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다 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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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관심을“ | |
주요 실천 사항 : ① 친구에게 멜 보내기 ② 학생미사 참례하기 ③ 셀 모임에 참석하기 | |
♡ 성가정대축일♡
오늘은 성가정 축일입니다. 이날은 신자들이 나자렛의 성가정을 기억하고 본받아 모든 가정이 행복이 넘치는 성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특별히 노력하라고 제정된 날입니다. 오늘 1독서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어버이를 공경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독서에서는 주님과 함께 사는 가정생활은 부부사랑과 자녀사랑이 필수조건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복음은 마리아와 요셉이 잃었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는 내용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성가정을 이루기 위한 조건이 먼저 자녀사랑과 부부사랑과 부모공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학생의 신분으로서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먼저 나로 인해서 부모님들이 싸우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나로 인해서 부모님들이 싸우는 경우는 어떤 경우입니까? 내가 53명중에서 52등 할 때 서로가 누굴 닮아서 그렇게 공부를 잘하냐고 싸웁니다. 내가 술 담배를 열심히 배워서 그것을 부모님께 나 이거 잘해요 라고 보여줄 때 부모님은 또 싸웁니다. 당신이 매일 술만 먹고 담배피우니까 애가 이 모양이지.. 방과 후에 교복을 벗어 던지고 멋진 옷으로 갈아입고 예쁘게 화장하고 친구들과 돌아다니면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그 멋진 모습을 부모님이 보시면 또 한판의 싸움이 일어납니다. 당신은 집에서 뭐했기에 애가 저모양이야…. 부모님을 싸우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면 부모님을 기쁘게 해주는 방법은 없을까요? 물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부모님의 생각을 개조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성당 열심히 다녀도 성적이 안 떨어진다는 생각을 부모님에게 주입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님이 성당가라고 말을 합니다. 요즘은 오히려 부모님들이 성당 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학교에서 모범생이라는 것을 부모님에게 주입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이 꼭 유명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주입시켜야 합니다. 세상의 중심이 돈이 아니라는 것을 부모님의 머리 속에 주입시켜야 합니다. 안 그러면 여러분들은 매일같이 공부해라. 공부해라. 이 소리밖에는 듣지 못합니다. 지금도 아마 지겹게 듣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존경하십시오.
예수님과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처럼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친구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세요. 그리고 부모님을 싸우게 하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성모님 속 터져유.
1. 시작기도: 말씀읽기:루가2,41-52
41 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해방절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했다. 42 예수가 열두 살 되던 해에도, 그들은 축제 관습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43 (축제) 기간이 끝나고 그들이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남았으나 부모는 모르고 있었다. 44 그가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여기고 그들은 하룻길을 간 다음에야 친척과 친지들 사이에서 그를 찾았다. 45 그러나 찾지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그를 찾아다녔다. 46 그러다가 사흘 후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런데 예수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총명함과 답변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48 부모도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가 그에게 말했다. “얘야, 우리한테 이게 무슨 짓이냐? 보아라, 네 아버지와 내가 애타게 너를 찾았단다.” 49 그러자 예수는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50 부모는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51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자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새겨 두었다.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해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성모님 속 터져유.
예수님, 성모님, 성 요셉.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환상적으로 어울려서 멋진 가정을 꾸미신 분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한 성모님, 그 아기는 다름 아닌 하느님의 아들. 부담스러운 두 분을 모셔야만 하는 성 요셉. 그냥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더 행복했을 성 요셉이지만 성가정의 가장으로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참으로 어렵지 않았을까요? 가정생활이 어려울 때마다 성가정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부모님을 이해 못할 때, 자녀들을 이해 못할 때, 배우자를 이해 못할 때,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성가정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41 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해방절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했다.
예수님은 구약의 신심에 젖어 있는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순례는 그 필수적인 일이었습니다. “일 년에 세 차례 내 앞에서 축제를 올려라.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너희가 밭에 시를 뿌려서 지은 곡식의 맏물을 바치고 맥추절을 지켜라. 또 농사지은 것을 밭에서 모두 거두어들이는 연말에는 추수절을 지켜라. 너희 남자들은 일년에 세 번, 모두 주 야훼 앞에 나와야 한다”(출애 23,14-17).
