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벨리우스주의 Sabellianismus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초대 그리스도교의 믿음은 삼위의 위격 서로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깊이 성찰하지는 않았다. 2세기 중반에 들어서 제2위, 즉 하느님의 아들의 신성은 성부의 위격과는 상이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등장하였다. 215년경 사벨리우스(Sabellius) – 로마에 거주하던 리비아 출신 – 는 한 분 하느님이 세 가지 역할(Modalismus)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주장하였다. 즉 성부는 창조 행위를 통해, 성자는 구원 사업을 통해, 그리고 성령은 성성을 통해 계시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는 단지 한 분 하느님의 현현 양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마의 사제 히폴리토(Hypolit)는 삼위를 부정하는 이러한 주장을 거슬러 싸웠다. 하지만 히폴리토는 성부와 성자 사이에 내재하는 위격의 차이를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여 성자를 성부 아래 종속시키는(Subordinatianismus)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로써 히폴리토와 교황 제피리노(Zephyrinus)의 부제였던 갈리스토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갈리스토 1세가 교황으로 등극하였을 때 히폴리토의 지지자들은 히폴리토를 대립 교황으로 선출하였다. 그러나 히폴리토는 235년 교황 폰시아노(Pontianus)에게 항복하였다. 하지만 257년 이후 사벨리우스주의는 리비아에 전파되었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오(Dionysius)는 사벨리우스주의를 거슬러 대항하였다. 하지만 주교 디오니시오는 히폴리토와 유사한 오류를 범했기 때문에 – 즉 아들은 아버지에게 종속된다는 – 교황 디오니시오에 의해 고발당하였다. 교황 디오니시오는 262년 로마에 개최되었던 시노드를 통해 주교 디오니시오의 오류를 단죄하였다. 주교 디오니시오는 자신의 오류를 철회하고,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본질을 함께한다고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