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스 정교 조약 Wormser Konkordat

  보름스 정교 조약  ~政敎條約  Wormser Konkordat

  교황과 황제 사이의 격렬한 다툼으로 교회를 어려운 처지에 빠뜨리게 한 성직 임명권을 둘러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교황 갈리스토 2세는 황제 하인리히 5세와의 협약을 모색하였다. 그 결과 양자간의 대화가 1121년 가을에 시작되었다. 대화의 결과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황제는 교황을 인정하고(황제 하인리히 5세는 대립 교황 그레고리오 8세를 옹립하였고, 그레고리오 8세는 3년 동안 교황직에 머물러 있었다), 성직 임명권을 둘러싼 갈등은 제국의 명예를 존중하는 조건하에서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담판은 보름스에서 교황의 특사인 세 명의 추기경들과 황제 사이에 이루어졌다. 약 2주간에 걸쳐 진행된 담판에서 1222년 9월 23일 최종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로써 이른바 ꡐ보름스 정교 조약ꡑ이 체결되었다.


  아울러 성직 밍명권을 둘러싼 갈등도 종식되었다. ꡐ보름스 정교 조약ꡑ은 황제의 문서와 교황의 문서를 토대로 한, 두 개의 기본 문서로 구성되어 있다. ꡐ보름스 정교 조약ꡑ에 의하면 황제 하인리히 5세는 반지와 지팡이를 수여하는 주교직에 대한 서임권을 포기한다. 그 대신 수익권과 제국의 재산 – 이 재산은 주교들에게 영지로 양도된다 – 을 수반하는 주교직에 대한 서임권을 행사한다. 아울러 황제는 교회법에 따른 주교 선출과 서임을 인정할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황제는 베드로좌에 속했던 모든 소유를 상환하고 교회 재산을 반환한다. 교황은 주교와 대수도원장의 선출에 황제의 임석을 허용하고, 논란의 소지가 있는 선거의 경우 황제는 수도 대주교와 선거권을 가진 주교들의 협력하에 결정권을 행사한다. 수익권을 수반하는 주교 서임은 홀(笏)의 수여로 이루어진다. 반지와 지팡이는 주교직 또는 성직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교황 갈리스토 2세는 기본 문서를 직접 황제에게 전달하였다. 이러한 자세는 황제 사후 교황의 특권이 소멸되리라는 우리를 낳게 하였다. 기본 문서는 하느님,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그리고 교회에 대한 고백의 양식으로 작성되었다. 독일 제국의 군주들은 1122년 11월 11일 밤베르크에서 있었던 황제의 알현일에 ꡐ보름스 정교 조약ꡑ을 비준하였다. 이에 대해 교황은 1124년 3월에 개최된 라테라노 시노드에서 이 조약을 비준하도록 조치를 취하였다. 라테라노 시노드는 제9차 보편 공의회로 격상되었다. 라테라노 시노드에서는 주교의 선거에 황제가 임석한다는 조항에 대해 이의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교황 갈리스토 2세는 이 조항은 단지 평화를 위해 황제에게 용인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명하였다. 이로써 50여 년 이상 황제들과 교황들 사이에 적대감을 심어 왔던 성직 임명권을 둘러싼 갈등은 극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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