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진리

 

세  가 지  진 리




나오는 이들




주인 아주머니(평범하게 생긴 바느질집 주인), 수잔느(열대섯 살쯤의 소녀), 쥬리 (열두서너 살쯤의 소녀), 비앙카(창백하고 어딘가 비범해 보이는 소녀), 손님1, 손님2(귀부인), 손님3(백작부인), 손님4(백작 딸), 하녀




막이 열리면




             작고 누추한 방.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여자 손님, 수잔느, 쥬리, 주인 아주머니가 서 있다.




주    인     정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몸이 많이 불편해서 그만 ….


수 잔 느    맞추신 옷은 내일까지 꼭 보내 드리겠습니다.


손    님    몸이 불편하셨든 어쨌든 댁에서도 옷 만드는 일로 장사를 하시니 기일을 꼭 지켜주셔야지요.


주    인     면목없습니다.


손    님     이웃이라 맡겼는데 …. 이럴 줄 알았으면 딴 집에 맡길 걸….


수 잔 느    내일 아침까지는 틀림없이 해놓겠습니다.


손    님     그래요? 틀림없겠지요?  내일도 안되면 두 번 다시는 이리로 오지 않               겠어요.


수 잔 느    네. 네


손    님    (주인 아주머니에게) 사실은 저도 주인 아주머님께 언짢은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고생스럽게 살아가신다 건 다 알고 있죠.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고아들을 둘씩이나 기르고 있으니… 피로가 겹치면 병이 나는 법입니다. 조심하셔야죠.


주    인   아니 가벼운 감기예요. (수잔느를 가르키며) 이 애도 잘 거들어 주니까 크게 힘들지는 않아요.


손    님     그래도 힘들겠지요. 자, 그럼 잘 부탁하겠어요.


주    인     네, 네. 염려 마세요.


수 잔 느    안녕히 가세요.




             손님 퇴장, 주인은 맥풀린 듯이 의자에 털썩 주저 앉는다. 잠깐 있다 수잔느가 말문을 연다.




수 잔 느    오늘은 밤샘이라도 해야겠군요.


주    인     (마루바닥을 쳐다본 채로) 밤일할 때 쓸 초를 다 써버렸지?


쥬    리     제가 사 올께요.


수 잔 느    그럼 내일 먹을 빵까지 사 오면 좋겠어요. 아주머니


주    인    그래라.




             아주머니 지갑을 준다. 쥬리는 열어 본다




쥬    리     이것으로 초를 사고 나면 빵은 한 개 밖에 못 사겠어요.


주    인     살 수 있는대로 사 봐라. 내일은 돈을 좀 빌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쥬    리     네.


수 잔 느    추울테니까 코오트를 입고 가.


쥬    리    괜찮아. (쥬리, 그대로 가려 한다. 수잔느, 동생에게 코오트를 입혀 준다.) 이 엄동 설한에 입어 봤자 웃음거리가 되기는 마찬가지야. 다 떨어진걸.


수 잔 느    쥬리야! 그래도 다 기웠잖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 그래도 추운 것보다는 낫잖아.


쥬    리     하지만…..


수 잔 느    빨리 갔다 와.


쥬    리     알았어. ( 쥬리 나가고, 수잔느는 일하기 시작한다)


주    인    쥬리도 멋낼 나이니 새 코오트 한 벌 해 줘야겠는데… 너희 부모님이 살아만 계시면 너희도 학교엘 갔을텐데… 우리 수잔느, 착하기도 하지. 자, 힘내고 일하자.




    – 제  2  막 –




             인기척이 없는 거리. 눈 덮인 거리 윗쪽에 한 소녀가 웅크리고 앉아 있으나 막이 오를 때는 눈에 띄지 않는다. 쥬리가 반대쪽에서 보따리를 가지고 등장




쥬   리    내가 철없는 소리를 했지. 난 철이 들려면 아직 멀었나 봐. (위쪽으로 가려다가 흰옷을 입고 웅크리고 있는 소녀를 발견하자 깜짝 놀라며 무대 아랫쪽으로 되돌아 간다. 겁을 먹고 바라보면서)


쥬    리   아이 깜짝이야! 눈 속에 엎드려 있으니… 살았을까? (좀 가까이 가 들여다 보면서)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떻게 된 일이예요!  (소녀, 고개를 든다)


쥬    리     아! 살아 있구나. 여기서 뭘 하고 있어? 넌 누구지?


소    녀     좀 도와 주세요.


쥬    리     어떻게?


