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영혼 불멸성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인간의 영혼 불멸성을 부정한다. 인간이란 생리적이고 물질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존재이며, 영혼이란 육체적 생명과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며 따라서, 죽음으로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천국이나 지옥에 가게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불의한 인간의 죽음은 영원히 끝나지만 의인의 죽음은 ‘부활’에 대한 여호와의 기억으로 다시 영적으로 재창조된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영혼을 2가지로 이해한다.
첫째, 영혼이란 육체적 생명과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특질을 모두 가진 인간 자신을 말하며, 인간이 죽으면 활동적인 생명력이 사라지기에영혼 또한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신명기 12장 20절을 “너희 영혼이 고기를 먹고 싶어하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하며 만약 영혼을 인간의 정신적 특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어떻게 영혼이 고기를 먹고 싶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둘째, 영혼이란 인간이나 동물 자체, 또는 인간이나 동물이 누리는 생명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곧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은 영혼을 갖고 있는 것이 되며, 따라서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으며 결국 살아 있는 한 모두 영혼을 갖는다고 말한다. 자연히 영혼은 인간의 죽음과 함께 소멸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그들 고유의 성서해석에서 이를 구체화한다.
첫째, 욥기 7,15-16을 사용하여 ‘숨이 막히면 죽고 더는 생명이 없다고 하는데 사후에 무슨생명이 있다고 하느냐?’고 주장한다.
둘째, 창세기 9,5에서 ‘생명을 피라고 하였는데 사후 생명에는 피가 없다. 따라서, 영혼불멸이란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셋째, 전도서 9,5의 “무릇 산자는 죽을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를 인용하여 사후 생명이 있다면 왜 아무것도 모르느냐?고 한다.
이에 반하여 교회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이 하느님의 창조물이며 각 사람의 영혼은 육체에 부여되어서 창조 되었고, 영혼은 육체의 체형이며 육체와 함께 인간 개성의실체를 이룬다”고 가르친다. 또한, 육신과 영혼은 일체를 이루는 공동 구성원리이기는하지만, 영혼은 영체이기 때문에 육체를 떠나서 단독으로 존재할수 있다(죽음). 그러나, 영혼은 어디까지나 자기 육체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이것이 천사와 다른 점이다.
이를 뒷받침 하는 귀절은 요한 11,25절 이하 – 예수께서는 마르타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와 루까 22,19-“여러분이 참고 견디면 여러분은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이다. 그리고, 루까 16,19-32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도 의인과 악인 모두 그들의 영혼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또 마태 복음 10, 28의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일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 하시오”라는 구절도 이를 뒷받침한다.
5. 지옥의 존재 부정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의 증인의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부정은 내세의 존재, 지옥의 존재 부정으로 연결된다.
여호와의 증인은 기성교회에서 말하는 지옥은 비(非)성서적, 非이성적이며, 하느님의 사랑과 반대되고 하느님의 공의와도 모순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죽은 자는 생명도 없고 의식도 없기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지옥은 불이 붙는 뜨거운 곳도,악귀가 득실거리는 곳도, 끝없이 고통을 받는 곳도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인간은 죄를 짓든 안짓든간에 죽음으로 소멸되어 버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들은 ‘셔올’이라는 히브리어와 ‘하데스’라는 희랍어에서 그 근거를 제시한다. 곧 기성교회에서 이 말을 지옥으로 번역하지만, 성서에서 이 용어가 나오는 곳을 찾아보면 고초의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일반 무덤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 곳은 무존재, 무의식의 장소, 하느님께서 부활시킬 때까지 죽은 자가 머물러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말씀하신 ‘불 붙는 지옥’(마태 5,22)은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힌놈의 골짜기’를 말하는데, 그곳은 유황을 넣어 죄수들과 동물들의 시체를 태우던 곳이었기에 사람들의 영원한 멸망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벌 받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거는 성서적으로 큰 오류에 빠져 있다. 그 근거로서는 마태오 13,42; 마르코 9,43; 마태오 8,22;25,46; 유다 1,13 을 들 수 있다. 또한 영벌 교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나 공의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빠스카를 통해 인간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로써 그 은혜를 거부하는 인간은 즉, 관계를 끊어버린 인간은 그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4. 영혼 불멸성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인간의 영혼 불멸성을 부정한다. 인간이란 생리적이고 물질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존재이며, 영혼이란 육체적 생명과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며 따라서, 죽음으로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천국이나 지옥에 가게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불의한 인간의 죽음은 영원히 끝나지만 의인의 죽음은 ‘부활’에 대한 여호와의 기억으로 다시 영적으로 재창조된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영혼을 2가지로 이해한다.
