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염시태,몽소승천과 교도권, 교리

 

4. 교도권의 개입




    1439년 발(Bale) 공의회는 참가자들의 상당한 일치로 무염시태 교리를 정립하며 12월 8일 축일을 전 교회를 위한 축일로 설정한다1). 이때의 정의가 1854년에 비오 9세 교황이 취하게 될 용어들과 놀랄만큼 근접한 용어들로 표명되었다. 그러나 이 공의회는 당시 공의회주의자들의 논거로 2년 전부터 교황과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교적’이었다 ; 따라서 이 공의회의 본문은 교도권적 가치가 없다.


    15세기 이후 무염시태 교리에 대한 반대자들의 공격이 더욱 심화되고 식스뚜스(Sixtus) 4세 교황은 1483년에 이러한 교리 관점은 자유로우며 두 부류 모두에게 반대 견해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을 금한다고 선언한다2). 트리엔트 공의회가 결의 문헌 안에 ‘복되시고 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3)’라는 말을 내포시키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선언할 때, 이 공의회가 원죄에 대한 문헌 끝부분에서 참조하는 부분은 앞선 공의회에서 선언한 내용이다. 사실 보수적인 이 선언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 선언이 원죄의 보편성과 마리아의 무염시태와 함께 구원의 보편성을 조화시키려고 탐구하는 논제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공의회가 원죄는 예외를 두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순간에 또한 이 예외가 있을 수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대한 문제는 19세기까지 격렬한 논쟁을 거듭한다. 17세기에 바오로 5세와 그레고리오 15세는 동정 마리아가 원죄 중에 잉태되었다고 설교하거나 가르치는 것을 삼가도록 요구하며 동시에 이러한 이론을 공격하지 않기를 촉구한다. 그레고리오 15세는 문제에 대한 침묵을 요구하며 그는 수식어의 사용 없이 로마 교회처럼 ‘마리아의 잉태’ 축일을 지내도록 명한다4). 1661년에 알렉산델 7세는 무염시태를 분명히 인정하고 그 경신례의 오래된 전통을 인식하지만 그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는 다시 한번 두 입장에 대한 지지자들 사이에 모든 단죄를 금한다 :




    그리스도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관한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신심은 오래된 것이다. 그들은 마리아의 영혼이 창조와 몸에 결합된 첫 순간에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호의를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인류의 구원자이신 당신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로 마리아가 원죄의 물듦에서 보호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로마 교황들에 의해 공포된 헌장과 법령들을 재천명하고자 한다… 그것은 복된 동정 마리아의 영혼이 창조와 몸에 결합되는 순간에 성령의 은총을 입었으며 원죄에서 보호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위해서이다.5)




    5. 비오 9세 교황의 교서 :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는 세계 모든 주교들의 자문을 받은 후, 다음 정식에 따라 동정 마리아의 무염시태에 대해 장엄한 선포를 한다 :




    우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가 잉태의 첫 순간에 인류의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특전에 의해 원죄의 모든 오염으로부터 보호되었다는 사실을 내용으로 취하는 교리가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된 교리라는 것과 이처럼 이 교리는 모든 신자들에 의해 확고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믿어져야 한다는 것을 선언하고 선고하며 정의하는 바이다.6)




    문안 작성은 눈에 보이게 알렉산델 7세의 영향을 받았지만, 동의된 ‘믿음’을 계시의 이름으로 정의된 것과 분리시키는 한계를 뛰어넘는다. 이 문헌은 잉태된 태아의 생명 부여 순간에 대한 논쟁에 돌입하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 마리아는 그녀의 존재 첫 순간부터 죄에서 면제된다. 그녀는 ‘특별한 은총으로’ 자기 아들에 의해 분명히 속량되었다. 그녀가 인간에 속한다는 사실에서 그녀는 죄의 보편적인 빚을 지지만 정화가 아니라 보호에 의해 ‘훨씬 탁월한 방법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 그녀의 성성이라는 표현이 알렉산델 7세에게 있어서는 더욱 긍정적이었는데 여기서는 부정적이다. 성성이라는 표현은 스코투스(Duns Scotus) 이후 신학의 모든 인식체험을 수렴한다. 


    제법 긴 교서에서 비오 9세에 의해 발전된 논증은 교의 발전의 관점에서 주의를 끈다. 비오 9세는 우선 교회의 신앙과 그의 선임자들의 가르침에 대한 일람표를 만든다 : 그는 식스뚜스 4세와 트리엔트 공의회와 알렉산델 7세의 개입을 법적으로 확인한다. 그는 무염시태 공경으로 설정된 전례 축일들과 신자들에게 나타난 이 신비에 대한 경신례의 확산을 상기한다. 그는 여러 세기를 걸쳐 이 교의가 교회의 일반적인 가르침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을 재인식한다. 결국 그는 새로운 정의가 어떠한가를 분명히 밝힌다 :




    신앙의 유산을 깨어 지키며 그 유산을 보호하는 데에 책임을 진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는 교의에 있어서 전혀 아무 것도 변질시키지 않으며, 아무 것도 삭제하지 않으며,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통의 옛 유산들을 세심하게 점검하면서 교회가 아직까지 초벌 단계밖에 되지 않거나 교부들의 신앙을 통해 위탁된 씨앗 상태의 어떤 진리들을 발견한다면, 교회는 천상 교리의 옛 교의들에 분명함과 간결함과 빛을 제공하기 위해 그 진리들을 밝히고 발전시키는 데에 전념한다. 그렇지만 교의는 자기 충만성과 전체성과 고유성은 전혀 잃지 않도록 한다. 교의는 단지 교의의 범위 안에서만 자기를 구성하는 의미와 교리에서 발전하도록 한다.7)




