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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불멸과 지옥의 부정
4. 영혼 불멸성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인간의 영혼 불멸성을 부정한다. 인간이란 생리적이고 물질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존재이며, 영혼이란 육체적 생명과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며 따라서, 죽음으로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천국이나 지옥에 가게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불의한 인간의 죽음은 영원히 끝나지만 의인의 죽음은 ‘부활’에 대한 여호와의 기억으로 다시 영적으로 재창조된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영혼을 2가지로 이해한다. 첫째, 영혼이란 육체적 생명과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특질을 모두 가진 인간 자신을 말하며, 인간이 죽으면 활동적인 생명력이 사라지기에영혼 또한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신명기 12장 20절을 “너희 영혼이 고기를 먹고 싶어하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하며 만약 영혼을 인간의 정신적 특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어떻게 영혼이 고기를 먹고 싶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둘째, 영혼이란 인간이나 동물 자체, 또는 인간이나 동물이 누리는 생명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곧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은 영혼을 갖고 있는 것이 되며, 따라서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으며 결국 살아 있는 한 모두 영혼을 갖는다고 말한다. 자연히 영혼은 인간의 죽음과 함께 소멸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그들 고유의 성서해석에서 이를 구체화한다. 첫째, 욥기 7,15-16을 사용하여 ‘숨이 막히면 죽고 더는 생명이 없다고 하는데 사후에 무슨생명이 있다고 하느냐?’고 주장한다. 둘째, 창세기 9,5에서 ‘생명을 피라고 하였는데 사후 생명에는 피가 없다. 따라서, 영혼불멸이란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셋째, 전도서 9,5의 “무릇 산자는 죽을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를 인용하여 사후 생명이 있다면 왜 아무것도 모르느냐?고 한다. 이에 반하여 교회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이 하느님의 창조물이며 각 사람의 영혼은 육체에 부여되어서 창조 되었고, 영혼은 육체의 체형이며 육체와 함께 인간 개성의실체를 이룬다”고 가르친다. 또한, 육신과 영혼은 일체를 이루는 공동 구성원리이기는하지만, 영혼은 영체이기 때문에 육체를 떠나서 단독으로 존재할수 있다(죽음). 그러나, 영혼은 어디까지나 자기 육체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이것이 천사와 다른 점이다. 이를 뒷받침 하는 귀절은 요한 11,25절 이하 – 예수께서는 마르타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와 루까 22,19-“여러분이 참고 견디면 여러분은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이다. 그리고, 루까 16,19-32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도 의인과 악인 모두 그들의 영혼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또 마태 복음 10, 28의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일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 하시오”라는 구절도 이를 뒷받침한다. 5. 지옥의 존재 부정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의 증인의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부정은 내세의 존재, 지옥의 존재 부정으로 연결된다. 여호와의 증인은 기성교회에서 말하는 지옥은 비(非)성서적, 非이성적이며, 하느님의 사랑과 반대되고 하느님의 공의와도 모순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죽은 자는 생명도 없고 의식도 없기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지옥은 불이 붙는 뜨거운 곳도,악귀가 득실거리는 곳도, 끝없이 고통을 받는 곳도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인간은 죄를 짓든 안짓든간에 죽음으로 소멸되어 버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들은 ‘셔올’이라는 히브리어와 ‘하데스’라는 희랍어에서 그 근거를 제시한다. 곧 기성교회에서 이 말을 지옥으로 번역하지만, 성서에서 이 용어가 나오는 곳을 찾아보면 고초의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일반 무덤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 곳은 무존재, 무의식의 장소, 하느님께서 부활시킬 때까지 죽은 자가 머물러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말씀하신 ‘불 붙는 지옥’(마태 5,22)은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힌놈의 골짜기’를 말하는데, 그곳은 유황을 넣어 죄수들과 동물들의 시체를 태우던 곳이었기에 사람들의 영원한 멸망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벌 받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거는 성서적으로 큰 오류에 빠져 있다. 그 근거로서는 마태오 13,42; 마르코 9,43; 마태오 8,22;25,46; 유다 1,13 을 들 수 있다. 또한 영벌 교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나 공의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빠스카를 통해 인간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로써 그 은혜를 거부하는 인간은 즉, 관계를 끊어버린 인간은 그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신성 부정
