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다 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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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 |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 |
어떤 예언자도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거부하는 사람들
1. 시작기도: 말씀읽기:루가4,16-30
21 그 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이 성경 (말씀)은 오늘 여러분이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기 시작하였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에 대해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온 은총의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였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필경 여러분은 비유를 들어 나에게 ‘의사여, 네 자신부터 고쳐라. 가파르나움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 우리가 들었소. (그런 일을) 여기 당신 고향에서도 해 보시오’ 하고 말할 것입니다.” 24 이어서 그분은 말씀하셨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25 진실로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삼년 육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심한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과부가 많았습니다.
26 그런데 엘리야는 그들 중 아무에게도 보내어지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어졌습니다. 27 그리고 엘리사 예언자 때에 이스라엘에는 나병환자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습니다.” 28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 말씀을 듣고 분통을 터뜨렸다. 29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를 고을 밖으로 끌어냈다. 그들의 고을은 산 위에 있었는데 예수를 그 벼랑에까지 데리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려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거부하는 사람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고향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것. 별것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입견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지 말고, 첫인상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지 말고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그를 대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21 그 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이 성경 (말씀)은 오늘 여러분이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기 시작하였다.
구원의 때가 시작되었다는 것과 구세주께서 나타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다만 예수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였습니다. 이것은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메시지는 믿음을 요구하며 이 믿음은 들음으로써 옵니다. 믿음은 도전에 대한 응답입니다.
성서 낭독 후에는 가르침이 뒤따랐습니다. 그 가르침이 강렬한 만큼 인상적인 단어들로 된 한 문장으로 요약되고 있습니다.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때를 선포하시고 그 때가 도래하였음을 알리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이 순간에 있어서 새롭고도 기묘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거룩한 관습과 약속을 담은 성서 말씀이 이제 실현된 것입니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에 대해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온 은총의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였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의 총애를 많이 받으셨습니다. 청중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모두들 예수님을 칭찬하였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디도서2,11). “하느님께서는 그분과 함께 계셨습니다.”(사도10,38). 이러한 것은 예수님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직접 체험한 첫인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인성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영화 벤허에서 보면 요셉의 목공소에 한 사람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아들은 어디 갔냐고? 게으름뱅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아버지 요셉은 일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일을 한다고…
예수님의 말씀은 도전이었고 문제 거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하였지만 그 메시지를 가져온 구세주는 배척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다름없었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짜 걸림돌은 예수님의 죽음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그러했듯이 사도들에게도 화를 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에 대해, 그리고 하느님의 메시지를 설교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필경 여러분은 비유를 들어 나에게 ‘의사여, 네 자신부터 고쳐라. 가파르나움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 우리가 들었소. (그런 일을) 여기 당신 고향에서도 해 보시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고향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설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바울로와 바르나바도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당신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그 영원한 생명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으니 우리는 당신들을 떠나서 이방인들에게로 갑니다(사도13,46).
24 이어서 그분은 말씀하셨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약속된 구세주이시라는 표징을 원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예수님의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그들이 규정하는 바대로 입증해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당신이 정하신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동의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나자렛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25 진실로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삼년 육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심한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과부가 많았습니다. 26 그런데 엘리야는 그들 중 아무에게도 보내어지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어졌습니다. 27 그리고 엘리사 예언자 때에 이스라엘에는 나병환자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습니다.”
예언자는 자신의 임의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파견하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경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기적이 이웃 주민들에게가 아니라 낯선 이들과 이방인들에게 베풀어지도록 하셨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구세주의 고향 사람들이었고 같은 혈통을 지닌 친척들이었다는 것이 구원의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온 이스라엘은 그들 가운데에서 메시아가 나셨다는 이유로 구원에 대한 권리 주장을 내세울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선포하셨고 또 그 다스림을 확립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기쁨이 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구원은 은총입니다.
28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 말씀을 듣고 분통을 터뜨렸다.29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를 고을 밖으로 끌어냈다. 그들의 고을은 산 위에 있었는데 예수를 그 벼랑에까지 데리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려 하였다.
예언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은 반드시 표징과 놀라운 일들로 자신이 예언자임을 증명해야 했습니다(신명 13,2-3).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불경한 자로 단죄하고 돌로 쳐 죽이려 하였습니다. 불경한 자를 처벌하는 첫 조치는 핵심 증인이 그 죄인을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일이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심판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죄하고 즉시 형에 처하려고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대한 예수님의 사명이 좌절되었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불경한 자로 낙인찍히고 배척당하여 죽음에 직면하게 되셨습니다.
