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안에 계시는 마리아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마리아




    마리아의 무염시태와 몽소승천은 교부 시대의 마지막 시기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회 내에 있었던 마리아 운동에서 흘러나온 교의적 결과로 나타난다. 같은 과정에서 더 멀리 가는 것이 가능했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이를 바랐었다. 그렇지만 50년대부터 동정 마리아에 대한 새로운 고찰 이전 시기의 방향과 함께 하나의 분명한 전환기를 맞는다. 그것은 마리아의 ‘특전’ 일람표를 열거하는 데에 있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마리아를 구원의 경륜 안에 자리잡게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록 마리아가 교회의 가장 완전한 구성원이긴 하지만 그녀를 교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교회 안에 자리잡게 하는 것이었다. 혼란이 없지 않았던 이러한 방향 재설정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확인되고 현대 마리아 신학을 주도한다.




    I.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




    1. 공의회의 작업 배경




    동정 마리아는 공의회에서 위기 순간의 대상이었다. 1962년 12월 8일 축일을 계기로 주재 위원회가 투표를 하게 하려했던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인류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준비 스케마의 실패 이후, 1963년에 동정 마리아를 독립된 문헌에서 다룰 것인지 혹은 교회 헌장의 틀 안에서 다룰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문제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첫째 견해는 ‘마리아의 영광스러운 왕관에 새로운 장식 돌’을 부착하기를 원했던 마리아 운동의 ‘인플레이적인’ 극단적인 경향을 이어받고 있는데, 마리아와 그리스도 사이를 항상 훨씬 과장된 대조의 관점에서 보았다. 둘째 견해는, 더 절제되어 있지만 교리적으로는 더욱 더 기초된 관점에 따라 동정녀를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재설정하여 마리아를 구원의 경륜 품에서의 역할 안에 위치하게 하기를 원했다. 다소 과열된 분위기 안에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첫째 견해에 대해 1074표, 둘째 견해에 대해 1114표로 투표되었다. 따라서 공의회는 40표 차이로 거의 동수의 두 그룹으로 분리되어 나타났다1). 이것은 비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한 과반수가 존중되었지만, 손댄 문안은 공의회의 만장일치를 회복하는 데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위치했고 매우 성서적이고 교부학적인 문안의 대상이 되었다. 논쟁은 길지 않았으며 약간의 수정을 야기했을 뿐이다 ; 1964년 11월 21일 거의 만장일치로 본문이 체택되었다. 바오로 6세 자신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백성 모두의 어머니, 신자들 뿐만 아니라 목자들의 어머니’로 선포하기를 열망했다2). 이 표현은 공의회 위원회에 의해 거부되었는데, 위원회는 이 표현이 전통적이 아니며 교회 일치적인 차원에서 계제가 나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정의 어머니가 가족의 한 구성원이듯이,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는 당연히 교회의 한 구성원이며 우리의 자매이다.




    2. 일반 지침들과 지향




    교회 헌장 전체와 동정 마리아에게 봉헌된 이 헌장의 마지막 장 사이의 내적 관계를 찾을 필요는 없다. 이 헌장은 마리아에 대한 주제의 삽입 결정 전에 그 구성이 완료되었었다. 결국 마리아에 대한 이 장이 하나의 첨가이기는 하지만 의미가 강하게 부여된 첨가이다 : 마리아는 교회에 속하며 그녀는 교회 밖이나 위에 있지 않고 그녀 자신이 교회의 한 구성원이다.


    그러나 이 장은 역시 마리아의 교회에 대한 관계를 뛰어넘는다 : 이 장은 마리아에 대한 교리적인 종합을 소개하는데, 여기서 마리아를 구원 경륜과 그리스도교 신비의 전체 안에 위치시키며 따라서 그리스도에 대한 그녀의 관계 안에 설정한다. 바오로 6세는 다음과 같이 이 장에 찬사를 보낸다 : “세계 공의회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서 차지하신 위치에 대해 이처럼 광범위한 가톨릭 교리의 종합을 소개하는 것은 처음이다.3)” 그렇지만 본문은 마리아에 대한 완전한 가르침을 소개하려는 의도도 신학자들의 탐구가 아직 온전한 결론에 이르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의도도 없었음을 천명한다(교회 헌장 54). 이러한 표현 양식들은 공의회의 신중함과 의도적인 어떤 침묵을 입증하는 것처럼 들린다.


    따라서 이 장의 제목도 그러한 강한 의미 안에서 취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의 하느님의 모친, 복되신 동정 마리아> 이러한 정신 안에서 제2절의 제목은 ‘구원의 경륜 안에서의 마리아의 역할’을 소개한다. 그것은 마리아가 구원의 역사 안에서 했던 역할로부터 출발하여 항상 하느님의 어머니로 생각하는 마리아에 대한 ‘통합된’ 교리와 관계가 있다(교회 헌장 55.56.65 참조). 