소    녀     난 갈데가 없어요. 집에 데려다 줘요.


쥬    리     우리 집으로?  넌 집도 없니? (소녀. 고개를 끄덕인다)


쥬    리    그럼 어디서 왔어? (소녀는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흔든다)


쥬    리     이름이 뭐니?


             (소녀 머리를 흔든다)


소    녀     제발 데려가 줘—


쥬    리    안 돼. 아줌마한테 야단 맞아. 그리고 난 네가 무서워! 하지만 내가 못 본체한다면 저 애는 여기서 얼어 죽을지도 몰라. 빵도 없으니 남을 도울 형편도 못 되고




             쥬리는 잠깐 주저하다가 뿌리치듯 아래쪽으로 간다. 소녀는  구원을 청하듯 손을 뻗치고 있다가 힘없이 떨구며 그전과 같이 웅크려 앉아 버린다. 좀 있다가 쥬리, 되돌아 온다.




쥬    리     자, 힘을 내서 걸어 봐! (소녀. 쥬리에게 매달리듯 일어선다)




  – 제  3  막 –




             제 1막의 가난한 방. 수잔느와 주인. 일하고 있다. 위쪽에서 쥬리의               소리




쥬    리     다녀왔습니다.


수 잔 느    잘 다녀왔니?


주    인     추웠지?




             수잔느, 일손을 멈추고 동생을 맞으려 가다가 놀라 뒤로 물러선다




수 잔 느    아니! 쥬리야! 저 애는 누구니?


주    인     네 친구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쥬    리    예… 길에 쓰러져 있었어요. 그래서…..


주    인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아니?


수 잔 느    쥬리야! 넌…..


주    인    도대체 어쩌겠다는거니? 저녁 끼니도 변변치 않은 집에 그  애를 끌여들여 어쩔 셈이야? 정신이 있니?


수 잔 느    그래, 이 이상 더 아주머니께 폐를 끼치면 어떡해, 쥬리야 !


주    인    그런 일은 부자나 하는 거야. 실오라기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남을                도와줄래?


쥬    리     아주머니!


주    인    할 수 없다. 내보내도록 해라.


쥬    리    아주머니!


주    인     우리들이 살기도 빠듯하지 않니?


쥬    리     그럼 이 엄동설한에 어떻해요?


주    인     아,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으면 경찰에나 알릴 일이지.


쥬    리    (울음섞인 소리로)  이 애는 이제 걸을 수도 없어요. 


             아주머니, 오늘 밤만이라도 재워 주세요.


주    인     안 돼! 야, 야, 꿈에 볼까 무섭다.


쥬    리     아! 이 애가 쓰러지려 해요!




             소녀가 쓰려지려는 것을 수잔느와 쥬리가 껴안다가 눈이 마주 친다.




수 잔 느    얼마나 야위었는지 새처럼 가볍네?


쥬    리     정말 !


주    인     그것봐라. 보통 애가 아니잖아? 그만 둬! 액운이 끼면 뒷날이 무섭다.


             자, 어서 내 보내.


쥬    리     제발 부탁이니 오늘 밤만 …..


수 잔 느   아주머니, 이 애는 나쁜 애가 아닌 것 같이요. 이 얼굴을 좀  보세요. 천사 같지 않아요?


주    인     천사 같다니, 그런 말 하지마라.


             (소녀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아! 정말 천사 같구나! 그러나 안 돼. 아무리 말해도 소용 없어.


쥬    리    지금 우리가 모른 체하면 죽을지도 몰라요. 이제 얼마 안있으면


             성탄절도 다가오는데 …


주    인    별 수 없다. 그대신 오늘 밤 뿐이다.


수 잔 느 ,


쥬    리     네, 감사합니다. (안도의 숨을 쉬며 소녀를 앉힌다)


주    인    그대로 둘 수 없으니 남은 국물이라도 좀 갖다 주어라. 뭔가 마시게 되면 정신이 들지도 모르지.




             수잔느, 급히 가져 온다. 쥬리는 맛사지를 하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한다. 아주머니도 언짢은 얼굴로 들여다 본다. 수잔느, 수저로 국물을 소녀의 입에 떠넣자, 소녀는 차차 정신이 든다.




쥬    리    이제 정신이 드는구나!




             수잔느와 쥬리는 얼굴을 마주 보며 웃는다.  소녀는 두 사람을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 본다. 아주머니를 바라본다. 아주머니 당황한 듯




주    인     정신을 차렸군 ! (수잔느에게) 국물을 다 먹여라. 어차피  그것밖에                없으니까….




