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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어떻게 재림하실 것인가

 제2절 예수님은 어떻게 재림하실 것인가        Ⅰ. 성서에 대한 관점  하나님은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암시하여, 어느 시대 어떤 환경의 사람이든지, 자유롭게 그 지능과 심령의 정도에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를 깨닫도록 하시기 위하여, 모든 천륜의 중요한 문제들을 상징과 비유로써 교시해 나오셨다(요한복음 16장 25절). 그러므로 성서는, 각각 그 정도의 차는 있지만, 모든 해석자들에게 서로 다른 관점을 세워 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교파가 분열되는 주요한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그 관점을 어디에다 두는가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세례요한에 관한 문제만 하여도 그 하나의 예가 되는 것으로서(전편 제4장 제2절 Ⅲ), 우리는 예수님 이후 2천년간이나, 세례요한이 그의 책임을 다했다고 하는 선입관으로써 성서를 보아 왔기 때문에, 성서도 또한 그렇게 보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관점에서 성서를 다시 잘 살펴볼 때, 세례요한은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전편 제4장  제2절 Ⅲ). 이와 같이 우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서의 문자에만 붙들려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단정하는 입장에서 성서를 보아왔기 때문에, 성서도 또한 그렇게만 보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현대인의 지성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이제 우리는 성서의 문자가 말하고 잇는 그 참 뜻을 파악하기 위하여 종래와 다른 각도에서 다시 한번 성서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서의 세례요한에 관한 부분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였다. 예언자 말라기는 메시아의 강림에 앞서, 이미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가 먼저 오리라고 예언한 바 있었다(말라기 4장 5절). 따라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승천한 바로 그 엘리야가 재림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마땅히 그는 하늘로부터 내려올 것이라고 믿고 그 날만을 고대하였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예수님은 사가리아의 아들로 태어난(누가복음 1장 13절) 세례요한을 가리켜서 엘리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11장 14절). 우리는 여기에서 엘리야의 재림이, 당시 유대인들이 믿고 있었듯이, 그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써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바로 예수님의 증언에 의하여서 알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신도들은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으로 믿어 왔으나, 일찌기 엘리야 재림의 실제가 우리에게 보여준대로, 재림 때에도 초림 때와 마찬가지로 그가 땅 위에서 육신을 쓰고 탄생하시리라는 것을 부정할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이 지상에서의 육신탄생으로 재림하시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관점에서, 이에 관한 성경의 많은 기록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초림 때에도, 많은 학자들은 메시아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탄생될 것으로 알고 있었다(마태복음 2장 5~6절). 그러나 한편, 다니엘서에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다니엘 7장 13절)라고 기록된 말씀에 의하여, 메시아가 구름을 타고 강림하실 것으로 믿은 성도들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도 유대인들 중에는,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태어난 예수는 메시아가 될 수 없다고, 반기독교운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랬기에 사도 요한은 이들을 경고하기 위하여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 그리스도니“(요한2서 1장 7~13절)라고 하여, 육신탄생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들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다니엘서 7장 13절의 말씀은 예수 재림 때에 되어질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마태복음 11장 13절)라고 하신 말씀이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로마서 10장 4절)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구약시대에는 메시아의 강림으로써 복귀섭리의 전 목적을 완성하시려는 섭리를 해오셨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재림하실 것을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한번 오셨던 메시아가 재림하시게 되리라는 것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누구도 다니엘서 7장 13절의 말씀이 메시아의 재림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예수님의 초림 때에 되어질 현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예수님의 초림 때에도 성서적인 근거에서 메시아는 구름을 타고 오실 것으로 믿은 신도들이 많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제에 있어 땅 위에서 육신을 쓰고 탄생하셨으므로, 재림하실 때도 그와 같이될는지 모른다는 관점에서, 우리는 성서를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Ⅱ. 예수의 재림은 지상탄생으로 이루어진다  누가복음 17장 25절을 보면, 예수님은 장차 그가 재림하실 때에 되어질 일들을 예상하시면서, “인자도 자기의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예수님이 성서의 문자 그대로, 구름을 타시고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 중에 재림하신다면(마태복음 24장 30~31절), 아무리 죄악이 가득찬 세대라 할지라도, 이러한 모양으로 오시는 주님을 모시고 받들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다면, 고난을 당하신다던가 이 세대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 같은 일은 절대로 생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찌하여 재림하실 때에 그와 같이 불행하게 될 것으로 말씀하셨을 것인가 ?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선지자 말라기가 예언한대로(말라기 4장 5절), 메시아에 앞서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재림하여, 메시아의 강림에 관한 것을 가르쳐 줄 것으로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직도 엘리야가 왔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하고 있었을 때에, 예수님이 미약한 존재로서 도둑같이 메시아로 나타나셨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멸시하고 천대하였던 것이다(전편 제4장 제2절 Ⅱ). 