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꿈을 풀이하는 요셉
파라오는 “내가 꿈을 꾸었는데, 그것을 풀이할 자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너는 꿈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그것을 풀이한다고 들었다.”(창세41,15)라고 말 하면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해 준다.
① 요셉의 꿈 풀이
파라오의 꿈 이야기를 들은 요셉은 이렇게 말한다.
“파라오의 꿈은 한 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앞으로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는 바를 파라오께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좋은 암소 일곱 마리는 일곱 해를 뜻합니다. 좋은 이삭 일곱도 일곱 해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 꿈은 한가지입니다. 그 뒤를 이어 올라온 마르고 흉한 암소 일곱 마리도 일곱 해를 뜻하고, 속이 비고 샛바람에 바싹 마른 이삭도 그러합니다. 이것들은 기근이 들 일곱 해를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앞으로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는 바를 파라오께 보여 주시는 것이라고 제가 파라오께 아뢴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앞으로 오게 될 일곱 해 동안, 이집트 온 땅에는 대풍이 들겠습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일곱 해 동안은 기근이 들겠습니다. 그러면 이집트 땅에서는 전에 들었던 그 모든 대풍이 잊혀지고, 기근이 이 땅을 고갈시켜 버릴 것입니다.”(창세41,25-30)
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자세히 풀이해 주었다. 먼저 두 개의 꿈이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알려 준 다음, 일곱 마리 암소와 일곱 이삭은 7년을 상징하고 있고, 이어 꿈이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를 알려 준다. 곧 7년 동안 연속해서 풍년이 있고, 그 다음 역시 7년 동안 연속해서 흉년이 있을 것임을 알려 준다. 마지막으로 같은 메시지가 담긴 꿈을 두 번 계속해서 꾸게 된 이유는 7년 동안의 풍년과 7년 동안의 흉년이 반드시 일어날 일임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해준다.
이렇게 파라오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요셉은 꿈의 계시자가 하느님이심을 거듭 강조한다.
“하느님께서 앞으로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는 바를 파라오께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창세41,25,) “하느님께서 앞으로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는 바를 파라오께 보여 주시는 것이라고 제가 파라오께 아뢴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창세41,28)
“파라오께서 같은 꿈을 두 번이나 되풀이하여 꾸신 것은, 하느님께서 이 일을 이미 결정하셨고 지체 없이 그대로 실행하시리라는 것을 뜻합니다.”(창세41,32)
그리고 요셉이 하는 말에서 알 수 이듯이 이 모든 것의 주체는 파라오가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말해 주고 있다.
② 꿈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대안
요셉은 꿈을 해석해 주고 대책을 알려 준다.
“이렇듯 뒤따라오는 기근이 하도 심하여, 이 땅에 대풍이 든 적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조차 없을 것입니다. 파라오께서 같은 꿈을 두 번이나 되풀이하여 꾸신 것은, 하느님께서 이 일을 이미 결정하셨고, 지체 없이 그대로 실행하시리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이제 파라오께서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하나를 가려내시어, 이집트 땅을 그의 손아래 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1) 파라오께서는 또 나라의 감독관들을 임명하셔서, 대풍이 드는 일곱 해 동안 이집트 땅에서 거둔 수확의 오분의 일을 받아들이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앞으로 올 좋은 시절 동안 모든 양식을 거두어들이게 하시고, 파라오의 권한으로 성읍들에 곡식을 쌓아 갈무리하게 하십시오. 이 양식은 앞으로 이집트 땅에 닥칠 일곱 해 동안의 기근에 대비하여, 나라를 위한 비축 양식으로 남겨 두십시오. 그러면 이 나라는 기근으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창세41,31-36)
일곱 해 동안 지속되는 기근은 설형문자2)로 쓰인 메소포타미아의 문헌, 페니키아와 후대의 이집트 문학에서도 볼 수 있다.
요셉은 파라오에게 꿈만 해석해 준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 벌어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 구체적 대안까지 제시한다.
요셉이 제시한 대안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이집트 온 땅을 다스릴 슬기롭고 지혜로운 지도자 한 사람을 세울 것.
슬기와 지혜는 모세의 보조자들(신명1,13), 솔로몬(1열왕3,12),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햇순(이사11,2)이 갖춘 덕목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영과 함께 주어지는 이 덕들은 백성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재능을 부여해 준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슬기와 지혜는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를 위해서 헛되이 사용하지 않는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지식을 사용하고, 결국 그것이 탄로가 나서 망신을 당하고, 세상이 떠들썩하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자신이 맡은 일이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기에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하느님을 위해서, 그리고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창세기에서는 요셉이 바로 그런 적임자임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그의 지혜는 지혜 자체이신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었으며, 자신이 헛된 욕망을 품지 않고 하느님의 도구로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며, 또 어떻게 식량을 모으고, 언제 풀어야 하는 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의 명을 받아 일하게 될 감독자들을 각 지역에 세울 것.
사실 일이라는 것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 계획을 짜서 실행하려 해도 아랫사람들이 그것을 받쳐 주지 않으면 실행이 안 된다. 대통령이 어떤 일을 하려 해도 아랫사람들이 이런 저런 일들을 저지르면 결국 그것 해결하다가 볼일 다 본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감독자들의 첫 번째 자격 조건은 지도자의 명을 받아 일하는 것이다. 불리움을 받은 사람은 부른 사람의 말을 듣기 위해서 온 것이지 자신의 뜻을 실행하기 위해 불리움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수확량의 오분의 일을 거두어 각 지역 창고에 보관하도록 할 것.
요셉은 닥쳐올 대흉년을 대비해서 수확량의 오분의 일을 거두어 보관할 것을 말한다. 풍족할 때는 여유 있게 쓰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지만 요셉은 반을 보관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풍요로운 시기에 반을 절약해 놓지 않으면 흉년에 고생하는 것처럼, 신앙생활 열심히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해야만 나이 들어서도 그것으로 유지하지 않겠는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성경을 읽고, 기도문을 외우고, 교리공부를 해야지 나이 들어서 그것이 귀에 들어오고 머리에 남아있겠는가?
한 할아버지가 나이 들어 영세를 했는데 이렇게 말한다. “제가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과 영광송은 외웠는데 이 사도신경이 안 외워집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외우려고 하는데 그게 당체…,”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 또한 슬기로움이다.
요셉이 제시한 대로만 하면(물론 이것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하느님의 뜻대로만 따른다면) 파라오는 절대 권력을 가질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이집트가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음이 분명하다. 파라오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가끔은 명확한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흘려버리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요셉은 노예가 아닌가? 그것도 감옥에 갇혀 있던 노예. 그런 요셉의 말을 파라오가 들을 것인가?
만일 내가 파라오였다면 과연 요셉의 말에 귀를 기울였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