             소녀는  미소를 짓는다




주    인     자, 자, 일해야지, 일하자.




             아주머니는 옷을 깁기 시작한다. 수잔느도 쥬리에게 국그릇을 주고 의자에 앉아 일을 계속한다.


             쥬리는 소녀를 의자에 앉히고  국물을 먹인다. 소녀는 일어나 수잔느 옆에 서서  일하는 것을 바라  본다. 그리고는 수잔느의 일감을 빼앗아 들고 자기가  후닥닥 해 보인다. 수잔느와 쥬리는 멍청하게 서로 마주 보자 어느 새 아주머니도 가까이 와서 들여다 본다.




주    인     야아, 굉장하구나! 익숙한 바느질 솜씬데!


수 잔 느   누구에게 바느질을 배웠니?








            소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아주머니는 옆에 있던 옷감을 들어서




주    인     자, 이 바느질은 어떠니?




            소녀는 말없이 금방 해 보인다. 아주머니는 탄복하면서 딴 바느질감을 내보인다. 이러는 동안에 막이 내린다.




– 제   4   막 –




             그 전엔 초라한 실내였으나 그전 보다 좀 부유한 분위기. 수잔느가 앉아서 차를 끓이고 있다. 일어서면서 아래쪽을 향해 소리 지른다.




수 잔 느  아주머니! 차 드세요.(잠깐 후에 아주머니와  쥬리가 아래쪽으로부터 등장, 테이블에 둘러 앉으며 대화)


주    인     이젠 집안살림도 꽤 넉넉해졌어.


쥬    리     다 비앙카 덕택이지요.  비앙카 바느질 솜씨는 고우면서도 튼튼하니 사람들이 우리 집을 많이 찾고있쟎아요.


수 잔 느    그래, 비앙카가 6년 전 처음 이 집에 왔을 땐  아주 추운 겨울이었지. 눈속에 움츠리고 있던 창백한 그애에게 우리는 비앙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지만 저 애는 도대체 어떤 앨까?


쥬    리    뭘 물어 봐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흔들 뿐이니… 그  추운 겨울 날 밤에  국물을 주었을 때 처음으로 약간의 미소를 지었을 뿐, 그 뒤론 한번도 웃는 일도 없으니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


주    인    아마 누구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거야. 일을 하지  않을 때면 언제나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겨 있쟎아.


수 잔 느    그런데 비앙카는 차를 안 마시려나?


쥬    리     일이 다 끝난 것 같은데… 아! 이제 오는군


             (비앙카에게 자리를 내주며) 차 다 식겠어, 비앙카?


비 앙 카   손님이 오셨어요. 신분이 높은 귀부인이예요.


         


             그 때 문 두드리는 소리 나고, 귀부인과 그의 딸이 등장. 그 뒤로 보따리를 든 하녀가 뒤따른다. 아주머니 놀라서 어쩔줄을 모른다.




주    인     아 ! 백작부인께서  … 따님께서도…. 어서 오십시오.




             백작부인과 그의 딸이 의자에 앉는다. 그 사이에 수잔느와  쥬리는 테이블 위의 찻잔을 치운다. 백작부인은 안경을 끄집어내어 쓰면서




백작부인     날개보다 가벼운 옷을 만든다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요?




             쥬리, 비앙카를 밀어 부인쪽으로 앞세운다. 부인은 위 아래로 비앙카를 훑어보면서




백작부인     네가 옷감이 좋고 나쁜 것도 잘 아니?


             (비앙카 묵묵히 서 있자, 주인 크게 당황하며 앞에 나선다.)


주    인     예. 그야 뭐 …일류 재단사인걸요. 이 애는  어르신네들 앞에서는 항상 말 문이 막혀 이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백 작 딸    네, 좋아요. 원래 타고난 성격이 그런가보죠!




             수잔느와 쥬리, 서로 얼굴을 마주 본다. 백작부인이 하녀에게 눈짓하자, 하녀는 보따리를 테이블 위에 펼친다. 흰 레이스 옷감이다. 옷감을 만져 보며




주    인     어머나! 참으로 훌륭한 옷감이군요.


백작부인     그래요, 당신은 옷감을 볼 줄 아는군요.


주    인     예, 알고 말고요. 옷 만드는 일을 몇 년이나 했는데요?


백 작 딸     인도에서 가지고 온 최고급의 옷감이예요.


백작부인     내 딸의 무도복을 만들어 주세요.