성가정은 율법이 정하는 것 이상을 지켰습니다. 여자들은 순례할 의무가 없었으나 성모님께서는 성전순례를 하셨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 열두 살이 된 아들 예수님을 모시고(?) 성전으로 갔습니다. 또한 율법학자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소년은 열세 살이 되었을 때부터 율법의 모든 규정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되었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먼 길을 걸어 가야하는 순례는 무척 어려웠을 것입니다. 주일날 10분 거리의 성당도 차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거리가 멀다고 성당 안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42 예수가 열두 살 되던 해에도, 그들은 축제 관습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43 (축제) 기간이 끝나고 그들이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남았으나 부모는 모르고 있었다.
누룩 없는 빵을 먹는 축제인 과월절 축제는 칠 일간 계속되었습니다. 축제의 둘째 날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가정은 축제 기간 동안 줄곧 그 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축제가 끝나자 마리아와 요셉은 집은 향해 떠났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 무리는 친척들과 친지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 밖의 사람들도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여행하는 것은 안전을 위해서였는데 어느 정도 자유로운 왕래도 가능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부모님을 따라가지 않고 성전에 남아 있었습니다.
44 그가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여기고 그들은 하룻길을 간 다음에야 친척과 친지들 사이에서 그를 찾았다. 45 그러나 찾지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그를 찾아다녔다. 46 그러다가 사흘 후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랍비들의 교수 방법은 토론식이었습니다. 옛 유대인들의 격언에 의하면 그들은 율법 지식을 동료 랍비들의 연구나 제자들의 논쟁을 통하여 얻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마 이런 율법교사들의 틈에 끼어 바닥에 앉아 계셨던 것 같습니다.
47 그런데 예수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총명함과 답변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말씀을 해 주셨을까요? 아마 율법교사들이 어려워하는 문제들을 쉽게 대답하니 놀라지 않았을까요? 아이가 하느님의 심오한 지혜를 꿰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여 다른 이들에게 좀더 멋진 모범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48 부모도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가 그에게 말했다. “얘야, 우리한테 이게 무슨 짓이냐? 보아라, 네 아버지와 내가 애타게 너를 찾았단다.”
성모님의 말씀은 오랫동안 헤매면서 느낀 슬픔과 비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친어머니로서 인간적인 감정을 숨기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씀하십니다.
49 그러자 예수는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첫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본성을 깊이 의식하고 계심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이 인간적인 모든 한계로부터 독립되어 계심을 확증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이해를 초월하십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은 장차 그분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 집에 계셔야 합니다. 성전은 하느님께 바쳐진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옛 성전은 구원사에서 그 역할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새 성전이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친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어디나 새 성전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에서 예루살렘은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신 도시였고, 또한 예수님의 죽음과 현양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 결과 새 예루살렘과 새 성전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요한묵시록 21,2-3참조).
부모님은 속이 터집니다. 방귀 뀐 놈이 큰소리친다고…
50 부모는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과 부모와의 대화법을 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들과의 원만한 대화가 필수적입니다. 따듯한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들 수도 있고,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도 예수님께 많은 화가 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성모님께서 P.E.T 교육을 받으셔서 이렇게 말을 시작하셨다면 어때했을까?
아들을 껴안아 주면서 “사랑하는 아들아! 무사했구나! 엄마와 아빠는 네가 잘못된 줄 알고 가슴 조이면서 너를 찾아다녔단다. 다음부터는 너 혼자 어디를 가게 될 때 꼭 말해주고 가겠니?”
“어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말씀을 안 드려서 많이 걱정하셨군요. 앞으로는 꼭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저는 하느님의 아들이지 않습니까?.”
나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먼저 화부터 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에 아마 손이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근데 예수님 말씀이 참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51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자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새겨 두었다.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해 갔다.
순종하면서 지냈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것이기도 하지만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자녀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부모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을 기억하면서 부모님께 좀더 잘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2. 말씀나누기 –아래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오늘 말씀 중에 와 닿은 부분에 대해서 자신의 느낌을 나눕니다.
1. 성가정의 율법을 지키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 가정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는지.
2. 예수님과 부모님의 성전에서의 만남을 기억해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3. 알림 및 공지
1. 다음 주 복음 말씀 한두 절씩 나눠서 연구해 오기 2. 부모님께 잘하기.
