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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대한 예언의 양면

  Ⅴ. 십자가에 대한 예언의 양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그가 「메시아」로 오셨던 전 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예정에서 온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면, 「이사야」서 53장에, 그가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실 것으로 예언되어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실 것을 예언한 말씀만이 성경에 있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원리를 알고 성서를 다시 읽어보면, 구약시대에 이미 선지자 「이사야」에 의하여 예언된 「이사야」서 9장11장, 60장 등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 「마리아」에게 천사를 보내시어 장차 잉태될 예수님이 생전에 「유대」인의 왕이 되어, 영세토록 소멸되지 않을 왕국을 지상에 건설하실 것을 예언케 하셨던 사실을 알게 된다(누가복음 1장 31 – 33절). 그러면 어찌하여 이와 같이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게 되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 자신이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만 완성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전편 제1장 5절 ꁽ.2).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 인간 시조는 그들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고 타락되었다. 이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의 책임분담을 완수할 수도 있었던 것이지만,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그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예를 성서에서 들어보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분담이었기 때문에,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것을 안 따먹고 완성될 수도 있는 반면에, 결과적으로 나타난 사실과 같이 따먹고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한편 또 하나님은 구약시대의 구원섭리를 위한 인간 책임분담의 조건으로 십계명을 주셨던 것인데, 여기에서도 인간은 그것을 지키어 구원을 받을 수도 있었고, 혹은 그것을 지키지 않고 멸망을 당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애급에서 「가나안」복지를 향하여 떠난 「이스라엘」민족이 「모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세워야 할 책임분담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모세」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복지로 들어갈 수도 있었고, 혹은 불순종하여 못 들어가게 될 수도 있었다. 사실상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민족을 이끌고 「가나안」복지로 들어가도록 예정하시고(출애굽기 3장 8절), 그에게 이를 명령하셨었으나, 그들은 불신으로 인하여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그 후손들만이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에게는 인간 자신이 수행해야 될 책임분담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것을 이루어 드릴 수도 있고, 혹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 드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인간은 그 자신의 책임분담 수해 여부에 따라 그 어느 한 면의 결과를 이루어 놓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뜻’ 성사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메시아」를 보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이지만, 오시는 「메시아」를 믿고 안 믿는 것은 인간의 책임분담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내시는 「메시아」를 「유대」민족이 하나님의 뜻대로 믿을 수도 있었던 것이고, 혹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믿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 여부에 따라 나타날 양면의 결과에 대비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의 ‘뜻’ 성사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시지 않을 수 없으셨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서 53장의 기록과 같이,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는 경우에 대한 예언도 하셨지만, 한편 「이사야」서 9장, 11장, 60장과 「누가」복음 1장 31절 이하의 기록과 같이, 저들이 「메시아」를 믿고 모심으로써, 영광으로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경우에 대한 예언도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사야」서 53장의 예언만이 이루어지고, 「이사야」서 9장, 11장, 60장 및 「누가」복음 1장 31절 이하의 예언은 모두 재림하셔서 이루어질 말씀으로 남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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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한계와 예수 재림의 목적

  Ⅳ.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한 구원의       한계와 예수 재림의 목적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 예수님은 영 육 양면의 구원섭리를 완수하셨을 것이다. 그리하여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사야서 9장 6 – 7절)과, 「마리아」에게 나타났던 천사의 교시(누가복음 1장 31 – 33절) 그대로, 또 예수께서 친히 천국이 가까왔다고 하신 말씀(마태복음 4장 17절)과 같이, 그는 영원토록 소멸되지 않는 지상천국을 건설하셨을 것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육신을 창조하시고,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창세기 2장 7절). 이와 같이 영과 육으로 창조된 인간이므로, 타락도 역시 영 육 아울러 된 것이었다. 따라서 구원도 영적 구원과 육적 구원을 아울러 하셔야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강림하셨던 목적이 구원섭리를 완수하시려는 데 있었으므로 그는 영적 구원과 육적 구원을 아울러 완성하셔야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일체를 이룬다는 뜻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스스로 포도나무로, 신도들을 그 가지로 비유하셨고(요한복음 15장 5절), 또 ꡔ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ꡕ(요한복음 14장 20절)고도 하셨다. 