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시대와 통일왕국시대

    Ⅱ. 사사시대 400년


 열왕기상 6장 1절1)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급땅에서 나온지 480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왕이 된지 4년 시월 곧 2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여기에서 사울왕의 재위 40년과 다윗왕의 재위 40년을 지난 후, 솔로몬왕 4년이 바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급땅에서 나온지 480년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후, 사울왕이 즉위할 때까지는 약 400년 기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간을 사사시대라고 한다.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노아로부터의 400년 <사탄분립기대> 위에 세워졌던 아브라함의 입장을, 민족적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애급고역 400년의 <사탄분립기대>위에 서야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 대신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인하여, 이 기대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었다. 이와같이되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사탄에게 잃어버린 이 애급고역 400년 기대를 재탕감복귀하기 위한 사탄 재분립기가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간으로 다시 세워진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뒤로부터 사울왕이 즉위할 때까지의 사사시대 400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인 동시성의 시대 중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Ⅲ. 통일왕국시대 120년


 복귀기대섭리시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복귀섭리시대가 있게 되었으므로, 이 섭리노정을 출발한 아브라함은 아담의 입장이었고, 모세는 노아의 입장이었으며, 사울왕은 아브라함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복귀기대섭리시대의 종결자인 동시에 복귀섭리시대의 출발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세운 뒤에, 그 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했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 때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려 하시기 제3차로서, 그때에는 그것을 반드시 이루셔야 했던 것과 같이,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이루시려 던 섭리도 역시 사울왕 때가 그 제3차로서, 그 때에는 반드시 그것을 이루셔야 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노아 때에 세워졌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인 120년, 40일, 21일, 40일 등을 ‘상징헌제’를 중심하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다가 실수하여 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이것들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120년, 40년, 21년, 40년으로 다시 찾아 세웠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입장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한 사울왕도 역시 아브라함때와 같이, 모세때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인 120년(모세의 40년씩 3차의 생애), 40일(금식기간), 21일(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기간), 40년(민족적 가나안복귀의 광야기간) 등을 성전을 지음으로써 그를 중심하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울왕도 역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사무엘상 15장 11~23절) 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브라함 때와 같이 이것들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통일왕국시대 120년, 남북왕조분립시대 400년, 이스라엘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을 찾아 세워가지고, 마침내 메시아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왕국시대는 모세가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3차에 걸쳐서 <믿음의 기대>를 세웠던 120년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이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고역 400년의 <사탄분립기대> 위에 선 뒤에, 모세는 바로궁중 40년으로 <믿음의 기대>를 세워가지고, 이스라엘선민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성전을 건축하려 하였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 노정은 모세의 미디안광야 40년, 광야 표류기간 40년으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이, 사사시대 400년으로써 애급고역시대 400년을 탕감복귀한 기대 위에선 뒤, 사울이 유대민족의 첫 왕으로 즉위하여, 그의 재위 40년으로 모세의 바로 궁중생활 40년을 탕감복귀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세워가지고 성전을 건축해야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왕이 불신으로 돌아감으로 말미암아(사무엘상 15장 11~23절), 모세 때와 같이 성전건축의 뜻은 다윗왕 40년, 솔로몬왕 40년으로 연장되어, 통일왕국시대 120년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뒤 야곱이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빼앗을 때까지의 120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따라서 마치 아브라함의 뜻이 이삭을 거쳐 야곱 때에 이루어 졌던 것과 같이, 사울왕의 성전이상도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 왕 때에야 이루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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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Ⅱ. 사사시대 400년

     열왕기상 6장 1절1)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급땅에서 나온지 480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왕이 된지 4년 시월 곧 2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여기에서 사울왕의 재위 40년과 다윗왕의 재위 40년을 지난 후, 솔로몬왕 4년이 바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급땅에서 나온지 480년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후, 사울왕이 즉위할 때까지는 약 400년 기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간을 사사시대라고 한다.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노아로부터의 400년 <사탄분립기대> 위에 세워졌던 아브라함의 입장을, 민족적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애급고역 400년의 <사탄분립기대>위에 서야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 대신 여호수아를 중심하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인하여, 이 기대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었다. 이와같이되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사탄에게 잃어버린 이 애급고역 400년 기대를 재탕감복귀하기 위한 사탄 재분립기가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간으로 다시 세워진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뒤로부터 사울왕이 즉위할 때까지의 사사시대 400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인 동시성의 시대 중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Ⅲ. 통일왕국시대 120년

     복귀기대섭리시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복귀섭리시대가 있게 되었으므로, 이 섭리노정을 출발한 아브라함은 아담의 입장이었고, 모세는 노아의 입장이었으며, 사울왕은 아브라함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복귀기대섭리시대의 종결자인 동시에 복귀섭리시대의 출발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세운 뒤에, 그 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했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 때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이루려 하시기 제3차로서, 그때에는 그것을 반드시 이루셔야 했던 것과 같이,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이루시려 던 섭리도 역시 사울왕 때가 그 제3차로서, 그 때에는 반드시 그것을 이루셔야 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노아 때에 세워졌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인 120년, 40일, 21일, 40일 등을 ‘상징헌제’를 중심하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다가 실수하여 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이것들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120년, 40년, 21년, 40년으로 다시 찾아 세웠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입장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한 사울왕도 역시 아브라함때와 같이, 모세때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인 120년(모세의 40년씩 3차의 생애), 40일(금식기간), 21일(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기간), 40년(민족적 가나안복귀의 광야기간) 등을 성전을 지음으로써 그를 중심하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려 하였다. 그러나 사울왕도 역시 불신으로 돌아갔기 때문에(사무엘상 15장 11~23절) 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브라함 때와 같이 이것들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기간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통일왕국시대 120년, 남북왕조분립시대 400년, 이스라엘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을 찾아 세워가지고, 마침내 메시아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왕국시대는 모세가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3차에 걸쳐서 <믿음의 기대>를 세웠던 120년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이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고역 400년의 <사탄분립기대> 위에 선 뒤에, 모세는 바로궁중 40년으로 <믿음의 기대>를 세워가지고, 이스라엘선민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성전을 건축하려 하였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 노정은 모세의 미디안광야 40년, 광야 표류기간 40년으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이, 사사시대 400년으로써 애급고역시대 400년을 탕감복귀한 기대 위에선 뒤, 사울이 유대민족의 첫 왕으로 즉위하여, 그의 재위 40년으로 모세의 바로 궁중생활 40년을 탕감복귀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세워가지고 성전을 건축해야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왕이 불신으로 돌아감으로 말미암아(사무엘상 15장 11~23절), 모세 때와 같이 성전건축의 뜻은 다윗왕 40년, 솔로몬왕 40년으로 연장되어, 통일왕국시대 120년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 중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난 뒤 야곱이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빼앗을 때까지의 120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따라서 마치 아브라함의 뜻이 이삭을 거쳐 야곱 때에 이루어 졌던 것과 같이, 사울왕의 성전이상도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 왕 때에야 이루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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