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묵시록 12장의 마리아와 성서적 근거 요약

 

2.5. 요한의 묵시론 12장에 나타난 여인과 용의 환시(幻視)


12세기 이래로 해산의 진통을 겪는 여인과 그녀의 아이를 삼키려는 용 그리고 그 여인이 용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요한의 묵시록 12장을 마리아와 예수에 해당하는 환시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현대 성서주석학에 따르면 여인은 열두 지파로 구성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 묵시 12장 1절에 의하면 여인은 열두 별의 면류관를 머리에 쓰고 있는데 이는 12지파를 상징하는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여인이 이스라엘 백성의 표상으로 표사되었다는 점이 이런 해석을 밑받침한다(이사 26,17; 54,1; 66,7-9; 미사 4,9). 그러므로 아이, 즉 메시아를 해산하려는 여인은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여인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 즉 교회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여인이 용에게 위협을 받고 구원되는 것은 교회가 그의 반대자들에게 박해를 받고 그를 견디어 내는 것를 표상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 환시가 일차적으로 메시아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겨냥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요한이 마리아를 이스라엘 공동체와 동일시하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대목을 마리아론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1950년대에서부터 출발하여, 요한 묵시록 12장 안에는 마리아에게 확대 적용될 수 있는 내용들이 있다고 말하는 주석가들의 수효가 현저히 늘어났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여인’은 일차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구약과 신약의 하느님 백성의 교회를 상징한다. 그런데 간접적으로는, 거의 ‘완곡하게’ 그 장안에 동정 마리아가 내포되어 있다”.1) 즉 묵시록 12장에 나타난 태양을 입은 여인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를 상징하고, 해산의 고통을 겪는 여인은 베틀레헴의 산모인 마리아, 신앙으로 인해 고통받는 여인 마리아를, 광야로 피해간 여인은 세상으로부터 박해받고 하느님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교회의 구성원인 마리아를 상징한다고 하겠다.2)




2.6. 요약


1) 바오로 서간에서 가장 오래된 전승은 마리아에 대해서 단 한 번 그리고 간결하게 언급할 뿐이다. 비교적 늦은 시기에 기술된(대략 90년 이후) 루가와 요한 복음이 비로소 마리아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마리아에 대한 성서저자들의 관심은 담담하고 간략하게 표현되고 어느 한 구절에서도 마리아에 대한 과장은 느낄 수 없다.


2) 성서에서 마리아에 대한 언급은 전기(傳記)를 집필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복음선포적 의도에서 이루어졌다.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역사적 인물로서의 나자렛의 여인 마리아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구세사의 맥락에서 마리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구원행동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에 대한 성서저자들의 관심은 우선적으로 그리스도론적으로 정향(定向)되어 있다. 즉 신약성서가 마리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마리아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숙고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마리아가 메시아의 어머니로서 성령에 의해서 잉태를 했다는 데에 있다. 신약성서의 복음선포에서 그리스도가 절대적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마리아에 대한 보도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고려하는 가운데에서만 이루어진다. 마리아는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그리고 아들 때문에 구세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3) 마리아에 대한 성서저자들의 관심은 교회론적으로 정립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루가와 요한 복음서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른다는 점에서 신앙인의 모범, 제자됨과 교회의 원형(原型)으로 내세운다.  


4) 마태오와 루가는 마리아가 예수를 성령에 의해서 동정으로 잉태한 것에 대해서 전하지만, 바오로와 마르코는 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요한 복음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요셉을 예수의 아버지(요한 1,45; 6.42 참조)라고 표현한다. 이런 성서적 상황은 현대에 와서 마리아의 동정잉태가 과연 역사적 사실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단지 신학적 내용을 전하고자 하는 표현양식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동정잉태가 말하고자 하는 신학적 의미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명확하다: 예수의 탄생은 성령에 의한 사건으로서. 하느님 스스로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역사에 개입하셔서 새로운 시작을 마련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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