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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3

    ⅱ. 아브라함의 이삭헌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한 후, 다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시어(창세기 22장 2절) 그로써 ‘상징헌제’의 실패를 탕감복귀하시려는 새로운 섭리를 하셨다. 예정론에 의하면, 하나님은 어떠한 뜻을 위하여 예정되었던 인물이 그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였을 때, 그 장본인을 다시 세워 쓰실 수는 없게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그 헌제로써 찾아 세우려던 모든 뜻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을 다시 세우시어 이삭 헌제로써 그의 ‘상징헌제’의 실패를 탕감복귀하시려는 섭리를 하실 수 있었던 것인가 ?  첫째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아담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1차였고,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2차였으며,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3차였다. 그런데 3수는 완성수(후편 제3장 제2절 Ⅳ)이기 때문에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시려는 섭리가 연장되기 제3차만이었던 아브라함 때에는, 이 섭리를 완성해야 할 원리적인 조건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실체로 헌제하여, 보다 큰 것으로써의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상징헌제’ 실수로 인하여 상징적으로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시 찾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로는 위에는 자세히 말한 바와같이, 헌제를 드리는 아브라함의 입장은 곧 아담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사탄은 아담과 그의 자식 가인에게 침범함으로써 2대에 걸쳐 그들을 빼앗아 갔었기 때문에, 탕감복귀원칙에 의하여 하늘 편에서도 아브라함과 그 자식의 2대에 걸쳐서 빼앗아 올 수 있는 섭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째로 아담은 직접 헌제를 하지 못하였으나, 섭리 적으로 보아 노아는 아담과 같은 입장에 있으면서도, 소생 ‘상징헌제’에 성공한 아벨의 심정의 터 위에 있었기 때문에, 방주로써 직접 ‘상징헌제’를 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소생 ‘상징헌제’에 성공한 아벨의 터전과 장성 ‘상징헌제’에 성공한 노아의 기대 위에 부름 받아, 완성 ‘상징헌제’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그렇듯 ‘상징헌제’에 실수하였지만, 하나님은 아벨이나 노아가 ‘상징헌제’에 성공한 역사적인 심정의 기대를 조건으로, 그를 다시 세워 한 번 더 헌제를 하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드릴 때에도 ‘상징헌제’를 하던 때와 같이, 먼저 아담가정을 복귀하는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이삭헌제를 위한 믿음을 세워야 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다시 자기의 처 사라와 남매의 입장에 서 가지고 사라를 그랄왕 아비멜렉에게 빼앗기어 일단 그의 처가 되어진 처지에서, 다시 찾아오는 역사를 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때에도 사라와 함께 인류를 상징하는 노비와 만물세계를 상징하는 제물을 찾아 가지고 나왔던 것이다(창세기 20장 1 ~ 16절).  그러면 아브라함은 이삭헌제를 어떻게 하였는가 ? 아브라함이 그의 절대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의 자식으로 받았던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죽이려 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시면서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세기 22장 12절)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대하는 아브라함의 심정이나, 그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과 충성에서 나온 행동은, 벌써 그로 하여금 이삭을 죽였다는 입장에 서게 하였기 때문에, 이삭으로부터 사탄을 분립하게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탄이 분립된 이삭은 벌써 하늘 편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죽이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다. ‘이제야’라고 하신 말씀에는,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에 대한 책망과 이삭헌제의 성공에 대한 하나님이 기쁨이 아울러 강조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이삭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삭을 통하여 이루어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와 같이 이삭을 다시 하늘 편으로 분립함으로써 새로운 섭리노정을 출발하기 위하여, 모리아 산상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는 3일기간을 소비하였다. 그렇기 대문에 이 3일기간은 그 후에도 계속하여, 새로운 섭리노정을 출발하는데 있어서의 사탄을 분립하는 기간으로 필요한 것이 되었다. 야곱도 하란에서 그 가족을 이끌고 가정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때에, 사탄 분립의 3일기간이 있었고(창세기 31장 20~22절), 모세도 역시 애급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때에, 사탄분립의 3일기간을 지난 후에야 홍해를 향해 출발하였었다(출애급기 8장 27~29절). 