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이시도르 변조 僞~變造 Pseudoisidorische Fälschungen
중세기의 교황들이 권력을 장악하면 할수록 주교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지키는 데 열중하였다. 교황과 주교들의 대결과 관련해서 교황 레오 4세(847~855년) 재임시 이른바 ꡐ위이시도르 변조ꡑ사건이 발생하였다. ꡑ위이시도르 변조ꡑ란 일부분은 변조되고 일부분은 변조되지 않은 문서와 교황의 서한에 대한 편집과 관련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교황 클레멘스 1세부터 멜키아데스에 이르는 기간에 해당하는 교황의 서한 60통을 포함하고 있다. 교황 클레멘스 1세의 서한 이외에 나머지 다른 모든 서한은 변조되어 편집되었다. 두 번째 부분은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에 관한 위조 문서와 스페인과 갈리아 지역에서 개최되었던 공의회의 결정 사항에 대한 변조로 구성되어 있다. 세 번째 부분은 교황 실베스테르 2세부터 그레고리오 2세에까지 이르는 기간에 반포되었던 교령들을 포함하고 있으나, 그 가운데 48개의 문서들이 변조되었다.
이러한 변조는 847년부터 850년 사이 랭즈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주교들의 독자적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의도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미 앞서 언급한 교황들의 서한들과 문서는 오로지 교황만이 주교들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목적으로 그리고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의도로 편집되었다. 실제로 이러한 변조는 교황의 수위권 문제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물론 교황들이 변조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자신들의 위치를 교회 내에서 강화시키기 위해 변조된 문서들을 이용하였다. 이러한 변조는 중세기의 교회 생활과 정치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아울러 이러한 변조는 교황권의 강화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15세기에 이르러서야 특히 니콜라오(Nikolaus von Cues) 추기경에 의해 변조된 문서에 대한 진위의 확인 작업이 시도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