    문안 편집에서 자유로운 의도는 신학자들에 의해 초세기 이후 발전되어 온 사변적 용어에 치중하지 않으며 어떤 정의도 내리지 않는다. 공의회는 자유로운 신학적인 견해 분야에 개입하기를 원치 않으며, 그 학자들의 책임에 맡긴다. 의도한 모든 방법은 성서와 전통 안의 원천으로 되돌아가기를 초대하며 마리아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발전시킨다. 동정 마리아에 대한 새로운 칭호의 발전 선상에서 지속하거나 새로운 정의들을 겨냥하지 않고, 공의회는 단지 구원 경륜의 넓은 관점 안에서 마리아에 대해 말한다. 교회 일치 차원의 앞선 배려가 문헌 작성에서 항상 있었다.




    3. 출발점




    출발점은 여인에게서 태어난 당신의 아들(갈라 4,4)을 보내신 하느님의 구원 주도권에 의해 주어지는데, 여기에 대한 성서의 선언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의 내용에서 드러난다 : “그분께서는 우리 인간과 우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 오시어 성령을 힘입어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을 취하셨다.”(교회 헌장 52항) 신앙고백의 토대가 성서적 토대와 일치한다. ‘구원에 대한 하느님의 신비’가 삼위일체적이고 이는 아들과 성령의 파견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구원의 신비가 ‘교회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되고 계속되는 것이며, 주님께서는 당신 몸이 되도록 교회를 세우셨다’(52항). 성찬례에서처럼 우리가 하느님의 어머니를 기념해야 하는 것은 이 몸 안에서이다. 결국 마리아는 하느님의 세 위격에 관련되어 있는 동시에 그녀가 속량된 한 구성원으로 있는 교회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편으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구원자의 어머니이다 ; 그녀는 ‘성부의 가장 사랑하는 딸이 되고 성령의 궁전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는 구원되어야 하는 아담의 후손과의 연대성도 갖는다. 그녀는 ‘훨씬 탁월한 방법으로’ 속량되었으며 교회의 탄생에 협력하였다. 그녀는 이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절대적으로 유일한 구성원이고’ 이 교회의 ‘전형이며 모델이 되며’, 동시에 그녀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어머니가 된다.(53항)


    본질적인 좌표가 설정된다 : 구세사 안에서 마리아의 고유 역할은 그녀를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게 하는 삼위일체적 계획을 중시한다. 그러나 이 계획은 마리아를 구원된 자들의 편에 있는 교회 안에 위치하게 한다 : 그녀가 자기의 유일한 소명을 행하는 곳이 여기다. 이러한 좌표는 본문의 구성을 기본적인 세 부분으로 요청한다 : 육화된 말씀의 신비 안에서 마리아의 역할(munus)과 교회가 되는 그분의 몸인 신비체 신비 안에서 그녀의 역할과 그녀에게 드려야 할 공경이 그것이다.  




    4. 전적으로 하느님과 그리스도에게 질서 지워진 마리아




    바오로 6세4)의 이 표현은 다행히 이 부분의 발전 의미를 총괄할 수 있다. 전개 스케마는 다음과 같다 :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오랜 준비 이후 동정녀의 영광받음에 이르기 까지, 공의회는 그녀의 존재 과정을 따르면서 마리아의 역할과 장래를 개진한다. 아주 간결한 성서 신학으로서 소개되고 마리아 신학의 성서적 토대를 동정녀의 삶에 대한 신비와 함께 질서정연하게 개입시키며, 개별적으로 전통에 대한 교리적 해석들을 끌어들이는 전개의 주노선이 이와 같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성서적인 동시에 교부학적이며, 여러 경우에 성서 주석이 교부들과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성서 자료는 마리아에 대한 이해 범위가 토론의 여지가 없고 이 이해 범위가 토론의 여지가 없는 해석 차원에 있는 본문에 제한되어 있다. 그러므로 수많은 참조가 공의회 문안과 언급된 본문 사이에 있어서 의식적인 차이를 강조하는 ‘참조’(cf.)로 들어와 있다. 마찬가지로 공의회는 대가들에 의해 승인까지 된 이러 저러한 최근의 성서 주석에 종속되는 것을 피한다. 공의회는 자주 주석 없이 혹은 아주 신중한 방법으로 주석하면서 인용한다(예를 들자면, 마리아의 십자가 아래 현존). 공의회는 공통적인 가르침에 속하는 것과 결정적으로 확실한 것으로 보이는 것만을 다시 취하려 했다.


    이러한 지나친 신중함이 마리아에 관해 고전적인 방법으로 제시된 성서 자료에 대한 민감한 변화로 작용한다. 전례 안에서 자주 마리아에게 적용되었던 알려진 본문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 하늘에서 영광의 관을 받은 묵시록 12장의 언급이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료는 풍부하다. 공의회는 그 당시 최근에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재발견된 주님의 가난한 자와 ‘시온의 딸’(55항)이라는 주제를 삽입하고 있다. 이 주제 안에서 때가 성취되며 이스라엘에서 교회에로의 이전이 이루어진다. 성모 영보 사화(루가 1, 26-28)에 대한 암시들이 소포 3, 14-17에서 재인식된다. 공의회는 마리아에 관해서 복음서로부터는 아주 ‘한정적인’ 구절들을 상기한다 : 잃은 예수를 성전에서 다시 찾는 장면에서, 예수의 부모가 자기 아들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강조한다(57항) ; 예수의 말씀에 의미를 둔다 : “누가 나의 어머니이며 누가 나의 형제입니까?”(마르 3, 35/… ; 루가 11,27 : 58항).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른 자이며(루가 2,19.51 참조) 그녀는 그녀의 신앙 때문에 엘리사벳에 의해 복된 여인이라고 선포된 자이다(루가 1,45). 이때 공의회는 동정 마리아 역시 신앙의 여정에서 십자가에까지 나아갔다고 강조한다(58항).