예수님은 이러한 자신을 살펴볼 때, 재림하실 때에도 또한 초림 때와 같이 하늘만을 쳐다보며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을 기독교 신도들 앞에, 지상에서 탄생하시는 몸으로 도둑같이 나타나시면(요한계시록 3장 3절), 다시 그들에게 이단자로 몰리어 고난을 당하시게 될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그와 같이 이 세대에 버린 바 될 것으로 말씀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이 성구는 예수님이 육신을 쓰고 재림하셔야만 이루어지지, 그렇지 않고 구름을 타고 오셔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누가복음 18장 8절에는 예수님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 말씀이 있다. 끝날이 가까와 올수록, 잘 믿으려고 애쓰는 성도들은 점차 늘어가고 있는데, 구름을 타시고 천사와 나팔소리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나타나시는 주님을 어찌하여 신앙이라는 말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성도들이 불신하게 될 것인가 ? 이 말씀도 역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셔서는, 결코 그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 당시의 모든 사정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유대인들은 장차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후에야,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하시리라고 믿고 있었다(마태복음 2장 6절). 그런데 아직 엘리야도 나타나지 않았던 때에, 뜻밖에 나사렛에서 목수의 아들로 자라난 한 청년이 메시아로 자처하고 나섰던 것이니, 저들 유대인 가운데서 죽음을 각오하고 그를 따르려는 독실한 믿음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실정을 서럽게 생각하시면서, 장차 재림하실 때에도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으로 믿고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다시 땅 위에 육신을 쓰고 나타나시게 되면, 그들도 필시 이 유대인들과 같이 믿음이란 말조차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불신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예상하시고, 그와 같이 탄식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구도 예수님이 지상에서 탄생하시지 않고는, 결코 그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이 성구를, 끝날의 신도들이 당할 환란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불신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복귀과정에 있어서도, 환란이 능히 성도들의 신앙의 길을 막을 수 없었거든, 하물며 성도들이 신앙의 최후의 관문으로 돌아가는 끝날에 있어서랴 ! 환란과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하늘로부터의 구원의 손길을 더욱 열망하여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 누구에게나 공통된 신앙생활의 실태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다시 우리는 예수님이 마태복음 7장 22절 내지 23절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볼 수 있다. 주의 이름으로 기사 이적을 행할 정도로 잘 믿는 성도라면, 영광 가운데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주님을 그 얼마나 잘 믿고 모시고 따르게 될 것인가 ! 그러면 예수님은 어찌하여 그들이 주님에게 그처럼 배척을 당하게 될 것으로 말씀하셨는가 ? 그렇듯 잘 믿는 성도들이 예수님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면, 끝날에 구원을 받을 성도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말씀도 역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셔 가지고는, 결코 그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기사와 이적을 행할 정도로 잘 믿는 성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메시아에 앞서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리라고 믿고 있던 그들은, 세례요한이 바로 그들이 고대하던 엘리야임을 몰랐었고(요한복음 1장 21절), 따라서 오신 메시아까지도 모르고 배척해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으로서도 눈물을 머금고 그들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와 같이 그가 재림하실 때에도 지상에서 탄생하시게 되면,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것으로 믿고 있는 신도들은 기필코 주님을 배척할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잘 믿던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로서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토로하신 것이었다.  누가복음 17장 20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 말세관도,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신다면 그대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따라서 예수님이 지상에서 탄생하신다는 전제 밑에서만, 이 성구들은 완전히 풀려지는 것이다. 그러면 유리는 여기에서 이 성구들을 하나하나 들어 가지고 그 내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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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언제 재림하실 것인가

   제1절  예수님은 언제 재림하실 것인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우리는 말세라고 한다. 그런데 현세가 바로 말세라는 사실은 이미 전편의 인류역사 종말론에서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현세가 바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복귀섭리역사에서 보면, 예수님은 탕감복귀섭리시대(구약시대)의 2천년이 지난 후에 강림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복귀의 원칙에서 볼 때에, 전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재탕감복귀섭리시대(신약시대)의 2천년이 끝날 무렵에, 주께서 재림하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 관한 항목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이, 제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함으로써, 사탄편 아담형의 인물인 카이젤이 망하고, 사탄편 재림주형의 인물 스탈린이 공산주의세계를 이루었던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공생공영공의주의세계를 탕감복귀하실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재림기가 시작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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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론