주    인     따님의?  아! 정말 어울리겠습니다. 이런  훌륭한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 입으시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일까요?


백작부인    그렇고 말고! 사윗감 고르기 위한 무도회니까 신경써서 만들어야해요.


백 작 딸     잘 만들어 줘요.


주    인     예, 예. 염려 마세요.


벡작부인     (비앙카를 쳐다보며) 이 옷을 만들 사람도  잘 알았겠지요?


주    인     예, 그야, 물론이지요.  비앙카, 인사 드려라.


          


             비앙카, 부인 앞에 나아가 공손히 인사한다.




쥬    리     (갑자기 큰 소리로)  어머! 비앙카가 웃고 있어요. 언니, 아줌마—




             비앙카가 방긋이 웃으며 부인에게 묻는다




비 앙 카     옷감은 꼭 두 벌 감이군요?


백작부인     응, 넉넉하게 떠 왔으니까.


비 앙 카   네, 그러셨군요. 두 분을 위해서 잘 맞게 해드리지요. 내일 아침까지 틀림없이 두 벌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백작부인    아니, 내 딸 것만 만들면 되요.


백 작 딸    그렇게 서둘지 안아도 되요. 무도회는 3주일이나 남았으니까….


          


             비앙카 의미있는 웃음을 웃는다




–  제   5  막 –




             제 4막과 같은 방. 완성된 옷이 테이블에 놓여 있다. 그 앞에 비앙카 혼자 앉아있고 수잔느가 등장하며




수 잔 느     비앙카 안녕?   옷 다 만들었어?


비 앙 카     네, 다 되었어요. (수잔느가 놀라며 테이블로 가까이 온다)


수 잔 느    얘, 한잠도 자지 않고 일했구나. 왜 그렇게 서둘렀니? 무도회는 3주일이나 남았는데? 아니 ! 비앙카!   그 — 런데 ..이… 이게 뭐야!




             수잔느, 옷을 펴 보고 소리친다. 주인과 쥬리가 등장한다




쥬    리     무슨 일이 있어. 언니?


주    인     아침부터 왜 그리 야단이니?


수 잔 느     아 — – 아주머니   애, 비앙카, 너 정신이 있니?  (비앙카,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 아주머니가 가까이 가 본다.)


주    인     아 — 아니! 이건!




             주인, 정신을 잃은 듯 쓰러진다. 수잔느, 깜짝 놀라서 주인을 부축해 의자에 앉힌다. 쥬리도 그 옷을 들여다 본다.




쥬    리     어머! 이것은 죽은 사람이 입는 옷이쟎아? 그리고 이것을 두벌이나! 비앙카, 너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주    인     아! 이젠 끝장이다, 끝장. 이렇게 비싼 옷감을 어쩌자구 글쎄 …. 일생을 벌어도 변상할 수 없는 것을 …. 아이고…. 큰일났구나, 큰일났어 !




             비앙카, 묵묵히 주인을 바라보고 있다. 이때,  요란스레 문을 두드리는 소리. 문이 열리자 백작부인의 하녀 뛰어들어 온다.




하    녀    잠깐! 아, 큰일났어요, 아주머니!  어제의 무도복은 취소예요, 취소!


주    인     아 — 아니, 당신은 어제 부인과 함께 오셨던 ….


하    녀    네, 맞아요. 그런데 원 세상에 ! (하녀 울먹이며)  어제  두 분이 가시다가 도중에 사고가 나서 그만 … 돌아가셨어요… 세상에  이럴 수가 있어요. 이제 무도복은  소용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것으로 세상을 뜨신 분들의 상복을 만들라는 분부를 받고 왔어요.




             주인은 놀라서 비앙카를 쳐다보며  일동 서로 얼굴을 바라본다




    – 제   6  막 –




             제5막과 같은 방,  쥬리, 비앙카, 주인, 수잔느가 바느질을 하고 있다. 뒤쪽에서 ‘꽝’하는 소리가 들린다




쥬    리     아이, 깜짝이야! 문이 열려 있었나? (쥬리가 일어서서 문쪽으로 간다)


             저기 사람이 오는데 우리 집으로 오는것 같은데 ….


주    인     아 – 그래?


쥬    리     어떤 부인이 꼬마의 손을 잡고 오고 있네요. 꼬마는 발을 절고 있는               것 같네.


비 앙 카     (깜짝 놀라 일어서며)  절름발이? 여섯살쯤 되어 보이지?


쥬    리     그래, 비앙카. 너는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지?




