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셴티 가문 Crescentier

  크레셴티 가문  ~家門   Crescentier

  크레셴티 가문은 로마의 귀족 가문으로서 수십 년간 교황의 역사와 교회에 대해 매우 불리한 영향을 미쳤다. 교황들은 오로지 독일 국왕들의 보호 아래서 로마 귀족 가문들로부터 자신들의 자주성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독일의 국왕들이 로마를 떠나자 크레셴티 가문이 봉기하였다. 이 봉기는 973년 독일의 오토 대제가 별세한 후 일어났다. 크레셴티 가문은 교황 베네딕토 6세를 체포하여 천사의 성에 감금시켰다. 그리고 그의 후임으로 보니파시오 7세를 교황으로 즉위시켰다. 교황 베네딕토 6세는 천사의 성에서 살해되었다. 독일의 국왕들이 다시금 로마로 진격하자 교황 보니파시오 7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도피하였다. 그러자 보니파시오 7세 교황은 퇴위된 것으로 선언되었다. 그리고 그의 후임자로 베네딕토 7세가 교황으로 즉위하였다. 베네딕토 7세 교황의 서거 후 983년 요한 14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983년 국왕 오토 2세가 별세하자 보니파시오 7세 교황은 로마로 귀환하였다. 교황 요한 14세는 체포되어 천사의 성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1년 후 보니파시오 7세 역시 살해되었다. 그의 후임자인 요한 15세는 이 모든 혼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크레셴티 가문의 덕분으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나중에 교황 요한 15세와 크레셴티 가문 사이에 마찰이 발생하였으나, 이 마찰은 996년 교황 요한 15세의 별세로 자연스럽게 종지부를 찍었다. 오토 2세 국왕이 로마에 와서 자신의 사촌 브룬(Brun)을 새로운 교황으로 지명하였다. 이 교황이 바로 그레고리오 5세로서 독일 출신으로는 최초로 교황직에 등극하였다. 국왕 오토 2세가 로마를 떠나자 크레셴티 가문은 다시금 봉기를 일으켰다. 그 결과 교황 그레고리오 5세는 로마를 떠나야만 하였다.


  크레셴티 가문은 요한 16세를 대립 교황으로 옹립하였다. 교황 요한 16세는 국왕 오톤 2세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그레셴티 가문의 지도자들은 국왕 오토 2세가 로마에 주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항했고 천사의 성에서 방어전을 쳤다. 오토 2세는 천사의 성을 정복하고 난 후 크레셴티 가문의 지도자들을 처형하였다. 하지만 이로써 로마에 평온이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처형된 자의 아들 요한 크레셴티우스가 로마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 즉 요한 17세(1003년), 요한 18세(1003/1004~1009년) 그리고 세르지오 4세(1009~1012년) 등을 교황으로 지명하였다. 1012년 요한 크레셴티우스가 죽은 후 크레셴티 가문은 더 이상 로마를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자리에 투스칼리니 가문이 대신 등장했고, 이 가문은 3명의 교황을 배출하였다.  


이 글은 카테고리: dogma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