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보와 연혁

 


Ⅰ.序論


   


한국 사회는 ‘세계 종교의  전시장’이라고 할 만큼 다종교 사회의 모습을 나타내고있다.1) 여러 기성종교와 수 백의 신흥종교들이 저마다의 성장을 시도하고 있는 시점에서 특히 신흥종교들은  많은 사회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 중 가톨릭 신자들이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접촉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은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인 면에서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그들은 주로 가톨릭 신자들을 대상으로 삼고 ‘성경연구’라는 명목하에 열성적으로 선교하고 있으며,그 결과 여호와의 증인의 70%이상이 가톨릭교회에서 개종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2)


이와 같은 사실은 선교 200주년을 지나 나름대로 성숙한 교회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한국교회에 대한 위협이자,교회발전에 큰 걸림돌이라 아니할 수 없다.따라서 한국교회는 대처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대처방안을 설정하는데에 있어서 가장 전제되어야 할 것은  바로 그들의 ‘정체와 교리적 특성에 대한 이해’이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먼저 그들에 대한 전반적인 면을 살펴본 다음 그들의 교리와 주장을 살펴보면서 필요하다면 비판도 해 볼 것이며,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증인과 대면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교회의 모습을 살펴 보면서 그들에 대한 교회의 대처방안은, 또 바람직한 교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지를 간단히 언급해 보고자 한다.




Ⅱ.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개관


   


  1.여호와의 증인의 공식명칭과 계보




여호와의 증인이란 공식 명칭은 이사야 43,10;44,8에 있는 “너희는 나의 증인”이란 말에 그 성서적 근거를 두고 있다. 처음에는 럿셀파,천년기 새벽파, 그리고 리더포드파 등으로 불리워졌으나, 1931년  미국의 컬럼버스에서 열린 여호와의 증인 신앙대회에서 당시의  협회장이었던  리더포드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이름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의 역사적 계보를  아담의 둘째 아들인 아벨에게 소급적용하여 최초의 여호와의 증인은 아벨이며, 그 후 아브라함,모세에 이어 여호와의 증인들이 끊이지 않고 나타났는데 가장 탁월한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후 럿셀,리더포드,노오르에게 계승되었다고 한다.3)




  2.연혁


  


    1)창설자 – 럿셀 (Charles Tase Russel 1852-1916)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 (Watch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로 알려진 여호와의 증인의 창설자는 럿셀로서 그는 1852년  2월 16일 미국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 근교의 ‘알레게니’에서 출생하였다. 그 후 ‘피츠벅’으로 이사하여 잡화상을 경영했는데, 국민학교 밖에 못나왔지만 천재적으로 뛰어난 화술과 웅변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조직적인 생활에 능한 사람이었다고 한다.4) 


그의 부모는 전통적인 장로교인이었으나 장로교회의 ‘예정교리’와 ‘영원한 형벌’에 대한 회의 때문에 회중교회(會衆敎會  – Congreational Church)로 개종하였고, 그 후 하느님의 선성과 공정하심에 비추어  장로교회의 교리를 반박하였다. 럿셀의 이와 같은 경향은 그의 비정상적 인격형성과 지적 빈곤 및 신앙의 영적인 면만을 추구한데서,5) 또 어렸을 때부텨 지녔던 지옥에 대한 공포심에서 기인한다.6) 방황 중 1869년, 그가 17세 되던 해에 지옥이 없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과 성경을 토론한 결과 그의 주장을 듣고 지옥부재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그 이후 1870년,18세때에는 ‘재림파’에 속한 교회에 다니면서 동료 8명과 성서연구를 시작했으며,특히 1872년 20세 때에 당시의 안식교 지도자였던 J.H.페이튼의 저서를 탐독하던 중 예수의 재림시기에 흥미를 가지고 연구하다가 이를 기초로 하여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에 대한 기초를 만들었다.7) 이 때 동료들은 정식 신학교육도 받지 못한 그를 목사로 추대하였으며,8) 이들과 함께 럿셀은 여호와의 증인의 전신인 ‘미국 성서 연구회’를 창립하였다.