예수님도 영적으로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실 때, 사탄분립의 무덤 3일기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으로 복귀할 때에도, 본 진에 앞서 그들을 인도한 법궤가 사탄분립의 3일노정을 걸었던 것이다(민수기 10장 33절).          ⅲ. 뜻으로 본 이삭의 위치와 그의 상징헌제  아브라함은 일단 그의 상징헌제에 실패하였지만, 그를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룰 수 있는 원리적인 조건이 있었다는 데 관해서는 이미 위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그러나 예정론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자기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고 실패한 장본인인 아브라함을 중심하고는, 또다시 같은 섭리를 되풀이할 수는 없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상징헌제에서 실패한 아브라함을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 세워야 했던 것이고, 또 그로부터 연장된 복귀섭리를 연장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 세워야 했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창세기 22장 2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날 자(이삭)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세기 15장 4~5절)고 하심으로써 이삭을 통하여 선민을 부르실 것을 약속하셨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그 약속의 자식인 이삭을 죽이려 했던 충성은, ‘상징헌제’에 실수함으로 인하여 사탄의 침범을 당한 자기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것과 같은 입장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삭을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은, 아브라함 자신도 이삭과 같이 죽은 입장에서, 침범하였던 사탄을 분립함과 동시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삭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상징헌제’의 실패로 침범했던 사탄을 분립하였고, 더 나아가서 뜻을 중심하고 이삭과 일체불가분의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죽음의 자리에서 살아난 이삭과 아브라함은 서로 그 개체는 다르면서도 뜻을 중심하고 보면 한 몸이 되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중심한 섭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삭을 중심한 섭리에로 연장되더라도, 그 섭리에서 이삭이 성공만 하면, 이 성공은 바로 이삭과 한 몸된 아브라함의 성공도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그 섭리는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연장되었어도, 뜻을 중심하고 보면 아브라함이 실패도 하지 않았고 또 그 섭리가 연장도 되지 않은 것과 같이되었던 것이다.  이삭헌제 때의 그의 나이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가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갔을 뿐만 아니라(창세기 22장 6절), 번제에 쓰일 양이 없는 것을 염려하여,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그의 부친에게 물어봤던 것(창세기 22장 7절)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이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번제를 드릴 때에 이삭 자신이 그것을 협조하였으리라는 사실도 또한 미루어 알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뜻에 대한 사리를 분별할 수 있을 정도의 상당한 나이에 도달해 있었던 이삭이, 만일 번제를 위하여 자기를 죽이려는 부친에게 반항하였다면, 하나님이 그 이삭헌제를 받으셨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충성과 그에 못지 않은 이삭의 충성이 합동하여 이삭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사탄을 분립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헌제를 중심하고 이삭과 아브라함이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으로써, 첫째로 아브라함은 ‘상징헌제’ 실수로 인하여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여, 그 실수 이전의 입장으로 탕감복귀해 가지고, 그 입장에서 자기의 섭리적인 사명을 이삭에게 넘겨줄 수 있게 되었고, 둘째로 이삭으로서는, 그가 뜻 앞에 순종 굴복함으로써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늘의 사명을 이어받아, 다음에 ‘상징헌제’를 드리기 위한 믿음을 세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아브라함의 뜻이 이삭에게로 옮겨진 후,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창세기 22장 13절)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수양으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것은 그대로 이삭을 중심하고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여 세워진 ‘상징헌제’가 된 것이었다. 이삭이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갔던 사실로 보아, 아브라함이 수양을 번제로 드리는데 있어서도, 이삭이 그를 협조하였으리라는 것은 추측하기에 어렵지 않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수양으로 ‘상징헌제’를 드렸다 하였지만, 뜻으로 보면 그와 한몸이 되어 그의 사명을 이어받은 이삭 자신이 헌제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이삭은 아브라함의 사명을 넘겨받고 그를 대신한 입장에서, ‘상징헌제’에 성공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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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2

