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大赦 )2.


(시행)


1035년에 에스파냐의 타라고나(Taragona)지방에 위치한 우르겔(Urgel)
교구의 에르멘고드(Errmengd)주교가 자기교구의 산 베드로 데 포르델라
(San Pedro de Poretella)수도원성당을 위한 대사를 부여하였다
신자가 하느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진정한 신앙심을 가지고 이 성당의 유지를
위해 헌금하거나 빵과 포도주와 같은 물품을 기중하는 선행을 실천하면 일주일
동안에2~3일 사순절 단식과 보속기간이 하루로 단축 되었다
이렇게 처음에 등장한 대사는 잠벌의 일부분을 줄여 주는 한대사 (限大赦)로
삭감정도에 따라 예컨대 “10일 대사” “5일대사”와 같이 시기가 첨부되었다
이러한 시기는 초대교회의 죄인이 속죄하던 기간을 의미하며 “10일대사”는
10일 동안 보속기간의 면제를 의미하였다
1095년에 교황 우르바노2세(1088~1099)는 십자군 참전용사들이 출정에 앞서
고해성사를 통해 사죄 받은 죄의 잠벌을 모두 탕감해주는 전대사( 全大赦 )를
발포하였다

12세기 이르러 그동안 시행되어 오던 대사의 의미에 대한 신학적 정의가 정립되었다
푸와티에(Poitier)의 피에르(piene.+1170)와 베드로 롬바르두스( P.Lombars.1110~1160)
는 신자들이 대사를 얻기 위해서는 죄악에 대한 진정한 뉘우침이 필요하고 선업(헌금)과
물품기증에 의해서 부여되는 대사의 효과는 기부금의 액수나 기증품의 분량보다 대사를
얻으려고 선행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자세에 달렸다고 가르쳤다
후구치오(Huguccio,+1210)는 교회가 잠벌에 대한 속죄행위인 보속에 대한 관할권을
지니고 있다고 가르쳤다 생 세르(SL Cher)의 위고(Hugh,1230)는 그리스도의 무한한
성혈공로와 성인들의 넘치는 보속공로가 교회의 보고(寶庫)에 보관되어있고 이 보고를
주관하는 교황은 공로보화를 신자들에게 분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교회는 과거에 대리기도를 통해서 면제하던 잠벌을 교회법적 행위인 대사부여를
통해서 탕감하게 되었다

1300년에 교황 보니파시오 8세(1294~1303)는 성년 (聖年)을 설정하고 신자가 자기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신앙심을 지니고 성도(聖都) 로마의 베드로와 바오로사도의 무덤을
참배하는 경우에 “성년전대사”를 부여하였다
교황은 대사를 100년에 한번씩 반포하기로 규정하였으나 나중에는 그 주기가 25년의
간격으로 단축되었다

1350년에 교황 글레 멘스6세(1342~0352)는 교서 (하느님의 외아들)을 통해 “성년전대사”를
반포하면서 대사의 원천은 교회 보고에 간직되어있는 예수그리스도와 성인들의 공로 보화라고
내세우는 신학자들의 견해를 대사교리로 확정하였다
교서는 맺고 푸는 권리를 지닌 베드로사도의 후계자이며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인 교황이
대사를 반포하여 죄를 진실로 뉘우치면서 고백하고 용서받은 신자들에게 잠벌을 전부(전대사)
또는 부분적으로(한대사) 면제해 줄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글레 멘스6세의 교서는 대사교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대사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용서받은 죄의 남은 벌(잠벌)에 대한 사면이다
둘째, 교회 보고에 간직되어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성혈공로와 성인들의 넘치는
보속공로는 대사부여의 원천이 된다
셋째, 대사를 부여받은 권한은 교황에게 있다
넷째, 대사를 얻기 위한 조건은 죄에 대한 참된 뉘우침, 죄의 고백, 사죄, 그리고
신앙심에서 우러나오는 선행이다
중세인의 영생에 대한 관심, 죄에 대한 경각심, 사죄를 얻으려는 노력과 같은 신앙열은
대사가 부여되어있는 성지순례와 성당참배의 신심행사에서 표현되면서 대사시행을
성공시켰고 대사 획득의 조건인 선행의 수단으로 등장한 기부금은 예술품을 낳게
함으로써 중세 서구의 문화 융성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십자군 전대사는 서구문명을 이슬람교도인 투르크와 무어족의 파괴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이는 대사시행이 직. 간접적으로 사회에 끼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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