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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왕조 분립시대,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Ⅳ. 남북왕조 분립시대 400년 사울왕은 그의 40년 재위기간에 성전 건축의 이상을 이룸으로써, 말씀(석판) 복귀를 위한 모세의 금식 40일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었다. 그러나 그가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 기간을 다시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기간으로 복귀해야 하였던 것이니, 그것이 바로 통일왕국시대를 지나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분립된 후, 유대민족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갈 때까지의 400년 기간인 남북왕조 분립시대였던 것이다.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야곱이 에서로부터 떡과 팥죽으로 장자권을 빼앗는 조건을 세운 뒤, 다시 이삭의 축복을 받아가지고(창세기 28장 13절1)) 하란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40년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 북조 이스라엘이 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앗시리아에 포로되어 간 뒤 남조 유대도 역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바빌로니아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되어 갔다. 이 때부터 그들은 바빌론에서 70년간 포로되어 있다가 바빌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한 뒤 페르샤왕 고레스의 조서에 의하여 마침내 해방되었다. 유대민족은 그 뒤 오랜 기간을 두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는데, 느헤미아가 남은 유대인들을 이끌고 환국하여 성벽을 재건한 후, 그들은 선지자 말라기를 중심하고 그의 예언에 의하여(말라기 4장 5절2))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기로 들어갔다. 이 때가 그들이 바빌론에 포로된 때로부터 210년이요, 해방되기 시작하고서부터 약 140년된 때였다. 이 시대를 통틀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라고 한다. 사울왕은 성전이상을 이룸으로써, 모세가 제1차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가지고 가나안 복귀를 하려 했던 21일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다. 그런데 사울왕은 그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에 실패하였으므로, 다시 이 기간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찾아 세운 것이 유대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의 210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장자권에 대한 축복을 받은 뒤, 그를 죽이려 했던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가서 사탄편 인물인 라반의 요구에 의하여 레아를 맞이하기 위한 7년간과, 라헬을 맞이하기 위해 7년간, 그리고 재물을 취해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해까지의 7년간을 합한 21년간(창세기 31장 41절3))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Ⅵ.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 유대민족이 바빌론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귀향한 뒤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에 의하여 메시아를 맞이할 민족으로 선 때부터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까지의 400년간을 메시아강림준비시대라고 한다. 사울왕은 그의 성전이상을 이룸으로써,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제3차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소비한 광야 40년기간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왕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실패로 돌아갔으므로, 다시 이 기간을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찾아 세운 것이 메시아강림준비시대의 400년기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복귀한 뒤, 팔려간 요셉을 찾아 애급으로 들어가기까지의 40년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사사시대와 통일왕국시대
Ⅱ. 사사시대 400년 열왕기상 6장 1절1)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급땅에서 나온지 480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왕이 된지 4년 시월 곧 2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여기에서 사울왕의 재위 40년과 다윗왕의 재위 40년을 지난 후, 솔로몬왕 4년이 바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급땅에서 나온지 480년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후, 사울왕이 즉위할 때까지는 약 400년 기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간을 사사시대라고 한다.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노아로부터의 400년 <사탄분립기대> 위에 세워졌던 아브라함의 입장을, 민족적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애급고역 400년의 <사탄분립기대>위에 서야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 대신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인하여, 이 기대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었다. 이와같이되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사탄에게 잃어버린 이 애급고역 400년 기대를 재탕감복귀하기 위한 사탄 재분립기가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간으로 다시 세워진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뒤로부터 사울왕이 즉위할 때까지의 사사시대 400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인 동시성의 시대 중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Ⅲ. 