              제6장 재림론  예수님은 재림하실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6장 27절).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천사도 예수님도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다(마태복음 24장 36절). 그러므로 지금까지 예수님이 언제 어떻게 어디로 오실 것인가 하는 데 대하여는, 알려고 하는 것조차 무모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속하여 말씀하신 바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신 사실과, 아모스 3장 7절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하신 말씀을 종합하여 보면, 그 날과 그 때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주의 재림에 관한 모든 비밀을 반드시 어떤 선지자에게 알려 주시고야 역사 하시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도둑 같이 오시겠다고(요한계시록 3장 3절) 말씀하신 바 있지만, 그 반면에 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을 보면, 빚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도둑 같이 임하지 못하시리라고 하신 말씀도 있다. 예수님의 초림 때에 되어진 일을 보아도, 예수님은 어둠 가운데 있었던 제사장 교법사들에게는 도둑 같이 임하셨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빛 가운데 있었던 세례요한의 가정에게는 그의 탄생에 관한 것을 미리부터 알려 주셨고, 또 그가 탄생하셨을 때에는 동방박사와 사론, 안나, 그리고 목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누가복음 21장 34절 내지 36절에, 예수님께서 그의 재림하실 날이 뜻밖에 덫과 같이 임할 것이기 때문에, 항상 기도함으로써 이것을 피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도, 빛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 재림의 날을 위하여 준비할 수 있도록 미리 알려주실 것이 분명하다.  복귀섭리노정에 나타난 예를 보아도, 하나님은 노아의 심판 때나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나 혹은 메시아의 강림때에 있어서, 늘 그 사실을 선지자들에게 미리 알려 주시고야 행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주의 재림에 관하여도, 말세에는 하나님의 영을 물 붓듯 부어 주시마고 약속하신대로(사도행전 2장 17절), 빚 가운데 있는 모든 성도들을 통하여, 들을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들고 볼 수 있도록 계시하여 주실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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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설을 세워주는 성구 해명

    제4절 예정설을 세워주는 성구 해명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에 관한 여러 가지의 문제점을 해명하였다. 그러나 다음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이 장의 앞부분에서 열거한 성구들과 같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정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성구를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로마서 8장 29절 내지 30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은 미리 아신 사람을 미리 정하사, 미리 정하신 이를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이를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를 또한 영화롭데 하신다고 한 말씀을 해명해 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어떤 사람이 복귀섭리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는 조건을(본장 제3절)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와같이 미리 알고 계시는 인물을 예정하시고 부르시는 것이다. 그러나 부르시는 하나님의 책임분담만으로는, 그가 의롭다 함을 얻어 영화를 누리는 데까지 이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부름 받는 입장에서 자기의 책임을 완수할 때 비로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의롭다 함을 얻은 후에야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영화도 인간이 책임분담을 다함으로써만 누릴 수 있도록 예정되는 것이다. 다만 성구에는 인간 책임분담에 대한 말씀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정에서만 이루어지는 것 같이 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로마서 9장 15절 내지 16절에는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는 기록이 있다. 위에서 해명한 바와같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어떠한 인물이 가장 적합한가 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미리 아시고 택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물이 택하시어 긍휼히 여기시거나 혹은 그를 불쌍히 보시는 것은, 하나님의 특권이기 때문에, 인간이 원함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이 아니요, 또 인간의 노력으로 달음박질을 해서 되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 성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권능과 은총을 강조하시기 위하여 주신 말씀인 것이다.  한편 로마서 9장 21절에는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슬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창조성을 닮게 하심으로써, 피조세계의 주인으로 세우시어, 가장 사랑하시기 위한 조건으로서 인간 책임분담을 세우셨다는 것은 이미 논술한 바 있다. 그런데 인간은 이 조건을 스스로 범하여 타락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타락인간은 마치 쓰레기와 같이 버림을 받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설혹 하나님이 이러한 인간을 어떻게 취급한다 하더라도 결코 불평해서는 아니된다는 뜻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이 성구를 주신 것이다.  그리고 로마서 9장 10절 내지 13절에는, 하나님이 태중에서부터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시어, 장자 에서가 차자 야곱을 섬기리라고 한 말씀이 있다. 에서와 야곱은 복중에 있어서 아직 선악간에 아무런 행동의 결과도 나타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에서를 미워하시고 야곱을 사랑하신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 것인가 ? 