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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래와 활동

     3.여호와의 증인의 한국전래와 활동 여호와의 증인이  한국사회에 전래된  것은 1912년 허리스터(R.R.Hurister)선교사  부부의 내한(來韓)으로  비롯되었고 1914년의 W.D.허리스터  부부와 1915년의 맥켄지 부부의 내한과 더불어 본격화  되었다. 1914년 ‘한국 성경 연구원’이란 이름으로 ‘시대에 관한 하느님의 경륜’이란 책을 번역.출간하였고, 경성 우체국 사서함 제 2ꕽꕽ를  개설하여 문서전교활동을 시작했다.1923년에는 미국의 워치타워 성서책자협회 본부에서 한국에 인쇄공장을  설립하여 많은 수의 한국어,일본어,중국어 번역서적을 출판하였다. 1931년에는 각종 소책자와  정기 간행물이 모두 19,829부가 발행되었으며,1933년에 리더포드의 유권적 해석대로 ‘여호와의 증인은 천국 정부만이 인류의 소망이며 구원’이라고 주장하면서 세상의 정치권력을 사탄의 권력으로 규정함으로써 조선 총독부는 협회에서 발행하는 모든 서적을 압수 소각하였다. 또 세계 2차대전 중인 1939년에는 조선 총독부의 궁성요배와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써 신도 전원이 체포,구금되었으며 많은 신도들이 옥사당하고 출판물은 발행금지 되었다.  그들의 문서 전교 활동이  활기를 띠게 된것은 광복후부터 조직재건 사업을 기점으로 1948년 미국 본부와 다시 연결되면서 부터이다. 1949년 8월에 내한한 도날드 스틸(Donald.L.Steel)부부의 전도로 1952년에는 한국지부가 미국 본부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었으며,1957년에는 한국에 ‘사단법인 워치타워 성서 책자 협회가 설립되었다.1) 그런데 1975년 10월 1일로 예언되었던 세상종말이 일어나지 않자 많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도 확장일로에 있던  그들의 선교활동은 위축되고 말았다.그 이후 1980년대에 이르러 구체적 말세의 시기는  제시하지 않은 채 곧 말세가 닥치게 된다고 하면서 선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의 여러 교단들이 이 종교의 문제점과 오류를 적극 홍보하고 있고,또 이 종교를 믿다가 피해를 보고 교단을 탈퇴한 이들이 집단적으로 교단의 비리와  오류 그리고 자신들의 피해상황을 알리고 있기 때문에 열성적인 선교에 비해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실정이다.그러나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선교는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1988년에 한국에서의 여호와의 증인의 교세는 한국 지부의 지부위원 7명과 843개의 왕국회관, 신도수 72,276명으로 집계되어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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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보와 연혁

  Ⅰ.序論     한국 사회는 ‘세계 종교의  전시장’이라고 할 만큼 다종교 사회의 모습을 나타내고있다.1) 여러 기성종교와 수 백의 신흥종교들이 저마다의 성장을 시도하고 있는 시점에서 특히 신흥종교들은  많은 사회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 중 가톨릭 신자들이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접촉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은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인 면에서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그들은 주로 가톨릭 신자들을 대상으로 삼고 ‘성경연구’라는 명목하에 열성적으로 선교하고 있으며,그 결과 여호와의 증인의 70%이상이 가톨릭교회에서 개종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2) 이와 같은 사실은 선교 200주년을 지나 나름대로 성숙한 교회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한국교회에 대한 위협이자,교회발전에 큰 걸림돌이라 아니할 수 없다.따라서 한국교회는 대처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대처방안을 설정하는데에 있어서 가장 전제되어야 할 것은  바로 그들의 ‘정체와 교리적 특성에 대한 이해’이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먼저 그들에 대한 전반적인 면을 살펴본 다음 그들의 교리와 주장을 살펴보면서 필요하다면 비판도 해 볼 것이며,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증인과 대면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교회의 모습을 살펴 보면서 그들에 대한 교회의 대처방안은, 또 바람직한 교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지를 간단히 언급해 보고자 한다. Ⅱ.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개관       1.여호와의 증인의 공식명칭과 계보 여호와의 증인이란 공식 명칭은 이사야 43,10;44,8에 있는 “너희는 나의 증인”이란 말에 그 성서적 근거를 두고 있다. 