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니파시오 빈프리드 Bonifatius-Winfried

  보니파시오 빈프리드  Bonifatius-Winfried

  빈프리드는 앵글로색슨 귀족 가문 출신으로서 672년 웨섹스(Wessex)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베네딕토회의 수도승이 되었고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의 교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716년 빈프리드는 지금의 네덜란드 북부 지역에 해당하는 프리슬란트에 선교사로 파견되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곧장 귀환하였다. 719년 교황 그레고리오 2세는 빈프리드에게 독일 지역의 선교 과업을 맡겼다. 722년 빈프리드는 로마에서 주교로 서임되었고, 723년에는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738년에는 독일 주재 교황 사절로 임명되었다. 교황은 빈프리드라는 이름을 보니파시오로 바꿔 주었다. 746년 보니파시오는 마인츠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754년 보니파시오는 다시금 프리슬란트 선교를 위한 여행을 계획하여 실행에 옮겼으나 754년 6월 5일 수많은 동료들과 함께 순교하고 말았다. 보니파시오는 풀다에 안장되었다. 보니파시오는 ꡐ독일의 사도ꡑ라는 명예로운 칭호로 불릴 정도로 선교사로서 성공적으로 활약했고, 이러한 그의 활약은 교회사에서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보니파시오의 삶과 활동이 이루어졌던 시대는 교황들이 동로마의 비잔틴으로부터 등을 돌려 점점 독일 쪽으로 방향을 돌리던 시기였다.


  보니파시오는 722년 11월 30일 주교로 서임될 때 특별한 충성 서약을 하였다. 이 서약은 교황 선거권을 가진 로마의 주교들이 자신들의 수석 대주교인 교황에게 행하던 것이었다. 이로써 보니파시오의 모든 활동은 로마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 이루어졌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교황에게 행하는 서약은 비잔틴의 황제에게 이행해야 할 의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보니파시오의 경우는 교황에게 이행해야 할 의무로 대치되었다. 교황이 보니파시오를 통해 황제 마르텔(Martell)에게 보낸 소개 편지 역시 이러한 의무에 대해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이로써 로마와 독일은 새로운 고리로 연결되었다.


  732년 교황 그레고리오 2세가 보니파시오에게 위탁한 지역은 라인 강 오른편 독일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보니파시오는 교황의 독일 주재 사절로 임명을 받고 난 후 독일의 교구를 재정비하였고, 독일에서의 교회 개혁을 위한 시노드를 여러 차례에 걸쳐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들은 보니파시오를 통해 전 독일 지역에서 획득한 교황권의 명성과 위치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그 결과 교황들이 독일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은 어려움이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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