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5분의 3’쪽 취급한 나라는 어디?
“각 주의 의원은 ‘고용계약직’을 포함한 ‘자유인’과 ‘5분의 3(three fifths)’을 합한 숫자의 비례로 뽑는다. ‘인디언’은 그러나 세금을 내지 않아 인구조사에서 제외된다.”
건국 초기 미국의 헌법 1조엔 네 종류의 인간이 등장한다. 인디언을 빼고는 나머지 셋은 누구를 말하는지 당시 상황을 모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풀어 보면 이렇다. ‘자유인’은 대부분 본토(영국) 출신을 일컫는다. 프랑스나 독일 아일랜드 등지에서 이민 온 백인들은 ‘고용계약직’으로 분류됐다. 하인으로 5~6년 일을 해야 계약의 족쇄에서 풀려나게 돼 말하자면 기간제 노예였던 셈이다.
‘5분의 3’은 한마디로 치욕의 역사다. 종신제 흑인 노예들이어서 자유인의 ‘5분의 3’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헌법은 인디언을 뺀 나머지 세 부류의 사람들을 카운트해 연방의원 숫자를 정한다고 명시했다. 투표권이 없었던 노예들은 남부 쪽에서 의원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우격다짐으로 끼어 넣은 것이다.
처음엔 흑인도 한 명으로 셈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북부 쪽에서 반대해 ‘5분의 3’쪽 인간으로 정치적 타협을 봤다. 인디언들은 조사대상이 아니어서 당시 인구가 얼마나 되는 지 알 길이 없다. 센서스는 이처럼 특정 인종에겐 한의 역사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동양계에게도 센서스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2차세계대전이 터지자 센서스국은 주소를 포함한 모든 자료를 FBI와 군 당국에 넘긴 것. 10만명이 넘는 일본계가 하루아침에 적성국 시민으로 간주돼 수용소로 끌려갔다. 센서스 데이터는 공개할 수 없다는 규정을 정부 스스로 어긴 꼴이 됐다.
이 사건으로 권위가 실추된 센서스국은 이후 권력기관에 문을 꽁꽁 걸어 잠근다. 심지어 대통령의 압력도 묵살한 적이 있었다. 트루먼의 일화는 지금도 흔히 인용되는 센서스의 ‘전설’이다.
1950년 백악관이 대폭 리모델링을 하게 되자 당국은 대통령이 임시 거주할 안가가 필요했다. 비밀경호처는 워싱턴의 센서스국을 찾아가 해당 지역 인근의 주민성향을 알아보겠다며 데이터를 요구했다.
대통령 명령을 내세워 강하게 압박했지만 센서스국은 일언지하에 거부해 버린 것. 트루먼은 할 수 없이 영빈관으로 쓰였던 ‘블레어 하우스’로 거처를 옮겼다. 최고 권력자가 센서스국에게 수모를 당한 것이다.
미국인들이 센서스국의 위상을 실감하게 된 것은 1980년 콜로라도주에서 일어난 해프닝 때문이다. 어느날 4명의 FBI 수사관이 그 지역 센서스국에 들이닥쳐 개인 정보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법원으로부터 수색영장까지 발부받았으니 꼼짝없이 자료를 넘겨줘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한 직원이 용기를 내 FBI 총수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것이 사태반전의 계기가 됐다. 저녁 늦게 식사를 하고 있던 국장은 말단 직원의 항의에 몇차례나 사죄를 해야 했다.
미국서 금년은 10년마다 실시되는 인구조사의 해다. 문항도 10가지로 대폭 줄여 10분이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다. 불법이민자이건 영주권자이건 시민권자이건 누구나 참여해야 한다.
소수계에겐 차별과 때로는 공포를 안겨줬던 센서스. 그러나 이젠 피부색깔에 관계없이 모두가 ‘자유인’으로 살아갈 권리가 주어져 있다. ‘5분의 3’ 취급을 받던 시절을 한번 생각해 보자. 그래도 센서스를 외면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