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천성당학생주보-삼위일체대축일

 

학생회장: daekun86@hanmail.net 교무샘:kcbs3@hanmail.net












탈리다  쿰


학생회장 : 윤성렬(대건안드레아))

총    무 : 전 명 주 (데레사)


2003년도 목천학생회 목표          “친구들에게 관심을“


주요 실천 사항 :

① 친구에게 멜 보내기  ② 학생미사 참례하기  ③ 교리공부하기





       ◈ 성부와 성자와 성령..한분이신 하느님 ◈




1. 독서와 복음의 내용




   1독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느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알려주십니다.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해내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위로 하늘에 계시고 아래로 땅위에 계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그분밖에는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2독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을 받을 사람입니다.


   복 음: 예수님께서는 승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당신이 받은 권한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2. 오늘 독서와 복음의 핵심 ☞ 성부하느님, 성자 하느님, 성령 하느님




하루는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삼위일체 교리를 어떻게 하면 잘 깨닫고 설명할 수 있을까?” 하여 고민하면서 바닷가를 산책하고 계셨다.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한쪽 구석 백사장에서 아이들 세 명이 역시 하루 종일 모래성을 쌓아 놓고 작은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부으며 놀고 있었다. 성인께서 가까이 가서 “애들아, 너희들 무엇을 하고 있어”라고 물으시자, 어린이들은 “저희들은 저 바닷물을 이 모래성에 모두 퍼 담으려고 합니다”라고 답했다. 성인께서 웃으시며 다시 “애들아, 너희가 죽을 때까지 해도 그 일은 못 끝낼 것이야”라고 하시자, 아이들은 “그래도 선생님께서 삼위일체교리를 깨닫는 일보다 더 쉬울 거예요”라고 답했다고 했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하나의 신비로서 계시로 알려지는 진리이고, 계시를 떠나서는 인식이 불가능한 진리이기에 우리의 이성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가 되었다 하더라도 삼위일체의 신비가 남김없이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삼위일체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믿고 고백하는 것 뿐 입니다.


나는 큰 소리로 고백해야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분이신 하느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저는 믿습니다.


◈  잼있는 이야기 교리 ◈


성부 성자 성령 3위이며 하나이신 신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길 빕니다.”(2고린 13,13)




1. 삼위일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삼위일체에 근거한다. 교회는 삼위일체 교리가 하나의 신비로서 계시로 알려지는 진리이고, 계시를 떠나서는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가르친다. 또 계시가 되었다 하더라도 삼위일체의 신비가 남김없이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성삼위 신비는 창조계를 까마득하게 초월하는 것이므로 창조된 사물에 비유하는 것은 어느 것도 이 신비를 적당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2. 삼위일체 신앙의 발단


그리스도교 신앙의 고유성을 드러내주는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는 하느님에 대한 역사적인 체험을  소화하려는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신약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측면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만났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험에서 그 사건의 계시를 절정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신비적 신체험에 이어서 성령체험을 아울러 겪었다.


이처럼 역사 안에서 삼중형태를 지닌 하느님과 마주하게 되면서 이 체험을 어떻게 신앙의 유산으로 물려받는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과 어떻게 융화시킬 수 있는가를 궁리하게 되었으며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3. 성서에 나타난 삼위일체


  구약에서는 위격이나 삼위일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역사적으로 많은 교부들이 구약의 많은 본문을 삼위일체 진리를 암시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창세기1,26절의 우리라는 말마디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는 세인물의 방문(창 18,1-16), 이사야의 삼중찬미를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드러내는 계시라고 보았지만 그 신빙성은 약하다. 구약은 신약 계시의 준비일 뿐이다. 구약을 바탕으로 삼위일체의 신학적 전개는 어렵다. 하지만 구약의 계시가 궁극적인 신약의 계시를 지향하고 있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구약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이해와 측량을 뛰어넘는 파악할 수없는 하느님의 충만한 풍요성이다.     


신약성서에 명시적으로 나타나는 삼위일체 정식은 예수님의 직제자들에게는 분명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당히 일찍이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이해하게 되었음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신약성서는 삼위일체 신비가 그리스도와 성령의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의 구원 역사 안에서 계시되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성서는 삼위일체 교리가 결코 추상적인 진리가 아니라, 창조, 구원 역사와의 연관 속에서 얻어낸 진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하느님의 구원역사가 명백하게 게시되는 정도에 따라 그 분명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체험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실재에 대한 신비가 이성적으로 남김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본다.