통일왕국시대 120년 복귀기대섭리시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복귀섭리시대가 있게 되었으므로, 이 섭리노정을 출발한 아브라함은 아담의 입장이었고, 모세는 노아의 입장이었으며, 사울왕은 아브라함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복귀기대섭리시대의 종결자인 동시에 복귀섭리시대의 출발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세운 뒤에, 그 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했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 때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려 하시기 제3차로서, 그때에는 그것을 반드시 이루셔야 했던 것과 같이,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이루시려 던 섭리도 역시 사울왕 때가 그 제3차로서, 그 때에는 반드시 그것을 이루셔야 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노아 때에 세워졌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인 120년, 40일, 21일, 40일 등을 ‘상징헌제’를 중심하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다가 실수하여 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이것들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120년, 40년, 21년, 40년으로 다시 찾아 세웠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입장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한 사울왕도 역시 아브라함때와 같이, 모세때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인 120년(모세의 40년씩 3차의 생애), 40일(금식기간), 21일(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기간), 40년(민족적 가나안복귀의 광야기간) 등을 성전을 지음으로써 그를 중심하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울왕도 역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사무엘상 15장 11~23절) 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브라함 때와 같이 이것들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통일왕국시대 120년, 남북왕조분립시대 400년, 이스라엘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을 찾아 세워가지고, 마침내 메시아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왕국시대는 모세가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3차에 걸쳐서 <믿음의 기대>를 세웠던 120년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이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고역 400년의 <사탄분립기대> 위에 선 뒤에, 모세는 바로궁중 40년으로 <믿음의 기대>를 세워가지고, 이스라엘선민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성전을 건축하려 하였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 노정은 모세의 미디안광야 40년, 광야 표류기간 40년으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이, 사사시대 400년으로써 애급고역시대 400년을 탕감복귀한 기대 위에선 뒤, 사울이 유대민족의 첫 왕으로 즉위하여, 그의 재위 40년으로 모세의 바로 궁중생활 40년을 탕감복귀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세워가지고 성전을 건축해야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왕이 불신으로 돌아감으로 말미암아(사무엘상 15장 11~23절), 모세 때와 같이 성전건축의 뜻은 다윗왕 40년, 솔로몬왕 40년으로 연장되어, 통일왕국시대 120년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뒤 야곱이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빼앗을 때까지의 120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따라서 마치 아브라함의 뜻이 이삭을 거쳐 야곱 때에 이루어 졌던 것과 같이, 사울왕의 성전이상도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 왕 때에야 이루어졌던 것이다.
복귀섭리시대를 형성하는 각 시대와 년수 – 애급고역시대 400년
제3절 복귀섭리시대를 형성하는 각 시대와 그 년수 복귀섭리시대는 동시성의 시대인 복귀기대섭리시대를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다. 이제 이 시대를 형성한 각 시대와 그 햇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Ⅰ. 애급고역시대 400년 노아는 심판 40일의 <사탄분립시대>위에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던 것인데, 함의 실수로 그것이 무너지자, 하나님을 다시 아브라함을 그와 같은 입장에 세우시기 위하여 400년을 탕감복귀한 기대 위에서, 그로 하여금 ‘상징헌제’를 하도록 명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말미암아 그 기대는 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되어 하나님은 사탄에게 내준 그 400년의 기대를 다시 찾아세우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사탄을 재분립하는 애급고역 400년을 치르게 하셨던 것이니(창세기 15장 13절), 이 시대를 애급고역시대라고 한다(후편 제1장 제3절 Ⅰ). 이 시대는 상징적인 동시성의 시대 중,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1600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종으로된 횡적 탕감복귀시대
Ⅵ. 종으로된 횡적 탕감복귀시대 위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같이 복귀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은 종적인 탕감조건을 모두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섭리역사가 연장될수록 복귀섭리를 담당하는 후대의 인물이 세워야 할 횡적인 탕감조건은 점점 더 늘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는 복귀섭리를 처음으로 시작하던 때였으므로 종적인 탕감조건은 아직 생기지 않았었다. 따라서 아담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는 가인과 아벨이 ‘상징헌제’를 하는 것과,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굴복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서 ‘실체기대’를 하는 것으로써, 단순하게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도, 그들이 상징과 실체의 두 헌제를 하는 기간으로써 탕감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아담이후의 믿음을 세우는 중심인물들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바로 위에서 논한 바 12, 4, 21, 40 등의 각 수를 복귀하는 수리적인 탕감기간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은, 아담가정의 헌제실패로 말미암아 복귀섭리의 기간이 연장됨으로써, 그 수리적인 탕감기간들이 종적인 탕감조건으로 남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아는 그 탕감조건을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될 입장이기 때문에, 그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들로서 방주 짓는 기간 120년, 홍수심판 40일, 비둘기를 4차 내보내기 위하여 세웠던 7일씩 3차를 합한 21일기간(창세기 7장 4절, 창세기 8장 10절, 창세기 8장 12절),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후 비둘기를 내보낼 때까지의 40일기간 등을 찾아 세워야 했던 것이다(창세기 8장 6절).