이처럼 말씀하신 이유는 영 육 아울러 타락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가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를 믿음으로써 영 육 아울러 그와 하나가 되었다면, 타락인간도 영 육 아울러 구원을 받았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불신하여 그를 십자가에 내주었으므로, 그의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마침내 살해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에 「사탄」의 침범을 당한 예수님을 믿어, 그와 한 몸을 이룬 신도들의 육신도 그대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어 아무리 독실한 신앙자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로써는 육적 구원은 완성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아담」부터 내려오는 혈통적인 원죄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그에게 원죄는 그대로 남아지게 되어, 그는 또 원죄 있는 자식을 낳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육신을 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원죄로 말미암아 항상 육신을 통하여 들어오는 「사탄」침범의 조건을 막기 위함이며, ꡔ쉬지 말고 기도하라ꡕ(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1))한 것도, 이와 같이 십자가에 의한 구속으로도 근절되지 않은, 원죄로 인한 「사탄」침범의 조건을 막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그의 육신이 「사탄」의 침범을 당함으로써, 육적 구원섭리의 목적은 달성하시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의 피의 대속으로 부활의 달성하시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의 피의 대속으로 부활의 승리 적인 기대를 조성함으로써 영적 구원의 기대를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 부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신도들은 영적 구원섭리의 혜택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한 구원은 영적 구원뿐이므로, 잘 믿는 신도들에게도 원죄는 육적으로 여전히 남아 있어서, 그것이 계속적으로 그 자손들에게 유전되어 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도들은 그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죄와 더불어 더욱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십자가로써 청산하시지 못한 원죄를 속하고 육적 구원을 완성함으로써 영 육 아우른 구원섭리의 목적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지상에 재림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십자가의 대속을 받은 성도들도 원죄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사도들 중에서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바울」도, 육적으로 들어오는 죄악의 길을 막을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던 끝에, ꡔ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ꡕ(로마서 7장 22절 – 25절)고 말하였다. 이것은 영적 구원의 완성에 대한 기쁨과 동시에, 육적 구원의 미완성에 대한 비탄을 표명한 것이라 하겠다. 또 「요한」1서 1장 8절1) 내지 10절에 ꡔ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ꡕ라고 한 「요한」의 고백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받고 있는 우리들도, 여전히 원죄 때문에 범죄자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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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십자가의 죽음

 Ⅲ.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  우리는 먼저 성경 상에 나타난 사도들의 언행을 중심 삼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당연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사도들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느낀 뚜렷한 하나의 정염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억울하게 여김으로써 분개하고 서러워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 준 「유대」인들의 무지와 불신을 통분이 여겼으며, 그들의 행위를 패역무도한 것으로 여겨 저주하였다(사도행전 7장 51 – 53절). 그뿐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기독교 신도들과 같은 심정을 가지고 내려왔던 것이다. 만일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예정에서 온 필연적인 결과였다면, 사도들이 그의 죽음을 서러워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인정이겠지만, 하나님의 예정대로 이루어진 그 섭리의 결과에 대해서 그렇게도 분개하고 저주했을 리는 없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예수님은 온당치 않은 죽음의 길을 걸어가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로 보아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과연 하나님의 예정에서 되어진 필연적인 결과였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에서 「이스라엘」 선민을 부르시어 저들을 보호 육성하시고, 때로는 그들을 고난과 시련으로써 인도하셨다.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시어 위로하시며, 장차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굳게 약속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성막과 성전을 지음으로써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게 하시고, 동방박사 「시몬」, 「안나」, 세례「요한」 등을 보내시어 「메시아」의 탄생과 그의 나타나심을 널리 증거 하셨던 것이다. 특히 세례「요한」에 대해서는 그가 잉태될 때 천사가 나타나서 증거한 사실을 「유대」인들이 다 알고 있었고(누가복음 1장 13절1)), 그가 출생할 때에 되어진 이적은 당시의 「유대」성중을 크게 놀라게 하였다(누가복음 1장 63절 – 66절). 뿐만 아니라 광야에 있어서의 그의 수도생활은 모든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가 「메시아」가 아닌 가고 생각케 할 정도로 놀랄만한 것이었다(누가복음 3장 15절).  하나님이 이렇듯 위대한 세례「요한」까지 보내시어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 하게 하셨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유대」인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이 어디까지나 「이스라엘」로 하여금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하려는 데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할 「이스라엘」은 그를 「메시아」로 믿어야만 했었다. 