    또한 이 문헌은 아주 교부학적이며 하와와 마리아의 대조법을 다시 취한다 : 이레네우스가 특별히 성모영보 사화 주석에서 선택된 위치를 차지한다(56항). 에피파니우스, 예루살렘의 치릴루스, 비잔틴 설교가들, 요한 다마스쿠스, 서방에서는 예로니모, 암브로시오, 아우구스띠누스가 인용되거나 상기되었다.


    교의적인 천명에 있어서 공의회는 결함 없이 이미 정의되었던 것을 재천명하지만 더 이상은 나아가지 않는다. 공의회는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일치와 마찬가지로, 동정 잉태 이후부터 그리스도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일치를 주장한다. 마리아가 자기 아들과 신적 동질성을 가질 수 있었다는 인식에 대한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요한이 십자가 아래 있는 모든 신자들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만류하지 않는다. 몽소승천에 대해서는 비오 12세의 용어를 따른다. 공의회가 침묵하고 있는 것 역시 그것이 의도적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 우리는 마리아의 ‘공동-구속’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5.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관계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관계는 세 주요 단어로 표명된다 : 머리말에서 이야기된 구성원, 전형(혹은 모델), 어머니가 그것이다(53항).


    마리아는 교회의 구성원이다 : 이는 이미 교회 헌장의 자기 스케마의 종합 안에 등록되어 있다. 교회의 신비 안에서 마리아는 길을 열며(63항), 마찬가지로 그녀의 영광 받음으로 다가올 세기에 ‘교회의 맏이’로 소개된다(68항). 그러므로 마리아는 모든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에서 뛰어나고 유일한 구성원으로 머물면서 교회 내에 있다.


    마리아는 어머니이다 : 공의회는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영향력과 관련된 모든 것을 이 호칭 주위로 모은다. 본문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에 관한 1디모 2, 5-6의 언급으로 개진된다. 이 표현이 마리아의 역할에 관해 말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끌어 주는 원칙으로 설정된 선언이다. 그녀의 모성적 역할은 결과적으로 중개자의 이러한 근원적인 단일성에서 아무것도 제거할 수 없고 중개자와 ‘나란히 열거되지’(connuméré) 않는다. 마리아에게 부여된 모든 것은 하느님의 ‘호의적인 의지’에서 비롯되며 ‘그리스도 공로의 넘침’에서 흘러나온다(60항).


    그래서 마리아는 분명하게 그녀의 순종, 신앙, 희망, 사랑을 통해 협조한(cooperata est) 겸손한 여종으로서 육화와 구원에 연관된(동반자 : socia) 것처럼 소개될 수 있다. 그녀는 그녀의 전구(intercession)를 통해 구원의 소명을 계속하는데, 여기서 그녀에게 ‘변호자, 보호자, 협조자, 중개자’라는 전통적인 호칭들이 주어졌다. 그렇지만 아주 상대적이면서 분명하게 된 ‘중개자’라는 용어가 나열된 전통적 호칭들 중 마지막에 오는데, 그것은 단지 전구자의 역할만을 표명하기 때문이다. 몇몇 교부들, 전례 텍스트들과 몇몇 서방 학자들이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항상 이러한 의미에서이다5). 이 단어가 생략되지 않았다면, 베아(Béa) 추기경이 분명한 교회 일치적인 이유로 그것을 요청하였던 것처럼 의도적으로 부차적인 의미를 드러낸다. 이 본문은 분명히 이전의 애매성과 거북스러움을 제거한다. 마리아는 전혀 구원자의 편에 설정되어 있지 않다 : 그녀의 협조는 속량된 자들의 세상에서 비롯되며 그 자체로 구원 은총의 열매이다.


    마지막으로 마리아는 교회의 전형이며 모델이며 형상이다. 그녀는 동정과 어머니와 거룩함의 삼중적(三中的) 호칭으로 그러하다. 본문은 어떻게 마리아의 동정성과 모성이 하느님의 자녀들을 신앙으로 낳으면서 어머니가 되는 교회 안에서 재생산되며, 어떻게 자기 신앙의 순수성과 그리스도께 대한 자신의 전적인 봉헌을 통해 동정으로 남아 있는가를 보여준다(63-64항). 결국 마리아의 덕목들 중에서 공의회는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사명을 받은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주어야 하는 모성애를 이야기한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의 봉사직의 모성적, 여성적 차원이다(65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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