    그러면 아브라함의 상징헌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하여는, 원래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려 하셨던 노아와 그 가정의 입장을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아담과 그 가정의 입장에도 서야 했었기 때문에, 아담가정에서 가인 아벨의 헌제를 중심하고 복귀하려 했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상징적인 조건물을 바쳐야 했던 것이다. 나아가 그는 또 노아가정이 방주를 중심하고 복귀하려 했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상징적인 조건물을 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물로 바쳐야 했었다. 이러한 상징적인 조건물로 바친 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상징제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상징제물로 바쳤던 비둘기와 양과 암소는 과연 무엇을 상징하였던가 ? 이 세 가지의 상징제물은 3단계의 성장과정을 통하여 완성되는 천주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즉 그 중의 비둘기는 소생을 상징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섭리 완성자 곧 소생섭리 완성자로 오셨었다. 즉 예수님은 비둘기로 표시된 소생섭리 완성자로 오셨기 때문에, 그에 대한 표징으로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의 신이 비둘기 모양으로 그위에 임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3장 16절). 한편 또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제물 실수를 복귀하려고 오신 분으로서, 먼저 사탄이 침범했던 그 비둘기를 복귀한 입장에서야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비둘기로써 그가 소생 구약섭리 완성자로 오셨음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다음으로 양은 장성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제물실수를 복귀하려고 오신 분으로써, 비둘기로써 표시된 모든 것을 복귀한 구약섭리의 기대 위에서, 양으로써 표신된 모든것을 복귀해야 할 장성 신약섭리의 출발자이기도 하셨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세례요한에 의하여, 비둘기로 표시된 소생섭리의 완성자라는 증거를 받으신 후, 어느 날 세례요한은 또 예수님이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자,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장 29절)라고 함으로써, 예수님이 장성사명 출발자이심을 증거하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암소는 완성을 상징하였다. 사사기 14장 18절을 보면 삼손이 수수께끼의 문제를 냈을 때, 불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아내로 하여금 삼손을 꾀여 그 내용을 알아내게 함으로써 그것을 푼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삼손은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갈지 아니하였더면 나의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고 말하였다. 이와같이 삼손은 아내를 암소로 비유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전 인류의 신랑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가 재림하실 때까지의 성도들은, 오시는 신랑 앞에 신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신부가 성도들이 다시 오시는 신랑된 예수님과 어린양 잔치를 치른 후에는, 신부가 아니고 아내가 되어 남편된 예수님과 더불어 천국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재림 이후의 완성 성약시대는 아내의 시대요, 따라서 암소의 시대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암소는 곧 완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많은 영통인들이 이 때가 ‘소’시대라고 계시 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3제물은 또 무엇을 탕감복귀하는 것인가 ? 아브라함은 그의 ‘상징헌제’로써, 일찍이 아담과 노아의 각 가정을 중심한 섭리에서, 그들이 ‘상징헌제’로써 탕감복귀하려다가 사탄에게 내주었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하는 동시에, 또 그들이 ‘실체헌제’로써 탕감복귀하려다가 실패하여 사탄에게 내주었던 모든 것을 재탕감복귀할 수 있는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였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상징헌제’는 아담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이렇게 3대에 걸친 종적인 섭리의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그 3제물로써 일시에 횡적으로 복귀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소생, 장성, 완성의 3단계를 상징하는 비둘기와 양과 암소를 한 제단에 벌여 놓고 헌제한 것은, 마치 아담의 당대에서 3단계의 성장기간을 완성하려 했던 것과 같이, 아담의 입장인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소생 아담 장성 노아 완성 아브라함의, 뜻으로 본 3대에 걸쳐서 탕감복귀하시려던 종적인 섭리를 일시에 횡적으로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헌제는 사탄이 침범하였던 3수로 표시된 모든 조건들을 일시에 탕감복귀함으로써, 전 복귀섭리를 단번에 이루시려는 뜻을 상징적으로 표시한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 ‘상징헌제’를 어떻게 드렸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겠다. 