3.예수의 신성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다. 그 교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 아니고 하느님의 첫 피조물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아들이지 하느님 자신은 아니다. 하느님은 이 영적 피조물을 통해 다른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②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영적 지위에 있던 영적 피조물인 미카엘 대천사가 대천사의 성품을 벗어 버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미카엘 대천사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부인하고 그 피조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성서의 여러 부분을 인위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몇가지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요한 14,28 –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 당신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하여 당신을 더욱 감추고 작아지려는 자발적인 순명.자기비하를 의미한다. 나아가 이러한 순종을 통해 아버지와 온전히 일치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는 구절이다. 결국 아버지와의 완전한 일치를 의존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② 요한 묵시록 3,14 – 여호와의 증인은 요한 묵시록 3,14절 하반부, 즉 ‘하느님의 창조의 시작’이라는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는 그들의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 인용한다. 그들은 이 구절을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창조의 근본’이라고 번역하면서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창조의 시작.첫 피조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속격의 의미는 ‘하느님의(of God)이지, ’하느님으로 말미암은(by God)이 아니다. 만일 요한 묵시록의 저자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어졌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했다면, 그는 ‘하느님의’ 라는 뜻을 잦는 ‘του θεου’보다는 전치사 ‘ὺπο(에 의해서)’를 사용했을 것이다. ③ 골로사이서 1,15 – “모든 조물의 맏이시로다, 먼저 나신 자로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 구절을 ‘제일 처음 창조되어진 자’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성서는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창조자가 되시며’(1,16.17)라고 하며 그 분이 피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15절의 ‘모든 조물의 맏이’라는 지칭은 그 분의 탁월한 지위를 의미하는 것이지, 그 분이 첫 피조물이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교부들도 사도 바오로가πρωτοχτιοι(먼저 창조된)를 사용하지 않고 πρωτοκος(먼저 나신)를 사용한 사실에 대해깊은 관심을 보였다. 결국 그리스도는 ‘나셨고’, 우주는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그들의 교리를 위해 1,16-17에 ‘다른’이라는 말을 삽입시켜 놓고 있다. ④ 여호와의 증인들은 마태오 4,1의 예수께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신 대목을 예로 들면서 “만일 예수께서 하느님이라면 하느님이 하느님을 유혹할 수 있겠느냐?”면서 이 구절을 예수께서 자유의지를 가진 천사나 인간처럼 유혹을 당할 수 있는 별개의 개체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구절이라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적 의미를 논하면서 예수님을 아담과 똑같은 인간적 존재로 격하시키고 있다. 즉, “완전한 인간 아담의 불순명으로 상실한 완전한 생명을 되찾기 위해서는 아담과 동등한 또 다른 인간 영혼, 곧 인류를 위해서 자기의 완전한 생명을 희생으로 바칠 영혼이 필요했다.그러나 아담의 후손은 모두 불완전하게 출생했으므로 자격이 없고 오직 하느님으로 부터 출생한 완전한 인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예수만이 아담이 상실한 것을 회복시킬 정확한 대속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외에 예수는 대천사 미카엘과 같은 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데살전 4,16에 부활을 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 ‘천사의 소리’로 언급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결국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그 분을 아담과 같은 존재로 격하시켜 버리고 만다. 이와 같은 오류는 아리우스 이단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삼위일체의 부정
