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트족 : 게르만 민족의 한 종족 Goten
1. 동고트족 : 동고트족은 두 고트족 가운데 한 종족으로서 350년경 흑해 북쪽 지역에 제국을 세웠으나, 375년경 훈족에 의해 정복당했다. 453년 훈 제국이 멸망한 후 동고트족은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도나우-타이스(Donau-Theiss)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대 테오도리크(Theoderich)는 488년 이탈리아 라벤나(Ravenna)를 수도로 하는 제국을 세웠다. 이 제국은 536년부터 552년까지 위티지스(Witigis), 토틸라(Totila) 그리고 테야(Teja) 국왕의 통치를 받았으나, 비잔틴의 최고 지휘관 벨리사리우스(Belisar)와 나르세스(Narses)에 의해 섬멸되었다.
2. 서고트족 : 아리우스주의는 고트족을 통해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325년 이전 도나우 강 하류의 왼쪽 강변 지억에 가톨릭을 신봉하던 고트족이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비잔틴에서 주교로 서품되었던 불필라스(Wulfilas)는 384년경 자신의 국왕으로부터 박해를 받았으며, 그 후 훈족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자 동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에게 자신과 자신의 종족이 로마 제국 내에 망명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황제 콘스탄티우스는 만일 그들이 특별 임무를 수행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요청을 들어주겠다고 답하였다. 아리우스주의를 신봉하였던 황제 콘스탄티우스는 주교 불필라스와 그의 종족에게 아리우스주의를 수용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고, 콘스탄티우스의 후계자 발렌스(Valens) 역시 더 적극적으로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아리우스주의를 신봉하게 된 서고트족은 민족 이동을 통해 접촉하게 된 이웃 종족, 즉 반달족과 랑고바르드족에게도 자신들의 신앙을 전파하였다.
서고트족은 5세기 초엽 그들의 왕 알라리크(Alarich)와 함께 이탈리아로 이주하였다. 410년 로마를 정복한 서고트족은 로마에 머물지 않고 갈리아 남부 지역으로 이동했고, 톨로사(Tolosa: 오늘의 툴루즈〔Toulouse〕)를 수도로 하는 제국을 세웠다. 이 제국의 가톨릭 교도들이 처해 있던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서고트족의 왕은 민족의 지도자라기보다는 종파의 우두머리로 군림하였다. 그의 후계자는 507년 프랑크족에게 남부 갈리아 지역을 대부분 빼앗겼다. 레오비길드(Leovigild, 569~586년) 왕은 다시금 가톨릭 교회를 공격했고, 가톨릭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그의 아들 헤르메네길드(Hermenegild)를 세비야(Sevilla)의 부왕(副王)으로 임명하여 파견하였다. 헤르메네길드는 세비야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이 개종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레오비길드와 아들 헤르메네길드 사이에는 전투가 발생했고, 이 전투에서 아들 헤르메네길드는 패배하였다. 그리고 아리우스주의로 복귀하면 자유의 몸이 되도록 석방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거부함으로써 처형당하였다.
589년 상황은 역전되었다. 톨레도(Toledo)에서 개최되었던 시노드에서 레카레드(Reccared) 왕은 아리우스주의를 포기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이 개종을 계기로 탁월한 주교들 – 예를 들어 세비야의 이시도르(Isidor) 등 – 과 신학자들은 신앙 생활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진력하였다. 8세기 초엽 왕좌를 둘러싼 불화와 반목은 마침내 제국의 멸망을 초래하였다. 펠라지우스주의를 둘러싼 논쟁과 관련해서 고트족은 일련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즉 펠라지우스주의의 추장자 펠라지우스(Pelagius)는 410년 고트족이 로마를 점령했을 때 북아프리카로 도피하였고, 거기서 자신의 강적 히포의 아우구스티노를 만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