3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지만 예수님께 손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하느님께 달려있습니다.
2. 말씀나누기 –아래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오늘 말씀 중에 와 닿은 부분에 대해서 자신의 느낌을 나눕니다.
1.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의 모습을 잘못 알고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까? 그리고 나의 모습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럴 경우 어떻게 하십니까?
2.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인들에게 상처받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떠나게 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됩니다. 마치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혹시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들을 박해한 적이나, 박해를 당한 적은 없습니까?
3. 알림 및 공지
1. 다음 주 복음 말씀 한두 절씩 나눠서 연구해 오기 2. 성서나 매일 미사 책 가지고 다니기
3. 라뽀니 책 들고 오기.
4. 마침기도 …말씀으로 기도하기
<신품성사는?>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던 성 목요일 저녁,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루가 22,19) 하심으로써 사도들에게 성체를 축성할 수 있는 신품권을 주셨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부활하신 후 당신의 새 사제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하시며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하심으로써 죄를 용서할 권한까지 주셨다. 또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들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 28,19-20)하셨고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요한 21,17)하심으로써 그들에게 하느님 백성을 가르치고 성화하고 인도할 사명을 주셨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행동에 참여한다. 그들은 신품성사를 받음으로써 많은 신자들 중에서 선택되어 그리스도의 사제적 사명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사제로 서품된 사람은 세상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의 표징이 된다. “사제들은 신품성사를 받음으로써 새로이 하느님께 축성되고, 그로써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산 연장이 되어 천상 효력으로써 온 인류 사회를 재건하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업을 세기를 통하여 계속할 수 있게 된다”(사제직무 12). 또한 “사제들은 성령의 도유로써 특별한 영적 인호가 새겨지고 이로써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행동할 수 있도록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게 된다”(사제직무 2).
그리스도의 손은 사제의 손을 통하여 움직이며 그리스도의 치유 활동은 사제를 통해서 완성된다
2월 3일에는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신품성사가 있습니다.

탈리다 쿰
“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어떤 예언자도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거부하는 사람들
1. 시작기도: 말씀읽기:루가4,16-30
21 그 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이 성경 (말씀)은 오늘 여러분이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기 시작하였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에 대해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온 은총의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였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필경 여러분은 비유를 들어 나에게 ‘의사여, 네 자신부터 고쳐라. 가파르나움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 우리가 들었소. (그런 일을) 여기 당신 고향에서도 해 보시오’ 하고 말할 것입니다.” 24 이어서 그분은 말씀하셨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25 진실로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삼년 육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심한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과부가 많았습니다.
26 그런데 엘리야는 그들 중 아무에게도 보내어지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어졌습니다. 27 그리고 엘리사 예언자 때에 이스라엘에는 나병환자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습니다.” 28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 말씀을 듣고 분통을 터뜨렸다. 29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를 고을 밖으로 끌어냈다. 그들의 고을은 산 위에 있었는데 예수를 그 벼랑에까지 데리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려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거부하는 사람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고향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것. 별것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입견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지 말고, 첫인상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지 말고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그를 대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21 그 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이 성경 (말씀)은 오늘 여러분이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기 시작하였다.
구원의 때가 시작되었다는 것과 구세주께서 나타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다만 예수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였습니다. 이것은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메시지는 믿음을 요구하며 이 믿음은 들음으로써 옵니다. 믿음은 도전에 대한 응답입니다.
성서 낭독 후에는 가르침이 뒤따랐습니다. 그 가르침이 강렬한 만큼 인상적인 단어들로 된 한 문장으로 요약되고 있습니다.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때를 선포하시고 그 때가 도래하였음을 알리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이 순간에 있어서 새롭고도 기묘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거룩한 관습과 약속을 담은 성서 말씀이 이제 실현된 것입니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에 대해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온 은총의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였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의 총애를 많이 받으셨습니다. 청중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모두들 예수님을 칭찬하였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디도서2,11). “하느님께서는 그분과 함께 계셨습니다.”(사도10,38). 이러한 것은 예수님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직접 체험한 첫인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인성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영화 벤허에서 보면 요셉의 목공소에 한 사람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아들은 어디 갔냐고? 게으름뱅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아버지 요셉은 일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일을 한다고…
예수님의 말씀은 도전이었고 문제 거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하였지만 그 메시지를 가져온 구세주는 배척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다름없었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짜 걸림돌은 예수님의 죽음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그러했듯이 사도들에게도 화를 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에 대해, 그리고 하느님의 메시지를 설교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필경 여러분은 비유를 들어 나에게 ‘의사여, 네 자신부터 고쳐라. 가파르나움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 우리가 들었소. (그런 일을) 여기 당신 고향에서도 해 보시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고향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설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바울로와 바르나바도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당신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그 영원한 생명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으니 우리는 당신들을 떠나서 이방인들에게로 갑니다(사도13,46).
