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알아간다는 것은 나에게 커다란 기쁨을 줍니다.
탈리다 쿰 | 슬기로운 나는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하느님의 자녀 |
“친구들에게 관심을“ | |
주요 실천 사항 : ① 친구에게 멜 보내기 ② 학생미사 참례하기 ③ 교리공부하기 | |
◈ 참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1. 독서와 복음의 내용
1독서: 가르멜산 위에서 엘리야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바알의 예언자들과 대결을 합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고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 사실을 안 이스라엘의 왕비이며 이방인인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려 하고 엘리야는 거친 들로 나가 이제는 모든 것을 끝냈으니 숨을 거두어 달라고 청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음식을 내려 주어 힘을 얻게 합니다. 이 음식은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빵이며 이 음식으로 힘을 얻은 엘리야는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됩니다.
2독서: 마지막 날에 우리를 해방하여 하느님의 백성으로 삼으실 것을 보증해 주신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해 드려서는 안됩니다. 모든 독설과 격정과 분노와 고함소리와 욕설 따위는 온갖 악의와 더불어 내어 버리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 놓으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닮아 사랑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복 음: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안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관점에서만 예수님을 바라보기에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이심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의 옹졸한 마음과 굳은 마음은 참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알아 뵙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빵이십니다. 이 빵을 먹는 우리들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2. 오늘 독서와 복음의 핵심 ☞ 영원한 생명은 용서와 사랑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예언자 엘리야는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음식으로 힘을 얻고 하느님을 만나러 호렙산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가 매일 모시는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의 몸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합니다. 그 빵을 먹어 영적인 힘을 얻은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하게 되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이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몸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입니다.
생명의 빵을 먹고 있는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독설과 격정, 분노와 온갖 악한 생각들은 멀리 쫓아 버려야 합니다. 성체로 힘을 얻는 우리는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은 삶을,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은 그런 삶을…
“ 성체로 힘을 얻은 우리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혼인성사
혼인성사는 가톨릭 신자인 한 남자와 여자가 본당신부와 증인들 앞에서 자유로이 사랑의 원의를 드러냄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이 성사는 다른 성사와는 달리 부부 자신이 성사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혼인성사의 유대는 그리스도가 교회와 맺은 신비스런 혼인을 상징하며 그리스도와 교회간의 일치를 표현합니다. 이 유대로 말미암아 부부는 죽기까지 신의를 지키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혼인제도는 비록 하느님이 제정한 것이지만 혼인이 의무로 강제되는 것은 아니므로 동의가 혼인계약의 필수요건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혼인성사는 다른 성사와는 달리 결혼을 하는 당사자들이 성사 집전자이자 성사 수령자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혼인성사란 합법적인 남녀 그리스도 교인과, 그들이 주고받은 혼인동의를 통하여 하느님이 혼인유대를,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일치를 상징하는 영원한 표지로 승격시키는 성사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1.. 사랑과 성(性). 부부애
인간에게는 사랑을 받고 싶다는 본능과 사랑하고 싶다는 본능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인간 사랑의 이중성을 부부애로 이루어 주시고자 성(性)을 주셨습니다.
부부애가 참된 사랑이 되려면 영혼과 정신과 마음과 몸의 일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영혼의 일치란 삶을 그 깊은 데에서 참으로 함께하고 양편 모두 자기 내부의 가장 깊은 데까지 서로 통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어린왕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생떽쥐뻬리는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주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에서 인생을 내다보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의 일치란 서로의 애정으로 자기 자신을 선물로 주는 것이며 상대방의 전존재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몸의 일치란 영혼의 느낌들을 표현하는 신체적 결합을 뜻합니다.
현대 세계의 비극은 이러한 요소들의 본질적인 조화를 깨뜨려 버리고 부분적인 육체적 차원만을 강조해서 이기주의적인 사랑으로 변형되었다는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싶은 물건이나 어떤 것을 사기 위하여 그만한 대가나 값을 치르고 나서야 얻어 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완전한 소유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내어줄 수 있을 때에만 완전한 소유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2. 성서에 나타난 혼인
신약성서에는 혼인에 관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에페소서에서는 혼인을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정신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 아내된 사람들은 주님께 순종하듯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남편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몸을 바치신 것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이와 같이 남편된 사람들도 자기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에페5,21-33).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처럼’이라는 말이 핵심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의 의도를 옳게 파악하려면 혼인 미사의 독서로 사용되는 이 대목을 통독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야훼의 사랑을 혼인의 사랑에 비교한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 또 그리스도의 인간성으로 말미암아 그 비교가 훨씬 더 뚜렷해졌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인류의 사랑은 결국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요한15,9)고 하신 말씀대로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주고 받는 사랑도 하느님 안의 사랑의 반영입니다. 따라서 혼인에서 주고 받는 사랑도 하느님 안의 사랑의 반영입니다. 인간의 혼인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에 비교하는 것은 우리의 가정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고 불어넣어주신 그러한 사랑을 보여주는 한에서만 참으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3. 거룩한 성사로서의 혼인
세례받은 사람들의 혼인은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참된 상징이 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자 부부의 유대는 하느님께서 당신 성자의 육화를 통하여 사람들과 맺고자 하신 완전무결한 유대를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만들고 이웃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의 성사이듯이 그리스도교회 안에서의 혼인은 그 자체가 성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정성되이 묵상하면서 교회는 세례받은 자의 혼인이 신약의 일곱 가지 성사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가르쳐 왔고 계속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부 생활과 사랑의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부부적 사랑으로 들어 높여지고 그분의 구원의 힘으로 유지되고 풍요롭게 됩니다.
