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의 강림과 재림의 목적

 제4장 메시아의 강림과 그 재림의 목적




 ꡔ메시아ꡕ라는 낱말은 ꡔ히브리ꡕ말로서 ‘기름 부은 사람’이라는 뜻인데, 특히 왕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선민들은 그의 선지자들의 예언에 의하여,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구세주를 왕으로 보내시마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었으니, 이것이 곧 「이스라엘」의 「메시아」사상이다. 이러한 「메시아」로 오셨던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이 「그리스도」란 말은 「메시아」와 같은 뜻의 「헬라」어로서, 보통 ‘구세주’로 통한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셔야 한다. 이처럼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하게 된 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원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먼저 타락에 관한 문제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타락은 곧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타락에 관한 문제를 논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창조목적에 관한 문제를 해명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먼저 지상에 천국이 건설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지상천국은 이루어지지 않고 지상지옥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 후 하나님은 이 지상천국을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거듭해 내려 오셨다. 따라서 인류역사는 복귀섭리역사이기 때문에, 이 역사의 목적은 먼저 지상에 천국을 복귀하려는 데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문제들을 이미 전편 제3장 제1절과 제2절에서 상세히 논술한 바 있는 것이다.





       제1절 십자기에 의한 구원섭리




 Ⅰ. 메시아로 강림하셨던 예수의 목적 




 예수님이 「메시아」로 강림하셨던 목적은, 타락인간을 완전히 구원하시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천국을 이루셔야 했던 것이며, 따라서 지상천국을 먼저 이루셔야 했었다.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ꡔ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ꡕ(마태복음 5장 48절)고하신 말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 신성을 갖게 되므로 죄를 지을 수 없다. 따라서 그러한 인간은 창조목적을 두고 보면, 하늘 아버지의 완전함같이 완전한 인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바로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으로 복귀되어서 천국 인이 되라는 말씀이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타락인간을 천국 인으로 복귀케 하여, 지상천국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고(마태복음 6장 10절1)), 또 천국이 가까왔으니 회개하라고 외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4장 17절). 그래서 그의 앞길을 예지 하러 왔던 세례「요한」도 역시 천국이 가까왔다고 부르짖었던 것이다(마태복음 3장 2절).


 그러면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으로 복귀되어,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하늘 아버지의 완전함과 같이 완전하게 된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 것인가 ? 이러한 인간은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그의 심정을 체휼함으로써 신성을 갖게 되어 하나님과 불가분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은 원죄가 없으므로 다시 속죄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구주가 필요 없게 되며, 타락인간에게 요구되는 기도나 신앙의 생활도 역시 필요 없게 된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인간들에게는 원죄가 없으므로 그들은 원죄 없는 선의 자손을 번식하게 되며, 따라서 그 자손들에게도 속죄를 위한 구주가 필요 없게 된다.




  Ⅱ.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하여 구원섭리가 완성되었는가 ?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하여 과연 복귀섭리의 목적이 완성되어, 모든 성도들이 창조본성을 복귀함으로써, 지상천국을 이루게 되었는가 ? 인류역사이래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함으로써, 신성을 갖게 되어 하나님과 일체불가분의 생활을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따라서 속죄가 필요 없고, 기도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성도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사실상 「바울」같은 훌륭한 신앙자에게 있어서도 눈물겨운 기도와 신앙생활은 없을 수 없었던 것이다(로마서 7장 18-25). 뿐만 아니라 아무리 잘 믿는 부모라 할지라도 구주의 대속함이 없이 천국에 갈 수 있는 죄없는 자식을 낳을 수는 없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그 부모가 여전히 자식에게 원죄를 유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 신도들의 이러한 신앙생활의 실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 그것은 십자가에 의한 속죄가 우리의 원죄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였고, 따라서 인간의 창조본성을 완전히 복귀해 주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듯 십자가의 대곳으로써는, 「메시아」로 강림하셨던 그의 목적을 완전히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재림하실 것을 약속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지상천국을 복귀하시려는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이 절대적이어서 변할 수 없는 것임을 아셨기 때문에, 그는 다시 오셔서 그 뜻을 완성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면 십자가의 희생은 전혀 무위로 돌아간 것인가 ? 결코 그런 것은 아니다(요한복음 3장 16절). 만일 그렇다면 오늘의 기독교의 역사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체험으로 보아도, 십자가 대속의 은사가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대속의 역사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원죄까지 완전히 벗겨줌으로써 죄를 지으려 하여도 지을 수 없는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시켜서, 지상천국을 이루어 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십자가로 인한 속죄의 한계는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현대 지성인들의 신앙을 교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문제를 밝히 알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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