2. 삼위일체의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 이유는 삼위일체란 단어나 개념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속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이는 그들의 자구적인 성서해석에 기인한다. 실제로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들은 기성교회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할 때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지찾아내 보라고 요구하면서 토론을 주도해 나간다. 또한 이들은 삼위일체 교리는 히브리 예언자들과 사도들도 알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이 삼위일체 교리가 시작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이후 350년 후이며, 삼위일체라는 단일 용어는 성서에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τριας라는 단어는 主後 180년 경의 안티오키아의 테오필루스에게서 그 단어의 라틴어 형태인Trinitas가 나타나지만 그 말 자체가 현재의 삼위일체의 개념을 나타내지는 않는다고하면서 이 교리는 원래 바빌론에서 이교인들이 믿고 있던 신앙인데, 사도들이 죽은후 그리스도교에 흘러 들어와 떼르뚤리아노가 체계화시켰으며, 결국 성서에도 없는 이러한 개념을 서기 325년 니체아 공의회에서 믿을 교리로 선포한 것이기에 이 삼위일체 교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유래된 것도, 성서적인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삼위일체 교리는 갈라진 하느님, 3神으로서의 하느님. 곧 성부 하느님이 1/3의 하느님, 성자 하느님이 1/3의 하느님, 성령 하느님이 1/3의 하느님이라고 믿고 있다. 또 이들은 성경에는 예수가 하느님이 아니거나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고 가르쳐 주는 구절들이 오히려 더 많다고 주장하면서 만약 예수님이 성부 하느님이시라면 ‘예수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자신에게 기도한 것이 되고, 또 예수님이 아버지가 그를 보냈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가 자기자신을 어떻게 보낼 수 있겠는가?’ 하면서 반론을 제기한다. 또 예수께서 직접 “말세의 시간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마르코 13, 32)고 말하였고, “아버지께서는 나보다 훌륭하십니다”(요한 14,28)고 하셨기에 예수는 자신이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 또 하느님과 동등하지도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고 주장한다. 한편 여호와의 증인은 성령에 대해 ‘성령은 전능하신 하느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의 종들을 감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세력’이라고 정의한다. 곧 성령은 한 위격, 또는 한 인격체가 아니라 ‘하느님의 활동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그들은 성령의 독립적인 위격을 부인하기 위해 성령에 대해 언급할 때 마다 ‘영’(spirit)이란 단어를 대문자로 쓰지 않는다. 그들은 마태오 3,11을 예로 들어 성령의 위격성을 부인한다. 곧 세례자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가 물로 셰례를 베푼 것처럼 성령으로 셰례를 베풀 것이라고 하였는데 물(水)이 한 位가 아닌 것처럼 성령도 한 위가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요한의 예언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 예루살렘에 모인 추종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짐으로써 성취되었다. 이때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다’고 사도 2,48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한 인격체로서의 성령’에 의해서 충만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활동력으로서의 성령’에 의해서 충만함을 받았다고 해야 말이된다고 하면서 성령의 위격성을 부인하고 있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은 삼위일체 교리는 비성서적이며, 하느님에 대해 잘못 가르치는 것이기에 삼위일체 교리를 옹호하는 그리스도교는 종말에 심판받을 것이라고 단죄하고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는 비성서적이 아니다. 하느님의 내면적 본질이 삼위일체이심은 마태오 28,19(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과 2고린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에서 드러난다. 또 창세기 1,26에 나타난 ‘엘로힘’의 복수명칭에서도 드러난다. 이에 맞추어 교회는 從屬論, 樣態論,三神論 등을 배격하고 하느님께 오직 하나의 본질이 있으며 동시에 서로 구별되는 세 位의 개별적 자립존재가 있음을 명백히 하였다. 이처럼 그리스도로부터 최종적으로 계시된 하느님의 신비 곧 삼위일체는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계시의 결론이며 동시에 인간 구원을 위한 구원신비의 요약이자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체험을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느님은 사랑자체로서 유일한 분이신데 언제나 아버지,아들,영으로서 계시고 활동하시는 분이시다. 만약 여호와의 증인이 성서에 삼위일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이 삼위일체라고 가르칠 수 없다면, 그들이 즐겨 쓰는 神政이란 용어는 도대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7) 그들은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다.