창세기 15장 10절 내지 13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다시 제물은 모두 둘로 쪼개서 제단의 좌우에 놓았으나 비둘기만은 쪼개지 않 그대로 놓았기 때문에, 솔개가 그 고기 위에 내려왔으므로 아브라함이 이것을 쫓았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그 날 해질 때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창세기 15장 13절)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쪼개야 할 비둘기를 쪼개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위에 솔개가 내렸었고,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민족이 애급에 들어가서 400년간을 고역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이 어찌하여 죄가 되었는가 ? 이 문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풀지 못한 문제로서 남아져 왔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원리를 통하여서만 명확히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면 제물을 쪼개야 하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하는 것을 먼저 알아보기로 하자.  구원섭리의 목적인 선과 악을 분립하여 악을 멸하고 선을 세움으로써, 선 주권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아담 한 존재를 가인과 아벨로 분립한 후에 헌제해야 했던 것이나, 또 노아 때에 홍수로써 악을 치고 선을 분립했던 것 등의 목적은 모두 선 주권을 복귀하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제물을 조개 바치게 함으로써, 아담이나 노아로써 이루지 못하였던 선 악 분립의 상징역사를 이루려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물을 쪼개는 것은 첫째로 아담가정에 있어서, 선악의 모체인 아담을 선과 악의 두 표시 체로 분립하기 위하여, 아벨과 가인으로 갈라 세운 것과 같은 입장을 복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둘째로는 노아가 홍수 40일로써, 선과 악을 갈라 세웠던 입장을 복귀하기 위함이었으며, 세째로는 사탄 주관하에 있는 피조세계에서 선주권의 세계를 갈라 세우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네째로는 사탄과의 혈연관계를 통하여 들어온 사망의 피를 뽑아, 성별하는 조건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쪼개지 않은 것이 어찌하여 죄가 되는가 ? 쪼개지 않은 것은 첫째로 가인과 아벨을 분립하지 않은 입장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대할 수 있는 아벨적인 대상이 없었고,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에게 합당한 헌제가 되지못하였으므로, 결국 가인 아벨의 헌제 실패는 탕감복귀되지 않았다. 둘째로 그것은 노아를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의 홍수심판에서 선 악을 분립하지 못하였던 상태 그대로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이 상대하여 섭리하실 수 있는 선의 대상이 없게 되어, 홍수심판에서 실패한 입장으로 되돌아간 결과가 되었다. 세째로 그것은 사탄 주관하에 있는 피조세계에서 하나님이 상대하실 수 있는 선주권의 세계를 분립하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네째로 그것은 사망의 피를 뽑아 성별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상대하여 섭리하실 수 있는 성물이 되지못하였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비둘기를 쪼개지 않고 바침으로 인하여, 그것은 사탄것 그대로를 바친 것이 되어, 결국 그것은 사탄의 소유물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여 준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소생을 상징하는 제물인 비둘기가 사탄의 소유물로 남아지게 되었으므로, 소생의 기대 위에 세워져야 할 장성과 완성을 상징하는 양과 암소에게도 역시 사탄이 침범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상징제물은 모두 사탄에게 바친 결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이 범죄가 된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는 상징제물에 솔개가 내렸다는 것은(창세기 15장 11절)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인간시조가 타락한 이후, 하나님이 세우시려는 뜻 앞에는 반드시 사탄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즉 창세기 4장 7절을 보면, 가인과 아벨이 헌제를 할 때에도 사탄이 그들을 엿보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노아 때에도 심판 직후에 사탄이 노아가정에 침범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것을 가마귀로써 보여주셨다(창세기 8장 7절15)).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상징헌제’를 할 때에도, 그 제물에 침범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던 사탄은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을 보고 곧 그 제물에 침범하였었다. 그리하여 성경은 이 사실을 솔개가 제물 위에 내린 것으로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헌제’의 실수는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가 ?