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실리아누스주의 Priszillianismus

  프리실리아누스주의  Priszillianismus

  4세기 후반기에 어떤 에집트인이 마니교의 사상을 스페인에 전파하였다.이 에집트인은 매우 부유하고 교양이 높은 평신도 프리실리아누스(Priszillian)를 지지자로 얻게 되었다. 프리실리아누스는 엄격한 금욕 생활을 실천하였고, 그의 모범적인 생활로 인해 많은 추종자들이 그를 따랐다. 380년 사라고사(Saragossa)에서 개최되었던 시노드는 프리실리아누스를 파문시켰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단죄하였다. 하지만 그사이 프리실리아누스는 아빌라(Avila)의 주교가 되었다. 프리실리아누스는 자신에게 내려진 파문과 단죄의 처벌을 철회시키기 위해 교황 다마소 1세를 방문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실리아누스는 주교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었다. 385년 보르도(Bordeaux)에서 개최되었던 시노드가 다시금 프리실리아누스주의를 단죄하였고, 이 주장을 지지하였던 주교들은 직책을 박탈당하였다. 이에 대항해서 프리실리아누스는 황제에게 항소하였고, 황제는 그를 트리어(Trier)로 소환하였다. 이곳에서 궁정 법정은 프리실리아누스를 고발하였고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마르티노(Martinus)의 이의 제기에도 불구하고 프리실리아누스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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