교리
Ⅲ.여호와의 증인의 교리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와 주장은 기존 그리스도교와 많은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주로 성서해석,삼위일체,예수 그리스도의 선주성,영혼 불멸,지옥의 존재,부활,재림,말세에 대한 교리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번 장에서는 그 차이점이 어떠하며,어떤 점에서 오류가 있는지를 살펴 본다. 1.여호와의 증인의 성서 해석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1915년에 신약을 번역하였고, 구약은 이후 약 10년에 걸쳐서 부분판으로 번역되다가 1961년 신구약 합본성서, 즉 “새 세게 번역성경(New World anslation of the Holy Scriptures)를 출판하였다. 이들은 새 세게 번역성서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발간한 성경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한 오역(誤譯)들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한다. 곧 전통적인 종교 입장을 지지하기 위한 모순되고 불합리한 번역들이 영감의 기록속으로 은근히 끼어 들어 하느님의 명령과 교훈들을 묻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1) 이에 반해 새 세계 번역성경이야말로 완전무결하게 번역된 성경이라고, 또 온전한 하느님의 말씀이며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위한 유일한 표준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성경연구만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알기 불충분하므로 워치타워의 유권적 해석에 따라 성경의 모든 것을 이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2) 그러나 새 세계 번역성서의 위원회는 그 구성원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으며,또 각 위원이 성경을 정확하게 번역하기 위해 필요한 분야의 학위를 갖고 있는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번역판의 신빙성이 자연 문제시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정통 성서학자들과 헬라어 학자들은 그들의 번역성서는 자기네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 자체로 성서의 내용을 가감했을 뿐 아니라, 오역으로 가득 차 있고 문법도 엉망이며 성서에 나타난 연대의 계산도 잘못되어 있다고 비판한다.3) 예컨대 세계적인신약성서 헬라어 학자인 줄리어스 알 만테이 박사(Dr.Julius R.Mantey)는 워치타워 성서 번역 위원회가 자기들의 비학문적인 번역을 지탱하기 위해 그를 권위자로 인용한데 대해 “영어로 번역된 헬라어의 오역이 많다. 예를 들어 요한 1,1;8,58; 골로사이서 1,15.16; 디도 2,13; 묵시록 3,14 등의 문법이 엉망이며, 따라서 나를 인용하지 말라”는 성명서를 내고 또 요한 복음 1,1이 명백하게 그리스도의 신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워치타워 성서 위원회에 편지를 쓰기도 했다.4) 실제로 그들의 오류를 요한 1,1과 골로사이서 1,16 그리고 마태오 25,40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요한 1,1 – 여호와의 증인은 “맨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는 구절의 뒷 부분 곧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를 “그 말씀이 ‘하나의 신’이셨다”로 번역한다. 이 번역은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교리에 맞추어서 피조물의 위치로 좌천시키면서 하느님보다 못한 분으로 만들어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요한 1,1에 대한 문법적인 해석 역시 납득할 수 없다. 즉 그들에 의하면 요한 1,1에는 ‘θεος’가 2번 나오는데 정관사 ‘ὁ’가 첫번째 나오는 ‘θεος’ 앞에는 나오지만, 두 번째 나오는 θεος앞에는 붙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원래 명사에 관사가 붙으면 신분,인물을 가리키며, 동사 앞에 나오는 단수 무관사 서술명사는 누군가의 특성을 가기킨다는 점에 비추어 “그 말씀은 하나의 신(a God)이셨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여호와의 증인의 성경번역에 시종일관 적용된 것도 아니다. 요한 1,1-18까지를 보면, 하느님이라는 단어 곧 ‘θεος’가 정관사 없이 6회나 사용되었다(1,6,12,13 절에서 한 번씩, 그리고 18절에서 2번씩). 그런데 이들은 1절 뒷부분에 나오는 예수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θεος라는 단어를 모두 다 대문자로 하느님(God)이라고 번역하였다. 