혼인의 성사성으로 말미암아 부부는 결코 풀릴 수 없는 정도로 매어지는 것이며, 그들의 상호 유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자체에 대한 성사적인 징표인 동시에 참된 표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자 부부들은 그들의 십자가 위에서 일어날 일들을 교회에 계속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나 자녀들에게 구원의 증인이며, 성사는 그들을 구원의 참여자로 만듭니다. 혼인은 고유한 양식으로 구원 사건의 참된 상징입니다. 부부는 함께 구원사건에 참여하기 때문에 혼인의 우선적이고 직접적인 효과는 초자연적인 은혜가 아니고 그리스도교 신자 부부의 유대, 즉 두 사람의 그리스도적 일치입니다. 왜냐하면 혼인은 그리스도의 육화의 신비와 계약의 신비를 표출하기 때문입니다.
혼인성사도 다른 성사들이 그러하듯이 볼 수 없는 초자연적인 효과를 주는 볼 수 있는 표지로서의 구조를 지닙니다. 부부쌍방의 출석과 혼인 동거의 표현은 혼인 유대(인연)의 상징적 실재와 부부화합의 성사은총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냅니다. 혼인 제도가 비록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나 혼인이 의무로 강제되는 것이 아니므로 쌍방의 동의가 혼인 은약의 필수 요건이 됩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성사를 베푸는 사람인 동시에 성사를 받는 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혼인성사란 아무에게나 어느 것에나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남녀 그리스도교 신자(자격이 있는 자)와 그들이 주고받는 혼인 동의를 통하여 하느님이 혼인 인연을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일치를 상징하는 영원한 표지로 들어 높이는 성사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죽기까지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신의를 지킴으로써 갈리지 않음과 충실을 증거해야 합니다.
4. 혼인의 특성
혼인에는 여러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이를 이해함으로써 부부의 의미를 수행할 수 있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혼인은 너와 나의 신성한 계약이다(혼인의 단일성)
사랑은 자기의 모든 것을 주고 상대의 모든 것을 받아들임을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혼인의 계약 역시 자기 몸에 대한 권리를 상대에게 주고 상대의 몸에 대한 권리를 자기가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 사이에 제3자가 끼여들 수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끼여든다면 부부의 일치는 불가능하게 되고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기거나 배우자에게 주어야 할 것을 제3자에게 줌으로 배우자의 권리를 침해하게 됩니다.
2) 혼인은 영속성을 지닌다(혼인의 영속성)
합법적 예식을 치르고 성관계가 이루어졌을 때 완결된 혼인이라고 하는데 이 완결된 혼인은 영속성을 갖습니다. 즉 배우자의 죽음으로써만 그 인연이 풀린다는 뜻입니다.
혼인생활을 가능케 하는 사랑은 본질적으로 영원을 지향하고 있으며 부모를 떠나 배우자와 한 몸을 이루는 신비로운 관계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된다”(마태19,6)고 하시면서 인간은 혼인을 풀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이혼이 가능하다고 전제한다면 혼인의 신성성과 신비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배우자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더 나은 사람을 찾아 나서게 될 것이고 잠시의 미운 감정은 영원한 이별을 낳게 되고 자녀들은 아버지나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불행을 겪게 되고 사회는 수 많은 문제를 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인성사의 은총은 서로 용서하고 일치를 위해 노력할 때마다 전보다 더 깊은 친밀감을 맛보게 해줍니다.
3) 혼인은 신성한 것이다(혼인의 신성성)
혼인은 개인과 인류사회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인류역사의 시작부터 세말까지 존속되는 제도입니다. 부부 사이에는 가려진 것도, 숨겨진 것도, 이해득실도 없는 오직 하나되고자 하는 사랑의 관계만이 있습니다. 즉 의존관계나 공존관계가 아닌 부모와의 관계보다 더 강한 사랑의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로운 일치에 참여하고 자녀를 낳게 해주시는 사랑의 신비에 참여하게 됩니다.
4) 혼인은 신비로운 것이다(혼인의 신비성)
수많은 사람들 중에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혼인입니다. 각각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고 다른 성격을 지닌 두 인격이 만나 서로 배우자의 단점을 보충하며 자기배우자가 완전한 인간이 되기를 바랄 뿐 아니라 실제로 자기 배우자가 자기에게 제일 맞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힘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로써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힘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혼인하는 부부에게 사랑을 선물로 주시지만 부부는 이 선물을 길러가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은 키우지 않고 방치해두면 시들어버리고 말지만 기르면 기를 수록 무한히 성장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인격과 인격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두 인격이 성장하는 비례대로 사랑도 성장합니다. 더 나은 인간 즉 지성, 품위, 학식, 건강, 명예, 아름다움, 성실, 양순함, 선함 등을 풍부히 소유한 인간이 될 수록 더 사랑받기 쉽고 더 사랑하기 쉬어집니다. 배우자를 길러주는 동시에 자신을 성장시킬 때 사랑은 성장하고 부부는 더 큰 일치를 이루며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