을 갖게 됨으로써, 창조목적을 중심하고 보면 하나님과 같이 완전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