만일 여호와의 증인에서 번역한 것들이 모순없이 철저하게 번역된 것들이라면 6절 앞부분의 경우는 ‘한 신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라고 번역했어야 했다.그런데 그들은 왜 유독 1절에만 θεος(하느님)로 번역하기를 거부했는가 ? 그것은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거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들이 오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 1,1을 ‘그 말씀은 하나의 신이셨다’라고 번역한 신세계역 성경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그릇된 번역을 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것은 문법적으로도 그릇된 번역이다.5) 결국 그들은 ‘그 말씀은 하나의 신(a God)이셨다’라고 번역함으로써 그들의 사상이 다신론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만 것이다. 2)골로사이서 1장 – 두 번째로 그들의 성서해석의 오류는 골로사이서 1장에서 찾을 수 있다. 골로사이서 1장에서 사도 바울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창조주 되심을 강조함으로써 그분의 신성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만물은 그 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 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골로 1, 16). 그러나 신세계역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 중의하나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골로 1장의 ‘만물’이라는 단어 앞에 5회에 걸쳐 ‘다른’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16절: (다른)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어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16절: (다른)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17절: 또한 그가 (다른)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다른) 만물이 그 안에 함께 계셨느니라. 20절: (다른)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은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위에 열거된 본문들에는 ‘다른’이라는 말을 덧붙일 아무런 근거가 없다. 오히려 ‘다른’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 그 구절들의 본래의 문맥을 파괴시키는 것이며, 그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다.6) 3) 마태오 25, 40 통치체 위주의 아전인수격 해석을 마태 25, 40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곧 여호와의 증인은 “진실히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너희가 이 지극히 작은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었을 때마다 나에게 해 준것이다”라는 말씀중에서 ‘지극히 작은 내 형제들’이 곧 통치체라고 하면서 통치체에 모든 것을 바쳐 잘하는 것이 곧 예수께 잘 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통치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한 자격으로 하느님의 우주 통치권을 상속받은 공동후사요, 공동왕이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하는 것이나 예수께 하는 것이나 결국은 같은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공동왕이라고 하는 통치체가 어떻게 지극히 작은 형제들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자연적으로 생기게 된다.7) 이상에서 살펴 본 것 이외에도 성서해석상의 오류는 수 없이 많이 드러난다.결국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호와의 증인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서는 역사적 문화사적 이해를 고려하지 않은 자의적,아전인수격 해석이며 ,따라서 자신들의 교리를 뒷받침하는 보조자료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들은 신도들이 개별적으로 성서공부를 하지 못하도록 의식화시키고 있고, 이 의식화의 결과로 수 많은 오류에도 불구하고 신도들은 자신들의 성서와 통치체가 가장 옳다고 생각하며, 나아가 선교활동에서도 이 성서를 가지고 기성교회 신자들과 토론한다. 따라서 성경토론은 항상 어느 성경이 옳은가? 하는 물음에로 귀착되고 만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살펴 보면 그 결과는 자명하다.
조직 및 활동