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말미암아, 그 상징헌제로써 탕감복귀하려던 모든 것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결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방인 애급에서 400년간 고역을 하게 되었던 것이니,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던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노아 때에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내주셨던 10대와 심판 40수를 동시에 탕감복귀하시기 위하여, 400년이란 사탄 분립기간을 세우시고, 그 분립기대 위에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상징헌제’를 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그 제물을 또 사탄에게 바친 것이 되었기 때문에, ‘상징헌제’로써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기 위한 탕감기간이었던 노아 이후의 400년기간도 역시 사탄에게 내주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하기 전의 입장이며, 따라서 노아가 방주를 짓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입장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서는 이 400년이란 사탄분립기간을 다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고역 하는 400년기간은, 노아나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출발하려 했었던 그 입장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하여, 모세를 그 터전 위에 세우시기 위한 기간이었다. 따라서 이 고역기간은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인한 벌을 받은 기간인 동시에,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를 위하여 사탄분립의 터를 닦는 기간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한 제단에 3제물을 동시에 드리는 ‘상징헌제’에 성공케 하심으로써, 소생 장성 완성으로 표시된 모든 섭리를 동시에 이루려 하셨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논술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에 실패함으로 말미암아서, 그를 중심한 섭리는 다시 이삭을 거쳐 야곱까지 3대에 걸친 연장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패는, 노아의 방주를 중심한 ‘상징헌제’와 가인 아벨을 중심한 ‘상징헌제’등의 실패를 반복한 것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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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제3절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함의 타락행위로 말미암아 노아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창조목적을 완성하시려는 ‘뜻’을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시고 이루시는 것이므로, 노아가 하늘을 대하여 충성했던 그 심정의 터전 위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그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를 다시 하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노아가정이 이루려다 못 이루었던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여, 그 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맞이하여야만 하였다. 따라서 아브라함도 먼저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고, 그 기대 위에서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               Ⅰ. 믿음의 기대            1.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은 바로 아브라함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노아를 중심하고 이루려 하셨던 ‘뜻’을 계승하여 이루기 위한 중심인물로 세워졌던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노아의 노정을 위하여 세워졌다가 함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내주게 되었던 모든 조건들을 탕감복귀한 입장에 서지 않으면, 노아를 중심한 ‘뜻’을 이어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노아가 첫째로 사탄에게 내주었던 조건은,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10대와 심판 40일기간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그 10대와 함께, 그 10대가 각각 심판 40수를 탕감복귀한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1대를 40일기간으로써는 탕감복귀할 수 없었기 때문에, 후일 모세 노정에 있어서 정탐 40일의 실수를 광야 표류 40년기간으로써 탕감복귀한 것과 같이(민수기 14장 34절), 여기에서도 각 대가 심판 40일의 실수를 40년기간으로 탕감복귀하는 통산년수를 세우게 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노아로부터 10대에 걸친 400년 탕감기간을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노아대신으로 아브라함을 세우셨다. 이와같이,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는 1600년간에 10대를 복귀하였던 시대에서, 400년간에 10대를 복귀하는 시대로 넘어왔기 때문에, 노아이후 인간의 수명은 갑자기 짧아지게 되었다.  