만일 저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다면,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고대해 왔던 그 「메시아」를 누가 십자가에 내주었을 것인가?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 길에 내준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반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길을 가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예수님 자신의 언행으로 보아서,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 과연 「메시아」로 오셨던 그 전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길이었던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모든 섭리가 그러했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도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기를 「메시아」로 믿을 수 있도록 언행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물었을 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한복음 6장 29절1))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또 「유대」인들의 배신행위를 가슴아프게 생각하시고, 호소할 곳이 없어 성을 바라보고 우시면서, 하나님이 2천년 동안이나 애쓰시며 사랑으로 이끌어 온 「이스라엘」선민은 두말할 것도 없고, 이 성마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겨지지 않을 정도로 멸망해 버리고 말 것이라고 저주하시면서, ꡔ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ꡕ(누가복음 19장 41 – 44절1))고, 명백히 그 무지를 지적하셨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ꡔ「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ꡕ(마태복음 23장 37절)라고 하시어, 그들의 완고와 불신을 한탄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위하여 증거하고 있는 성경을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그들의 무지를 책망하시면서 ꡔ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도다ꡕ(요한복음 5장 39 – 40절1))라고 슬퍼하셨다. 그는 또 ꡔ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치 아니하나ꡕ라고 서러워하시면서, 이어 ꡔ「모세」를 믿었다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ꡕ(요한복음 5장 43 – 46절)고도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을 돌이키시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셨던가. 그러나 그들은 그 놀라운 일들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바알세불」이 접한 자라고 비난하지 않았던가(마태복음 12장 24절). 그리고 이러한 비참한 정경을 보시는 예수님은 때로는 ꡔ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ꡕ(요한복음 10장 38절1))고도 말씀하셨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그들에게 화가 있으라고, 분노를 퍼붓기도 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23장 13 – 36절1)).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를 믿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었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도 이와 같이 저들에게 자기를 믿을 수 있도록 언행을 하셨던 것이다. 만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리고 예수님이 원하신 대로 그를 「메시아」로 믿었다면, 누가 그를 십자가의 죽음 길로 몰아냈을 것인가 !  우리는 위에서 논증한 모든 사실로 보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그가 「메시아」로 오셨던 전 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예정에서 온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무지와 불신의 결과로 온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2장 8절의 ꡔ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ꡕ는 성구는, 바로 이 사실을 충분히 증거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라 하겠다.  만일 예수님의 십자가 노정이 하나님께서 본래부터 예정하신 길이었다면, 그는 당연히 가셔야 할 길을 걸어가시면서 무엇 때문에 할만 하면 그 죽음의 잔을 면케 해달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를 올리셨을 것인가(마태복음 26장 39절).  실상 그것은 인간이 타락된 이후, 4천년 동안이나 하나님께서 이루시려고 애쓰셨던 지상천국이 「유대」인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고난의 역사가 그대로 연장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요한」복음 3장 14절을 보면 예수 님께서는 ꡔ「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ꡕ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때, 광야에서 「모세」를 믿지 않게 되자, 불 뱀이 나와서 그들을 물어 죽이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구리 뱀을 장대 끝에 달게 하여 그것을 쳐다본 사람은 살게 하셨다. 마찬가지로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써 만민이 지옥으로 가야만 하게 되었기 때문에, 장차 예수님이 구리뱀과 같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그것을 쳐다보고 믿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을 예견하시면서 예수님은 서글픈 심정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누가복음 19장 44절) 그가 돌아가신 후 「이스라엘」선민이 쇠망한 것을 보아도,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사야」 9장 6절 이하에 ꡔ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ꡕ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다윗」왕의 위를 가지고 오셔서, 영원히 멸하지 않을 왕국을 세우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잉태될 때에도,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ꡔ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ꡕ(누가복음 1장 31 – 33절)는 말씀을 전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스라엘」선민을 불러, 2천년간이나 고난 가운데서 이끌어 나오신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내시어 영원히 존속할 왕국을 이룩하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다가 「유대」인들에게 몰려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저들은 선민의 자격을 잃어버리고 지리멸렬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민족적인 학대를 받아 나왔다. 