4.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창조주시요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을 “야훼”라 부르며 흠숭해 왔는데, 신약 시대에 이르러 우리는 이 하느님을 아버지(聖父)라고 부르고 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일러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언제든지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마태 26,39.53; 마르 14,36; 요한 14,2.7)로 부르시고 우리에게 이르시는 말씀에서는 ‘너희의 아버지(루가 6,36; 마태 6,4.6.8; 7,11)라 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느님을 알고 믿고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정확하게 우리에게 알려주셨고 그분께 나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은 “말씀이 사람이 되신”(요한 1,14) 분이시다. 즉 하느님의 아들이 인성(人性)을 취하셔서 사람이 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부터 성령의 활동이 나타난다. 많은 예언자들에게 성령의 힘을 입혀주었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탄생이나 말씀이나 행동도 성령이 같이 하셨다. 특히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의 특별한 전능이 나타났다. 이때부터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복음 전파와 교회를 거룩하게 하는 일에 성령의 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느님은 무한히 완전한 분이시기 때문에 여럿일 수 없다. 오직 한 분만이 계실 뿐이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부가 계시고 인간을 구원하신 성자도 계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도 계신다. 이 때문에 마치 하느님이 세 분인 것 같이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은 다 같이 하느님이시면서도 하느님은 세 분이 아니고 오직 한 하느님이시다. 이 신비를 ‘삼위일체’라 한다.


성경에는 아버지가 아들보다 크다는 말도 있고 아들과 성령은 다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므로 성부가 가장 높고 성자와 성령은 성부께로부터 나고 성부의 보내심을 받아 세상에 온 것이니 그 지위가 성부보다 낮다고 하였으면 좀 납득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일종의 다신교적(多神敎的)인 교리가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에게는 서로 높고 낮음이 없다.


또 성부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성자는 사람을 구원하시고 성령은 거룩하게 하는 직분을 자지고 오셨는데, 시대적으로 구분하여 창조 때부터 예수님의 강생까지를 성부의 시대, 예수님이 세상에 계신 동안을 성자의 시대, 성령이 강림한 그 이후를 성령의 시대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린 해석은 상식적으로 알아 듣기 쉽고 그럴 듯하게 생각되지만 교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해석이다. 하느님은 신령한 분이기 때문에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신다. 그러므로 이 세 분은 먼저 계시고 후에 계심도 없는 것이다. 세 분은 다 같이 전지 전능하시고 시작과 끝이 없으시며 영광과 찬미를 받으실 하느님이시다. 또 세 분의 역할은 각각 다르지만 활동하실 때에는 언제나 세 분이 다 함께 하신다. 이와같이 삼위일체로 계시는 하느님은 본질도, 권능과 영광도 같다. 다만 그 위격이 다를 뿐이다,




5.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교리


1.한 하느님이 세 위격으로 존재하는데 이들은 하나의 하느님이시며 이 위격들은 동일하게 영원하고 전능하다.


2.세 위격들이 구별된다. 성부 위격은 무근원적 위격이고, 성자의 위격은 성부로부터 출생되는 위격이며, 성령의 위격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되는 위격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그리고 출생과 발출이 정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다만 유래성만을 지시하고 있을 뿐이다.


3.이 하느님의 세 관계적 위격들은 하나의 하느님 본질에 있어서 구별되지 않는다. 여기서 하느님의 유일성이 강조된다.


4.하느님의 위격들은 존재 안에서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외부를 향하는 하나의 역사 원리다.




6. 삼위일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격언


기본속성은 다섯 개, 관계들은 넷, 위격들은 셋, 발출은 둘,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 증명은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이 성삼위일체이다.


5. 출산되지 않음, 출산함, 출산됨. 발출함, 발출됨


4. 하느님이 출산한다. 그가 아들로서 출산된다. 그가 성령을 발출하며, 성령으로서 발출된다. 3.성부, 성자,성령      2-로고스의 발출,성령의 발출  1.한분이신 하느님




7. 삼위일체론의 중심 사상과 그 적극적 의미


그리스도교가 삼위일체 삼위일체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결단의 기본적 관점은


1.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직접적이라는 믿음에 기인한다. 어떤 반신반인 같은 중간적 존재로서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제대로 중재하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2.하느님은 오직 한 분 뿐이시라는 철저한 유일신론적 신앙고백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3.하느님과 인간의 역사를 진지하게 고려하자는 노력의 태도이다.




8. 부정신학으로서의 삼위일체론


교회가 시도하고 있는 하느님의 삼위일체에 대한 신비는 어쩌면 부정적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느님은 이렇다가 아니라, 이것은 하느님이 아니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으로는 하느님을 설명할 수 없다. 말하자면 암시이지 설명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보다 하느님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부분이 더 크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무작정 그분을 받아들이는 무비판적 입장을 거부한다. 이것은 참 신앙의 자세도 아닐 뿐더러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자세도 아니다. 신앙이란 야곱처럼 부단하게 하느님과의 한판의 씨름이라 할 수 있다. 요즘시대를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하느님과 말하려는 사람은 적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아는 것 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소중하다




9.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는 오직 성부와 관계 안에서 사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자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고, 하느님을 향한 삶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하나가 된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 될 때 우리는 하느님과도 하나가 된다. 삼위일체는 우리가 사랑 안에서 일치의 삶을 살도록 보여주는 하느님의 신비이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삼위일체의 삶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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