처음에는 럿셀파,천년기 새벽파, 그리고 리더포드파 등으로 불리워졌으나, 1931년  미국의 컬럼버스에서 열린 여호와의 증인 신앙대회에서 당시의  협회장이었던  리더포드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이름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의 역사적 계보를  아담의 둘째 아들인 아벨에게 소급적용하여 최초의 여호와의 증인은 아벨이며, 그 후 아브라함,모세에 이어 여호와의 증인들이 끊이지 않고 나타났는데 가장 탁월한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후 럿셀,리더포드,노오르에게 계승되었다고 한다.3)   2.연혁        1)창설자 – 럿셀 (Charles Tase Russel 1852-1916)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 (Watch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로 알려진 여호와의 증인의 창설자는 럿셀로서 그는 1852년  2월 16일 미국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 근교의 ‘알레게니’에서 출생하였다. 그 후 ‘피츠벅’으로 이사하여 잡화상을 경영했는데, 국민학교 밖에 못나왔지만 천재적으로 뛰어난 화술과 웅변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조직적인 생활에 능한 사람이었다고 한다.4)  그의 부모는 전통적인 장로교인이었으나 장로교회의 ‘예정교리’와 ‘영원한 형벌’에 대한 회의 때문에 회중교회(會衆敎會  – Congreational Church)로 개종하였고, 그 후 하느님의 선성과 공정하심에 비추어  장로교회의 교리를 반박하였다. 럿셀의 이와 같은 경향은 그의 비정상적 인격형성과 지적 빈곤 및 신앙의 영적인 면만을 추구한데서,5) 또 어렸을 때부텨 지녔던 지옥에 대한 공포심에서 기인한다.6) 방황 중 1869년, 그가 17세 되던 해에 지옥이 없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과 성경을 토론한 결과 그의 주장을 듣고 지옥부재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그 이후 1870년,18세때에는 ‘재림파’에 속한 교회에 다니면서 동료 8명과 성서연구를 시작했으며,특히 1872년 20세 때에 당시의 안식교 지도자였던 J.H.페이튼의 저서를 탐독하던 중 예수의 재림시기에 흥미를 가지고 연구하다가 이를 기초로 하여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에 대한 기초를 만들었다.7) 이 때 동료들은 정식 신학교육도 받지 못한 그를 목사로 추대하였으며,8) 이들과 함께 럿셀은 여호와의 증인의 전신인 ‘미국 성서 연구회’를 창립하였다. 1874년에는 ‘주님 재림의 목적과 그 방법(The object and manner of the Lord’s Return)’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하였다.이 소책자에서 그는 예수는 1874년에 재림하였지만, 그의 재림은 영적재림이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으며, 말세의 시간 또한 임박했다고 주장하였다.9) 또한 이들은 1879년 ‘시온의 파수대’라는 잡지를 발간하였다.그의 주장에 공명하고 추종하는 이가 점차 늘어나자  그 내용을 ‘천년왕국의 여명 (천년기새벽:Millennial Dawnites)’이라는 책으로  발간했다.1881년에 그들은 자신들의  단체 이름을 ‘시온의 파수대 소책자 협회(Zion’s Watchtower Track Society)’로 개명조직하고 1884년에 펜실베니아 주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함으로써 문서선교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렇게 럿셀은 자신의 주장을 펴기 위해 노력했으나 말세론의 부적중과 ‘기적의 밀(Miracle Wheat)’, ‘가짜  목사 사건’, ‘부인의 이혼소송’10)  등과 같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킴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으며, 1916년 10월 31일 자신의 예언의 성취를 보지 못한채 캘리포니아 전도여행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열차내에서 과로와 고민,고혈압으로 인해 64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11)     2)과도기의지도자 리더포드(Joseph  Franklin Rutherford 1869-1942) 여호와의 증인들은 럿셀이 죽은 지 몇달 후인 1917년 1월 6일 협회의 법률고문이던 리더포드를 럿셀의 후임으로 선출했다. 그는 보통 ꡔ리더포드ꡕ판사로 불리웠으며 저술사업에 힘을 기울었다. 그는 신정(神政)정치적 통치를 지향했으며,교단이 맞는 위기들을 럿셀의 주장을 수정함으로써 극복코자 하였다. 예컨대 여호와의 증인들이 144,400명에 이르게 되면 세상이 종말을 맡게 될 것이라는 럿셀의 주장을 요한 복음  10,16의 “나에게는 이 우리안에 들어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여호와의 증인 교단에는 144,400명의 여호와의 증인들과 다른 양들이  있다고 수정하였다. 또 럿셀이  말세시기를 1914년으로 정한 것에 대하여 1914년은 말세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하였다. 또 성도들의 구원의 시기를 1914년 이전의  어느 때(럿셀의 ‘성경연구’)에서 1914년  이후의 어느 때로 수정하였 다.12) 그리고 말세의 시간을 1925년으로 주장하였다가 불발로 끝나자 다시 1975년 10월 1일로 재수정하였다. 그의 업적이라면 1931년 ‘여호와의 증인’이란 공식명칭을 제정한 것이며,워치타워 교리의 유권적 해석을  럿셀의 저서에서 자신의 저서로  대신한 점이다. 그는 25년간 통치하였으며 1942년 1월 8일 사망하였다.13)          3)성장기의 지도자  ‘노어’(Nathan Homar  Knorr:1905-1977) 리더포드의 계승자는 N.H.Knorr이다.