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단자 재세례 논쟁 異端者再洗禮論爭 Ketzertaufstreit
세례는 일생 동안 다 한 번 받을 수 있는 성사로 인정되어 왔다. 그러므로 이미 유효하게 수여된 세례의 반복은 금지되어 왔다. 3세기에 들어 세례를 유효하게 수여하는 데 필요한 조건에 대한 물음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물음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다양한 이단을 추종하던 사람들이 다시금 교회에 되돌아올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는 사례가 발생하였다. 만일 이들이 가톨릭 교회의 세례를 받았고 나중에 교회로부터 이탈해 나갔을 경우라면 다시금 세례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단자로부터 세례를 받았을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물음이 대두되었다. 다시 말해 이단자들이 과연 유효한 세례를 수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상이한 실천이 있었다.
아프리카와 대부분의 동방 교회는 이단자가 유효한 세례를 수여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금 세례를 수여하였다. 이와는 달리 로마와 알렉산드리아는 이미 받은 세례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였다. 테르툴리아노는 이단으로부터 교회로 돌아오는 신자들은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255년 치프리아노 주교의 주재로 카르타고에서 개최되었던 시노드는 교회 밖에서 수여된 세례를 무효라고 선언하였다(재세례를 주장). 256년 카르타고에서 개최되었던 또 다른 시노드 역시 동일한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을 승인해 줄 것을 교황 스테파노 1세에게 청원하였다. 하지만 교황은 이단자에 의해 수여된 세례의 반복 세례를 금지시켰다. 교황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치프리아노와 그를 지지하는 아프리카의 주교들은 자신들의 결정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교황 스테파노 1세는 이들과의 관계를 단절하였다. 교황 스테파노 1세의 후임자 식스토 2세는 치프리아노 주교에게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서 단절되었던 관계를 회복시켰다.
314년 아를(Arles)에서 개최되었던 시노드와 325년의 제1차 니케아 공의회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믿지 않는 이단자에 의해 수여된 세례의 경우에만 세례가 반복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결정하였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노는 이단자에 의해 수여된 세례의 유효성을 신학적인 논거로 뒷받침하였다. 즉 아우구스티노는 교회 내에서 또는 밖에서 수여된 모든 세례는 유효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세례의 원래 수여자는 예수 자신이라는 논거로써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였다. 다시 말해 세례를 수여할 때 예수께서 세례를 통해 의도했던 바, 바로 그것을 저항한다면, 그리고 교회에 의해 규정된 양식을 준수한다면 그 세례는 유효하다는 것이다. 성사 집전자와 성사의 유효성에 관한 문제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