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성월

목숨을 버림으로써 영원히 살아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 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마태 5,11-12)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임을 증언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신자들이며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를 따라 세상을 살고, 또 그 진리를 증거하는 신자들이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한 세상은 그리스도를 믿는 그 신자 역시 배척한다. 여기서 교회는 박해를 받으며 복음을 증거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된다.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을 믿는 이들이 세상에서 당하게 될 박해를 다 알고 계셨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썩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한 알 그대로이나 썩어서 싹을 내고 이삭을 맺으면 더 많은 밀알을 낸다는 주님의 말씀은,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죽음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우리 교회는 처음부터 박해를 받았다. 초세기 300여 년에 걸친 로마시대의 박해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잔인했고 무서웠다. 그래서 초세기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다니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체포될 경우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박해자의 칼에 순교하였다. 그러나 교회는 이런 박해로 파멸되지는 않는다. 교회는 마치 불과 같아서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점점 번질 뿐이다. 이것이 교회의 생리이다. 그것은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참다운 진리의 교회이며 살아 계시는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박해자들의 칼 아래 쓰러지는 순교자들은 더 많은 낟알을 내기 위해 썩는 밀알처럼 교회를 성장케 하는 씨앗이었다. 그들의 순교는 복음을 증언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리셔 일찍이 떼르뚤리아누스 성인은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라고 말하였다. 이렇듯 그리스도 교회는 본래부터 박해를 받으며 자라 왔다. 그러다 마침내 교회는 승리를 거두고 로마제국 전체를 그리스도화하게 되었다. 온 세상 모든 민족을 구원하고자 하는 교회는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이끌어진다.
9월은 순교자성월이다. 우리의 한국 순교복자들을 기리며 그분들의 굳은 신앙을 본받고 순교 정신을 이어받기로 힘쓰는 달이다. 하느님의 섭리는 우리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도 내린다. 하느님의 진리가 이 땅에도 전해지고, 그리스도의 구원이 우리 민족에게까지 내리게 되었다. 300여년 전 북경을 왕래하던 우리 나라의 사신들 손에는 중국에 와서 전교하던 선교 신부들이 지은 한문 교리서가 입수되었다. 그때부터 하나둘씩 교리를 배우던 우리 선조들, 마침내 1784년 동지사를 따라 북경에 간 이승훈이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영세를 받고 들어옴으로써 이 땅에도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탄생하게 되었고 교회는 시작되었다. 이렇듯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선조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복음을 맞아들이게 됨으로써 탄생하였다. 이 점은 세계 그 어느 교회 역사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점이다. 선교사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간 곳은 우리나라 뿐이다. 그래서 이 점은 우리 교회사의 자랑거리이다. 그러나 초세기 교회가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디딜 때 처음부터 박해를 받아야 했듯이 우리 나라 교회도 박해를 받으며 성장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제 우리 나라 교회의 발자취와 선조들의 굳은 신앙을 살펴보면 우리 교회의 역사를 조금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교회가 탄생하게 되던 당시 우리 나라는 유교주의적 사회였다. 모든 것이 유교적 이념 하에 다스려지던 시기였다. 따라서 천주교를 서학 또는 천주학이라 부르며 처음부터 배척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는 우리 민족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또한 몇 가지 신앙생활을 위한 규범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유교적 풍습과 맞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유학자들은 우리 교회를 이단사설, 즉 그릇된 가르침으로 단정, 신자들을 박해하였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남 몰래 숨어서 함께 모여 기도를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전교하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신자들의 이러한 복음전파 활동은 사제 없는 이 땅에 이미 수많은 신자를 낳게 하였다. 그러나, 사제가 없는 우리 교회는 마치 목자 없는 양떼 같다고나 할까! 신자들은 사제가 있어야 함을 깨닫고 어려움 속에서도 사제를 맞아들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초대 우리 교회 신자들은 우리 민족을 구원코자 하는 사도들이었다. 박해를 받으면 산으로 숨고, 박해가 좀 누그러지면 숨을 돌리던 우리 선조들, 그래서 한 번도 공공연히 드러내 놓고 성호 한 번 그을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체포되어 관가로 끌려 갈 경우 신자들은 또한 양처럼 순교하였다. 1880년대까지 이러한 박해는 계속되었다. 1801년 신유교난,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은 수많은 신자들을 처형한 중요 박해이다. 100여년간 계속된 우리 교회의 수난 시기, 그러나 그때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신앙을 지켰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수많은 순교자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분들의 순교 행적을 일일이 다 알고 있지 못하다. 이름없이 치명한 순교자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성인품에 오른 분은 겨우 103명뿐이다. 1925년 7월 5일 79명의 순교자가 복자품에 오르고 1966년 병인박해 백 주년을 계기로 다시 24명의 순교자들이 시복되었다. 1983년에는 복자품에 오른 103명의 순교 성조들이 성인품에 올려지게 되었다. 우리 복자들의 행적을 읽어 보면 참으로 눈물겨운 일이 많다. 그들이 받은 어려움과 박해는 무엇때문인가? 하느님을 공경한다는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신다는 이유 때문에 그토록 박해를 받아야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 선조들의 신앙이 얼마나 열렬했고 뜨거웠던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순교자성월을 지내면서 그분들의 굳은 신앙을 본받으며, 순교자들의 승리를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하겠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성지를 돌아보며, 그분들의 얼을 가슴에 새겨 두도록 노력함은 순교자성월에 우리가 해야 할 바람직한 행사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하느님의 뜻에 맞는 신자생활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마르 8,34-35). 우리 선조들은 주님의 이 말씀을 따른 분들이다. 물론 역사를 읽어보면 관가에 끌려가 고문에 못 이겨 배교한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따라 자기 목숨을 버림으로써 길이 살아 있다. 그래서 교회는 그들을 성인들이라 부르며 그분들을 신앙의 표본으로 삼고 공경한다. 순교자성월은 바로 이러한 우리 순교 성인들을 찬미하고 공경하는 달이다. “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여, 높으신 영광에 불타는 넋이여…” 순교자성월을 통해 우리는 순교자들의 순교정신을 배우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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