4.여호와의 증인의 조직 및 활동. 1)조직 여호와의 증인들은 오늘 날 자신들의 조직이 이 지상에 표현된 가시적인 하느님 나라의 조직으로서 하느님의 신권적 지도와 인도를 받고 있으며,이 신권적 조직의 본부가 뉴욕에 있는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라고 설명함으로써 자기들의 조직의 존재를 합리화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조직은 봉사(전도)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효과적이고 철저를 기하도록 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이 봉사를 통해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지도원격인 사회자와 함께 ‘가정성서연구’라는 교육을 6개월 내지 1년 정도 받게 된다. 처음 배우는 책은 총 30개 장으로 되어 있는 문답주입법식 책인 ‘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라는 책인데 이러한 의식화 교육을 통해 이들이 지상낙원에 대한 확신과 통치체에 대한 충성심이 확고해 지면 회중감독자에게 인계된다. 그 후 회중장로들의 심사를 통해 침례를 받고 전도인이 된다. 이 전도인 위에 일반 교회로 치면 집사격인 ‘봉사의 종’이라는 직분이 있으며,봉사의 종위에 ‘장로’가 있고 장로위에 회중감독자,회중감독자 위에 ‘순회감독자’를,순회 감독자위에 ‘지역감독자’가 있다.그리고 지역 감독자 위에는 본부와 지부에 있는 ‘최고위원’들을 보좌하는 ‘벧엘 장로’들이 있어서 이들이 국가 단위의 최고위층인 지부위원 7명을 돕는다. 세계적으로는 세계를 15개 지구로 구분하여 15명의 ‘지구감독자’가 있고,지구 감독자 위에 세계를 총괄하는 총 본부(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가 있다. 이 총 본부 내에는 최고통치 위원이 18명이 있어서 모든 결정사항이 여기에서 결정된다.1) 이 조직을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2)(다음 페이지 참조) 2)선교활동 선교활동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와 선교방법에 대한 이해가 먼저 요청된다. 가. 용어의 이해3) 여호와의 증인들은 교회를 ‘회중,회관,또는 왕국회관’이라고 부르며,‘선교,전도’라는 말보다는 ‘봉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또한 ‘신자,평신도’라는 말 대신 ‘전도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며,옥외에 나가서 전도하는 것을 ‘야외봉사’라고 하고 집집을 방문하여 전도하는 것을 ‘호별봉사’라고 한다. 그들은 야외봉사나 호별봉사에서 대화한 사람은 반드시 그 사람의 주소,성명과 다시 만날 수 있는 약도 및 대화한 제목을 ‘봉사수첩’이라는 수첩에 기록해 놓고 계속 찾아가게 되는데 이렇게 계속 찾아가는 것을 ‘재방’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규방문이 아니고 버스나 기차 또는 자기 집에 찾아온 손님이나 상인들에게 전도하는 것을 ‘비공식 증거’라고 한다. 이러한 재방이나 비공식 증거를 통해서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에 호감을 가진 사람을 ‘관심자,연구생’이라고 하며,재방 때에 관심자와 전도인 간의 교리학습을 ‘연구,가정성서연구’라고 한다. 나. 선교방법 여호와의 증인의 선교는 대체로 문서선교와 호별방문 선교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들은 어떤 모욕과 핍박도 감수하면서 마치 순교자적 정신으로 포교를 하고 있다. ① 문서선교: 여호와의 증인의 선교 방법은 창설자 첫셀이 1875년 “주님의 귀환의 방법과 목적(The object and manner of the Lord’s Return)”이라는 팜프렛을 배포하면서부터 구체화되었다. 그 이후 1879년 “시온의 워치타워(파수대)”잡지를 출판 배포했는데 그 호응이 좋자 이에 힘입어 1880년에는 미국 내 7개주에 30개의 회중을 갖게 되었다. 이 파수대는 지금까지 발행되고 있는 그들의 중요한 잡지이다. 또 1919년에는 파수대 잡지의 자매지라 할 수 있는 “깨어라”를 발행했는데 현재는 “지금은 깰 때이다”라는 이름으로 출판하고 있다. 이 두 잡지는 그들의 신앙을 도모하고 앙양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잡지이며 이 잡지들은 그들의 신앙과 도덕,그리고 생활에 대한 통치체의 유권해석이며 봉사(전도) 때의 판매용이자 ‘파수대 연구와 봉사회’의 교재이다. 매 호 평균부수는 ‘파수대’가 13,950,000이며,‘지금은 깰때이다’가 11,250,000에 이른다. 또 종말론적인 해석들로 구성된 교리서들과 책자들을 인쇄배포하여 그들의 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전교에 힘쓰고 있다.4) ② 호별선교:5) 여호와의 증인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방법으로 선교한다. 각 회중에는 30-50장 정도의 봉사구역카드가 비치되어 있는데,거기에는 그 구역의 모든 건물.도로.골목의 약도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6) 그들은 이 카드에 따라 주로 2인 1조가 짝이 되어 호별을 하면서 책자의 구독신청과 포교를 한다. 