노아가 둘째로 사탄에게 내주었던 조건은, 믿음의 조상의 입장과 아벨 대신이었던 함의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과 함의 입장을 탕감복귀하지 않고는, 노아의 입장에 설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노아 대신 믿음의 조상의 입장에 서기 위하여는, 노아가 믿음과 충성으로 방주를 지었던 것과같이, 아브라함도 믿음과 충성으로 ‘상징헌제’를 드려야만 했었다. 한편 또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아벨의 대신이었던 함(그들은 모두 둘째 아들로서 실체헌제의 중심이었다)을 사탄에게 내주셨으므로, 탕감복귀원칙에 의하여, 하나님도 그 대신으로 사탄의 가장 사랑하는 입장에 있는 존재를 빼앗아 오셔야 했던 것이다. 그렇기 대문에 하나님은 우상장사인 데라로부터, 그 아들 아브라함을 이끌어 내셨던 것이다(여호수아 24장 2~3절).  아브라함은 노아의 대신이요, 따라서 아담의 대신이기 때문에 복귀한 아담형의 인물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과 노아에게 축복하셨던 것과 같이, 아브라함에게도 자녀를 번식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라고 축복하셨던 것이다(창세기 12장 2절). 아브라함은 이러한 축복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하란에서 그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아내 사라와 조카 롯 그리고 거기에서 취한 모든 재물과 사람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갔었다(창세기 12장 4~5절).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러한 아브라함의 노정으로써, 장차 야곱과 모세가 사탄세계인 하란과 애급에서 각각 그 처자를 데리고 재물을 취하여, 그 어려운 환경을 박차고 떠나 가나안으로 복귀해야 할 본보기노정으로 삼게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 노정은 또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사탄세계의 모든 인간과 만물세계를 하나님의 세계에로 복귀해야 할 본보기노정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후편 제2장 제1절 Ⅱ 참조).            2.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      ⅰ.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비둘기와 양과 암소로써 제사를 드릴 것을 명하셨던 것이다. 이것들은 바로 아브라함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들이었던 것이다(창세기 15장 9절). 따라서 마치 노아가 ‘상징헌제’로써 방주를 지어 바치려하였을 때, 그 헌제를 위한 믿음을 세웠던 것과 같이, 아브라함도 이 ‘상징헌제’를 하기 위하여는 그것을 위한 믿음을 세워야만 했었다. 성서에는 노아가 어떠한 방법으로 그 믿음을 세웠는가 하는 것은 분명히 씌어 있지 않다. 그러나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가 당세의 의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방주를 지으라시는 명령을 받기에 합당한 의인이 되기까지에는, 필시 어떠한 믿음을 세웠음에 틀림없다. 실제에 있어 복귀섭리는 이와같이 믿음에서 믿음을 세워 나아가게 하는 것이었다(로마서 1장 17절). 그러면 아브라함은 ‘상징헌제’를 하기 위하여 어떠한 믿음을 세웠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아브라함은 제2 인간조상 노아의 입장을 복귀해야 했었다. 그는 또 아담의 입장에도 서야 했기 때문에, ‘상징헌제’를 하기 전에 아담가정이 입장을 복귀하는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먼저 세워야 하였던 것이다.  창세기 12장 10절 이하의 성구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기근으로 인하여 애급으로 내려갔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애급왕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고자 하였을 때, 아브라함은 그와 부부관계라고 하면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하여, 미리 짠 바 계책대로 자기의 아내인 사라를 누이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아브라함은 그의 처 사라를 남매의 입장에서 바로의 아내로 빼앗겼다가, 하나님이 바로를 징계하시어 다시 그 아내를 찾아오는 동시에, 데리고 갔던 조카 롯과함께 많은 제물을 취해 가지고 나왔었다. 아브라함은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서, 아담가정의 입장을 탕감복귀하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이러한 섭리노정을 걸어야만 했던 것이다.  아담과 해와는 미완성기에서 아직 남매와 같은 입장에 있었을 때에, 천사장이 해와를 빼앗아감으로 인하여 그의 자녀들과 만물세계까지 사탄의 주관하에 속하게 되었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조건을 세우려면,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남매와 같은 입장에서, 처 사라를 사탄의 실체인 바로에게 빼앗기었다가, 그의 처의 입장에서 다시 찾아옴과 동시에, 전 인류를 상징하는 롯과 만물세계를 상징하는 제물을 찾아오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창세기 14장 16절). 아브라함의 이러한 노정은 뒷날 예수님이 오셔서 걸어야 할 본보기노정이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와같은 탕감조건을 세운 후에야 비로소 비둘기와 양과 암소로써 ‘상징헌제’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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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정이 보여준 교훈