1874년에는 ‘주님 재림의 목적과 그 방법(The object and manner of the Lord’s Return)’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하였다.이 소책자에서 그는 예수는 1874년에 재림하였지만, 그의 재림은 영적재림이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으며, 말세의 시간 또한 임박했다고 주장하였다.9)


또한 이들은 1879년 ‘시온의 파수대’라는 잡지를 발간하였다.그의 주장에 공명하고 추종하는 이가 점차 늘어나자  그 내용을 ‘천년왕국의 여명 (천년기새벽:Millennial Dawnites)’이라는 책으로  발간했다.1881년에 그들은 자신들의  단체 이름을 ‘시온의 파수대 소책자 협회(Zion’s Watchtower Track Society)’로 개명조직하고 1884년에 펜실베니아 주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함으로써 문서선교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렇게 럿셀은 자신의 주장을 펴기 위해 노력했으나 말세론의 부적중과 ‘기적의 밀(Miracle Wheat)’, ‘가짜  목사 사건’, ‘부인의 이혼소송’10)  등과 같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킴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으며, 1916년 10월 31일 자신의 예언의 성취를 보지 못한채 캘리포니아 전도여행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열차내에서 과로와 고민,고혈압으로 인해 64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11)




    2)과도기의지도자 리더포드(Joseph  Franklin Rutherford 1869-1942)


여호와의 증인들은 럿셀이 죽은 지 몇달 후인 1917년 1월 6일 협회의 법률고문이던 리더포드를 럿셀의 후임으로 선출했다. 그는 보통 ꡔ리더포드ꡕ판사로 불리웠으며 저술사업에 힘을 기울었다. 그는 신정(神政)정치적 통치를 지향했으며,교단이 맞는 위기들을 럿셀의 주장을 수정함으로써 극복코자 하였다.


예컨대 여호와의 증인들이 144,400명에 이르게 되면 세상이 종말을 맡게 될 것이라는 럿셀의 주장을 요한 복음  10,16의 “나에게는 이 우리안에 들어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여호와의 증인 교단에는 144,400명의 여호와의 증인들과 다른 양들이  있다고 수정하였다. 또 럿셀이  말세시기를 1914년으로 정한 것에 대하여 1914년은 말세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하였다. 또 성도들의 구원의 시기를 1914년 이전의  어느 때(럿셀의 ‘성경연구’)에서 1914년  이후의 어느 때로 수정하였 다.12)


그리고 말세의 시간을 1925년으로 주장하였다가 불발로 끝나자 다시 1975년 10월 1일로 재수정하였다.


그의 업적이라면 1931년 ‘여호와의 증인’이란 공식명칭을 제정한 것이며,워치타워 교리의 유권적 해석을  럿셀의 저서에서 자신의 저서로  대신한 점이다. 그는 25년간 통치하였으며 1942년 1월 8일 사망하였다.13)


    


    3)성장기의 지도자  ‘노어’(Nathan Homar  Knorr:1905-1977)


리더포드의 계승자는 N.H.Knorr이다.그의 업적이라면 여호와의 증인을 54개국 11만 5천명에서 185개국 2백만명 이상의 비교적  큰 교단으로 성장시킨 것과  선교사를 양성하는 ‘길르앗 파수대 성서학교(1943年)’를 세운것,그리고‘새 세계 번역성서’를 자체번역해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어도 리더포드의  예언인 1975년의 세상종말을 보지 못하고 1977년 사망하였다.14)




    4)현재의 지도자 프란츠(Fredrick.W.Frantz:1893-)


노어가  사망한 후 그들은 프란츠를 4대 협회장에 선출했다.  그는 노어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프란츠의 노력결과 여호와의 증인은 1988년 현재 세계 212국에 포교되어 있고,회중(교회)의 숫자는 57,670개,전도인수 455,561명,파이오니아(자진  전도  봉사자)3,592,654명으로 교세를 확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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