4. 마침기도 …말씀으로 기도하기

메리크리스마스
탈리다 쿰
“친구들에게 관심을“
주요 실천 사항 :
① 친구에게 멜 보내기 ② 학생미사 참례하기 ③ 셀 모임에 참석하기
♡ 성가정대축일♡
오늘은 성가정 축일입니다. 이날은 신자들이 나자렛의 성가정을 기억하고 본받아 모든 가정이 행복이 넘치는 성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특별히 노력하라고 제정된 날입니다. 오늘 1독서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어버이를 공경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독서에서는 주님과 함께 사는 가정생활은 부부사랑과 자녀사랑이 필수조건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복음은 마리아와 요셉이 잃었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는 내용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성가정을 이루기 위한 조건이 먼저 자녀사랑과 부부사랑과 부모공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학생의 신분으로서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먼저 나로 인해서 부모님들이 싸우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나로 인해서 부모님들이 싸우는 경우는 어떤 경우입니까? 내가 53명중에서 52등 할 때 서로가 누굴 닮아서 그렇게 공부를 잘하냐고 싸웁니다. 내가 술 담배를 열심히 배워서 그것을 부모님께 나 이거 잘해요 라고 보여줄 때 부모님은 또 싸웁니다. 당신이 매일 술만 먹고 담배피우니까 애가 이 모양이지.. 방과 후에 교복을 벗어 던지고 멋진 옷으로 갈아입고 예쁘게 화장하고 친구들과 돌아다니면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그 멋진 모습을 부모님이 보시면 또 한판의 싸움이 일어납니다. 당신은 집에서 뭐했기에 애가 저모양이야…. 부모님을 싸우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면 부모님을 기쁘게 해주는 방법은 없을까요? 물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부모님의 생각을 개조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성당 열심히 다녀도 성적이 안 떨어진다는 생각을 부모님에게 주입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님이 성당가라고 말을 합니다. 요즘은 오히려 부모님들이 성당 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학교에서 모범생이라는 것을 부모님에게 주입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이 꼭 유명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주입시켜야 합니다. 세상의 중심이 돈이 아니라는 것을 부모님의 머리 속에 주입시켜야 합니다. 안 그러면 여러분들은 매일같이 공부해라. 공부해라. 이 소리밖에는 듣지 못합니다. 지금도 아마 지겹게 듣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존경하십시오.
예수님과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처럼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친구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세요. 그리고 부모님을 싸우게 하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성모님 속 터져유.
1. 시작기도: 말씀읽기:루가2,41-52
41 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해방절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했다. 42 예수가 열두 살 되던 해에도, 그들은 축제 관습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43 (축제) 기간이 끝나고 그들이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남았으나 부모는 모르고 있었다. 44 그가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여기고 그들은 하룻길을 간 다음에야 친척과 친지들 사이에서 그를 찾았다. 45 그러나 찾지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그를 찾아다녔다. 46 그러다가 사흘 후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런데 예수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총명함과 답변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48 부모도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가 그에게 말했다. “얘야, 우리한테 이게 무슨 짓이냐? 보아라, 네 아버지와 내가 애타게 너를 찾았단다.” 49 그러자 예수는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50 부모는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51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자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새겨 두었다.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해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성모님 속 터져유.
예수님, 성모님, 성 요셉.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환상적으로 어울려서 멋진 가정을 꾸미신 분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한 성모님, 그 아기는 다름 아닌 하느님의 아들. 부담스러운 두 분을 모셔야만 하는 성 요셉. 그냥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더 행복했을 성 요셉이지만 성가정의 가장으로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참으로 어렵지 않았을까요? 가정생활이 어려울 때마다 성가정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부모님을 이해 못할 때, 자녀들을 이해 못할 때, 배우자를 이해 못할 때,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성가정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41 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해방절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했다.
예수님은 구약의 신심에 젖어 있는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순례는 그 필수적인 일이었습니다. “일 년에 세 차례 내 앞에서 축제를 올려라.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너희가 밭에 시를 뿌려서 지은 곡식의 맏물을 바치고 맥추절을 지켜라. 또 농사지은 것을 밭에서 모두 거두어들이는 연말에는 추수절을 지켜라. 너희 남자들은 일년에 세 번, 모두 주 야훼 앞에 나와야 한다”(출애 23,14-17).