그의 업적이라면 여호와의 증인을 54개국 11만 5천명에서 185개국 2백만명 이상의 비교적  큰 교단으로 성장시킨 것과  선교사를 양성하는 ‘길르앗 파수대 성서학교(1943年)’를 세운것,그리고‘새 세계 번역성서’를 자체번역해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어도 리더포드의  예언인 1975년의 세상종말을 보지 못하고 1977년 사망하였다.14)     4)현재의 지도자 프란츠(Fredrick.W.Frantz:1893-) 노어가  사망한 후 그들은 프란츠를 4대 협회장에 선출했다.  그는 노어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프란츠의 노력결과 여호와의 증인은 1988년 현재 세계 212국에 포교되어 있고,회중(교회)의 숫자는 57,670개,전도인수 455,561명,파이오니아(자진  전도  봉사자)3,592,654명으로 교세를 확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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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의

Ⅲ. 敎義 1. 世界觀  1) 三界 증산이 보는 우주는 그가 삼계(三界)라는 낱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볼 때 삼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그는 원한이 삼계에 가득 차 있다느니, 삼계가 혼란에 빠져 천도와 인도가 문란해졌다느니 하는 식으로 삼계에 대해 표현하는데 이때의 삼계는 불교에서 말하는 삼계, 즉 肉界 · 色界 · 無色界보다는 오히려 유교에서 말하는 우주의 삼대 요소, 즉 天 · 地 · 人을 지칭한다. 다시 말해 하늘 세계, 지하 세계, 사람 세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지하세계에 대한 언급은 大巡典經 5:12에서 한 번 인용될 뿐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반면 天界에 살고 있으며 人間과 깊은 연관을 지닌 神明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이를 볼 때 증산이 말하는 실재의 우주는 2층, 즉 天界와 人界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 天界(神界)1) 大巡典經에서 天界에 대한 증산의 구체적인 언급은 발견할 수 없지만, 일단은 9층으로 이루어진 것만은 확실하다. 이것은 자신이 九天 위에 살았다고 하는 증산의 언급이나, 천계의 구성을 묻는 제자의 질문에 구층으로 되어 있다고 대답한 데에서 추측할 수 있다. 다음과 같다. “하루는 김송환(金松煥)이 천사께 여쭈어 가로대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나이까? 가라사대 있느니라. 또 가로대 그 위에 또 있나이까. 가라사대 또 있느니라.” 하사 이와 같이 아홉 번을 대답하신 뒤에는 “가라사대 그만 알아두라 하시니라.”(大巡典經 3:94) 여기서는 지상 가까운 곳으로부터 차례로 한층 한층 올라가 아홉 단계의 하늘이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나아가 구천의 개념은 입체적으로나 평면적으로나 다 같이 아홉으로 나뉘어진 전 우주공간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보여진다.2) 이 구천은 ①구만리장천의 준말 ②사방팔방에 중앙을 보탠 것 ③한 층 한 층 올라간 九層 天의 뜻이 있는데, 증산사상에서는 이러한 개념이 종합되어 결국 전래의 다양한 天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보인다. 이 天에는 無形의 神들만 살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또한 신계에도 하늘과 땅이 있고, 신계의 하늘에는 황천(黃泉)과 중천(中天)의 구별이 있으며, 명천(明天)과 노천(老天)이 있다. 신계의 하늘과 마찬가지로 신계의 땅에도 경계가 있다. 이러한 증산의 세계관은 한국의 巫俗的 仙道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선도사상이 대부분 무속으로 흡수되어 버렸기 때문에 무속의 영향이 가장 강한 것으로 말할 수 있다. 무속에서의 세계 역시 神들이 사는 천계(혹은 靈界)와 인간계 둘로 나누어지고 바로 이 두 세계를 연결시키는 중개자로서 무당의 역할이 중시되는데, 이것은 증산의 세계관과 중재자로서의 증산의 이미지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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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6. 經典 증산교의 경전으로 가장 먼저 출판된 것은 ‘증산천사공사기’(甑山天師公事記)이다. 이 경전은 보천교 혁신회를 주도하였던 이상호가 그 곳을 탈퇴한 후, 강일순의 추종자들에게서 들은 강일순의 행적과 가르침을 모아 1926년에 간행한 책이다. 이 경전은 그 후 1929년에 간행된 대순전경(大巡典經)의 모체가 되었다.  大巡典經 역시 이상호에 의해 저술된 증산교의 경전이다. 이 경전은 ‘증산천사공사기’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1929년에 초판이 발간되었고, 그 후 저자의 생존시에 계속 증보되어 6판까지 출판되었다. 1982년 기준으로는 9판에 이르렀다. 총 9장 859절, 420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경전의 주요내용은 ‘천사(天師)의 탄강과 유소시대’ ‘천사의 성도와 기행이적(奇行異蹟)’ ‘문도의 추종과 훈회’ ‘천지공사’ ‘개벽과 선경’ ‘법언(法言)’ ‘교범(敎範)’ ‘치병(治病)’ ‘화천(化天)’으로 이루어져 있다. 8·15 광복 이전까지 증산교의 경전은 대체로 ‘大巡典經’으로 통용되었으나 광복 후 각 교단들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경전들을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10여개 이상의 경전이 있으며, 이 경전들은 대체로 ‘大巡典經’을 토대로 하면서, 강일순의 행적과 함게 자기 교단 창시자의 행적과 가르침도 아울러 수록하고 있다. 아직까지 독자적인 경전을 갖지 못하고 있는 교단들은 대부분 ‘大巡典經’을 경전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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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그 이후- 해방 후의 증산교