이것은 그들이 신봉해야 할 「메시아」를 도리어 살해함으로써, 구원섭리의 목적을 이루시지 못하게 하였던 그 범죄에 대한 벌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이후 수많은 성도들이 당하여 온 십자가의 고난도, 예수님을 살해한 연대적 범죄에 대한 형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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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의 강림과 재림의 목적

 제4장 메시아의 강림과 그 재림의 목적  ꡔ메시아ꡕ라는 낱말은 ꡔ히브리ꡕ말로서 ‘기름 부은 사람’이라는 뜻인데, 특히 왕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선민들은 그의 선지자들의 예언에 의하여,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구세주를 왕으로 보내시마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었으니, 이것이 곧 「이스라엘」의 「메시아」사상이다. 이러한 「메시아」로 오셨던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이 「그리스도」란 말은 「메시아」와 같은 뜻의 「헬라」어로서, 보통 ‘구세주’로 통한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셔야 한다. 이처럼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하게 된 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원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먼저 타락에 관한 문제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타락은 곧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타락에 관한 문제를 논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창조목적에 관한 문제를 해명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먼저 지상에 천국이 건설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지상천국은 이루어지지 않고 지상지옥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 후 하나님은 이 지상천국을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거듭해 내려 오셨다. 따라서 인류역사는 복귀섭리역사이기 때문에, 이 역사의 목적은 먼저 지상에 천국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문제들을 이미 전편 제3장 제1절과 제2절에서 상세히 논술한 바 있는 것이다.        제1절 십자기에 의한 구원섭리  Ⅰ. 메시아로 강림하셨던 예수의 목적   예수님이 「메시아」로 강림하셨던 목적은, 타락인간을 완전히 구원하시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천국을 이루셔야 했던 것이며, 따라서 지상천국을 먼저 이루셔야 했었다.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ꡔ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ꡕ(마태복음 5장 48절)고하신 말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 신성을 갖게 되므로 죄를 지을 수 없다. 따라서 그러한 인간은 창조목적을 두고 보면, 하늘 아버지의 완전함같이 완전한 인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바로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으로 복귀되어서 천국 인이 되라는 말씀이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타락인간을 천국 인으로 복귀케 하여, 지상천국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고(마태복음 6장 10절1)), 또 천국이 가까왔으니 회개하라고 외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4장 17절). 그래서 그의 앞길을 예지 하러 왔던 세례「요한」도 역시 천국이 가까왔다고 부르짖었던 것이다(마태복음 3장 2절).  그러면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으로 복귀되어,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하늘 아버지의 완전함과 같이 완전하게 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 것인가 ? 이러한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그의 심정을 체휼함으로써 신성을 갖게 되어 하나님과 불가분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은 원죄가 없으므로 다시 속죄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구주가 필요 없게 되며, 타락인간에게 요구되는 기도나 신앙의 생활도 역시 필요 없게 된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인간들에게는 원죄가 없으므로 그들은 원죄 없는 선의 자손을 번식하게 되며, 따라서 그 자손들에게도 속죄를 위한 구주가 필요 없게 된다.   Ⅱ.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하여 구원섭리가 완성되었는가 ?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하여 과연 복귀섭리의 목적이 완성되어, 모든 성도들이 창조본성을 복귀함으로써, 지상천국을 이루게 되었는가 ? 인류역사이래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함으로써, 신성을 갖게 되어 하나님과 일체불가분의 생활을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따라서 속죄가 필요 없고, 기도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성도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사실상 「바울」같은 훌륭한 신앙자에게 있어서도 눈물겨운 기도와 신앙생활은 없을 수 없었던 것이다(로마서 7장 18-25). 뿐만 아니라 아무리 잘 믿는 부모라 할지라도 구주의 대속함이 없이 천국에 갈 수 있는 죄없는 자식을 낳을 수는 없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그 부모가 여전히 자식에게 원죄를 유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 신도들의 이러한 신앙생활의 실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 그것은 십자가에 의한 속죄가 우리의 원죄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인간의 창조본성을 완전히 복귀해 주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듯 십자가의 대곳으로써는, 「메시아」로 강림하셨던 그의 목적을 완전히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재림하실 것을 약속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지상천국을 복귀하시려는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이 절대적이어서 변할 수 없는 것임을 아셨기 때문에, 그는 다시 오셔서 그 뜻을 완성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면 십자가의 희생은 전혀 무위로 돌아간 것인가 ? 