   Ⅲ. 노아가정이 보여준 교훈  노아가 120년간이나 걸려서 산 꼭대기에다 배를 지었던 것은, 누구나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극심한 비난과 조소를 받은 그 일로 말미암아서, 노아가정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함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과거의 사실로 미루어 보아서, 함은 설혹 노아가 알몸으로 누어 있는 것이 못마땅하게 생각되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것을 좋게만 볼 수 있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함은 자기를 중심하고 하늘 앞에 선 노아를 비판하고 또 그것을 행동으로 표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담으로부터 1600년이나 지나 40일 홍수심판을 행사하심으로써 찾아 세우셨던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천국가는 길은 겸허와 순종과 인내를 요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또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뜻 성사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여부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셨다. 노아가정은 하나님이 1600년이나 걸려 찾아오셨고, 또 노아가 방주를 짓기까지 120년이나 이끌어 오셨으며, 뿐만 아니라 40일의 홍수로써 전 인류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세우신 가정이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함은 작은 실수로 말미암아서 사탄이 침범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대상이었던 그 가정 전부를 아낌없이 쓸어버리시어,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다음으로 노아가정을 중심한 섭리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이 어떠한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노아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려고 오랜 기간을 두고 애써 찾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정이 일단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를 아낌없이 버리시고 그 대신 아브라함을 택하셨던 사실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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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기대

  2. 실체기대  세례요한은 모세와 같은 처지에 세워졌었기 때문에, 유대민족에게 있어 부모와 자녀의 두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부모의 입장에서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기 때문에 동시에 자녀의 입자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입장도 확립할 수 있었다(본장 제2절 Ⅰ.2). 따라서 세례요한은 모세가 바로궁중에서 40년간의 탕감기간을 지나고,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하여 믿음의 기대를 세웠던 입장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운 터 위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모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모세가 애급인을 쳐 죽이는 것을 보고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사탄 국가인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했던 것이지만, 세례요한을 중심한 유대민족은 로마제국을 떠나 다른 땅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권 밑에 있으면서 그들을 굴복시켜 그 제국을 하늘 것으로 복귀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세례요한을 중심한 기사 이적을 보여 주시어,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를 믿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이루시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잉태에 관한 천사의 놀라운 예고와 또 그 부친이 이것을 믿지 않았을 때 벙어리가 되었던 기사, 그리고 그가 출생할 때에 보여주신 이적 등으로 말미암아,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산중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될고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러라”(누가복음 1장 65~66절1))고 하신 성경의 말씀대로, 이스라엘민족은 세례요한의 출생시부터, 그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으로 목숨을 이어가면서 기도의 생활을 한 그의 빛나는 수도의 생애로 인하여, 제사장들과(요한복음 1장 19절2)) 일반 유대인들(누가복음 3장 15절3)), 그를 메시아로 잘못 알 정도로 그의 신망이 높았던 것이다.  모세가 바로궁중 40년의 탕감기간을 마치고 애급사람으로 죽였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그의 애국심에 감동되어 그를 믿고 따랐더면, 그들은 홍해를 건너거나 광야를 돌지 않고, 또 석판이나 성막이나 법궤도 필요없이 불레셋의 곧은 길을 통하여서 곧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하나님이 기사 이적으로써 믿음의 대상자로 세워 주신 세례요한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복귀함으로써, 메시아를 위한기대를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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