24 이어서 그분은 말씀하셨다. “진실히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약속된 구세주이시라는 표징을 원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예수님의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그들이 규정하는 바대로 입증해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당신이 정하신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동의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나자렛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25 진실로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삼년 육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심한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과부가 많았습니다. 26 그런데 엘리야는 그들 중 아무에게도 보내어지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어졌습니다. 27 그리고 엘리사 예언자 때에 이스라엘에는 나병환자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습니다.”
예언자는 자신의 임의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파견하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경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기적이 이웃 주민들에게가 아니라 낯선 이들과 이방인들에게 베풀어지도록 하셨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구세주의 고향 사람들이었고 같은 혈통을 지닌 친척들이었다는 것이 구원의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온 이스라엘은 그들 가운데에서 메시아가 나셨다는 이유로 구원에 대한 권리 주장을 내세울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선포하셨고 또 그 다스림을 확립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기쁨이 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구원은 은총입니다.
28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 말씀을 듣고 분통을 터뜨렸다.29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를 고을 밖으로 끌어냈다. 그들의 고을은 산 위에 있었는데 예수를 그 벼랑에까지 데리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려 하였다.
예언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은 반드시 표징과 놀라운 일들로 자신이 예언자임을 증명해야 했습니다(신명 13,2-3).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불경한 자로 단죄하고 돌로 쳐 죽이려 하였습니다. 불경한 자를 처벌하는 첫 조치는 핵심 증인이 그 죄인을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일이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심판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죄하고 즉시 형에 처하려고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대한 예수님의 사명이 좌절되었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불경한 자로 낙인찍히고 배척당하여 죽음에 직면하게 되셨습니다.
3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지만 예수님께 손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하느님께 달려있습니다.
2. 말씀나누기 –아래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오늘 말씀 중에 와 닿은 부분에 대해서 자신의 느낌을 나눕니다.
1.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의 모습을 잘못 알고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까? 그리고 나의 모습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럴 경우 어떻게 하십니까?
2.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인들에게 상처받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떠나게 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됩니다. 마치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혹시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들을 박해한 적이나, 박해를 당한 적은 없습니까?
3. 알림 및 공지
1. 다음 주 복음 말씀 한두 절씩 나눠서 연구해 오기 2. 성서나 매일 미사 책 가지고 다니기
3. 라뽀니 책 들고 오기.
4. 마침기도 …말씀으로 기도하기
<신품성사는?>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던 성 목요일 저녁,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루가 22,19) 하심으로써 사도들에게 성체를 축성할 수 있는 신품권을 주셨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부활하신 후 당신의 새 사제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하시며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하심으로써 죄를 용서할 권한까지 주셨다. 또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들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 28,19-20)하셨고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요한 21,17)하심으로써 그들에게 하느님 백성을 가르치고 성화하고 인도할 사명을 주셨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행동에 참여한다. 그들은 신품성사를 받음으로써 많은 신자들 중에서 선택되어 그리스도의 사제적 사명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사제로 서품된 사람은 세상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의 표징이 된다. “사제들은 신품성사를 받음으로써 새로이 하느님께 축성되고, 그로써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산 연장이 되어 천상 효력으로써 온 인류 사회를 재건하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업을 세기를 통하여 계속할 수 있게 된다”(사제직무 12). 또한 “사제들은 성령의 도유로써 특별한 영적 인호가 새겨지고 이로써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행동할 수 있도록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게 된다”(사제직무 2).
그리스도의 손은 사제의 손을 통하여 움직이며 그리스도의 치유 활동은 사제를 통해서 완성된다
2월 3일에는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신품성사가 있습니다.