             부인이 아이의 손을 잡고 등장




주    인     어서 오십시오. (수잔느, 일어서며 의자를 권한다.  주인이 절름발이 여자 아이를 의자에 앉히면서)


부    인    이 애의 옷을 맞추려구요.


주    인    네, 그렇게 하세요. 수잔느, 치수를 재라.


수 잔 느    네.


쥬    리    어머나! 예쁘게도 생겼네!  몇살이야?


여자아이    …여섯 살.


수 잔 느    다리를 다친 모양이지요?


부    인     예… 이 아이가 갓난아기 때,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그때 임종으로 괴로워 하다가 그만 아이의 다리를 짓눌러 이렇게 되었어요.


주    인    아, 그래요, 참 안됐네요. 그러면 부인께서는 이  애의 어머니가 아니               시군요?


부    인     예, 전 친척도 아녜요.  그때 이웃에 살았기 때문에 고아가 된 애를 데려다 길렀지요.


주    인     (멈춰서서) 아, 참 좋은 일을 하셨군. 그래, 이 애의 아빠되는 사람은?


부    인   이 애가 태어나기 5개월 전에 마차에 치어 세상을 떠났지요. 이 애의 엄마는 그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 한 잔씩 마신 술에 그만 병이 들어  불쌍하게 죽고 말았고요 ……


주    인     아, 그래요…. 차라리 술주정하는 자기 엄마와 가난에 시달리는 것보다 부인같이 친절한 부인에게 귀염을 받으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요.


부    인     아니예요. 오히려 제가  행복한 셈이죠. 이제는 이 애가  내 친딸과 같이 생각이되요. 이 애를 위해서라면  무엇이고 해주고 싶어요.




             비앙카는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짓는다.




쥬    리     언니, 비앙카가 또 웃어요.


수 잔 느    어머, 정말! 우리집에 와서 세번째 웃는 것 같아!


쥬    리     6년 동안 단 세번뿐이라…


부    인    그럼 잘 부탁해요.


주    인     예, 걱정마세요. 어떻든 참 훌륭한 사람이야…. 남의 자식을 친자식처럼 사랑하                 니…


수 잔 느     (비앙카를 찾으며) 어! 비앙카가 방금 여기 있었는데…..




             비앙카,  흰옷을 아름답게 차려입고 손에 에프론을 벗어 들고  등장. 일동은 놀라서 바라본다. 비앙카는 웃으며 주인에게 에프론을 내 준다.




비 앙 카     긴 세월 폐를 많이 끼쳤습니다.


주    인     ……. 아니? …. 네가 어찌 된 셈이냐?


쥬    리     아니! 사람이 아니고 천사잖아요? 비 — 앙카, 떠나야 돼?




             비앙카, 쥬리의 손을 잡아 일으킨다.




비 앙 카     영원한 이별은 아니예요. 쥬리. (먼 곳을 우러러보며) 우리들은 천국에서 기쁜 노래를 부르 며 만날 수 있어요. 주님께서 부르실 때 .


수 잔 느     그러면 비앙카 당신은?


비 앙 카     나는 하느님 곁에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어느 날 하느님께서 날 부르시어 죽음에 임박해 있는 사람의 영혼을 거두어 가지고 오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나는 지상에 내려 와 빈사지경에 있는  여인과 생후 몇 일 안되는 그 아기를 보았지요. 그 여자는 날 보고 (소리) “우리 아기는 이 세상에 그 누구 한 사람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내가 죽으면 이 어린애는 곧 죽어 버릴테지요. 제발 이 애를 위해서 내 생명을 연장해 주십시오.” 라고 했지.


쥬    리     아! 불쌍하게도!


비 앙 카     나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그 여자의 영혼을 거두어 갈 수 없었어요. 그 여자의 생명을 더 연장해 주십사고 간청했지요.


쥬    리     그래서 하느님께서 그 청을 들어 주셨나요?


비 앙 카    하느님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깊은 뜻이 계셨어요. 하느님은 그 불쌍한 어린아이를 위해서 술주정하는 엄마보다는 행실이 바르고 친절한 사람을 보호자로 미리 준비해 두셨던 거예요.


수 잔 느     아! 알았다! 그 어린애가 바로 아까 그 예쁜 아이였군요.


비 앙 카     그래요. 수잔느. 값싼 동정으로 하느님의 뜻을 거역한 나를 하느님은 벌하시면서 이 지상에서 세가지의 진리를 깨닫고 돌아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수 잔 느     세 가지의 진리?