또 호별이나 야외봉사에 나서기 전에 선교방법들을 철저히 교육받으며,그 결과를 ‘봉사보고제도’에 따라 활동시간,잡지 및 서적의 판매수량,재방의 건수,성서연구시간 등을 주어진 양식에 따라 보고한다. 이처럼 여호와의 증인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방법으로 선교하고 있음은 이 교단에서 출판된 ꡔ성경을 사용하여 추리함ꡕ이란 책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상대방과 만났을 때 어떻게 말을 건네며 선교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곧 상대방이 갖고 있을 관심 분야를 가정과 자녀,미래와 안전,말세,불공평과고통,인생과 행복,직업과 주택,최근의 사건 등 18가지의 사항으로 분류하고, 각 사항에 따라 상대방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몇 가지씩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상대가 대화를 거절할 경우, 거기에 대처하는 방법도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ꡔ대화를 중단하여는 사람들에게 응답하는 방법ꡕ이라는 장에 잘 나타나 있는데, 거기에는 대화를 중단하기 위해 상대방이 꺼낼 수 있는 말의 유형을 13가지나 제시하고,각 유형에 따라 응답하는 예문을 많게는 10가지 씩이나 열거하고 있다. 따라서 상대방이 거절하는 이유와, 그 수준에 따라 거기에 맞는 예문을 꺼내기만 하면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의 호별방문에서 특이한 점은 성경 토론방식에 있다. 이들은 성경토론을 할 때에 상대방에게 교리나 성서의 지식에 대한 질문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하여 그들 스스로 자신의 수준이나 약점을 드러내도록 만든 후에, 그들로 하여금 모르는 사실을 전해준다는 형식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대화의 주도권을 갖는다. 그러나 성경 토론을 하다가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거나, 박식한 상대를 만나 자신이 곤란했던 부분에 대한 재교육을 받고 재방을 하든지, 자신보다 더 월등한 실력을 가진 사람을 보내서 그로 하여금 토론을 주도해 나아가도록 한다.7) 다.선교활동시간 :8) 이러한 봉사(전도)를 통해 포섭되는 사람은 일정한 교육을 통해 침례자격시험(4명의 장로가 각 100문제씩 내어 각 장로에게서 80점 이상을 받아야만 통과)을 통해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가 된다. 침례를 받으면 그들은 형제,자매로 불리우며 전도인으로 자동임명된다. 이 전도인은 물질의 십일조가 아니라 봉사의 십일조를 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며 그 시간은10일에 24시간 이상이다. 침례 후 6개월이 지나면 ‘보조 파이오니아’로 불리우며 이들은 십일조 봉사 외에 매 월 60시간 이상 봉사해야 하고, 보조 파이오니아를 1년 정도 하게 되면 ‘정규 파이오니아’가 되는데 이들은 십일조 봉사 외에 매월 90시간 이상을 의무적으로 봉사해야 한다. 또한 ‘특별 파이오니아’가 있는데 이들은 십일조 외에 매월 140시간 이상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이처럼 봉사에 열성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교리와 그에 따른 직무에 기인한다. 즉 그들은 ‘전교활도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말세에 구원을 받아 천년왕국에 들어 갈 수 있다. 따라서 전교활동은 구원을 얻기 위한 기본조건이며 동시에 의무이다’ 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3).예배와 집회9) 여호와의 증인의 예배와 집회는 일반 교회의 의식과는 달리 주로 그들의 교리에 대한 확신과 통치체에 대한 충성을 가지도록 하는 ‘교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집회는 5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신권전도 학교’, ‘봉사회’, ‘공개집회’, ‘파수대 연구’,그리고 ‘회중서적 연구(집단 서적연구)’가 그것이다. 먼저, 각 주간 요일 별로 열리는 집회를 살펴보면 화요일에는 회중 서적연구라고 해서 기독교의 구역예배에 해당되는 집회를 갖는다. 이 집회는 구역 내에 있는 한 가정에 모여서 전국적으로 똑 같이 성서와 워치타워 성서책자 협회에서 나온 교재를 약 1시간에 걸쳐 연구한다. 목요일에는 신권전도학교와 봉사회가 1시간씩 있다. 신권전도 학교는 기독교의 주일학교와 유사하며, 봉사회는 주로 효과적인 전도기술에 대한 교육이 주된 가르침이다. 일요일에는 ‘공개집회’와 ‘파수대 연구’가 각 1시간씩 있다.공개집회는 회중감독자의 연설과 협회에서 제작한 영화 상영이 대부분인데 최고 지부위원 외에는 위에서 하달된 원고 내용에 따라 연설하게 되어 있다. 이어서 파수대 연구가 시작되는데 가장 중요한 집회로서 신도는 누구나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한다. 이 집회는 획일적 동일사상을 주입시키기 위한 문답식 교육방법으로 진행된다.그리고 모범이 될만한 몇 몇 개인을 회중앞에서 치켜 세워서 전체를 고무시키는 선동식 방법도 병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