첫째, 영혼이란 육체적 생명과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특질을 모두 가진 인간 자신을 말하며, 인간이 죽으면 활동적인 생명력이 사라지기에영혼 또한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신명기 12장 20절을 “너희 영혼이 고기를 먹고 싶어하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하며 만약 영혼을 인간의 정신적 특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어떻게 영혼이 고기를 먹고 싶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둘째, 영혼이란 인간이나 동물 자체, 또는 인간이나 동물이 누리는 생명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곧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은 영혼을 갖고 있는 것이 되며, 따라서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으며 결국 살아 있는 한 모두 영혼을 갖는다고 말한다. 자연히 영혼은 인간의 죽음과 함께 소멸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그들 고유의 성서해석에서 이를 구체화한다.
첫째, 욥기 7,15-16을 사용하여 ‘숨이 막히면 죽고 더는 생명이 없다고 하는데 사후에 무슨생명이 있다고 하느냐?’고 주장한다.
둘째, 창세기 9,5에서 ‘생명을 피라고 하였는데 사후 생명에는 피가 없다. 따라서, 영혼불멸이란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셋째, 전도서 9,5의 “무릇 산자는 죽을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를 인용하여 사후 생명이 있다면 왜 아무것도 모르느냐?고 한다.
이에 반하여 교회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이 하느님의 창조물이며 각 사람의 영혼은 육체에 부여되어서 창조 되었고, 영혼은 육체의 체형이며 육체와 함께 인간 개성의실체를 이룬다”고 가르친다. 또한, 육신과 영혼은 일체를 이루는 공동 구성원리이기는하지만, 영혼은 영체이기 때문에 육체를 떠나서 단독으로 존재할수 있다(죽음). 그러나, 영혼은 어디까지나 자기 육체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이것이 천사와 다른 점이다.
이를 뒷받침 하는 귀절은 요한 11,25절 이하 – 예수께서는 마르타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와 루까 22,19-“여러분이 참고 견디면 여러분은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이다. 그리고, 루까 16,19-32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도 의인과 악인 모두 그들의 영혼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또 마태 복음 10, 28의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일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 하시오”라는 구절도 이를 뒷받침한다.
5. 지옥의 존재 부정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의 증인의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부정은 내세의 존재, 지옥의 존재 부정으로 연결된다.
여호와의 증인은 기성교회에서 말하는 지옥은 비(非)성서적, 非이성적이며, 하느님의 사랑과 반대되고 하느님의 공의와도 모순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죽은 자는 생명도 없고 의식도 없기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지옥은 불이 붙는 뜨거운 곳도,악귀가 득실거리는 곳도, 끝없이 고통을 받는 곳도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인간은 죄를 짓든 안짓든간에 죽음으로 소멸되어 버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들은 ‘셔올’이라는 히브리어와 ‘하데스’라는 희랍어에서 그 근거를 제시한다. 곧 기성교회에서 이 말을 지옥으로 번역하지만, 성서에서 이 용어가 나오는 곳을 찾아보면 고초의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일반 무덤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 곳은 무존재, 무의식의 장소, 하느님께서 부활시킬 때까지 죽은 자가 머물러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말씀하신 ‘불 붙는 지옥’(마태 5,22)은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힌놈의 골짜기’를 말하는데, 그곳은 유황을 넣어 죄수들과 동물들의 시체를 태우던 곳이었기에 사람들의 영원한 멸망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벌 받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거는 성서적으로 큰 오류에 빠져 있다. 그 근거로서는 마태오 13,42; 마르코 9,43; 마태오 8,22;25,46; 유다 1,13 을 들 수 있다. 또한 영벌 교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나 공의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빠스카를 통해 인간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로써 그 은혜를 거부하는 인간은 즉, 관계를 끊어버린 인간은 그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