주    인     도대체 무엇이지요, 그 진리라는 것이?


비 앙 카     그 진리란 이런  것입니다. 첫째, 사람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둘째, 사람에게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세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쥬    리     비앙카…. 그렇다면 당신은  여기서 6년 동안 단 세번밖에 웃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 진리를 깨달았을 때였었군요 ?  




             비앙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수 잔 느     그런데 그 첫번째 진리는?


비 앙 카     그 답은 제일 쉬웠어요. 왜냐하면 사람은  그것을 나타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지요. 주인 아주머니와 쥬리와 수잔느의 마음 속에도 그것이 가득하니까요. 그것은 사랑이었어요.


쥬    리 ,


수 잔 느     사랑?


주    인     사랑이라고 ?


비 앙 카    네, 사랑이예요. 그 눈내리는 날 이 집  식구와 나는 서로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세상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에도 유독 가난한 당신들이 나를 구해 주었어요. 남에게 사랑을 베푸는 그 순간 사람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워지지요.


주    인     뭐라구 ? 아름다워진다워구요 ?


비 앙 카   천사는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요. 정말로 빛나는…  아주머니, 그 날밤 제가 눈 밭에 쓰러져 있다가 쥬리의 도움으로 이 곳에 오게 되었고, 그리고  따뜻한 국물을  마시게  되었을 때, 난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쥬    리     그래서 당신은 미소를 지었군요.


수 잔 느     그럼 둘째, 둘째 진리란 ?


쥬    리     그건 무엇이었나요 ?


비 앙 카   그것은 무엇이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를 아는 능력입니다. 백작부인과 그 따님을 기억하고 계시지요. 3주일 후면 화려한 무도회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값진 무도복을 입고 화려한 목걸이와 보석에 싸여서 기쁨에 젖어 있을 것이었지요. 그런데 사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두사람에게 참으로 필요했던 것은 죽은 사람에게 입힐 상복이었지요?


주    인     응! 그랬었군. 생각해 보면 …… 인생은 덧없는 거야.


수 잔 느     사윗감을 고르기 위한 화려한 무도회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우리들은 부러워했는지…..


쥬    리     우리들은 잘못된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몰라. 무엇이 제일 중요한 것인가를 몰랐던 거지.


비 앙 카     사람에게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은 바로 다가올 미래의 시간이었어요. 그 부인과 딸은 자신들의 죽음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수 잔 느     그러면 세째 진리는 무엇이지?


비 앙 카    그것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하는 거예요. 사람은 사랑과 하느님의 섭리, 그것으로 사는 거지요. 그  절름발이 소녀는 자기를 길러 준  그 부인의 사랑과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뜻에  따라 살지요. 세상에 극히  우연한 일에도  하느님의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섬세한 사람들의 사랑에 의해서 사람들은 훈훈하게 살고 있는 것이지요.


수 잔 느     (주인에게)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이예요.


비 앙 카     그 눈내리는 밤에 초를 사려고 쥬리가 밖으로 나갔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하필 왜 그날 밤 초가 떨어졌을까요? 왜 쥬리는 딴 길을 가지 않고 그 길을 택했을까요? 하느님의 끝없는 섭리에 따라 초는 그날 밤 떨어졌고 쥬리는 바로 그 길을 갔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쥬    리     아! 이젠  알겠어, 잘 알겠어요.


주    인     어쩐지 세상이 새롭게 변한 것 같구나. 그렇지?


수 잔 느     (주인에게) 비앙카 때문에 지금까지 알지 못하던 것을 깨닫게 되었어               요.


쥬    리     비앙카, 감사해요.


비 앙 카    (미소 지으며 일어서면서) 감사는 제게 하지 말고 하느님께 돌리십시오.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모든 것을 포용하시는 주님께 마음속 깊이 신뢰를 가지고 의지하십시오.(위쪽으로 퇴장하면서) 부디 행복하게 사십시오. 단 한 번밖에 없는 당신들의 생애를 보람있고 평안하게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 주고 여러분 자신도 사랑하며 기쁨과 행복에 넘친 생활을 하십시오.




             비앙카 퇴장. 세 사람은 비앙카가 사라진 쪽을 침묵으로 응시




수 잔 느     (무릎을 꿇으며 하늘을 향하여) 사람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랑이.


쥬    리    (좀 뒤에서 같은 동작으로) 사람에게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


주    인     (좀 사이를 두고) 사람은 정말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과 하느님의 섭리로


             조용한 음악이 들리며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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