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 황제들 ~皇帝 Ottonen
유럽의 막강한 군주였던 오토 1세 대제(936~973년)는 교황 아가피토(Agapet, 946~955년) 2세의 요청에 따라 이탈리아로 진군하여 롬바르디아를 점령하였고, 부르군디 국왕의 딸이었던 아델라이데(Adelhaid)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교황과 황제 대관에 관해 협의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절을 로마로 파견하였다. 하지만 독일에서 전개되었던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오토 1세 대제는 조기에 독일로 귀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960년 교황 요한 12세의 특사는 오토 1세 대제에게 교황의 보호를 요청하는 청원을 전달하였다. 오토 1세 대제는 교황의 요청을 받아들여 962년 1월에 로마로 왔다. 그리고 962년 2월 2일에 황제로 즉위하는 대관식을 치렀다. 그전에 오토 1세는 교황에게, 자신은 교황을 반대하는 어떤 무엇도 시도하지 않을 것과 교황의 관할에 속하는 지역을 반환할 것을 약속하였다. 황제 대관식을 통해 칼 대제의 주권은 새롭게 회복되었다. 이른바 오토의 특전을 통해 오토 1세는 자신의 선왕이 교회에 증여한 모든 것을 재확인하였다.
962년 2월 교황은 오토 1세 대제가 열망하였던 마그데부르크 대교구의 설정을 재가하였다. 그리고 오토 1세 대제의 선교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된 모든 백성들은 마그데부르크 대교구에 소속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교황 요한 12세는 오토 1세 대제가 로마를 떠난 후 자신의 자유가 침해당하지 않을까 우려하였다. 그래서 오토 1세 대제의 적들과의 제휴를 모색하였다. 오토 1세 대제는 두 번째로 로마로 진격하여, 베드로 대성전에서 개최된 시노드를 통해 교황의 퇴위를 선언하였다(963년 12월 4일). 후계자로는 레오 8세가 교황으로 지명되었으나 실제로는 베네딕토 5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오토 1세 대제는 레오 8세를 교황으로 고집하였다. 오토 1세 대제는 베네딕토의 선출을 자신의 권리 침해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오토 1세 대제는 다시금 로마로 진격하였고, 로마인들은 오토 1세 대제에게 도시를 넘겨주었다.
라테라노에서 개최된 시노드에서 로마인들은 오토 1세 대제와 교황 레오 8세에게 충성을 서약하였고, 베네딕토는 함부르크로 추방되었다. 교황 레오 8세의 후임 교황 요한 13세는 자신의 독재 정치 때문에 로마에서 봉기가 일어나자 다시금 오토 1세 대제에게 지원을 요청하였다. 오토 1세 대제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봉기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오토 1세 대제의 복수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오토 1세 대제는 봉기를 주도한 지도자에 대해 엄한 심판을 내렸다. 967년 라벤나의 시노드에서 오토 1세 대제는 교회 국가를 회복시켰고, 교황에게 라벤나의 총독직을 위임하였다.
오토 2세는 967년 성탄절에 황제로 즉위하였다. 오토 1세의 죽음(973년 5월 7일)은 교황직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였다. 크레셴티 가문이 로마에서 득세하였기 때문이었다. 983년 교황 베네딕토 7세의 서거 후 오토 2세는 파비아(Pavia)의 주교 베드로를 새로운 교황으로 지명하였다. 그가 바로 요한 14세였다. 오토 2세는 28세의 나이로 983년 12월 7일에 요절하였다. 오토 3세는 교황 요한 15세의 요청에 따라 로마로 왔다. 왜냐하면 교황은 크레셴티 가문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토 3세가 로마에 도착하기 전 이미 교황 요한 15세는 서거하였다. 그래서 로마의 귀족들은 오토 3세에게 새로운 교황의 지명을 청원하였다. 오토 3세는 자신의 사촌 – 케른텐(Kärten)의 오토의 아들 – 브룬(Brun)을 교황으로 지명하였고, 그가 바로 최초의 독일 출신의 교황인 그레고리오 5세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5세는 996년 예수 승천 대축일에 오토 3세를 황제로 대관시켰다. 이 황제 대관식은 교황 그레고리오 5세가 수행한 첫 번째 직무였다. 오토 3세가 로마를 떠나자 즉시 교황 그레고리오 5세는 도피해야만 하였다. 크레셴티 가문이 요한 16세를 대립 교황으로 옹립하였기 때문이었다. 교황 요한 16세는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오토 1세와 오토 2세 치세 때 황제의 재상으로 재직한 인물이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5세의 요청에 따라 오토 3세는 998년 다시금 로마로 진격하였다. 그사이 대립 교황 요한 16세는 도피하였다. 그러나 즉시 체포되어 참수당하였다. 크레셴티우스 역시 천사의 성에서 황제에게 저항하였으나 곧 체포되어 참수당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5세가 일찍 서거하자 오토 3세는 클뤼니 수도회의 원장 오딜로(Odilo)의 제안에 따라 오딜로의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랭스의 제르베르(Gerbert)를 새로운 교황으로 지명하였다. 그가 바로 교황 실베스테르 2세였다. 1001년 교황과 황제는 반란이 일어난 후 로마를 떠나야만 하였다. 그래서 로마의 귀족 가문들이 로마의 주권을 이어받았다. 오토 3세는 1002년에 서거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