성가정은 율법이 정하는 것 이상을 지켰습니다. 여자들은 순례할 의무가 없었으나 성모님께서는 성전순례를 하셨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 열두 살이 된 아들 예수님을 모시고(?) 성전으로 갔습니다. 또한 율법학자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소년은 열세 살이 되었을 때부터 율법의 모든 규정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되었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먼 길을 걸어 가야하는 순례는 무척 어려웠을 것입니다. 주일날 10분 거리의 성당도 차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거리가 멀다고 성당 안가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42 예수가 열두 살 되던 해에도, 그들은 축제 관습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43 (축제) 기간이 끝나고 그들이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남았으나 부모는 모르고 있었다.
누룩 없는 빵을 먹는 축제인 과월절 축제는 칠 일간 계속되었습니다. 축제의 둘째 날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가정은 축제 기간 동안 줄곧 그 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축제가 끝나자 마리아와 요셉은 집은 향해 떠났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 무리는 친척들과 친지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 밖의 사람들도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께 여행하는 것은 안전을 위해서였는데 어느 정도 자유로운 왕래도 가능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부모님을 따라가지 않고 성전에 남아 있었습니다.
44 그가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여기고 그들은 하룻길을 간 다음에야 친척과 친지들 사이에서 그를 찾았다. 45 그러나 찾지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그를 찾아다녔다. 46 그러다가 사흘 후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랍비들의 교수 방법은 토론식이었습니다. 옛 유대인들의 격언에 의하면 그들은 율법 지식을 동료 랍비들의 연구나 제자들의 논쟁을 통하여 얻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마 이런 율법교사들의 틈에 끼어 바닥에 앉아 계셨던 것 같습니다.
47 그런데 예수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총명함과 답변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말씀을 해 주셨을까요? 아마 율법교사들이 어려워하는 문제들을 쉽게 대답하니 놀라지 않았을까요? 아이가 하느님의 심오한 지혜를 꿰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여 다른 이들에게 좀더 멋진 모범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48 부모도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가 그에게 말했다. “얘야, 우리한테 이게 무슨 짓이냐? 보아라, 네 아버지와 내가 애타게 너를 찾았단다.”
성모님의 말씀은 오랫동안 헤매면서 느낀 슬픔과 비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친어머니로서 인간적인 감정을 숨기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씀하십니다.
49 그러자 예수는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첫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본성을 깊이 의식하고 계심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이 인간적인 모든 한계로부터 독립되어 계심을 확증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이해를 초월하십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은 장차 그분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 집에 계셔야 합니다. 성전은 하느님께 바쳐진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옛 성전은 구원사에서 그 역할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새 성전이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친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어디나 새 성전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에서 예루살렘은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신 도시였고, 또한 예수님의 죽음과 현양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 결과 새 예루살렘과 새 성전이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요한묵시록 21,2-3참조).
부모님은 속이 터집니다. 방귀 뀐 놈이 큰소리친다고…
50 부모는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과 부모와의 대화법을 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들과의 원만한 대화가 필수적입니다. 따듯한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들 수도 있고,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도 예수님께 많은 화가 나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성모님께서 P.E.T 교육을 받으셔서 이렇게 말을 시작하셨다면 어때했을까?
아들을 껴안아 주면서 “사랑하는 아들아! 무사했구나! 엄마와 아빠는 네가 잘못된 줄 알고 가슴 조이면서 너를 찾아다녔단다. 다음부터는 너 혼자 어디를 가게 될 때 꼭 말해주고 가겠니?”
“어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말씀을 안 드려서 많이 걱정하셨군요. 앞으로는 꼭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저는 하느님의 아들이지 않습니까?.”
나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먼저 화부터 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에 아마 손이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근데 예수님 말씀이 참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51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자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새겨 두었다.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해 갔다.
순종하면서 지냈다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것이기도 하지만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자녀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부모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을 기억하면서 부모님께 좀더 잘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2. 말씀나누기 –아래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오늘 말씀 중에 와 닿은 부분에 대해서 자신의 느낌을 나눕니다.
1. 성가정의 율법을 지키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 가정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는지.
2. 예수님과 부모님의 성전에서의 만남을 기억해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3. 알림 및 공지
1. 다음 주 복음 말씀 한두 절씩 나눠서 연구해 오기 2. 부모님께 잘하기.
4. 마침기도 …말씀으로 기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