결코 그런 것은 아니다(요한복음 3장 16절). 만일 그렇다면 오늘의 기독교의 역사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체험으로 보아도, 십자가 대속의 은사가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대속의 역사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원죄까지 완전히 벗겨줌으로써 죄를 지으려 하여도 지을 수 없는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시켜서, 지상천국을 이루어 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십자가로 인한 속죄의 한계는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현대 지성인들의 신앙을 교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문제를 밝히 알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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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 3

                                  제3절 타락인간과 예수  타락한 인간은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자기보다 저급하게 창조된 천사를 우러러 볼 정도로 천한 자리에 떨어져버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모두 갖추고 계셨기 때문에, 천사를 비롯한 모든 피조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고린도전서 15장 27절), 한편 타락인간에게는 원죄가 있으므로,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원죄가 없기 때문에,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타락인간은 하나님의 뜻과 그의 심정을 알 수 없다. 혹시 그것을 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극히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을 완전히 아시고 또 그 심정을 체휼하는 자리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타락된 상태에 머물러 있는 한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이지만, 참 부모 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중생하여 원죄를 벗고 선의 자녀가 되면, 예수님과 같이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으로 복귀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 인간사회의 부자 간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서차가 있을 뿐, 그 본연의 가치에는 추호의 차이도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고(에베소서 1장 22절), 우리는 그의 몸이 되어 지체가 된다(고린도전서 12장 27절). 따라서 예수임은 본성전이요 우리는 그의 분성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의 가지이며(요한복음 15장 5절), 한편 돌감람나무인 우리는 참 감람나무 되시는 예수님에게 접붙임으로써, 참 감람나무가 될 수 있는 것이다(로마서 11장 17절), 또 그(예수님)가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와 같은 줄을 안다(요한 1서 3장 2절)고 한 성구도 있다. 그리고 성경은 오직 예수님은 처음 익은 열매요 우리는 다음 익은 열매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고린도전서 15장 23절).            제4절 중생론과 삼위일체론  삼위일체론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학계에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중의 하나로 논란되어 왔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상 그 근본적인 뜻을 모르는 채 그대로 지내왔던 문제 중의 하나가 역사 본항에서 다루려는 중생론인 것이다.               Ⅰ. 중생론            1. 중생의 사명으로 본 예수와 성신  예수님은 자기를 찾아온 유대관원 니고데모에게, 중생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3장 3절). 중생이라는 말은 거듭난다는 뜻이다.  그러면 인간은 왜 중생해야 되는 것인가 ? 우리는 여기에서 타락인간이 중생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를 알아보기로 하자.   아담과 해와가 창조이상을 완성하여 인류의 참 부모가 되었다면, 그로부터 태어난 자녀들은 원죄가 없는 선한 자녀가 되어 지상천국을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타락하여 인류의 악의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악한 자녀들을 번식하여 지상지옥을 이룬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대로, 타락한 인간들은 원죄가 없는 자녀로서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를 낳아 주는 것은 부모가 아니면 안된다. 그러면 타락한 우리들을 원죄가 없는 자녀로 다시 낳아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는 선한 부모는 누구일 것인가 ?  원죄 있는 악의 부모가 원죄 없는 선의 자녀를 낳을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선의 부모가 타락인간들 가운데에 있을 리는 만무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부모는 하늘로부터 강림하셔야 하는데, 그렇게 오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다. 따라서 그는 타락한 자녀들을 원죄가 없는 선의 자녀로 다시 낳아, 지상천국을 이룩하시기 위하여 참 아버지로 오셨던 분이시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1장 3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중생)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은 아담으로써 못 이루셨던 참 아버지로 오셨기 대문에 성경은 그를 후아담이라고 하였다(고린도전서 15장 45절), 영존하신 아버지라 하였으며(이사야9장 6절), 또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를 다시 보내시어 그로 하여금 타락한 인간들의 마음을 부모로 오시는 예수님 앞으로 돌이키게 함으로써, 그들로 자녀가 되게 하시겠다고도 말씀하셨다(말라기 4장 6절).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시리라(마태복음 16장 27절)고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 혼자서 어떻게 자녀를 낳을 수 있겠는가 ? 그러므로 타락한 자녀들을 선의 자녀로 다시 낳아 주시기 위하여는 참 아버지와 함께 참 어머니도 계셔야 하는 것이다. 