이것은 복귀섭리노정의 프로를 맞추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것은 후편 제1장의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설명하겠지만, 에서와 야곱을 쌍태로 세우셨던 것은, 그들을 각각 가인과 아벨의 자리에 갈라 세워 놓고, 아벨의 자리에 있는 야곱이 가인의 자리에 있는 에서를 굴복시킴으로써, 일찍이 아담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이루지 못하였던 장자권 복귀의 뜻을 탕감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에서는 가인의 자리이므로 하나님의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요, 야곱은 아벨의 자리이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그와같이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실제로 미워하시거나 사랑하시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의 책임분담 수행여부에 따라서 좌우될 문제였다. 실상에서는 야곱에게 순종굴복하였기 때문에,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서 야곱과 같은 사랑의 축복을 받는 자리로 옮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 세워졌던 야곱이라 할지라도, 만일 그가 자기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였더라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같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책임분담과 인간의 책임분담이, 과연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모든 ‘뜻 성사’를 하나님께서 혼자 하시는 일로만 보아왔기 때문에, 칼빈(Calvin, Jean)과 같이 완고한 예정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오게 되었고, 또 그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을 두고 그대로 인정되어 오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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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예정

          제3절 인간에 대한 예정  아담과 해와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자신들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선의 인간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가 인간조상이 되는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실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타락인간도 그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만,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이 어떠한 인물이 된다는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실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인간을 어느 정도로 예정하시는 것인가 ? 어떤 인물을 중심한 하나님의 ‘뜻 성사’에 있어서는 그 자신이니 언제나 인간 책임분담을 해야만 된다는 필수적인 요건이 따라 다닌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인물을 어떠한 사명자로 예정하시는데 있어서도 그 예정을 위한 95%의 하나님의 책임분담에 대하여 5%의 인간 책임분담 수행이 합하여서, 그 인물을 중심한 뜻이 100% 완성됨으로써만 그러한 인물이 될 수 있도록 예정하신다. 그러므로 그 인물이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의 인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모세를 택하실 때에, 그가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만 선민을 가나안복지까지 인도할 수 있는 영도자가 되도록 예정하셨다(출애급기 3장 10절1)). 그러나 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에 그 예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도중에서 죽고 말았다(민수기 20장 7~12절2), 20장 24절3), 27장 14절4)). 한편 하나님이 가룟유다를 책하실 때에도, 그가 충성으로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함으로써만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예정하셨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을 때에 그 예정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는 도리어 반역자가 되고 말았다. 또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세우실 때에도,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모시어 맡겨진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만 영광의 선민이 될 수 있도록 예정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이 예정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그 백성은 쇠퇴해 갔던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예정에 있어 복귀섭리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는 조건은 어떠한 것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은 타락된 피조세계를 창조본연의 세계에로 완전히 복귀하시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기의 차이는 있으나, 타락인간은 누구나 다 빠짐없이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베드로후서 3장 9절5)).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가 그러했듯이, 그의 재창조역사인 구원섭리도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전체적인 것으로 넓혀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러하기 때문에 구원섭리를 위한 예정에 있어서도, 먼저 그 중심인물을 예정하시고 부르시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부르심을 받는 중심인물은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 그는 먼저 복귀섭리를 담당한 선민의 하나로서 태어나야 하며, 다음으로 같은 선민 중에서도 선의 공적이 많은 선조의 후손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똑같은 선의 공적이 많은 선조의 후손이라 하더라도 그 개체가 뜻을 이루는데 필요한 천품을 타고나야만 하는 것이며, 또 같은 천품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이를 위한 후천적인 조건이 모두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후천적인 조건마저 똑같이 갖춘 인물들 중에서도 보다 하늘이 필요로 하는 때와 장소에 맞추어진 개체를 먼저 택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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