(3) 8․15 해방 이후 8․15해방을 맞아 지하로 숨어들었던 신흥종교들도 비교적 자유로운 종교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교단의 재확립은 해방 이후 나타난 사회적 혼란과 민중의 정신적 지주의 상실로 인해 보다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6․25動亂 이후 포교활동에 있어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리던 교단들은 일제시대에 각 교파를 창설하였던 교주들이 노쇠(老衰)에 의해 사망하게 되자, 대부분의 교단에서는 교단의 주도권확보를 위한 갈등이 점차로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새롭게 교단분열을 맞게 됨으로써 그 움직임은 별로 두드러지지 않았다.  증산교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學界에서 크게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증산교의 교리와 사상 속에 한국의 전통문화와 종교적 유산이 크게 내포되어 있음을 주목한 학자들은 이 종교의 교리와 사상을 강연회 · 세미나 · 학술논문 등의 형식으로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학계의 동향에 따라 증산교 교단의 활동도 보다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기존의 교단들은 경전을 출판하고 교리의 체계화를 시도하는 한편, 새로운 교단들도 끊임없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교단들로는 증산진법회(甑山眞法會) ·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 · 증산도(甑山道) 등이 있다. 또한 최근에는 대학생들의 관심과 참여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증산교 각 교단의 활동은 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의 민족종교로 성장하기 위하여 교리의 체계화 작업과 분열된 교단의 통합운동 및 타종교 그 중에서 한국고유의 신흥종교들과의 대화와 연합을 위한 활동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운계, 단군계 등의 한국고유계통의 신흥종교들과 민족종교로서의 인정을 받고 또 그에 따른 활동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많은 대화를 갖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1) 현재 증산교의 정확한 교단 수는 밝혀지기 않고 있으며, 그 까닭은 한 교파내에서도 경전의 해석에 따라 여러 갈래의 분파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로는 50여개 이상의 교단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한 신자의 수효는 20-30만명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2) (4) 교단 분열의 이유 교단분열의 근본적인 원인은 증산의 교단 조직구조상의 특징에 근거한다. 즉 증산은 동학이 그 교단의 조직이 계급질서가 명백한 지위서열에 기초하였기 때문에 내실의 완비보다는 외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게 됨으로써 실패하였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그는 처음부터 동학에서와 같은 위계질서의 확립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추종자들간의 관계는 비록 증산이 추종자들에 대해 만국대장, 통제사 등의 호칭을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평등관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단의 조직체계는 증산과 각 추종자들간의 師弟 關係에 의해 유지되었을 뿐 추종자들간의 유기적 관계가 되기는 어려웠다.  증산은 천지공사를 하면서 각기 다른 사람을 다른 장소에 데리고 가서 다른 말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그것은 그의 추종자들의 성격과 능력에 따라 각기 다른 역할을 부여하고자 하였으며, 스승에 대한 존경과 복종을 강조함으로써 추종자들 각자의 역할이 자신을 중심으로 연결되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조직구조상의 특성이 증산의 사후 교단의 분열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또한 특정 기성종교를 주 계통으로 하지 않고 모든 종교를 통합하고자 시도하였기에 각 종교계통을 표방하여 분파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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