죄악의 자녀들을 다시 낳아 주시기 위하여 그 참 어머니로 오신 분이 바로 성신이시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성신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요한복음 3장 5절)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와같이 성신은 참 어머니로서, 후해와로 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를 여성신으로 계시 받은 사람이 많다. 그리고 성신이 여성신이시기 때문에 성신을 받지 않고서는 예수님 앞에 신부로 설 수 없는 것이다. 이와같이 성신은 여성신이시기 때문에 위로와 감동의 역사를 하시는 것이며(고린도전서 12장 3절), 또 해와가 지은 죄를 탕감복귀하시기 위하여 죄를 씻는 역사를 하시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남성이시므로 하늘(양)에서, 성신은 여성이시므로 땅(음)에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2. 로고스의 이성성상으로 본 예수와 성신  로고스라는 낱말은 헬라어로서, 말씀 혹은 이법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요한복음 1장 1절15) 이하를 보면, 로고스는 하나님의 대상으로서, 하나님과 수수작용인 관계의 위치를 취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로고스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이성성상으로 계시므로, 그의 대상인 로고스도 역시 이성성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로고스가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지 않다면, 로고스로 창조된 피조물(요한복음 1장 3절)이 또한 이성성상으로 되었을 수가 없다. 이러한 로고스의 이성성상이 하나님의 형상적인 실체대상으로 분립된 것이 아담과 해와였던 것이다(전편 제1장 제1절 Ⅰ).  아담이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 즉 ‘생명나무’가 되고, 해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표시된 창조이상을 완성한 여성이 되어 인류의 참 부모가 되었더라면, 그 때에 하나님의 3대축복이 완성되어 지상천국이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되었기 때문에 반대로 지상지옥이 되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인간들을 다시 낳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후아담(고린도전서 15장 45절)으로서 ‘생명나무’의 사명을 가지고(요한계시록 22장 14절) 인류의 참 아버지로 오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또한 여기에 후해와의 사명을 가진 인류의 참 어머니(요한계시록 22장 17절)가 마땅히 계셔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 이와 같이 타락인간을 다시 낳아 주실 참 어머니로 오신 분이 성신인 것이다.            3. 예수와 성신에 의한 영적 중생  부모의 사랑이 없이는 새 생명이 태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린도전서 12장 3절19)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성신의 감동에 의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면, 영적 참 아버지이신 예수님과 영적 참 어머니이신 성신과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나타나는 영적 참부모의 사랑을 받게 된다. 그러면 여기에서 그를 믿는 성도들은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이 주입되어, 새로운 영적 자아로 중생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영적 중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은 영 육 아울러 타락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더 나아가 육적 중생을 함으로써 원죄를 청산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의 육적인 중생에 의한 육적 구원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재림하시게 되는 것이다.               Ⅱ. 삼위일체론  창조원리에 의하면, 정분합작용에 의하여 3대목적을 이룬 4위기대의 터전이 없이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는, 예수님과 성신도 하나님의 이성성상으로부터 실체로 분립된 대상으로 서 가지고 서로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함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한 4위기대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때에 예수님과 성신은 하나님을 중심하고 일체가 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삼위일체이다.  원래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신 목적은, 그들을 인류의 참 부모로 세워 합성일체화시켜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한 4위기대를 이루시어 삼위일체가 되게 하시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만일 그들이 타락되지 않고 완성되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참 부모로서의 삼위일체를 이루어서 선의 자녀를 번식하였다면 그의 후손들도 역시 하나님을 중심한 선의 부부를 이루어, 각각 삼위일체가 되었을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3대축복 완성에 의한 지상천국은 그 때에 이미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여 사탄을 중심하고 4위기대를 이루었기 때문에, 사탄을 중심한 삼위일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도 역시 사탄을 중심한 삼위일체를 형성하여 타락한 인간사회를 이루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과 성신을 후아담과 후해와로 세워, 인류의 참 부모가 되게 하심으로써, 타락 인간을 중생케 하여 가지고, 그들도 역시 하나님을 중심한 삼위일체가 되게 하셔야만 한다. 그러나 예수님과 성신은 하나님을 중심한 영적인 삼위일체를 이룸으로써, 영적 참 부모의 사명만을 하시었다. 따라서 예수님과 성신은 영적 중생의 사명만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성도들도 역시 영적인 삼위일체로만 복귀되어, 아직도 영적 자녀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스스로 하나님을 중심한 실체적인 삼위일체를 이루시어 영 육 아우른 참 부모가 되심으로써, 타락인간을 영 육 아울러 중생케 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원죄를 청산하고 하나님을 중심한 실체적인 삼위일체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재림하시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타락인간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창조본연의 4위기대를 조성하면, 그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3대축복을 이룬 지상천국이 복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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