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노아가 찾아 세웠던 이러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들은 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어, 그것들은 다시 종적인 탕감조건으로 남아지게 되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그 기간들을 다시 ‘상징헌제’로써 한꺼번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역시 ‘상징헌제’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 기간들을 탕감복귀하지 못하였었다. 그러므로 이 기간들을 다시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써 복귀하기 위하여, 뜻 성사를 이삭과 야곱에로 연장시켜 가면서 12, 4, 21, 40의 각 수에 해당하는 탕감기간들을, 다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 그가 하란에서 떠난 후 야곱이 떡과 팥죽으로써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을 때까지의 120년, 그리고 그 때로부터 야곱이 이삭에게 장자권의 축복을 받고 하란으로 가는 도중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창세기 28장 10~14절)까지의 40년, 또 그때로부터 하란에서에 고역을 마치고 처자와 재물을 취해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21년(창세기 31장 41절),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뒤 팔려간 요셉을 찾아서 애급으로 들어갈 때까지의 40년 등은 모두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들이었다. 이와 같이 종으로 된 횡적 탕감복귀기간의 년수가 결정되었던 것이다.
대수를 중심한 동시성의 시대
Ⅴ. 대수를 중심한 동시성의 시대 하나님은 아담으로부터 10대 1600년만에 노아를 택하시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중심인물로 세우셨다. 우리는 여기에서 1600년과 10대는 어떠한 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으로서의 의의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겠다. 우리는 바로 위에서 10수는 귀일수라는 것과 성장기간은 이 10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논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시조는 이 10수 완성기간을 그 자신의 책임분담 수행에 의하여 통과함으로써 10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들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이것들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중심인물을 찾아 세워 가지고, 하나님에게 다시 귀일 시키는 1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우게 하시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은 이러한 10수 복귀의 탕감기간을 세우게 하시기 위하여, 아담으로부터 10대만에 노아를 부르시어 복귀섭리의 중심인물로 세우셨던 것이다. 우리는 또 인간시조가 40수 완성의 성장기간을 다 거쳐야만 40수 완성실체가 될 수 있었다는 것도 바로 위에서 논술하였다. 그런데 타락인간은 탕감복귀를 위한 4위기대를 조성하여,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세워야 했던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우지 않으면, 40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중심인물로 세워질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4위기대의 각위가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두 16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워야 하고, 이것을 귀일 수로서의 10대에 걸쳐서 세워야 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두 160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아담으로부터 10대 1600년만에 노아를 택하셨던 것은 타락인간이 바로 이러한 160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노아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가 실패로 돌아간 후, 10대 400년만에 다시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복귀섭리의 중심인물로 세우셨다. 따라서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시대는,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시대를 대수를 중심하고 탕감복귀하는 동시성의 시대였다. 이 시대가 어찌하여 400년이 되었는가 하는 것은 이미 후편 제1장 제3절의 Ⅰ에서 논술하였다. 하나님이 노아로 하여금 40일 심판기간을 세우게 하셨던 것은, 10대와 1600년에 의한 수리적인 탕감복귀의 전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함의 실수로 인하여 이 40일 심판기간이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귀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로 하여금 또 이것을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우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담 이후, 각 대마다 160수 복귀를 위한 탕감기간을 세우는 섭리를 하시어, 이것이 노아 때까지 10대를 계속하여 내려오게 되었던 것과 같이, 그와 동시성의 시대인 노아로부터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의 10대도 각 대를 심판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으로써 세워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1대의 탕감기간을 40일로써 세울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정탐 40일의 실수를 광야 표류 40년기간으로써 탕감복귀하였던 것과 같은(민수기 14장 34절1)) 탕감법칙에 의하여 심판 40일의 실수를 40년기간으로써 탕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40년으로써 1대의 탕감기간으로 세우게 하셨던 것이다. 이와같이 1대 40년 탕감기간으로써 세우게 하시는 섭리가 10대에 걸치게 되었기 때문에, 그 전 탕감기간은 400년을 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