    마지막 구절은 레렝스(Lérins)의 빈첸씨오(Vincentius)의 ‘가르침(Commonitorium)’에서 다시 취해진 것이다8). 이 텍스트의 의미는 교회는 교회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것으로 인식한 것밖에 정의내릴 수 없다는 것을 상기한 것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신학적 논증은 신앙의 교부들과 박사들이 성서를 해설한 방법을 발전시킨다. 교황이 무염시태 교리를 위해 증거로 제시된 성서 본문들을 인용하는 것은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서이다. 첫 번째 예는 ‘원복음’이라 불리는 구절인 창세 3,15인데, 이는 악마와의 공동 적대관계 안에서 연결되는 구원자와 그의 어머니를 지칭한다 ;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그러나 같은 히브리어 동사의 두 번째 사용은 70인 역에서 ‘겨누다’(물려고)로 번역된다. 불가따 본은 동시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넘어간다 : 이는 하와의 후손이 아니라, 뱀의 머리를 밟을 여인을 일 컫는다. 마리아적인 의미가 라틴 전통 안에서 이 ‘여성’에 근거한다9). 이 본문은 마리아와 그리스도 사이의 신적 모성을 통해 설정된 ‘친밀하고 갈릴 수 없는 관계로 이야기하는’ 교서 안에 포함되어 있다.


    신약 성서 안에서 가장 중요한 본문은 당연히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와 엘리사벳의 인사이다 : “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 이여”(루가 1,28) ; “당신은 여자들 가운데서 축복을 받았으며 당신 태중의 아들 또한 축복받았습니다.”(루가 1,42) 교서는 동시에 공평하게 창조된 하와와 마리아 사이의 대조 안에 내포된 소재들과 신적 모성에 대한 교리적 관련을 교부들의 의견에 따라 마리아에 대한 뱀의 공격에 대한 상처를 면제시키면서 분명하게 한다. 따라서 교황은 무염시태 교리가 ‘교부들의 의견에 의하면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 근거한 논증은 직접적이 아니며 그것은 그 자체로 선택된 이러 저러한 본문의 의미에서 비롯하며 어떤 정의도 가능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교리적이라 할 수 있고 말씀의 육화의 빛으로 읽은 모든 성서 그물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때 상호 관련성 안에서 의미가 더욱 분명해지는데, 한편으로는 육화의 신비와 마리아가 행하는 역할의 논리적인 일관성을 통해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적인 일치의 결과를 가져오는 교의를 설정하는 데에 필요하면서도 텍스트 그 자체로 홀로는 불충분한 어떤 본문들과 특히 하나 하나 따로 취해진 본문들을 통해서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비오 9세가 사용했던 용어들 보다 덜 서방적인 용어들로 무염시태 신비를 설명한다. 이는 동방 교회에게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공의회는 희랍 교부들의 정식, 특히 비잔틴 교회의 설교 양식에 아주 근접한 표현들을 취한다 :




    그러기에 교부들이 흔히 천주의 성모(하느님의 어머니)는 마치 성령으로 형성된 새로운 조물같이 온전히 거룩하시고 아무런 죄에도 물들지 않으셨다고 부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잉태되시는 첫 순간부터 전적으로 유일한 성성의 빛을 듬뿍 받은 나자렛의 동정녀는 하느님의 명을 받은 천사로부터 ‘은총이 가득하시다’(루가 1,28)는 인사를 받으셨다.10)








    6. 교리의 흐름  




    파란만장하기도 했던 기나긴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그 의미는 물론 교의적 흐름을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모든 논쟁 배후에 아주 분명한 하나의 질문이 제기된다 : 아들의 어머니, 다시 말해서 지극히 거룩하신 분의 어머니로 하느님에 의해서 선정된 그분의 성성이 어떠해야만 되었던가? 이는 마리아의 성성에 대한 본성과 그 너비를 식별하게 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마리아의 경륜적 관계에 관한 통찰이다. 이는 우선 복음서 안에서 식별될 수 있는 동력적인 요소였던 윤리적, 도덕적 성성이 아니다. 우리는 이 주제에 대해 초기 교부들의 대조적인 견해들을 살펴보았다. 문제는 구원 경륜에서 계시된 일관성에서 제기되었으며, 성모영보 때 마리아의 은총의 충만성, 즉 마리아의 독특한 성소라는 사실에서 그녀에게 베풀어진 은총에 관해서 제기되었다. 하느님의 어머니의 직무에 의해 요구되는 성성은 어떠한가? 모든 은총의 근원에서 흘러나온 어머니의 은총은 어떠했는가? 모든 여인들 가운데서 ‘복되신 분’의 어머니였던 그 여인은 어떤 축복의 대상이었는가?


    본질적인 논증의 마무리는 이러한 교의적 흐름 안에서이다 : 지극히 거룩하신 분의 어머니께서는 죄의 모든 굴레에서 자유로우셔야 했다. 아들은 당신 어머니이셔야 했던 분이 먼저 악마의 손아귀 안에 계셔야 했다는 사실을 원치 않으셨다. 이것이 육에 따라 우리 가운데 오신 하느님의 탄생 경륜의 요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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